스토리텔링으로 읽는 ‘정의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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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으로 읽는 ‘정의론’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2.08.08 23: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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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의 교실: 지금 이 순간을 올바르게 살기 위한 철학 입문 | 야무챠 지음 | 남궁가윤 옮김 | 마일스톤 | 320쪽

 

부의 양극화, 불평등과 불공정 같은 문제들이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를 위협하고 있다. 동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지금이야말로 ‘정의가 무엇인가’, 더 나아가 ‘어떻게 살아야 올바르게 사는 것인가’를 고민해봐야 할 때이다. 사실 이는 약 2,500년 전부터 끊임없이 이어져온 인류의 난제 중 하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나의 모든 가치 판단에 정의가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우리 모두 이 ‘정의’에 대해 깊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은 2,500년이 넘는 세월에 걸쳐 철학자들이 고민해왔던 ‘정의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가야 올바르게 사는 것인가’라는 화두를 소설의 형식으로 풀어낸 책이다. 정의 철학을 대표하는 공리주의·자유주의·직관주의를 의인화한 개성 있는 등장인물들을 통해 각 사상과 덕목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기회를 제공한다. 또한, 이 책은 철학 입문서로서 절대주의 시조 소크라테스부터 포스트구조주의 대가 푸코에 이르는 철학 사상의 큰 흐름을 짚어준다. 

이 소설의 배경은 어느 유명한 사립 고등학교로, 집단 따돌림과 학교 폭력으로 인해 한 학생이 자살하면서 학교 측은 재발 방지를 명목으로 교내 곳곳에 감시 카메라를 설치하기에 이른다. 네 명의 학생회 간부들은 이 감시 카메라의 존속 여부에 대해 학생 대표로서 발표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한다. 학생회에는 정의 따위는 있을 리 없다고 생각하는 학생회장 마사요시 외에 평등의 정의, 자유의 정의 그리고 종교의 정의를 주장하는 지유키, 미유, 린리가 있다. 이들 넷은 사소한 우연으로 함께 윤리 수업을 듣게 되고, 윤리 교사 가자마쓰리는 이들을 철학의 세계로 이끌며 정의에 대한 여러 철학적 관점을 두루 살펴볼 수 있도록 돕는다.

과연 이 책의 주인공 마사요시는 학교 곳곳에 설치된 감시 카메라에 대해 학생회장으로서 어떠한 결론을 내리게 될까? 이 책의 스토리를 따라 가는 동안 독자 역시 이 문제에 대해 깊게 고민하며 함께 답을 찾아 나서게 된다.

‘불길이 치솟는 화재 현장, 30명의 아이와 내 아이 중에 당신은 누구를 구할 것인가?’
‘자신의 자유 의지로 마약에 손대려는 친구를 당신은 말릴 것인가?’
‘살인마가 찾아와 가족이 있는 곳을 물었을 때, 당신은 진실을 말할 것인가?’

단순한 선택 문제 같지만, 이 질문은 내가 어떤 정의를 추구하는지 알 수 있는 질문들이다. 다양한 정의 문제 앞에서 이 책의 등장인물들은 세 가지 정의 판단 기준인 ‘평등(공리주의)·자유(자유주의)·종교(직관주의)’에 대해 토론하고, 자신만의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철학자들의 사상과 특징, 문제점, 한계점 등을 배워간다. 이밖에도 존 롤스 등의 ‘무지의 베일’, 필리파 풋의 ‘트롤리 딜레마’, 제러미 벤담의 ‘파놉티콘’ 같은 대표적인 사고 실험들을 살펴보며 정의에 대해 탐색한다.

이들의 치열한 토론을 따라가다 보면 철학사의 유명한 사상가들의 생각이 항상 옳은지, 내 생각은 어떠한지 심도 있는 고민을 하게 된다. 이처럼 이 책은 독자에게 비판적인 사고를 통해 그간 품고 있던 정의에 대한 생각을 가다듬고, 이와 더불어 다양한 사례와 사상을 알기 쉽게 풀어내 한층 친숙하게 다가가 각자의 ‘철학적 기반’을 마련하게 도와준다.

살면 살수록, 삶에 위기가 닥칠수록, 우리는 스스로에게 ‘정의란 무엇일까’, ‘옳다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인간이란 모두 ‘옳음’을 추구하는 존재며 ‘옳음’을 기준으로 삼지 않으면 생각할 수도 살아갈 수도 없는 존재기 때문이다.

이 책의 줄거리를 한 줄로 요약하자면 정의 회의론자가 공리주의자, 자유주의자, 직관주의자와 함께 윤리 수업을 들으면서 자기만의 정의를 찾아가는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정의란 표면상의 원칙일 뿐 정의 같은 건 있을 리 없다고 생각하는 정의 회의주의자, 주인공 마사요시는 사실상 우리네 모습과 닮아 있다. 돈이 정의가 되는 사회, 권력이 정의가 되는 사회를 살면서 우리는 정의에 대해 회의적인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그럼에도 정의는 존재한다고 굳건히 믿는 사람들 또한 주변에 확실히 존재한다. 그들은 각각 이 책의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우리에게 호소해온다. 정의란 존재한다고, 우리를 외면하지 말아달라고, 함께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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