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다시 하버마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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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다시 하버마스인가?
  • 한기철 경인교육대학교·교육학
  • 승인 2022.08.07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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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에게 듣는다_ 『위르겐 하버마스, 의사소통적 행위 이론』 (한기철 지음, 커뮤니케이션북스, 142쪽, 2022.06)

 

이 책은 위르겐 하버마스가 쓴 『의사소통적 행위 이론』의 주요 논제들을 필자의 언어로 재구성한 것이다. 두 권으로 이루어진 『의사소통적 행위 이론』의 독일어판 원저가 1981년에 출간되었으므로, 그간에 이미 강산이 네 번 정도 변했을 세월이 흘렀다. 필자는 세기가 바뀌는 무렵에 미국에서 영역본으로 읽은 하버마스의 이 이론을 박사 학위 논문의 주제로 삼은 적이 있는데, 햇수로 20년이 지난 최근에 그것을 다시 들추어 볼 기회가 생겼다. 하버마스는 우리 시대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이자 사회이론가로 평가되기도 하는 인물이니 그의 업적이나 학문적 생애를 여기서 새삼 따로 거론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아래에서 필자는 우리는 이 시점에서 왜 다시 하버마스를 읽어야 하는지, 특히 민주주의의 실질적 정착이 절실히 요청되는 현 대한민국 사회에 왜 그가 말하는 합리적 의사소통 행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지를 간략히 제시하도록 하겠다. 

하버마스의 의사소통적 행위 이론은 그보다 20년쯤 전에 발표된 그의 공론장 이론과 연결지어 이해할 때 가장 적절히 이해될 수 있다. 자신의 교수자격 논문을 이듬해에 책으로 출간한 『공론장의 구조 변동』(1962)에서 하버마스는 17~8세기 이후 서구 사회의 신흥 부르주아 계급에 의해 형성된 ‘공론장’이 19세기 말에 이르기까지 그 구조적 변동을 겪으면서 결국에는 해체 내지 붕괴되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공론장은 근대 사회의 정치적 민주화를 촉진시키는 결정적 요인이 되었지만 안타깝게도 거대 자본주의화한 현대 국가에서는 붕괴되고 말았다는 점, 그리고 그것의 붕괴는 규범적 차원에서의 민주주의에 위기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지표가 된다는 점이 하버마스 공론장 이론의 핵심 내용이다. 

최초에 공론장의 형성을 주도했던 집단은 근대 들어 새롭게 등장한 부르주아 계급이었다. 신흥 부르주아 계급 사람들은 재산을 소유하고 있어서 일상 노동의 필요에서 자유로운 사람들이었지만 또한 교양을 갖추고 있어서 대상을 합리적으로 사유하고 토론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부르주아 개인들은 자신들의 합리적 사유와 이성적 토론 능력을 우선은 문화적 관심사들에 투여함으로써 문화적 공중을 형성했다. 이들은 문예적인 주제를 대상으로 다른 외적 요소들로부터 독립된 자유로운 쟁론을 펼침으로써 공론장의 주체가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형성된 공론장은 18세기 접어들어 정치 공론장으로 전환되면서 서구 민주주의가 발전하는 데 토대가 되었다. 하버마스는 공론장을 사회와 국가를 매개하는 영역으로서 공중이 스스로를 여론의 담지자로 조직해 나가는 곳으로 정의하고, 그 실질적인 형태로 신문, 잡지, TV, 라디오 등의 대중매체를 열거한다.

공론장은 기본적으로 교양을 갖춘 개인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곳이되, 그것의 정치적 기능은 그렇게 해서 모인 개인들이 정치적 주제들을 대상으로 비판적이고 합리적인 토론을 수행함으로써 여론을 조성하는 것이다. 정치 공론장에서 조성된 여론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대중에게 전달될 것이고, 그렇게 전달된 여론이 국가 권력을 견제하는 기능을 수행토록 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라는 정치 체제는 여론을 준거 삼아 공동체를 운영하는 체제라는 점에서, 그리고 법치 국가의 법은 여론이라는 형태로 표현된 인민의 의지를 근거로 성립한 것이라야 한다는 점에서, 정치 공론장은 우리 국가 같은 민주공화국이 건강하게 유지되는 데 핵심적인 요소가 된다 하겠다. 

그런데 그와 같이 민주주의가 성립하는 데 토대가 되었던 공론장은 현대로 올수록 그 기반이 약화되면서 결국에는 붕괴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하버마스의 진단이다. 현대 사회 들어 공론장이 붕괴된 것은 애초에 부르주아 공론장이 성립하는 데 기반이 되었던 사회구조에 심각한 변화가 왔기 때문이다. 공론장 붕괴의 원인이 된 그 변화는 ‘국가’ 요소의 거대화와 일상적 삶 전반에 대한 자본주의적 가치의 지배로 요약될 수 있다. 

공론장 개념은 그 자체로 국가권력에 대한 비판적 담론 행위를 상정한다. 그러나 현대로 올수록 이 일이 이루어지는 것을 방해하는 구조적 요인들이 지속적으로 발생했다. 문화적 주제를 대상으로 형성되었던 성찰적 공중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소비대중이 차지했다. 여론 조성임무를 담당했던 언론과 출판은 탈정치화, 대중화되어 상업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익 집단으로 전락했다. 의회와 정당은 합리적 토론을 통해 상대방을 설득하는 정치적 행위 공간이 아니라 다만 각 정파의 정책을 홍보하고 변호하는 선전 공간으로 변질되었다. 공론을 통해 형성되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여론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단지 대중매체가 매개하는 사적 의견들의 집합으로서의 여론만이 유행한다. 여론은 이제 공론장에서 형성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이른바 여론조사기관들에 의해 조사되고 관리되는 대상으로 바뀌었다. 공론장의 붕괴를 가져온 이 모든 현상들의 핵심은 공적 토론의 과정, 합리적이고 비판적인 담론의 개념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민주주의의 골격이 붕괴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1990년에 출간된 신판 서문에서 하버마스는 자신의 공론장 이론에 대해 그간에 지적되었던 몇 가지 이론적 약점들을 스스로 제시하고, 그러나 이런 약점들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공론장 이론을 통해 의도했던 전체적인 지향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주장한다. 사회복지국가의 대중민주주의는 건강하게 작동하는 공론장과 그것에서 형성된 공적 의견을 기준으로 삼을 때에만 자유법치국가의 헌법과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로 올수록 사람들의 이해관심은 대단히 다종다양해졌고, 그처럼 다원적인 이해관심들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 어떤 일반이익을 추출하여 그것을 여론의 기준으로 삼는 일이 힘들어졌다. 말하자면 공적 의견의 형성이라는 공론장의 기능이 현실적으로 작동 가능할지가 불확실해졌다는 말인데, 만약 그렇다면 공론장 개념이 현대 민주주의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지 또한 불확실해지게 된다. 하버마스는 『공론장의 구조 변동』의 초판이 나올 당시에 자신이 갖고 있었던 이론적 수단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후 하버마스가 수행한 작업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결실은 1981년에 두 권으로 출간된 『의사소통적 행위 이론』이다. 이 책에서 그는 사회 영역을 체제와 생활세계라는 두 층위로 구분하고, 전자를 자본주의 경제와 관료주의 행정으로 제도화된 영역을, 그리고 후자를 일상인들 간의 의사소통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비형식적 삶의 영역을 가리키는 것으로 개념화한다. 하버마스에 따르면 근대 이후 서구 사회가 발달해 온 과정은 ‘체제’가 ‘생활세계’를 식민화해 온 과정이다. 공론장의 붕괴는 바로 이 때문에 발생한 결과다. 공론장의 붕괴는 규범적 차원에서의 민주주의에 위기를 초래한다고 했으므로,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체제가 생활세계를 지배해 온 그 상황을 역전시키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거꾸로, 합리적 의사소통을 통해 전개되는 생활세계의 원리를 기준으로 해서 체제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제도적 행위들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일을 지속적으로 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가 의사소통적 행위 이론에 주목하는 것은 이 이론을 통해 건강한 공론장의 재건을 위한 지침들을 제공받을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정치 공론장은 말 그대로 정치적 주제들을 대상으로 해서 이루어지는 토론과 논쟁의 장이다. 그것은 최초에는 커피하우스, 살롱, 만찬회 같은 물리적 공간에서 이루어졌지만, 요즘처럼 매체가 발달한 시대에는 우리 사회 어느 곳에서건 형성될 수 있다. 한국 사회는 공론장 형성에 유리한 조건이 잘 구비되어 있는 사회다. 조건은 잘 구비되어 있으므로 이제 필요한 것은 공론장의 주체가 되는 공중의 출현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집단적 의사소통 장면들을 들여다보면 적지 않은 경우 그곳에서 공론장의 주체가 되는 ‘공중’(公衆)을 목격하기 힘들다. 특정의 사회적, 정치적 주제에 대해 공적 토론의 장이 마련되었을 때, 그 공적 토론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서로 간에 어떤 의사소통을 수행해야 하는가? 

공론장은 사람들이 모여서 그저 서로를 향해 와글와글 떠들어 댄다고 해서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집단적 의사소통 과정이 공론장으로 전환되려면 그것은 하버마스가 말하는 합리적 의사소통 행위의 기준을 만족시키는 방식으로 수행되는 과정이라야 한다. 하버마스의 ‘의사소통적 행위’는 대화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서로 간의 이해를 지향하는 행위로서, 상호 이해와 지식의 공유, 상호 신뢰와 조화를 통한 간주관적 공통성의 형성을 기반으로 한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그것은 자기 당파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다면 상대가 어떤 주장을 하든 그것을 왜곡하고 폄하하는 행위를 가리키지 않는다. 그것은 공동체적 이슈들에 관한 집단적 의사소통은 어느 특정 당파에 속한 사람들만이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 전체가 받아들일 수 있는 ‘공적’(公的) 준거를 토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을 요청한다. 이것이 의사소통적 행위 개념과 그것의 준거가 되는 의사소통적 합리성이 요청하는 바다. 민주공화국으로서의 우리 국가공동체가 건강하게 유지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이념이라 아니 할 수 없다. 


한기철 경인교육대학교·교육학

경인교육대학교 교육학과 교수다. 일리노이대학교에서 위르겐 하버마스의 의사소통적 행위 이론을 다룬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고대 헬라스·로마 교육사상, 르네상스 인문주의, 비판이론, 공화주의 등에 관심을 갖고 있다. 주요 저서로 『포스트휴머니즘과 교육학』(공저), 『교육과 정치』(공저), 『교육의 본질을 찾아서』(공저), 『지식의 성격과 교육』(공저), 『교육철학 및 교육사』(공저), 『하버마스와 교육』) 등이 있고, 역서로 『이소크라테스: 「소피스트들에 대하여」, 「안티도시스」, 「니코클레스에게」』, 『다문화시대 대화와 소통의 교육철학』(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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