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를 허문 수학자 필즈상 받아…필즈상은 수학계 노벨상일까?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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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를 허문 수학자 필즈상 받아…필즈상은 수학계 노벨상일까? “글쎄”
  • 기초과학연구원
  • 승인 2022.08.07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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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리포트] IBS News

 

국내 언론이 올해 7월만큼 수학 관련 뉴스를 많이 쏟아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평소에 없던 관심이 갑자기 생긴 것에 씁쓸하지만, 한국에서 교육받은 사람이 수학계 최고 권위 상인 ‘필즈상’을 받았으니 한편으로는 당연하다 싶기도 합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미국에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2살 때 귀국해 초중고 시절을 한국에서 보내고 서울대 물리천문학과를 거쳐 같은 대학 수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엄연히 한국이 배출한 수학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국적이 어찌 됐든 허 교수의 수상이 한국에서 필즈상뿐 아니라 노벨상 수상자까지 배출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준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허 교수는 “100% 운이 좋았다”라며 스스로 업적을 낮췄지만, 동료 수학자들은 예전부터 “수상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고 말합니다. 허 교수의 수상을 기념해 수학계에서 필즈상이 어떤 의미인지, 허 교수가 어떤 연구를 통해 이 상을 받을 수 있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필즈상은 수학계 노벨상일까?-“글쎄”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으로 평가받는 노벨상은 물리학, 화학, 생리의학, 경제학, 문학, 평화 등 6개 부문에서 수상자를 선발합니다. 수학 분야는 포함되어있지 않죠.

물론 그렇다고 해서 수학자가 노벨상을 못 받는 건 아닌데 한 예로 영화 ‘뷰티풀마인드’의 주인공으로 잘 알려진 미국 수학자 존 내시는 1994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노벨경제학상은 말 그대로 경제학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한 것이지 수학적인 업적을 인정한 건 아닙니다. 지난 2020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영국 수학자 로저 펜로즈도 유명한 수학 난제를 풀거나 이론을 정립했다기보다 블랙홀의 존재를 이론적으로 입증해 수상자로 선정됐습니다. 

20세기 활동한 캐나다 수학자 존 찰스 필즈는 수학 분야에 노벨상만큼 권위 있는 상이 없는 점을 아쉬워했던 것 같습니다. 그는 1924년 토론토에서 열린 세계수학자대회(International Congress of Mathematics, ICM)에서 이런 상을 만들자고 처음 제안하고, 꾸준히 힘썼습니다. 그러나 필즈는 1932년 8월 건강이 악화돼 상이 제정되는 걸 보지 못하고 사망했습니다. 그는 유언에서 당시 4만 달러가 넘는 재산을 상 제정을 위해 써달라고 했는데 이에 동료들은 필즈의 이름을 딴 ‘필즈상위원회’를 조직하고, 1936년 노르웨이에서 열린 국제수학자대회에서 최초로 필즈상을 시상했습니다.

이후 필즈상은 수학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으로 자리매김합니다. 이 때문에 수학 분야에 수상하지 않는 노벨상을 대신해 필즈상을 ‘수학계 노벨상’이라고 부르곤 하죠. 그런데 필즈상과 노벨상은 해당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성격은 확연하게 다릅니다. 

가장 큰 차이는 바로 나이 제한입니다. 노벨상은 수상자 선정 시 나이를 고려하지 않지만, 필즈상은 ‘시상하는 해 1월 1일 기준 만 40세 미만인 수학자’라는 조건이 있습니다. 젊은 수학자들의 연구를 장려한다는 취지지만, 다르게 말하자면 최고의 업적을 이뤄내도 나이가 많으면 최고 권위 상을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한 예로 영국 수학자 앤드루 와일스는 1995년 그 유명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해 온갖 상을 다 휩쓸었지만, 증명을 완성했을 때 이미 41세였기 때문에 필즈상을 받지 못했습니다.(물론 그의 업적이 너무나 뛰어났기 때문에 국제수학연맹은 1998년 ‘특별상’ 형태로 필즈상을 수여했긴 했습니다). 참고로 1983년 6월생인 허 교수는 올해 만 39세로 이번이 필즈상을 받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습니다.

이에 따라 필즈상은 비교적 젊은 나이에 이룬 업적을 평가하고, 노벨상은 생애 전반에 걸쳐 이룩한 업적을 가지고 수상자를 정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노벨상은 필즈상보다 나이 제한 없는, 수학계 공로상 격인 아벨상과 성격이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이 제한 외에 필즈상은 수상 주기도 더 깁니다. 노벨상은 매년 수상자를 선정하고, 필즈상은 4년에 한 번 열리는 ICM에서 시상하는데, 수상자도 대회당 2~4명만 선정합니다. 만약 노벨상이 분야 당 1명씩만 수상한다고 가정해도 4년 동안 24명이 상을 받지만, 필즈상은 많아야 4명만 타는 셈입니다. (이런 이유로 필즈상이 노벨상보다 받기 어렵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런 주장은 수학과 과학, 수학과 경제학 중 무엇이 더 어려운지 따져야 하는 논쟁을 일으키기 때문에 큰 의미가 있지는 않습니다.) 

결론적으로 필즈상과 노벨상은 각자 독립적인 상으로 취급하는 게 적절해 보입니다.


허준이 교수가 필즈상을 받은 비결…“분야간 경계 허물어 난제 해결” 

​필즈상 수상자는 국제수학연맹(IMU)에 소속된 필즈상 선정위원회가 선정합니다. 이들은 허 교수의 수상 이유에 대해 대수기하학의 도구를 이용해 다양한 조합론 문제를 풀어내 ‘기하학적 조합론’ 분야를 변화시켰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요약하자면 오래된 조합론 문제를 여럿 풀었고, 그 과정에서 전혀 다른 분야인 대수기하학의 아이디어를 활용한 점을 인정했다는 것입니다.

허 교수가 그동안 해결한 문제는 10개가 넘는데 보통 수학자가 평생에 걸쳐 하나를 해결하기도 어려운 것들입니다. 이중 가장 오래된 문제는 1968년 영국 수학자 로널드 리드가 제시한 ‘리드추측’인데, 이 문제를 살펴보면 허 교수가 해결한 문제들을 대략적으로나마 파악할 수 있습니다.

조합론은 경우의 수를 따지는 수학의 한 분야로, 물건을 배열하는 가짓수를 세거나 그래프의 꼭짓점을 서로 다른 색으로 칠하는 가짓수를 계산하는 것들이 해당됩니다. 그리고 리드추측은 이 조합론 분야의 난제입니다.

구체적으로 리드추측은 채색다항식과 연관이 있습니다. 채색다항식은 어떤 그래프의 꼭짓점을 q개의 색으로 칠할 때 이웃한 꼭짓점이 서로 다른 색이 되도록 칠하는 방법의 수를 나타낸 식입니다. 결국 채색다항식은 q에 관한 다항식으로 표현되고, 그래프가 바뀌면 이에 따라 식도 바뀝니다.

이때 그래프의 종류에 상관없이 채색다항식의 계수의 절대값은 반드시 증가하다가 감소하는 패턴을 보인다는 게 리드추측입니다. 계수가 순서대로 1, 4, 6, 3이면 이 패턴에 해당되고, 4, 2, 5, 7처럼 감소하다 증가하거나 4, 2, 4, 2처럼 감소와 증가를 반복하는 패턴은 해당되지 않습니다.

허 교수는 리드추측을 증명하기 위해 조합론적 방법이 아닌 대수기하학적인 방법을 이용했습니다. 대수기하학은 직선, 타원, 쌍곡선 등 기하학적 대상을 다항식으로 표현해 분석하는 것처럼 대수를 통해 기하를 분석하거나 반대로 기하를 통해 대수를 분석하는 분야입니다. 

허 교수는 그래프를 조합론과 대수기하학 두 가지 분야에서 관찰한 후 두 분야 사이의 경계 한 켠을 허물었습니다. 대수기하학 분야의 도구(이론)를 조합론 문제를 푸는 무기로 탈바꿈시킨 것입니다. 허 교수가 푼 다른 대표 문제도 리드추측과 비슷한 맥락으로 해결됐습니다. 이 문제들은 관찰 대상이 그래프에서 벡터들의 집합, 매트로이드 등으로 바뀐 것들입니다.

허 교수의 업적은 순수수학과 관련돼 응용과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몇 년 안으로 그래프 이론이 많이 사용되는 인공지능(AI) 분야를 비롯해 반도체 설계, 교통 물류, 통계물리 분야에서 크게 활용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미래 수학자에게 ‘자유’를

필자는 지난 2018년 8월 업무 차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세계수학자대회에 참가해 당시 초청강연을 하러 온 허 교수와 산책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나눈 대화 내용은 가물가물하지만, 허 교수가 “어?”라고 외치며 대화 도중 갑자기 앉아서 길을 기어가는 애벌레를 유심히 봤던 건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그전까지 수학자는 모든 일에 논리적이고 냉철하다는 편견(?)을 갖고 있었는데 당시 허 교수는 자유롭고 감수성이 풍부하다는 인상이 있었습니다. 이번에 허 교수가 필즈상을 수상한 후 가진 인터뷰에서 수학의 매력을 ‘자유로움’이라고 한 걸 보면 수학이 허 교수의 성향에 맞았고, 그래서 좋은 업적을 이뤄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허 교수의 수상으로 학계에서는 오랜 시간 책상에 앉아 정해진 시간 안에 많은 문제를 푸는 방식에 대해 자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합니다. 앞으로 제2의 허준이를 길러내려면 기초학문에 대한 지원과 더불어 수학에 다가서는 우리의 방식도 바꿀 필요가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보면 어떨까 합니다.


☞ 원문 바로보기: IBS 블로그 | IBS News | 경계를 허문 수학자 필즈상을 받다 | 작성자 I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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