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삼계탕·상추쌈 中 유래?…"한국 고유문화" 학계가 문헌으로 밝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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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삼계탕·상추쌈 中 유래?…"한국 고유문화" 학계가 문헌으로 밝혀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2.08.07 18: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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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회의]
- 동북아역사재단, ‘한·중 문화충돌 대응 학술회의’…‘한국 음식문화의 미학’
- "파오차이는 단순 채소절임, 한국 김치와 달라"
- 100% 고유한 문화는 없어…"中 '문화기원' 주장 갈등 해소 기대“

 

동북아역사재단은 지난 7월 29일 한중 문화충돌 대응 학술회의 '한국 음식문화의 미학, 그 여정에 대한 역사적 이해'가 열렸다. [사진: 동북아역자재단]

최근 ‘김치, 쌈 문화, 삼계탕 등 한국의 음식문화가 중국에서 기원했다’는 주장이 중국 온라인을 통해 확산하면서, 중국의 소위 ‘한국문화 기원 주장’은 한·중 시민들 사이 가장 커다란 갈등 요인 중 하나가 됐다.

이런 가운데 한국 김치가 중국 파오차이(泡菜)에서 유래했다는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연구가 나왔다.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열린 ‘한국 음식문화의 미학’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내용이다.

동북아역사재단은 7월 29일(금) 오후 재단 대회의실에서 ‘한국 음식문화의 미학, 그 여정에 대한 역사적 이해’를 주제로 학술회의를 개최했다. 이는 한국 음식문화의 양상과 특징을 논의하는 가운데 한·중 문화 갈등의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이번 학술회의는 중국에서 '문화공정'이 시도된 한국의 대표 음식문화에 대한 특징을 다뤘다. 문화공정은 한국 문화를 침탈하려는 중국의 시도로, 중국이 발해·고구려 등 동북방 만주 지역에서 진행된 역사를 모두 자국 것으로 만들기 위한 연구 프로젝트인 '동북공정'에서 비롯된 용어다.

 

세계김치연구소 박채린 책임연구원은 주제발표를 통해 한국 김치와 중국 파오차이의 차이를 설명했다. [사진 동북아역사재단 학술회의 자료]

▶ 중국의 ‘한국문화 기원 주장’의 주 대상이 된 건 김치다. 중국의 누리꾼과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김치가 중국에서 기원했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지만, 김치야말로 한국 고유의 독특한 음식 문화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전 세계적으로 채소의 소금 절임음식들이 발달했다. 독일의 슈크루트(sauerkraut, 사우어크라우트), 인도‧남아시아 지역 아차르(acharr), 그리스‧아랍지역의 투르시(tursu), 중국의 파오차이(泡菜), 일본의 오싱코(新香), 한국의 장아찌 등이다.

하지만 최소한 삼국 형성기부터 갈라져 나온 것으로 보는 김치는 훨씬 복잡한 프로세스를 거쳐 모양, 형태, 맛의 차이를 갖게 되었다. 문화인류학자 전경수 서울대 명예교수는 발효음식을 ‘사람이 개입하지 않는 미생물만의 영역과 사람의 지식과 행동이 개입해야 하는 문화적 작업이 결합하여 완성되는 공존의 산물’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김치가 어떻게 다른 채소 절임류와 다르게 진화해 한국 음식문화에서 독특한 지위를 갖게 되었을까. 세계김치연구소 박채린 책임연구원은 ‘한국 발효음식의 진수, 김치의 탄생과 진화’라는 주제의 발표를 통해 김치에 한국인들의 지식과 행동이 어떻게 개입하여 독자적인 ‘문화적 산물’을 만들어내게 되었는지 그 역사적 과정을 살폈다.

발표문을 보면, 채소절임 자체는 인류 보편의 문화다. 인류가 채소를 오래 두고 먹으려 활용했던 대표적 방법이 건조와 절임이다. 박 연구원은 김치를 분석한 선행 연구 자료를 검토해 김치가 중국 파오차이(泡菜)를 비롯해 일본의 오싱코(新香), 독일의 슈크루트(sauerkraut) 등 다른 채소 절임류와 어떻게 다른지 분석했다.

박 연구원은 동치미, 나박김치와 같은 물김치를 언급하며 "많은 문화권에서 채소를 절여 저장성을 높이는 경우가 있지만, 그 국물을 먹기 위해 만든 경우는 흔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서양의 대표적 절임 채소인 사우어크라우트는 물론, 향신료와 소금을 이용해 만든 절임액에 각종 채소를 넣어 만든 중국의 파오차이 등은 건더기를 건져 먹는 게 목적이다.

현재 중국은 채소절임 문화가 단순절임인 ‘옌(腌)’에서 파오차이를 비롯해 장차이, 옌차이, 쏸차이 등을 발효절임인 ‘즈(漬)’ 단계에 들어간 것이 적어도 후한 시기부터 지속된 것이라 주장한다. 공자가 ≪시경(詩經)≫에 주나라 문왕이 창포저를 즐겼다는 것을 따라 하느라 “얼굴을 찌푸려가며 저(菹)를 먹었는데 3년이 지난 후에나 익숙해질 수 있었다”는 내용에 대해 산미가 높아진 ‘즈(漬)’ 계열일 가능성을 짐작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중국은 김치의 원조가 중국의 파오차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발효절임…한국 감칠맛 지향 VS 중국 신맛 지향, 1~3세기 계통분화

중국은 절임 문화가 발달한 곳이다. 그런데 ‘발효절임’에서 한국과 중국은 차이가 있다. 중국은 신맛을 유도하는 쪽으로, 한국은 지양하는 방식으로 달라졌다. 중국은 한국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술과 식초를 절임에 활용한다.

박채린 연구원은 “인류의 보편적 문화인 ‘단순절임’에서 벗어나 각자의 자연생태, 사회경제적 여건, 민족적 기호에 영향을 받으면서 한국과 중국의 ‘발효절임’은 1~3세기경 계통 분화가 된 것으로 추정된다”며 각종 문헌에 따라 신맛을 지향하는 중국의 발효절임과 아미노산계 감칠맛을 지향하는 한국의 발효절임을 비교했다.

박 연구원은 사례로 6세기 북위 때 산동지역 가사협이 저술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농사기술서 ≪제민요술≫에서 나타난 중국의 채소절임 제조방식이 한국과 상이하다는 점을 들었다.

첫째, 한국의 ‘발효절임’은 생채소를 그대로 이용하는 비중이 높은 반면, 중국은 데치거나 건조하는 등 전前처리를 거쳐 초기 발효에 관여하는 미생물 수를 최소화시키려는 목적의 제조법 비중이 높다.

둘째, 1차 원료 소금을 직접 담금원으로 활용하는 방식에서 2차 가공품인 장, 식초, 술 등 발효음식을 담금원으로 재발효하는 방식으로 발전했는데, 이 과정에서 중국은 한국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술과 식초의 활용이 두드러진다. 우리나라는 술과 식초 등 고도 발효기술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마늘 등 일부 원재료에 제한적으로 활용될 뿐이다.

 

                                    사이버 외교 사절단 반크가 2020년 만든 디지털 포스터

한국 김치의 독자적 행보, 14~15세기 가미발효·17~18세기 복합발효

한국 김치만의 특징은 젓갈을 활용한 ‘가미발효’와 고추가 들어간 김칫소라는 전용 양념으로 발효하는 ‘복합발효’이다. 중국의 채소절임은 발효절임에 집중적으로 특화된 기술인 반면, 한국의 김치는 원시형 단순절임 ⇒ 발효절임 ⇒ 가미발효절임 ⇒ 복합발효절임까지 4단계까지 발전단계를 거쳐 발달했다.

박 연구원은 “중국의 채소절임은 바로 취식하는 경우보다 한번 조리를 거쳐 요리의 형태로 먹거나 다른 음식의 부재료로 넣음으로써 산미를 돋우는 조미료로 활용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라고 했다. 채소절임이 완성된 후 가미(加味) 과정이 별도로 존재한다. 김치는 바로 상 위에 올라가는 음식이다. 제조 단계에서 가미가 추가된다. 

박 연구원은 “음식문화의 진화 혹은 고도화가 중국의 경우는 ‘음식조리’의 영역에서 일어나고, 한국의 경우는 ‘채소절임’의 영역에서 이루어진 결과, 가미발효와 복합발효라는 후속 발달 과정이 진행된 것이라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박 연구원은 김치의 ‘창의적 경이로움’으로 식물성 채소절임에 동물성 발효식품인 젓갈을 넣어 맛과 영양성 모두를 잡은 점을 꼽았다. 젓갈을 넣은 것을 두고 “양적 보완을 위한 시도의 결과물이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상대적으로 고가인 동물성 젓갈을 가능한 오래 두고 먹을 방법은 값이 저렴한 재료를 넣고 양을 늘리는 것”이다. “짜게 절인 젓갈의 맛을 중화시키려는 목적에서 수분이 많은 재료”를 넣었을 가능성도 있다.

우리 젓갈에 대한 기록은 통일신라 문무왕(683)이 왕비를 맞이하며 보낸 폐백품목에서 확인되는데 젓갈이 들어간 김치는 2017년 발굴된 《주초침저방酒醋沉菹方》 속 ‘감동저甘動菹’, 《세종실록》 속 곤쟁이젓김치 등을 통해 14~15세기부터 시작된 것으로 확인된다.

또한, 17~18세기부터 고추 및 파, 마늘, 생강, 파, 무 등 다양한 재료를 버무린 복합양념인 ‘김칫소’를 사용했다. 김칫소는 어떠한 재료라도 버무려주기만 하면 김치로 완성시켜주는 일종의 모듈방식으로, 새로운 자료와 융합이 매우 쉬워 김치 창의성의 핵심이다. 매운맛을 내는 동시에 동물성 젓갈의 비린 냄새를 가려주고, 유산균 발효를 도와 맛을 상승시키는 용도로 사용된다.

고추도 김치 맛을 더했다. 현전 자료 중 고추가 김치에 들어간 가장 앞선 기록은 “고추를 항아리 속 채소와 섞으니 김치는 맛이 있고”라는 구절이 든 이서우(1633~1709)의 시 등이다. 박 연구원은 또 "서양에서는 월계수 잎, 동양에서는 팔각, 정향 등을 사용하지만 김치의 맛과 색을 상징하는 '김치소'와는 차이가 있다"며 "고추가 지닌 유산균 발효 능력은 여러 연구에서 검증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유산 발효과정에서 원재료에서 우러난 김칫국물까지 섭취할 수 있게 된 점도 다른 문화권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독특한 문화"라며 복합발효의 우수성을 강조했다.

박 연구원은 “김칫소처럼 다양한 재료가 섞여야 하다 보니 제조공정이 굉장히 복잡하고 다양해 많은 인력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김장 문화’라는 독특한 공동체 문화가 형성되어 유네스코 무형문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라고 설명했다.

한편, 청주대학교 김홍렬 교수는 종합토론에서 "우리 동이족의 주 세력 근거지가 대체로 황하유역이나 동북지역이기 때문에 저장성이 중심이 되어 지금의 김치 문화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었고, 황하 이남이나 한족 중심이었던 곳은 따뜻한 기후로 채소가 계속 나오기 때문에 맞추구형 절임으로 갔다고 추론해 볼수 있다"라고 의견을 피력했다.

이날 동북아역사재단이 개최한 한중문화충돌 학술회의에서는 김치 외에도 밥·쌀, 나물, 삼계탕, 육식문화, 장(醬)문화, 술, 인삼 등 8개 분야를 주제로 발표와 토론을 했다.

 

정혜경 호서대 교수는 ‘다채로운 나물 문화의 형성과 특징’에서 쌈 문화를 원조인 양 묘사한 중국 드라마 <진수기> 문제를 지적했다. 상추는 서유럽, 페르시아에서 중국을 거쳐서 한반도에도 전해졌다. 중국인은 채소를 날로 먹지 않고 주로 볶아 먹었다. 

상추를 생으로 싸서 먹는 상추쌈 문화는 중국에 영향을 끼쳤다. 고려의 상추씨는 중국으로 수출됐다. 중국인들은 당시 쌈 문화를 고려인의 특이한 문화로 소개했다. 예를 들어 원나라 시인 양윤부는 <난경잡영>에 “고려 사람들은 생채로 밥을 싸서 먹는다”고 썼다. 정 교수는 과잉 육식으로 문제된 세계인의 건강과 지구 환경을 위한 대안 음식으로 나물을 꼽기도 했다.


정희정 책임연구원(한국미술연구소)은 ‘한국 음식문화의 특성 식치, 절식의 총합, 삼계탕’이란 주제의 발표를 통해 삼계탕을 포함한 우리나라의 ‘국’ 문화를 규명했다. 현재 중국 최대 포털사이트 바이두(百度)의 백과사전은 삼계탕에 대해 '고려인삼과 영계, 찹쌀을 넣은 중국의 오랜 광둥(廣東)식 국물 요리로, 한국에 전해져 한국을 대표하는 궁중 요리의 하나가 됐다'고 소개해 논란이 된 바 있다. 

정 연구원은 조선시대 문헌이나 회화에 나오는 닭 요리를 분석한 뒤 "삼계탕은 전통적인 반상의 중요한 구성 요소인 국물 요리이자 전통 의학 사상인 식치(食治) 개념이 총합 된 음식"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삼계탕을 비롯한 한국 전통 음식은 단순히 생존을 위한 음식을 넘어 역사와 지식과 문화가 어우러진 문화유산으로서도 재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외에도 조선시대의 밥 문화, 한국의 육식 문화와 장(醬) 문화를 시대별로 확인했다. 아울러, 한국의 술 문화와 한국 인삼 등 다양한 전통음식의 가치와 의미도 검토했다. 

이 외에도 이날 학술대회에선 ‘한국인의 밥과 쌀’(정연식 서울여대 명예교수), ‘한국 육식문화의 시대적 추이’(차경희 전주대 교수), ‘한국의 장(醬) 문화 발달과 추이 고찰’(박유미 상명대 강사), ‘한국의 술과 문화적 특징’(정정기 임원경제연구소 연구원), ‘동아시아에서 한국 인삼(人蔘)의 위상과 의미’(구도영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라는 제목의 주제 발표가 이어졌다.

이번 학술대회는 이른바 ‘국뽕’을 고취하고, 중국을 무시, 배격하는 취지의 학술대회는 아니었다. 여러 발표문을 보면, 중국이 한국 음식문화에 끼친 영향도 함께 서술했다. ‘마늘절임은 중국인에게 배웠다’ 같은 기록이 나온 문헌도 소개됐으며, “한국 술 문화는 중국,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서술도 나온다.

발표문들을 보면, 100% 고유한 문화는 없다. 음식문화도 여러 나라가 교류 등을 통해 영향을 주고받는다. 각각 자연 풍토, 경제, 문화 상황에 맞게 독자성을 갖춰나간다. 재단의 발표처럼 “이번 학술회의가 타 문화와의 교류, 융합을 통해 한국 음식의 로컬성과 문화적 정체성 등이 정립되어 가는 과정을 확인하고 중국의 ‘문화기원’ 주장으로 비화한 한·중 시민사회 갈등 해소의 단서를 마련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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