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과학기술학계에서 최초로 수행된 ‘현장연구’의 실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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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과학기술학계에서 최초로 수행된 ‘현장연구’의 실제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2.08.07 17: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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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연구 포럼]
- 세종국가리더십위원회 「제44차 세종국가리더십포럼」 개최
- 새로운 방식으로 만나는 과학기술, 새로운 방식이 필요한 정책연구 
- 과학의 현지로 대담하게 뛰어든 연구자들이 겸손한 목격자로 변모해 간 3년의 기록

 

                                 「제44차 세종국가리더십포럼」 - '정책의 진짜 현장을 되돌아보다'

정책연구자도 현장에 참여하는 해러웨이식 겸손함을 택하여 그 자신을 현장에 직접적으로 노출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산하 세종국가리더십위원회(위원장 문미옥)는 지난 7월 28일(목) 오후 3시 30분부터 세종국책연구단지 로비층 다목적홀에서, ‘정책의 진짜 현장을 되돌아보다’라는 주제로 「제44차 세종국가리더십포럼」을 개최했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이하 ‘과기정책연’) 주관으로 진행된 이번 포럼은 특정 현장에 전혀 다른 연구자가 참여하여 그 연구가 이루어지는 과정을 어떻게 관찰하고 연구하여야 하는지에 대한 경험을 공유하고자 마련됐다.

임소연 교수(동아대)를 포함한 도서 『겸손한 목격자들』 공동저자인 김연화 독립연구자, 성한아 연구원(KAIST 인류세연구센터), 장하원 교수(서울대 BK21 4단계 대학원혁신사업단)와 참여자 간의 상호대화 및 토론을 통한 북 콘서트 방식으로 운영됐다.

정해구 이사장은 환영사를 통해 “정책연구자 역시 적극적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정책이 활용되는 현장을 추적하여 익숙하지 않은 연구방법을 선택하는 용기가 필요하다”면서 “오늘 이 자리가 정책연구에 있어 새로운 방식을 습득할 수 있는 소중한 매개체가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 『겸손한 목격자들: 철새·경락·자폐증·성형의 현장에 연루되다』 (김연화·성한아·임소연·장하원 지음, 에디토리얼, 336쪽, 2021.11)

이번 포럼의 발표자들이 공동으로 저술한 『겸손한 목격자들: 철새ㆍ경락ㆍ자폐증ㆍ성형의 현장에 연루되다』는 한국 과학기술학계에서 최초로 수행된 ‘현장연구’의 실제를 처음으로 소개한 책이다. 우리 과학학계에 과학기술학(STS: 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의 ‘실험실 연구’가 소개된 후 처음으로 ‘참여관찰’이라는 인류학적 방법론을 적용해 이뤄진 3년의 현장연구 성과를 대중교양서의 글쓰기로 풀어냈다. 

실험실 연구는 프랑스의 과학기술학자 브뤼노 라투르의 미국 소크연구소 소속 생리학 실험실 연구가 가장 유명하고 고전적 논의로 손꼽힌다. 라투르는 대학 시절 친분을 맺은 로제 기유맹이 유명한 신경내분비학자가 되어 자신의 생리학 실험실에 대한 인식론적 연구를 제안하자, 1975년부터 약 2년간 인류학의 민족지 연구 방법으로 현지조사를 수행했다. 라투르의 실험실 현장연구는 그 자신에게는 과학기술학자라는 새로운 이력을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을 뿐 아니라, 과학기술학 연구에 새로운 방법론과 사실관을 제시한 것으로 높이 평가받는다. 그 후 1980년대 서구의 과학기술학계에서는 과학의 실험과 실험실에서의 사실 구성에 관한 많은 연구가 본격화되었다. 우리나라 학계에 실험실 연구가 너무 늦게 소개되었거나 학자들의 관심 밖에 있지 않았음에도 라투르의 실험실 연구는 선구적 사례이자 이론의 전형으로만 존재하고 있었다. 

선뜻 도전하지 않는 현장연구를 자원한 공저자들은 모두 이공계 학부를 졸업했다. 장하원은 “실험의 쳇바퀴” 밖에서 과학을 보고 싶었고, 김연화는 망하기만 하던 실험실 생활로 인해 인생을 망치는 대신 전공을 바꾸었으며, 과학고를 졸업했는데도 일찌감치 수학자의 꿈을 접고 “일말의 아쉬움도 없이 다른 길을 택했”던 임소연은 “자연과 환경에 관한 인문사회학적인 공부”를 하기 위해, 성한아는 학부 시절 곤충학 채집 여행을 통해 자연에 실험실을 설치하는 현장 생물학의 독특한 과학 실행을 과학기술학의 관점에서 연구하고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 과정에 들어간다. 저자들은 우리 사회의 문·이과 구분 아래에서 이과생으로 길러지며 과학을 배우고 익히는 동안 과학에 깊이 연루된 몸, 과학을 깊이 육화한 몸이 되었다. 스스로 알아낼 수 없었던 이유로 과학과 불화하는 시간을 겪었지만, 과학기술학을 만난 후 그들이 ‘대문자 과학’(라투르의 용어)의 세계에서 한때 길을 잃었음을 깨닫는다.

 

◆ 「제44차 세종국가리더십포럼」 … ‘정책의 진짜 현장을 되돌아보다’

먼저 임소연 교수(동아대)는 ‘현장연구란 무엇인가?’란 주제로 특정한 인간 집단의 삶을 생생하게 기록하는 민족지 및 현장연구 방법론과 함께 외부자의 관점이 아닌 내부자의 관점에서 현장을 바라봐야 된다고 소개했다.

특히, 35개월 동안 성형외과 현장을 접한 경험을 통해 참여자로서의 관찰자라는 역할을 소개하며 정책연구 역시 다른 시각을 통해 현장을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첫 번째 발제를 하는 임소연 교수(동아대)

성형외과, “바람직하면서 문제적”인 현장

성형 수술을 비판적으로 연구하기는 쉽다. 이미 많은 연구자와 저널리즘에 의해 충분히 비판받기도 했다. 그렇지만 성형 수술을 과학기술의 범주로 포섭한 후 그것을 과학기술학의 방법론으로 연구해서 새롭게 알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임소연은 성형 수술이 “사진이나 몸과 같은 비인간적 존재의 행위성, 즉 과학기술학 특유의 개념을 드러내주는 좋은 연구 현장”이라고 말한다. 

연구자가 아닌 일반 독자에게는 어떤 유익함을 줄 수 있을까. “과학기술학 연구자로서 나는 어떤 과학기술이 좋은가 나쁜가를 증명해내는 것보다는 그것을 지금보다는 더 좋은 과학기술로 개선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그 과학기술을 만들고 사용하는 사람들 중에 나쁜 사람들을 (한 번 더) 들추고 비난하기보다는 더 많은, 평범한 사람들, 혹은 개선의 의지를 가진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어 그들을 연결시키는 글을 쓰고 싶다.” 

과학기술학은 “세부 사항의 과학”(science of particulars)으로서 과학 실행의 살아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들려주는 일에 유능하다. 과학기술 연구자들이 인풋 키를 쥐고 있다면 그간 우리 일반인들은 아웃풋의 출구 앞에서 실행의 결과물을 받아드는 입장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 학계의 학술적 관심이 집중된 ‘실재론’에 내용을 채우는 일은 과학기술학의 본령이었다. 

서구의 형이상학이 유구하게 이어지는 동안 한 줄기 스핀오프로서 갈라진 과학기술은 다른 학문들과도 사뭇 다른 형태와 방식을 추구하며 독자화해 왔다. 그런 터여서 과학자들은 인문사회과학계 연구자들이 과학기술에 대해 내놓는 담론에 대해 잘 모른 채 쏟아내는 비판이라며 불쾌하게 여기거나 무관심을 표하곤 했다. 그렇게 언어와 세계가 더욱 멀어져 왔던 상황을 과학기술학이 수습하고 있다. 임소연은 살아 있는 몸을 다루는 의료 현장에서 생생한 물질성을 놓치지 않으며, 그 몸의 물질성을 “그것이 삶인 사람들의 것”으로 되돌려주려고 노력한다.


이어서 김연화 독립연구자는 ‘감각되는 실험실’이란 제목으로 실험실을 거대한 기입장치, 논문을 일종의 가상목격으로 소개하며 기존에 강조되던 시각문화 외에도 과학자와 연구대상을 상호적으로 존재하게 하는 감각에 대해 살펴봤다.

이를 통해 과학이란 몸을 사용해서 대상을 감각해내는 활동임을 강조하며 현장을 안다는 것은 그러한 감각을 경험하고 체득하는 것이라고 설명과 함께 문서로 전달되지 않는 이러한 감각들의 인지와 체험이 정책 연구에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두번째 발제하는 김연화 독립연구자

재회한 과학과 그들이 선택한 현장

김연화의 현장은 정통 실험실 연구에 가장 가깝다. 김연화는 지도교수의 주선으로 ‘한의학물리실험실’에서 참여관찰을 할 기회가 생기자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는 라투르가 연구한 캘리포니아의 소크연구소(Salk Institute)뿐만 아니라 다른 과학기술학자들의 선행 연구들을 살펴보며 위로와 자극을 받지만, “미국의 깔끔하고 완벽해 보이는 실험실이 아닌, 대학원생들이 종종 자괴감을 느끼는 한국의 실험실을 연구하고 싶어졌다.”

(서양)의학과 한의학, 과학과 의학의 관계로 미루어보면 ‘한의학물리연구실’은 명칭부터 이질적이었다. 연구실을 책임지고 있던 소광섭 교수는 현대 물리학이 부딪힌 거대한 벽에 돌파구를 낼 새로운 방법론을 경락 연구를 통해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소광섭 교수의 연구진은 경락에 해당하는 해부학적 구조물을 실험을 통해 찾아냈다고 주장했다. 그 구조물은 ‘봉한관’이라는 명칭으로 불렸는데, 최초 발견자였던 북한의 생리학자 김봉한이 자기 이름을 따서 명명한 것이었다.

과학기술학의 관점에서 경락을 연구하는 물리학 실험실을 연구하고자 했던 김연화의 질문은 “한의학물리연구실이 봉한관을 어떻게 재현하고 있는”가였다. 북한 과학의 폐쇄성과 김봉한의 급작스런 몰락 탓에 제기된 의문, 즉 김봉한의 주장이 사실인지, 봉한관이 진짜인지 등은 그의 연구와는 무관한 질문이었다. 김연화가 경험한 한의학물리연구실은, 실험을 중시하는 연구 중심 대학을 나온 그가 보기에도 “너무나도 전형적인 대학 연구실”이었다. 연구실의 연구자들 역시 그가 봐 왔던 여느 이공계인들과 다름이 없었으며, 봉한관을 찾기 위해 가능한 모든 실험적 방법을 궁구하는 연구자의 자세를 보였다. 

소광섭 교수도 책임자로서 봉한관 연구를 향해 쏟아지는 의구심과 문제제기를 열린 태도로 받아들이며 반론이 제기되면 그것을 반박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요컨대 많은 주변인들의 의심, 염려, 지적과 달리 한의학물리연구실은 “과학시민권을 획득하지 못”한 채 온갖 의구심에 휩싸인 봉한학설을 다양한 방식으로 재현 연구를 하면서 “동시에 일종의 동료평가를 진행”하고 있었다.


성한아 연수연구원(KAIST 인류세연구센터)은 ‘철새 개체 수 조사의 현장 전문성: 비인간 철새가 관여하는 정책 현장에 가다’란 제목으로 실험실이 아닌 새, 조사자, 관찰자, 환경 간 이루어지는 과학적 조사과정과 조류센서스 현장에서 생태학적 응답 능력을 지닌 조사원의 역할을 소개했다.

특히, 야외 생물학적인 현장 전문성을 분석하는 일이 정책의 작동을 이해하는 일과 연결됨을 보임으로써 과학의 현장을 탐구하는 과학기술학적 접근이 정책 연구와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을 타진했다. 

 

세 번째 발제를 하는 성한아 연수연구원(KAIST 인류세연구센터)

겨울 철새를 전수조사 하는 과학 현장

성한아는 현장 생물학의 독특한 과학 실행에 관심이 컸다. [겨울철 조류 동시 센서스](이하 [센서스])는 국가 주도로 자국 영토에 포함된 자연을 기록하는 공적 조사다. 매년 겨울 한국에 도래하는 철새의 종을 파악하고 개체수를 세는 일을 정부 부처(환경부)가 주관하는 이유는 [센서스]의 조사 결과가 환경정책과 제도 수립의 근간 데이터로 쓰이기 때문이다. 정확한 전수조사를 위해 [센서스]가 실행되는 기간은 고작 2~3일이다. 매우 제한된 기간 내 전국의 철새 도래지에서 일제히 조사가 진행되려면 지정된 조사 지역과 철새에 정통한 조사원이 동원되어야 한다. 

성한아는 20년 넘는 경력의 베테랑 조사원 C의 조사 현장을 중심으로 철새의 숫자를 세는 과학 실행을 그림을 그리듯 기술한다. 자연에 개입하지 않는 현장 생물학의 원칙과 윤리는 조사 내내 관철되기에 조사원에게는 특별한 전문성이 요구된다. 그들이 ‘지역 전문가’라는 이름으로 불릴 때의 지역은 조사지를 새의 지역으로 파악하는 능력을 높이 사기 때문이다. 성한아는 조사원들의 이런 전문성을 해러웨이의 용어인 ‘응답 능력’으로 읽어내고 그들의 보이지 않는 노동과 시간에도 눈길을 준다.


마지막으로 장하원 BK조교수(서울대 BK21 4단계 대학원혁신사업단)는 ‘현장 전환의 경험: 자폐증에 관한 STS 연구의 경험을 중심으로’란 제목으로 자폐증 진단 전문가들 및 자폐증을 지닌 유아의 부모들에 대한 심층 인터뷰 등에 기반한 현장 연구의 경험을 소개했다. 이를 통해, 우리 사회에는 자폐스펙트럼장애라는 진단명이 포섭하지 못하는 다양한 자폐증 경험이 존재함을 소개하며 현장 연구를 통해서만 도출할 수 있는 정책적 시사점이 있음을 강조했다.

 

마지막 발제하는 장하원 BK조교수

의료/의사가 (돌)보지 못하는 자폐증‘들’의 현장

과학기술학은 과학 실행의 본성을 이해하기 위해 행위자를 따라다니라고 가르친다. 선행 연구들처럼 장하원도 자폐스펙트럼장애(이하 자폐증)와 연관된 의학 지식을 다루는 전문가를 인터뷰하고 그들의 경전을 연구한다. 하지만 어떤 계기를 맞닥뜨린 후 연구 방향을 수정한다. 소위 ‘자폐 과학’을 구성하는 사람들과 연구 성과들을 충분히 습득하고 나니, “자폐증에 새롭게 ‘눈 뜨고’ 있는 사람들, 특히 자폐증을 지닌 아동을 키우는 보호자들을 만나보고 싶었다.” 

한 후배가 연구에 큰 도움을 받을 거라며 중증의 자폐증을 지닌 성인 당사자의 어머니를 소개해주는데, 그 어머니는 “자신의 자녀가 ‘전형적인’ 자폐증이 아니라서 ‘자폐증’ 연구에 도움이 될지 확신할 수 없다”는 이유로 인터뷰를 완곡히 거절한다. 그분은 자녀가 이미 법적으로 장애 등급을 받고 오랫동안 치료를 받아 왔는데도 자폐증을 부인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그 어머니만 그런 것도 아니어서 인터뷰에 응한 다른 어머니들을 만나서도 비슷한 상황을 연속해서 겪는다. 장하원은 “진료실 바깥에는 자폐스펙트럼장애라는 명칭과 그것의 개념이 지칭하는 충분히 전형적인 자폐증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폐증을 일상적으로 돌보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현장을 만들고 27개의 자폐증 이야기를 쓴다.

 

▶ 우리는 과학을 믿을 만한 지식이라고 대체로 인정한다. 과학은 자연의 물질이나 현상에 대해 주관적 이해나 가치를 배제하는 객관적인 방법으로 연구하며 반증을 허용하고 엄정한 검증 절차를 거쳐 도출한 사실을 잠정적 진실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이로써 획득한 과학의 객관성이라는 가치 이면에는 겸손하다는 이미지가 부수적으로 창출된다. 하지만 과학의 겸손함은 많은 연결들을 지우는 역설을 낳았다. 저자들은 “겸손함이 약속하는 투명성이란 자신의 성별, 인종, 국적 등의 주관성이 아무런 표식을 남기지 않는 남성, 백인, 서구인에게나 허용되는 것”임을 본유적 감각으로 각성한다. 그리고 해러웨이식 겸손함의 전략을 취해 전지적 관찰자가 아니라 겸손한 목격자에게 상황 지워진 책임과 한계를 온전히 드러내는 글을 썼다. 저자들은 현실에 조응하는 그들의 몸을 의심하면서도 순치시키지 않는다. 동요하는 그곳이 문제의 현장임을, 연구의 현장임을 본능적으로 자각한다. 또 다른 목격자인 우리 독자는 삶을 희생시킨 대가로 위대한 성취를 거두는 연구자가 아니라, 삶과 연동하는 문제를 기꺼이 연구로서 껴안는 새로운 유형의 연구자들이 우리 곁에, 그리고 우리의 과학/기술/의료 곁에 있음을 발견한다. 과학기술(기술과학)이 만들어낸 사이보그들이 경계를 가로질러 새로운 의미를 생성하듯, 우리 문화의 토대에서 자생한 과학기술학자들이 우리들 삶의 현장과 연루된 과학 지식을 그들이 체득한 새로운 서사 기법으로 쓰고 있음을 목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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