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치는 융합, 부족한 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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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치는 융합, 부족한 융합
  • 이욱연 서강대학교·중국문화학
  • 승인 2022.08.07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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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쿠스]

융합이 우리 대학 교육과 연구에서 대세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이제 융합은 거부할 수 없는 문명의 추세처럼 대학 교육의 대세가 되었고, 교수들은 융합 교과목을 개발하느라 바쁘고, 대학은 학과를 통폐합하면서 융합 학과를 만드느라 바쁘다. 

융합 교육 요구는 공학에서 기술 융합 수요가 늘어나면서 시작했다. 기술 융합은 1970년대부터 IT 중심으로 시작했지만, 21세기 이후에는 첨단기술 전반에 걸쳐 필수 생존의 조건이자 마법의 지팡이처럼 여겨지고 있다. 이후 기술 융합은 인지 기술, IT, 그리고 AI 등이 발달하면서 인문학과 기술 및 공학의 융합으로 그 요구가 더욱 높아졌다. 

하지만 아무리 융합 교육이 시대의 대세라고 하더라도, 나아가 융합 교육이 문명의 추세라고 하더라도 지금 우리 대학이 융합을 올바른 방향에서 제대로 진행하는지 냉정하게 점검할 필요가 있다. 지금 우리 대학은 어떤 융합을 하고 있고, 우리 대학의 융합 교육이 어디로 가는지, 그 방향성에 대한 진지한 중간 점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 대학 현실을 보면 융합의 편향이 심하다. 특정 융합은 넘치지만, 특정 융합은 턱없이 부족하다. 넘치는 융합은 무엇인가? 공학을 중심에 두고 인문 교육을 공학 교육에 맞추는 융합, 인문 전공 학생이 공학으로 건너가는 융합은 넘친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그 반대, 그러니까 공학 전공 학생이 인문 교육으로 건너오는 융합은 부족하다. 인문과 공학 사이 단방향의 융합은 넘치지만, 쌍방향의 융합이 부족한 것이다. 

왜 이러한 공학 중심의 단방향 융합이 넘치는 게 문제인가? 왜 이런 단방향의 융합이 아니라 역방향도 있는 쌍방향의 융합이 필요한가? AI 시대이기 때문에 그렇다. 단순 기술 시대 공학도는 사람의 속성을 몰라도 멋진 자동차를 설계하고 제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AI와 자율주행 시대 공학도는 사람을 알아야 오락과 휴식 공간이 된 자동차를 설계하고 제작할 수 있다. 인공지능(AI)이란 결국 사람이 잘 하지 못하는 것, 사람을 잘 흉내 낼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한다는 점에서 AI 개발을 위해서는 인간 지능, 즉 HI 이해는 필수다. 반도체 칩을 만드는 공학도에게는 인문학이 필요 없어도, AI를 다루는 공학도는 반드시 인간을 이해해야 하고, 인간 이해 없이는 AI 업그레이드도 없다. 심리학과 문학, 철학이 AI 개발자를 꿈꾸는 공학도의 기초 과목이 되어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지금 우리 대학에는 인문학 전공 학생이 코딩을 배우게 하는 방향의 융합 교육만 강조할 뿐, 역으로 공학 전공 학생이 인문학을 배우는 융합 교육은 없거나 턱없이 부족하다.

부족한 융합은 이것만이 아니다. 교과목 안에서 일어나는 융합이 아닌 학생 개인에게서 일어나는 융합 역시 부족하다. 융합 교과목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범용적인 얕은 지식을 지닌 학생을 양성하는 융합 과목 중심의 융합 교육은 넘친다. 하지만 관련 특정 전공의 깊은 지식을 습득한 뒤 이를 토대로 융합으로 나아가는 교육 프로그램이 부족하다. 특정 교과목 안에서 일어나는 융합에만 치중하기 때문이다. 학생 중심으로 보자면, 진정한 융합은 얕은 지식을 전수해 주는 융합 교과목을 통해서가 아니라 깊이 있는 관련 지식을 습득한 학생 개인에게서 일어나야 한다.

인문학과 사회과학 사이의 융합, 인문학 내부의 융합도 부족하다. 사회 문제를 사고하는 데는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지식이 결합할 때 훨씬 깊이가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사회과학과 인문학 사이 담장은 여전히 높다.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인문학 내부에서 융합이 일어나지 않는 일이다. 인간과 인간 삶을 대상으로 하는 인문학이야말로 태생적으로 융합학문이다. 문학과 역사, 철학을 융합해야 인간 삶이 비로소 제대로 보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문학과 역사, 철학 사이에 높은 담이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문학 안에서도 나라별로 나뉘어 있다. 지금 대학에서는 인문학의 기본 특성을 배반하는 방법으로 인문학을 교육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대학 교육 현장에서 원래 융합학문인 인문학 내부에서마저 융합이 일어나지 않는 데는 근대 학문 분과 체제 탓이 크다. 우리 학계가 근대의 관성에 젖어서 그렇다. 그래서 대학 교육의 융합을 사고할 때 단순히 기술과 공학 교육을 중심으로 융합을 사고하는 것만이 아니라 근대 교육 패러다임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라는 차원에서 사고하는 것도 필요하다. 근대성을 질문하는 일과 융합을 동시에 사고하자는 것이다. 공학 중심 강화를 위한, 그것도 AI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산업화 시대 사고를 바탕으로 한 단방향 융합만 넘치는, 편향 융합만 넘치는 한국 대학 교육 현실에서, 진정한 융합 교육을 위한 문명사적 사고 전환이 필요하다.


이욱연 서강대학교·중국문화학

서강대학교 중국문화학과 교수. 고려대학교 중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대중국학회 회장, 중국어문연구회 회장을 역임했다. 중국 현대문학과 현대문화를 연구하면서 현대 중국인들의 속내를 섬세하게 탐구하는 작업에 매진해왔다. 최근에는 청년들과 함께 루쉰을 읽으면서 한국 사회의 오늘과 내일을 고민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루쉰 읽는 밤, 나를 읽는 시간》, 《이욱연의 중국 수업》, 《중국이 내게 말을 걸다》, 《이만큼 가까운 중국》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루쉰의 《아Q정전》과 《광인일기》, 루쉰 산문집 《아침꽃을 저녁에 줍다》, 위화의 《우리는 거대한 차이 속에 살고 있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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