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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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대로’
  • 이기홍 논설고문/강원대 명예교수
  • 승인 2022.08.07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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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홍 칼럼]

대통령 부인의 연구윤리 위반 문제에 대해, 그분에게 박사학위를 수여한 대학에서 10개월여의 재조사 기간을 거쳐 “학문분야에서 통상적으로 용인되는 범위를 심각하게 벗어날 정도의 연구부정행위에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판단했다”는 검증 결과와 “검증시효 도과”라는 판단을 발표했다. 언론에서는 누가 어떻게 조사했는지조차 밝히지 않는다고 지적하지만, 「고등교육법」에 “총장은 교무를 총괄하고, 소속 교직원을 감독하며, 학생을 지도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기 때문에 그 대학에서 무슨 위원회를 꾸려 조사를 하고 결론을 내렸다고 하더라도 최종 결정은 총장의 몫이다. 게다가 그 대학의 연구윤리위원회 규정은 ‘판정’에 관해 “총장이 조사 결과를 확정하여 문서로 통보”하도록 정하고 있다 (연구부정행위 검증은 ‘예비조사’, ‘본조사’, ‘판정’의 절차를 거친다). 그래서 그 대학 총장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았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당선이 유력한 야당 후보의 부인이 내가 총장인 대학에서 박사학위 논문 제출 자격을 갖추기 위해 그리고 학위 수여를 위해 제출한 논문들이 연구부정의 혐의가 있다는 문제가 발생했다. 이런 곤혹스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 것이 최선이지만, 일어났으니 어떻게든 처리해야 한다. 다행히(!) 규정은 연구부정행위에 대해 “시효와 관계없이 검증함을 원칙으로 한다”고 2012. 9. 1.에 (2011년의 교육부훈령에 따라) 개정하면서 부칙에 “2012. 8. 31.까지의 연구부정행위에 대해서는 만 5년이 경과하여 접수된 제보는 처리하지 않는다”고 정해 놓았다. 옹색한 대로 “본건은 검증 시효를 도과하였으므로 위원회의 조사 권한을 배제하고 있다”는 예비조사위원회의 결과를 승인하고 “본조사 실시는 불가하다”고 판정했다.

그렇지만 교육부가 교육부훈령인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에서 2011년에 검증 시효 관련 내용을 삭제했음을 들어 검증 실시를 재요구했으므로 재조사에 착수했지만, 민감한 시기에 집권이 유력한 후보의 부인에 대해 연구윤리 위반 여부를 결정할 수는 없었다. 재조사를 연장하면서 시간을 지연하여 선거가 끝나고 권력의 향배가 정해진 뒤 ‘연구부정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재조사의 판단과 ‘검증 시효 도과이므로 본조사 불가’라는 이전 결과를 다시 승인했다. 더하여 “그동안 논란이 되어 왔던” 그 윤리규정이 “교육부훈령에 위배되는 것인지에 대해 교육부를 통하여 법제처의 유권해석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대학 자체의 윤리규정에 따른 판단과 결정이 교육부훈령을 위배하지 않은 ‘적법한 것’임을, 바뀐 정부로부터 제도적, 공식적으로 확인받고자 한 것이다. 

물론 대학의 ‘규정’ 자체 안에서도 이런 판단과 결정에 논란이 제기될 수 있겠지만, 적어도 법적으로 문제가 될 것은 없다. 경과규정에 관한 동일한 부칙에는 “만 5년 경과한 부정행위라 하더라도...공공의 복지 또는 안전에 위험이 발생하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이를 처리하여야 한다”고 단서가 붙어 있다. 대통령 부인의 연구부정 문제가 공공의 복지나 안전과 무관하지 않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겠다. 더구나 “조사를 통해 학술적 평가와 연구부정행위 여부를 명백히 밝히라는 국민의 눈높이를 잘 알고 있다.” 그렇더라도 ‘법적으로는’ 국민의 눈높이는 공공의 복지가 아니다. 

또 ‘외부인 비율 30%이상, 해당 연구분야 전문가 50%이상의 5명 이상의 위원이 진행하도록 정한 본조사’가 아니라 (해당 연구분야의 전문가인지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대학의 전임교원 3인의 (예비)재조사만으로 ‘학문분야에서 통상적으로 용인되는 범위를 심각하게 벗어날 정도의 연구부정행위에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판단한’ 검증 결과에 대해서는 편의적인 것으로 신뢰할 수 없다는 평가가 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규정에는 ‘연구부정행위의 사실 여부를 입증하기 위해’ 본조사를 진행하도록 정하고 있더라도, 부칙이 적시하고 있는 ‘검증시효 도과’가 명백한 상황에서 본조사를 진행할 법적 필요나 이유는 없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특히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교육부에 ‘찍힌’ 대학들이 정부의 각종 재정지원사업에서 배제됨은 물론 학자금 대출 제한이나 감사를 비롯한 갖가지 제재조치로 시달렸던 사정을 익히 보아 왔으면서, 대통령 부인의 연구부정을 조사하고 결정한다는 것은 학교의 안녕과 구성원들의 이익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무모한 짓이다. 그렇지만 연구와 교육을 통해 진리를 추구하는 대학에서 이런 ‘법대로’는 ‘겁이 없는 일이다. 총장 임기 4년이 뭐가 대단하다고.’


이기홍 논설고문/강원대 명예교수·사회학

강원대학교 사회학과 명예교수로, 강원대 교수회 회장, 한국사회학회 편집위원장을 역임했다. 주 연구 주제는 사회과학철학, 사회과학방법론, 그리고 사회이론이다. 저서로 『사회과학의 철학적 기초: 비판적 실재론의 접근』, 역서로 『숫자를 믿는다: 과학과 공공적 삶에서 객관성의 추구』, 『맑스의 방법론』, 『경제, 시민사회 그리고 국가』,『과학으로서의 사회이론』, 『새로운 사회과학철학』, 『지구환경과 사회이론』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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