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슬살이와 공직 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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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슬살이와 공직 윤리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0.02.2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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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연단]

■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삶의 지혜 41강>_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의 「출사와 공직 윤리」

네이버문화재단의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여섯 번째 시리즈 ‘삶의 지혜’ 강연이 매주 토요일 한남동 블루스퀘어 3층 카오스홀에서 진행되고 있다. ‘어떻게 해야 보람 있고 성숙한 삶의 실현이 가능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살펴보는 이번 시리즈는 주로 개인의 삶에 초점을 맞추어, 객관적인 사실, 또 보다 넓은 사고와 관점에서 처세와 이존(以存)을 보다 확실한 삶의 사실에 이어보자는 취지에서 기획됐으며 전체 50회로 구성되어 있다. 41강 박석무 교수(다산연구소 이사장·우석대학 석좌교수)의 강연 중 주요 대목을 발췌·요약해 소개한다.

정리   편집국
사진·자료제공 = 네이버문화재단


박석무 선생은 다산 정약용이 살던 시대와 “오늘은 시대가 달라 다산의 이야기가 오늘의 논리에 딱 부합하지는” 않을 거라고 전제하면서도 여전히 다산에게 귀담아 들어야 할 가치가 있음을 이야기한다. 그중 공직 윤리와 관련하여서는 두 가지 원칙을 제시했다고 보는데 첫째로 “가장 큰 내용은 ‘공렴(公廉)’이라는 원칙이었다”라고 한다. 실제로도 다산이 벼슬살이 10여 년간 “참으로 ‘공렴’한 공직 윤리를 철저히 실천”함으로써 그 의의를 입증했음을 밝히고 있다. 둘째는 ‘이중민생 이존국법(以重民生 以尊國法)’, 즉 ‘민생을 무겁게 여겨서 국법의 존엄함을 밝혀야 한다’라는 원칙으로, 이 두 윤리만 공직자들이 “제대로 준수”하면 “아무리 역사 발전이 더디고 느리더라도” 분명히 “나라다운 나라가 되고 백성들은 편안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임을 언급한다. 

지난 1월 18일, 박석무 이사장이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 삶의 지혜〉’의 41번째 강연자로 나섰다. 사진제공=네이버문화재단
지난 1월 18일, 박석무 이사장이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 삶의 지혜〉’의 41번째 강연자로 나섰다. 사진제공=네이버문화재단

1. 글을 시작하며

‘벼슬’이라는 한자어는 관(官)이요 사(仕)이다. 사(仕)는 사(士)와 같은 글자로 혼용하기도 했다. 다산 정약용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윗사람을 섬기는 사람을 민(民)이라 하고, 목민(牧民)하는 사람을 사(士)라고 하니, 사는 벼슬하는 사람이니, 벼슬하는 사람은 모두 목민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경관(京官: 중앙의 공무원)은 공봉(供奉: 임금에 대한 섬김)을 직무로 삼거나 전수(典守: 각 기관의 직무를 맡아 지키고 수행함)를 임무로 하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해나가면 거의 죄가 되거나 뉘우칠 일은 없을 것이다. 오직 수령(守令: 목민관)은 만백성을 주재하니 하루에 만기(萬機: 임금의 정무(政務))를 처리함이 그 정도가 약할 뿐 본질은 다름이 없어 천하 국가를 다스리는 사람과 비록 대소는 다르지만 처지는 실로 같은 것이다.(『목민심서』 「제배(除拜)」)

다산의 시대와 오늘은 시대가 달라 다산의 이야기가 오늘의 논리에 딱 부합하지는 않지만, 오늘도 역시 공직자의 역할은 막중하여, 그들에게는 남다른 윤리의식이 있어야 하고 무거운 책임감과 의무가 지워져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다산은 공직자들이 공직 윤리만 제대로 준수해주면 분명히 나라다운 나라가 되고 백성들은 편안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믿었다.

다산이 제시한 공직 윤리의 가장 큰 내용은 ‘공렴(公廉)’, 즉 공직자라면 공렴이라는 두 글자대로 정성껏 나라를 위해 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이중민생 이존국법(以重民生 以尊國法)’으로 ‘민생을 무겁게 여겨서 국법의 존엄함을 밝혀야 한다’는 원칙이다. 이 두 가지의 대원칙을 종합하여, 공직자의 바이블이라는 『목민심서』 48권이라는 대저를 남길 수 있었다.

2. 국민 저항권

다산의 민권 의식은 그 시대로 보면 매우 탁월한 수준에 이르러 있었다. 국가나 정부의 권력이 잘못 집행될 때에는 언제라도 잘못하는 권력에 저항하고 항거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생각하고, 또 그런 생각을 실천에 옮긴 사람이 바로 다산이었다. 국민의 저항권을 말 그대로 인정하여 부당한 권력에 항의하고 항거한 민란의 주동자를 무죄 석방한 다산의 법 집행은 자신도 매우 잘한 일이라고 여겨 자신의 자서전격인 「자찬묘지명」과 자신의 연보인 『사암선생연보』에 아주 자세하게 기술하여 역사적인 사건이라는 것을 숨기지 않고 명확하게 드러내 보이고 있다.

당시 곡산부의 인구를 지금으로서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농민 1000여 명이라면 적은 수가 아니었다. 이 많은 사람들이 억울함을 호소했는데, 만약 이계심이라는 반란군 지도자에게 중벌을 내렸다면 백성들이 그냥 있었겠는가. 민생을 무겁게 여기고, 민권의 높은 원리를 인정해주자, 백성들이 화락해졌다니, 이 이상 더 법의 존엄성을 어디서 찾아낼 수 있겠는가. 백성들이 승복하고, 민심이 화락한 결과를 얻어낼 때에만 그 법 집행의 정당성과 존엄성이 구현된다. 실정법을 위반하여 오영에 체포령까지 내려진 수배자, 그것도 민란의 주동자를 무죄 석방하는 다산의 법의식, 법의 원리는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3. 관(官)에 항의해야 시정된다

『사암선생연보』의 내용과 같은 사건이지만 각도를 달리한 방향으로 정리한 「자찬묘지명」의 명판결에서 판결의 주문(主文)은 ‘피고인 이계심을 무죄 석방한다’이다. 끝부분의 판결 이유가 너무 멋지다. 자신이 당할 형벌이나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백성들이 당하는 민막(民?)을 들어 관에 항의할 줄 아는 사람이 있어야만 관이 밝은 정치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형벌을 내리기보다는 세상이 밝아지고 맑아지기 위해 이계심에게는 1000냥의 상금을 내려야 한다고 했으니, 그때 그런 재판이 가능했다면, 다산이 인정한 국민저항권이 어떤 수준인가는 금방 알 수 있다. 조정의 대신들이 몇 명은 죽여야 한다던 사건이고, 민란의 성격인 시위 주모자를 무죄 석방하는 다산의 법의식은 도대체 어디서 왔으며, 재판관의 양심과 법에 의해서만 판결한다는 법관의 윤리의식은 어떻게 해서 얻어진 결론일 것인가.

4. 「원목」 과 「탕론」

“목민관이란 백성을 위해서 존재하지, 백성들이 목민관을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다(牧爲民有也 民不爲牧生也)”(「원목」)라는 논리가 바로 이계심 사건 판결 이유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리고 백성을 위하는 정치를 하지 않는 통치자는 언제라도 백성들이 의논하여 자리에서 끌어내릴 수 있다는 「탕론」의 논리도 크게 보면 국민 저항권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다.

「원목」의 논리는 참으로 간단하다. 최하위의 주민 대표는 한 마을 사람 모두가 뜻을 합해 추대하여 지위를 얻은 이정(里正), 즉 이장(里長)이다. 마을 단위의 상급기관의 장들 또한 하위 단위의 장들이 추대하여 이뤄지니, 그들 또한 주민들의 추대, 즉 선출해서 얻어지는 지위이다. 몇 개 마을을 대표하는 당정(黨正), 몇 개 당의 장들이 추대하는 주장(州長), 몇 개 주(州)의 장들이 추대하는 국군(國君), 몇 개 군(君)들이 추대하는 방백(方伯), 몇 개 방백들이 추대하는 나라 전체의 통치자는 황왕(皇王)이니, 황왕의 근본은 이정에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백성을 위해서만 황왕이 존재하는 것이니, 목민관이라 부르는 일정한 단위의 장 또한 주민들이 추대하여 이룩되는 지위이므로 백성을 위해서만 목민관은 존재할 수 있다는 결론을 얻어냈다.

이러한 결론으로 보면 이정이 백성의 염원에 따라 법을 제정한 다음 당정에게 올렸고, 당정도 백성의 여망에 따라 법을 제정한 다음 주장에게 올렸고, 주장은 국군에게, 국군은 황왕에게 올렸다. 그러므로 그 법들이 모두 백성의 편익(便益)을 위해서 만들어졌다는 민주적 절차이자 상향식 법 제정이 가능케 되는 요인을 밝히기도 했다. 이런 상향식 정치체제와 민주적 논리가 무너져, 어느 날 대도(大道)가 무너지면서 하향식 체제로 바뀌면서 백성들이 추천하고 추대하는 권한, 천부적 인권이 사라지는 역사적 불행이 왔다는 것이 다산의 주장이다.

「탕론」의 논리는 더 간단하다. 중국 고대의 성인 임금인 탕왕(湯王)이, 왕도(王道)를 버리고 온갖 악행을 저지르며 백성들을 탄압하고 착취하던 걸(桀)왕을 방벌(放伐)하고 백성들의 추대로 임금의 자리에 올랐는데, 혹자는 신하가 임금을 방벌한 사실이 그르지 않느냐고 말하자, 절대로 그르지 않는 일이며, 인류가 통치체제를 갖출 때부터 시작된 정치원리의 하나라고 설명하는 내용이다.

「원목」의 논리가 그대로 적용되어, 한 마을의 주민이 추대한 이장, 이장들이 추대한 현장(縣長), 현장들이 추대한 제후, 제후들이 추대한 천자(天子), ‘천자라고 하는 것은 민중들이 추대하여 이룩된 사람이다(天子者 衆推而成者也)’라는 혁명적 발상을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민중들이 추대하여 이룩된 천자는 또한 민중들이 추대해주지 않으면 성립이 되지 않는다(夫衆推之而成 亦衆不推之而不成)’라고 말하여, 아래로부터의 추대가 없으면 천자의 자리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천자가 민의를 배반하는 일을 할 때는 ‘백성들이 붙잡아 끌어내린다(衆執而下之)’라고 말하였다. ‘붙잡아 끌어내리는 것도 백성들이요 끌어올려 존중해주는 것도 백성들이다(其執而下之者衆也 而升而尊之者亦衆也)’라는 혁명적 정치 논리를 편 것이다.

「탕론」은 결국 상향식 정치만이 왕도(王道) 정치이고, 요순의 시대를 복원하는 정치라고 말하여, ‘옛날에는 아래에서 민의가 위로 상달되니(下而上) 아래에서 위로 민의가 반영되면 순리(順理)였다’라고 말하고 ‘오늘날에는 위에서 아래로 명령이 하달되니(上而下), 아래에서 위로 민의가 상달되는 경우는 역(逆), 즉, 역적의 논리로 여긴다(古者下而上 下而上者順也 今也上而下 下而上者逆也)’라는 민주적 사고의 절정에 이르는 논리를 편 내용이 바로 「탕론」이었다.

이러한 다산의 정치사상은 그 근본 바탕이 『예기(禮記)』 『예운(禮運)』편의 대동론(大同論)에 근거하고 있다. ‘대도(大道)가 행해져야만 천하는 공(公)이 된다(大道之行也 天下爲公)’라는 뜻이니, 천하를 다스리는 통치권은 공물(公物)이기 때문에, 즉 민중들에게서 나오는 권한이기 때문에 통치권이 공(公)이 되어야만 백성을 위하는 정치가 된다고 했다. 바로 다산의 ‘공(公)’이라는 개념이 「원목」 과 「탕론」 의 바탕임을 알게 해준다. 국가를 사유재산으로 여기는 봉건주의 논리에서, 국가나 사회는 바로 공적인 민중의 소유임을 이해한 정치 논리였다. 공직자라면 바로 그러한 공(公)의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하는 일이 가장 바른길임을 알아야 한다.

5. 염(廉)의 올바른 이해

『목민심서』 「율기(律己)」편에서 두 번째의 조항이 ‘청심(淸心)’이다. 청심의 첫 번째 주장은 청렴에 대한 설명이다. “청렴이란 목민관의 본질적인 임무이다. 만 가지 착함의 근원이며 모든 덕(德)의 뿌리이다. 청렴하지 아니하고 목민관 노릇 할 사람은 없다.(廉者 牧之本務 萬善之源 諸德之根 不廉而能牧者 未之有也)”라는 큰 명제가 있는데, 이 명제는 『목민심서』 전체를 관통하는 명제이면서 공직자, 목민관들이 마음에 두고 실천에 옮길 가장 큰 임무이고 원칙이다.

그래서 다산은 영암 군수 이종영(李鍾英)이라는 젊은이에게 경계하라는 뜻으로 준 글에서 육염(六廉), 즉 여섯 글자의 염을 실천하라고 강조했다. 그중에서 지켜야 할 필수적인 의무로 세 가지, 뇌물에 청렴하고 색(色)에 청렴하고 지위(地位) 즉 권력에 청렴하여 권력 남용의 죄를 짓지 말라고 했다. 따지고 보면 청렴이야말로 공직 윤리의 핵심이다.

▲ 지난 1월 18일, 박석무 이사장이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 삶의 지혜〉’의 41번째 강연자로 나섰다. 사진제공=네이버문화재단
▲ 지난 1월 18일, 박석무 이사장이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 삶의 지혜〉’의 41번째 강연자로 나섰다. 사진제공=네이버문화재단

6. 민생(民生)과 법의 집행

다산은 경세(經世)의 기본 논리를 전통적인 동양 정치사상과 법사상에 그 뿌리를 두고 있었다. 사서육경(四書六經)이라는 고경(古經)은 동양인들의 유토피아이던 요순시대를 이룩하겠다는 동양인들의 정치와 법과 경제의 철학이 담겨 있다. 이른바 민본(民本) 사상이라는 경세 논리는 『서경』의 “백성만이 나라의 근본이니, 근본이 튼실해야 나라가 안녕해진다(民有邦本 本固邦寧)”라는 글에서 출발한다. 때문에 나라의 근본은 백성이고, 백성의 삶이 안녕해질 때에만 법의 존엄성이 실현되기 때문에 민생문제와 법과의 관계는 어떻게 법이 적용되어야만 가능해지는가를 따지는 일은 경세의 큰 원칙으로 자리 잡는다.

법의 존엄성과 권위를 진정으로 보여주는 일이 어떤 것인가를 제대로 지적한 다산의 주장은 통치자의 바른길을 가르쳐주는 역사적인 지혜였다. “대체로 법의 적용은 마땅히 임금의 최측근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大抵用法 宜自近習始)”라며 공정한 법의 집행은 권력자의 최측근부터 시작해야 한다니 다산의 경세론의 절정을 알아볼 수 있게 한다. 권력자의 측근은 처벌하지 못하고 약한 백성들의 조그만 범죄를 처벌한다면, 그런 법의 권위와 존엄성은 땅에 떨어져 올바른 통치는 불가능해진다는 것이 다산의 주장이었다.

7. 외천(畏天)ㆍ외민(畏民)

공직 윤리가 제대로 세워져야만 백성들이 살아갈 수 있다고 믿었던 다산은, 공직자라면, 자기들의 감독관청이나 자신들의 임명권자에 대한 두려움만 지니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늘과 백성을 두려워할 때에만 백성이 나라의 근본임을 실천으로 알아차린 공직자들이라고 했다.

영암 군수로 재직하다 함경도 부령(富寧) 도호부사로 부임해가는 이종영(李鍾英)이라는 젊은이에게 목민관이 두려워해야 할 네 가지(정부ㆍ감독관청ㆍ하늘ㆍ백성)를 말하면서, 멀리 있는 조정이나 감독관청은 무서워하면서, 가장 가까이서 24시간을 감시하는 하늘과 백성들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하루라도 목민관 생활을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였다.

8. 공직 윤리를 실천한 사례

다산 정약용은 누구보다도 공직자들이 맑고 깨끗한 행정을 펴고, 공렴(公廉)의 행정을 펼 때에만 나라는 편안하고 백성들이 마음 놓고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다산은 애초에 “공법(公法)에 위반되고 민생에 해가 되는 상부나 상관의 명령에는 따르지 말아야 한다(違於公法 害於民生 當毅然不屈 確然自守: 奉公, 禮際)”라는 대원칙을 세워놓았다. 이런 당당한 공직자의 자세야말로 나라와 백성을 위한 공직자라는 것이 다산의 뜻이었다. 요즘 국정 농단이나 사법 농단에서 위에서 시켜서 한 일이라고 변명하고 빠져나가려는 공직자들은 반드시 다산의 뜻에 마음을 기울여야 한다. 상명하복(上命下服)이야 의당 있어야 하는 공직 사회이다. 그러나 상부의 명령이 반드시 합법적이고 정당해야지, 법에 위반되고 정당성이 없는 명령을 따르는 일이란 바로 공직자가 죄를 짓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임금의 명령이라도 임금 앞에서 “그런 부당한 명령은 걷어주십시오. 소신의 목을 베더라도 그러한 명령은 따를 수 없습니다.”라고 강경하게 항의하던 옛날 대신들의 풍모를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행여 벼슬이 떨리고, 처벌을 받을까 두려워 부당하고 사리에 맞지 않으며 법에도 위반된 명령이나 지시를 따르는 공직자는 백성을 위하는 공직자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런 공직자들이 많았기에 연산군이나 광해군은 임금 자리에서 쫓겨났으며, 대통령도 탄핵 당하게 된다.

오늘 우리가 바라는 공직자는 옛날의 어진 공직자들을 배워야 한다. 행여 벼슬길이 막히고 목이 떨릴까 두려워서 정의롭지 못한 행위를 일삼는 공직자는 더 이상 공직에 있어서는 안 된다. 벼슬 버리기를 헌신짝 버리는 것처럼 하지 않는 공직자는 올바른 공직자가 아니라던 다산의 이야기도 다시 새겨들어야 한다.

9. 글을 마치며

역사는 하루아침에 온통 바뀌지 않는다. 공자(孔子: BC551-BC478)가 세상을 떠난 1608년 뒤에 주자(朱子: 1130-1200)가 태어났다. 수사지학(洙泗之學)이라는 공자의 기본 유학(儒學)이 주자학(朱子學) 즉 성리학(性理學)이라는 신유학(新儒學)으로 전환되면서 동양 중세의 대표적인 논리로 자리 잡았다. 고려 말엽 중국에서 들어온 주자학은 고려를 거쳐 조선 왕조에 이르러 국가의 통치 이념으로 자리 잡아 사상과 철학을 지배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상계의 동향으로 역사가 진행되고 있을 때에 주자가 세상을 떠난 632년 뒤 다산 정약용(1762-1836)이 태어났다. 어떻게 해서라도 중세의 사상 체계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기울인 다산은 육경사서(六經四書)에 대한 주자의 경전 해석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전 해석을 통해 ‘다산학(茶山學)’이라는 새로운 사상과 학문의 체계를 세우기에 이른다. 공자의 유학을 관념적인 성리학으로 해석한 주자학에서 벗어나 실용적이고 실학적인 경험론적 논리로 경전을 해석하였다. 무려 2300여 년의 세월이 흘러 새로운 유학의 철학이 수립된 것이다.

그렇게 다산은 행위의 철학, 실천의 논리를 경학에서 연구해내고, 구체적으로 세상을 경륜할 이론으로 ‘일표이서(一表二書)’를 저작해냈다. “국가의 행정 제도, 문물 제도를 통째로 바꾸고 고치자는 『경세유표』에서 오늘의 개혁 논리를 찾아보고, 고관대작에서 하급 관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공직자(벼슬아치)들이 청렴한 공직 윤리를 회복하고 공정한 행정을 펴야 한다는 『목민심서』에서 오늘의 부정과 비리, 부패와 타락을 방지할 논리를 찾아야 한다. 다산은 또 형사재판에서는 실체적 진실만을 발견한 수사와 재판이 이루어지기를 염원하여 그 과정에서 절대로 억울한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목적에서 『흠흠신서』를 저작했는데, 공정한 수사와 재판은 그 점을 본보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다산 정약용 평전』 서문)

이러한 결론에 도달하고 보면, 좋은 나라, 백성들이 편안하게 살아가는 나라는 공직자들이 공직 윤리를 제대로 지키는 데서 이룩할 수 있다는 다산의 뜻을 알아낼 수 있다. 공직자들이 다산이 제시한 ‘공렴(公廉)’의 윤리를 자신이 수립한 ‘다산학’의 요체라고 말할 수 있는 행동으로 옮기고 실천해내는 경지에 도달할 때에만 가능해지는 일이다. 아무리 역사 발전이 더디고 느리더라도 언젠가는 다산의 뜻이 실현되는 방향으로 우리가 행동하는 사람이 될 수밖에 딴 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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