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이라는 유일한 질서, 세계는 합리성의 디스토피아가 되었다!
상태바
경쟁이라는 유일한 질서, 세계는 합리성의 디스토피아가 되었다!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2.08.01 19: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새로운 세계합리성: 신자유주의 사회에 대한 에세이 | 피에르 다르도·크리스티앙 라발 지음 | 오트르망·심세광 옮김 | 그린비 | 736쪽

 

오늘날 우리는 신자유주의 국가가 소극적인 국가, 최소 국가, 약한 국가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오늘날의 신자유주의 국가는 오히려 사회적 관계에 경쟁의 논리를 강제하고 공적 기관들을 포함한 기관들에 기업 모델을 강제하는 데 대단히 적극적이다. 또한 신자유주의는 스스로 야기한 위기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아 스스로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자신이 실행한 정책들이 야기한 가장 부정적이고 재앙적인 결과를 자기에게 유리하게 이용하면서 살아남는다. 2015년 유럽연합 당국들이 IMF의 도움을 받아 소위 ‘그리스 국가 부채 위기’를 해결한 권위적 방식은 이런 악순환의 고리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상세히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피에르 다르도와 크리스티앙 라발의 이 책은 신자유주의의 계보를 파헤치는 책이다. 어떤 대상의 계보를 연구하는 건 그것의 실체성을 뒤흔드는 효과를 갖는다. 그 대상의 기원에 절대성이 아닌 우연성이 있다는 걸 보여 주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 이름 때문에 신자유주의는 자유주의라는 어떤 단일한 사상의 발전된 버전으로 생각될 수 있지만, 저자들에 따르면 자유주의는 하나의 단일한 본질을 갖고 있는 실체가 아니며, 그 안에 수많은 갈등과 변화의 과정들이 있어 왔다. 그 갈등과 변화의 과정들 속에서 우연히 한 지점에 맺힌 매듭이 신자유주의이다.

이렇게 저자들은 신자유주의의 계보를 추적한다. 그 과정에서 푸코의 『생명관리정치의 탄생』을 주로 참고하면서도, 푸코의 죽음 이후 이미 상당한 시간이 흐른 시점에서, 또 신자유주의의 맹위가 극에 달해 있는 오늘날의 관점에서 다시 한번 그 기획의 의미를 물으며 비판작업을 이어가고자 한다.

저자들은 신자유주의 합리성의 네 가지 주요 특징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첫째, 시장을 자연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닌 구성된 현실로 제시한다. 둘째, 시장질서의 본질은 교환이 아니라 경쟁에 있다고 주장한다. 셋째, 국가 역시 경쟁의 규범에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넷째, 경쟁의 규범은 개인이 자신과 맺는 관계에 영향을 미쳐야 하고 기업가적 국가는 개인이 기업가로서 행동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신자유주의 시대는 기업이라는 형상을 중심으로 인간의 담론을 동질화하는 것이 그 특징이다. 이 새로운 신자유주의 주체의 형상은, 자유민주주의가 존속하게 내버려 두고 또 때때로 자유주의가 자신의 존재를 더욱 영속화하기 위해 작동시키는 법을 알고 있던 복수 형태의 주체성에 전례 없는 획일화를 행한다. 새로운 경제학자들은 “경제분석의 전통적 영역으로부터 벗어나 인간의 행실 전반에 손익 분석을 일반화”시키고자 했다. 이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유로운 선택을 의무로서 부과하고자 했다. 개인은 시장 상황을 유일한 현실로 받아들여야 한다.

신자유주의는 전략적으로 수많은 시장 상황을 창조하고, 개인들은 그 안에서 선택의 의무를 가진다. 시장 상황은 곧 그들에게 부과되는 현실이자 유일한 게임의 규칙이 된다. 개인들이 이 게임에서 지고 싶지 않다면 자신들에게 주어진 이 ‘자유의 공간’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신자유주의적 개입주의는 인구의 복지에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정치적 목적에 따라 “시장 실패”를 체계적으로 교정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가장 “적합하고” 가장 강한 사람에게 이익이 되는 경쟁 상황을 만들고 모든 이익의 원천으로 간주되는 경쟁에 개인을 적응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저자들은 신자유주의가 이미 하나의 합리성이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그것이 우리에게 너무나 당연한 것이 되고 우리의 일부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는 시장의 이름이 아닌 경영과 효율성, 공공 서비스 체계의 민주화라는 이름하에 시행되었다. 그렇다면 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신자유주의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자 할까? 신자유주의가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두 저자들은 “신자유주의는 우연히 그런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반민주주의인 것 같다”고 주장한다. 달리 말해서 신자유주의의 모든 정책적, 정치적 측면에는 권위주의적이고 전체주의적인 성향이 농후하다. 우리가 신자유주의에 대해 경각심을 가지고 비판적 실천을 해야 하는 이유다.

푸코의 사유를 우파적으로 전유하고자 하는 사람들 혹은 좌파들의 활동 영역에서 푸코의 사유를 몰아내고자 하는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이 저자들은 푸코의 사유를 적극 활용하면서도 여전히 좌파적 사유와 활동에 힘쓰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타개하고자 하는 열망을 갖고 있지만 정작 신자유주의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까닭에 효과적인 비판지점을 찾지 못했던 이들에게 이 책은 훌륭한 지적 동반자 역할을 해줄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