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떻게 이방인의 자리에 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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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떻게 이방인의 자리에 설 것인가?”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2.08.01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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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자철학: 현대 사상과 함께 타자를 생각하기 | 서동욱 지음 | 반비 | 632쪽

 

전쟁, 인종차별과 그에 따른 수많은 죽음, 난민 수용을 둘러싼 격렬한 사회적 논란, 특정 성정체성에 대한 혐오와 테러, 소수자에 대한 반감을 바탕 삼아 집권한 극우 정당들, 점점 배타적으로 변해가는 동시대의 풍경이다. 나/우리와 조금이라도 다른 자를 배척하는 경향은 국가와 문화권을 막론하고 격화하고 있다.

철학에 사회적 책무가 있다면, 바로 이런 문제들을 사유하는 일일 것이다. 고립된 ‘자아’로서의 개인·인간·주체가 핵심적인 자리를 차지한 근대이래, 이러한 자아 개념이 가져온 문제들을 우리는 지금 마주하고 있다. 비인간과 환경을 도구적으로 대한 결과 맞닥뜨린 기후위기, 평화와 공존을 위협하는 전체주의의 재부흥 같은 것들이다. 그러므로 타자와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 타자를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우리에게 타자란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을 던지는 타자철학이야말로 동시대에 가장 긴급하게 요청되는 사유다.

이 책은 바로 이 문제, “현대가 끌어안고 있는 문제들의 근원”에 자리한 “타자의 상처”를 함께 사유하자고 제안하는 책이다. 책은 여덟 명의 철학자와 그들의 사상을 경유하여 타자라는 문제에 접근하는 여러 갈래의 길을 열어준다. 우리는 어떻게 고립을 넘어 공동체를 이루는가? 타자에 관한 사유는 민주주의와 어떻게 연결되는가? 타자는 인간에만 국한될까, 아니면 비인간 동물들에 대한 환대 역시 고민해야 하는가?

이 책은 단순히 한 가지 문제에 국한된, 특수한 주제를 다루는 책이 아니라 오히려 현대사상 전반에 관한 총괄적인 가이드라고 할 수 있다. 이는 현대사상이 다름 아닌 ‘주체와 타자’의 문제를 둘러싸고 사유하고 논쟁하는 과정에서 형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근대는 한마디로 “인간 또는 인간의 의식이 비로소 주체로서 일어선 시대”이고, 근대의 정신이란 “모르는 것을 그냥 놔두고는 못 견디는 것”이다. 데카르트로부터 그 시작을 찾아볼 수 있는 이 ‘근대적 주체’는 수많은 부작용을 가져왔다. 서구 중심으로 세계를 파악하고 손에 넣고자 했던 제국주의, 인간을 중심에 놓고 인간 외 모든 존재를 도구화해온 산업 발전의 방향. 이처럼 근대의 주체가 가져온 수많은 부작용을 반성하는 과정이 현대사상이다. 그렇기에 ‘나’를 모든 것의 중심에 두는 것을 넘어 타자와의 마주침을 사유하는 타자이론이야말로 현대철학의 과제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후설, 하이데거, 사르트르, 메를로퐁티, 레비나스, 아감벤, 데리다, 들뢰즈. 이 책에서 다루는 철학자들의 이름이다. 저자는 이들의 주요 저작과 개념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이들을 어떻게 비판적으로 읽을 수 있는지, 이 텍스트들이 기나긴 사상사의 맥락에서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읽어나가며 이해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가령 사르트르의 시선 개념과 관련한 ‘보여짐’과 ‘봄’의 문제가, 이집트 파라오의 찬가로부터 플라톤의 태양 비유를 지나 서구 사상의 전통에서 어떻게 계승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많은 철학자들이 논의를 전개하는 데 바탕이 된 소설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과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비롯한 여러 문학 작품에 관한 분석도 이해를 돕는다. 

한편 각 장이 한 명의 사상가를 주요하게 다루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이 책은 철학자들의 사상을 단순 정리, 개괄하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타자를 둘러싼 핵심 쟁점들을 하나씩 짚어가는 과정을, 이들의 담론을 통해 해명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책이 다루는 주요 쟁점들은 다음과 같다. 유아론을 넘어서 타자와 공동체를 이루는 문제(2장), 존재함과 타자의 문제(3장), 근본적으로 싸움의 형식 속에서 만나는 나와 타자의 문제(4장), 신체와 타자의 문제(5장), 타자와의 만남 속에서 이루어지는 초월과 구원의 문제(6장), 어떤 일반성에도 매개되지 않고 정체성 없이 존재하는 타자가 가지는 정치적 의미의 문제(7장), 민주정 자체의 근거로서 타자의 문제, 동물로서의 타자의 문제(8장), 타인 개념 자체를 벗어나는 문제(9장). 이처럼 타자 문제로 들어가는 여러 갈래의 길을 걸어봄으로써, 이 책은 우리가 성찰의 바다에 뛰어들 수 있도록, 낯선 이와의 마주침을 사유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책의 마지막 장은 『소크라테스의 변명』으로부터 시작한다. 법정에 선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인들이라는 공동체를 향해 “여기서 쓰이는 말은 외국말 같습니다. (……) 아마 제 말버릇은 좋지 못할지도 모르고, 혹은 괜찮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것은 문제 삼지 마시고, 오직 한 가지 일, 즉 제가 말하는 것이 옳은지 옳지 않은지 하는 것만을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호소한다. ‘외국말’을 쓰는 이들에게 오로지 ‘정의’만을 요구하며 호소하는 이 이방인의 모습에서 우리는 담장 밖으로 밀려난, 들어온 적 없는, 들어오지 못하고 있는 이민자들, 난민들, 소수자들을 본다. 흔히 사변적이라고 여겨지는 철학이 실은 가장 실천적인 학문이라는 점이 여기에서 드러난다.

우리는 어떻게 이방인의 자리에 설 것인가? 우리는 어떻게 낯선 존재의 목소리를 들을 것인가? 이들을 하나의 원리가 지배하는 전체로 흡수하지 않으려면, 타자를 존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책 전체에 걸쳐 던져온 물음들은 ‘타자’와 ‘만남’이라는 두 단어로 수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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