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과 무기력에 무감각해진 한국, 질문 없는 문화가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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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과 무기력에 무감각해진 한국, 질문 없는 문화가 문제다
  • 김재호 서평위원/과학전문기자
  • 승인 2020.02.23 00:0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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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칼럼]

■ 서평_ 『교육의 미래, 컬처 엔지니어링: 질문하는 문화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폴 김, 김길홍, 나성섭 외 1명 지음, 동아시아, 2020.01.14)
 

영화 <매트릭스>는 현실을 직시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건 ‘질문’이라고 강조한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그 현실을 직접 보는 것이다. 매트릭스 세계 안에 갇혀 있는 인간이 자신의 쇠사슬을 끊고 나올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질문의 힘을 키우는 것이다. 질문하는 문화를 강조하는 책이 최근 출간됐다. 『교육의 미래 컬처 엔지니어링』은 자유주의 시대가 종말을 고하고, 불확실성이 난무하는 시대에 어떻게 돌파구를 마련할지에 대해 논한다. 그 키워드는 바로 ‘질문’과 ‘컬처 엔지니어링’이다.

『교육의 미래, 컬처 엔지니어링』의 공저자들은 △ 미래교육혁신 및 리더와 창업 전문가 △ 도시의 지속개발을 위한 국제개발협력가 △ 국제경제기구에서 일한 현장 경험을 가진 사회 개혁 및 인적자원개발 전문가 △ 문학평론가이자 시민교육과 사회디자인 학교의 디렉터이자 인문학자이다. 이들은 모두 4차 산업혁명이라는 기술혁명 시대에 한국 사회에 필요한 혁신과 교육의 필요성에 대해서 논했다. 책은 이들의 대담을 고스란히 담았다.

『교육의 미래 컬처 엔지니어링』는 총 9개의 주제를 다룬다. ▶ 갈등 수용 능력 ▶ 리스크 테이킹 ▶ 도시 경쟁력 ▶ 인재 전쟁 ▶ 다양성 ▶ 사회적 신뢰 ▶ 매뉴얼 없는 사회 ▶ 글로벌 시티즌십 ▶ 미래학교. 책은 제목과 부제만 보아도 미래 사회에서 주력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파악해볼 수 있다. ‘갈등 수용 능력’에선 “갈등을 드러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를, ‘리스크 테이킹’에선 “처음에는 망하는 게 정상이다”라고 조언한다.

아울러, 각 장의 말미에는 컬처 엔지니어링을 위한 질문과 질문에 대한 상세한 배경이 담겨 있다. 예를 들어, ‘AI와 싸우시겠습니까?’, ‘당신의 이력서에는 실패한 스펙이 있습니까?’, ‘방글라데시인이 서울대 총장이 될 수 있을까요?’, ‘카자흐스탄을 아십니까?’ 등. 이 질문들만 보아도 우리 사회가 개선해야 할 과제들을 짐작해볼 수 있다.

질문 없는 인재 키워내는 질문 없는 학교

첨단기술이 사회문화적으로 계속 쇼크를 주고 있지만, 사회 구성원들의 사고방식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심지어 우리들은 고통 자체에 무감각해져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되는 개념이 바로 ‘컬처 엔지니어링’이다. 인간의 의식을 직접 바꾸기는 힘들겠지만, 문화를 사회 공학적으로 다시 디자인할 수 있다는 관점이다. 여기서 핵심은 바로 질문이다. 탈레스, 데카르트, 카를 마르크스는 질문하는 능력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불러왔다.

“질문 없는 학교에서 질문 없는 사회로 되어가는 게 보편적인 현재 상황인 것 같습니다.” - 17쪽.

질문하는 능력은 학교에서 배워야 하는 게 정상이다. 질문하고 비판하는 능력은 자연스럽게 배우고 훈련해나가며 익히는 잠재성 같은 것이라고 책에서 언급됐다. 2010년, G20 정상 회담이 서울에서 열렸다. 이때 오바마 미국 前 대통령은 회담을 주최해준 한국에 감사하며, 한국 기자들에게 특별히 질문할 기회를 줬다. 하지만 기자 회견장은 정적이 흘렀다. 아무도 질문을 하지 않은 것이다. 이때 중국의 한 기자가 아시아를 대표해서 질문을 하고자 했다. 다시 오바마 前 대통령이 한국 기자들에게 물었지만, 질문이 없었다. 결국, 중국 기자가 대신 질문을 했다. 이게 바로 우리의 모습이다. 대학 강의실에서도 여전히 질문이 없다. 질문이 없으면 비판이 없고, 비판이 없으면 창의성은 나올 수 없다. 

질문하는 문화를 만들어내는 건 바로 컬처 엔지니어링이 필요한 이유가 된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새로운 교통서비스는 갈등을 해결하는 능력이 기술을 수용하는 차원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각인시켜 준다. 택시운수조합과 IT기술이 접목된 자율주행차나 공유서비스 등과의 갈등은 우리 사회가 더 발전하기 위해 고민해야 할 지점을 드러낸다.

질문하는 능력은 교육의 중요성을 환기시킨다. 『교육의 미래, 컬처 엔지니어링』에는 네팔 멜람치의 물 공급 사업의 사례가 나온다. 이 프로젝트는 19년 전에 시작됐으나, 2020년 말에나 완수될 예정이라고 한다. 네팔의 카트만두 근처에는 하루 1억7,000만 리터의 용수를 공급할 수자원이 없어서 멀리 떨어진 멜람치강에서 물을 가져오는 프로젝트를 국제기구 차원에서 시작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원주민들의 반발이 시작됐다. 지역 NGO들은 정치적으로 프로젝트를 이용했다. 네팔 정부 역시 멜람치강을 통한 물 공급에 대해 의심을 품었고, 결국 프로젝트는 정치적 사안으로 변질됐다. 과학적이고 기술적인 타당성이 제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교육의 부재에 의해 프로젝트가 완수되지 못했다.

또 다른 사례로 멕시코 원주민들의 끔찍한 노동 실태와 인도의 여성에 대한 인권 의식 부재가 언급됐다. 이에 대해 책에선 “실상은 사회혁신을 도모하기 위해서라도 사회 구성원 내부에서 갈등이 발생되어야 하는데, 사회적 무지에 의해 갈등 자체가 발생하지를 않는 경우”라고 지적했다.

한국 사회는 여전히 다양한 생각, 다양한 현실을 부정하는 문화를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산업의 차원에서 국제 경쟁력을 갖기가 힘들어진다. ‘다른 생각은 어떻게 경쟁력이 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교육의 미래, 컬처 엔지니어링』은 일본의 사례를 제시한다. 한국은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 경제적인 관점만 고수한다. 하지만 일본은 그 나라와 지역에 맞는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수년간 그곳에 머물면서 연구한다. 일본의 부흥기를 이끌었던 1960년대~1980년대의 종합상사는 지역학 연구소였다. 일본은 시장을 개척할 때 인류학 전공자를 함께 보내 현지 사정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를 한다는 것이다. 그 연구의 결과물은 축적되고, 경제적 성공까지 이끌어냈던 셈이다. 

갈등을 해소하고, 무지를 극복하기 위한 교육과 연구의 필요성

한국의 학교에서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 바로 스마트교육이다. 허나, 그 교육이 과연 스마트한지는 의문이 든다. 책의 공동 저자인 교육전문가 폴 김 스탠퍼드대학교 교육대학원 부학장이자 최고기술경영자는 “스마트교육은 스마트폰이나 스마트디바이스가 아니라 고급 생각을 하게 하는 교육이다”라면서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능동적으로 질문하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고급 생각 능력”이라고 말했다. 좋은 질문을 할 수 있는 건 바로 문제를 정의하고 디자인할 수 있는 능력이다.

우리 사회가 질문이 없고, 사회 혁신이 느린 이유에 대해 『교육의 미래, 컬처 엔지니어링』은 두려움을 원인으로 꼽았다. 한국 사회는 두려움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었고, 그런 문화가 강력하게 고착화되었다. 두려움을 해소하기 위해선 국가가 사회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내가 원하는 미래는 무엇인가? 내가 만들어가고 싶은 사회는 어떤 곳인가? 이런 질문이 부족한 건 자기 욕망이 없기 때문이다. 질문이 부족한 것이다. 그러면 사회 혁신은 더디게 흘러간다. 미래 학교를 논하는 마지막 장에선 “보다 나은 미래는 실패의 계기, 실패를 학습하는 일이 없으면 가능하지 않습니다.”라고 비판했다.

국경 없는 사회에선 이제 글로벌 시티즌십을 가져야 한다. 백범 김구 선생은 『백범일지』에서 이미 세계 문화 시민을 강조한 바 있다. 『교육의 미래, 컬처 엔지니어링』은 글로벌 상황에 자기를 개입시키는 노력, 공감, 헌신적 태도가 바로 글로벌 시민의식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선 더욱 치열한 공부가 필요하다. 국가적 이해관계를 넘어 인간이라는 동질감을 느끼고, 한 차원 더 나아간 보편적 가치와 조우해야만 글로벌 시민의식을 가질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바로 질문하는 힘이며, 그 힘을 인정하고 북돋아주는 컬처 엔지니어링이다. 교육의 목적지는 바로 이곳을 향해야 하는 셈이다.


김재호 서평위원/과학전문기자

학부에서 수학을, 대학원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학술기자, 과학기자, 탐사보도 연구원 등으로 일했다. <교수신문> 학술 객원기자를 역임했고 현재는 ‘학술문화연구소’를 운영하며 과학과 기술, 철학, 문화 등에 대한 비평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레이첼 카슨과 침묵의 봄》,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지배한다》, 《대한민국 소프트웨어 성공 방정식》, 《다시 과학을 생각한다》(공저), 《인공지능, 인간을 유혹하다》(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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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현 2020-03-03 14:21:46
흥미로운 글 잘 읽었습니다.

독자 2020-02-26 12:49:24
무기력 극복이 중요 대학 사회 변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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