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다시, 일본을 정독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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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다시, 일본을 정독해야 하는 이유
  • 이창민 한국외국어대학교·경제학
  • 승인 2022.07.31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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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에게 듣는다_ 『지금 다시, 일본 정독: 국뽕과 친일, 혐오를 뺀 냉정한 일본 읽기』 (이창민 지음, 더숲, 332쪽, 2022.06)

 

일본이 세계 초일류 국가로 인류사에 등장한 것은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딱 10여 년간이었다. 1960년대 초반 5배 이상 차이 나던 미일 간 GDP는 30년 뒤인 1991년에 2.5배 수준까지 좁혀졌다. 1990년대 초반 인구는 미국(2억 5천만)이 일본(1억 2천만)의 두 배였으므로 1인당 실질 GDP는 큰 차이가 없었고, 1인당 명목 GDP에서는 이미 일본이 미국을 앞서 있었다. 이 당시 세계 100대 기업 중 절반이 넘는 53개가 일본기업이었고, 매년 1,000만 명 이상의 일본인들이 해외여행을 즐겼다. 일본 젊은이들은 롤렉스와 샤넬에 열광했고, 중장년층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부동산 쇼핑을 하고, 골프장 회원권과 고가의 미술품을 싹쓸이했다.

1980년대 미국인들이 일본인들에게 느꼈을 공포감은 헐리우드 영화에 잘 나타나 있다. 1982년 미국에서 개봉한 영화 <블레이드 러너>는 2019년의 LA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전광판에는 기모노를 입은 여인이 등장하고, 주인공 릭 데커드는 젓가락을 들고 일본풍의 노점에서 우동을 먹는다. 37년 뒤 LA에서는 일본식 옷을 입고, 일본식 식사가 당연한 일상이 되어 있을 것이라는 상상력이 엿보인다. 1988년 개봉한 영화 <다이하드>에서는 주인공 존 매클레인이 일본계 기업 나가토미 코퍼레이션에서 테러범과 전투를 벌이는데, 뉴욕의 마천루를 장악한 일본 자본에 대한 불편함이 은연중에 드러난다. 1993년의 영화 <로보캅 3>에서 일본 기업이 악역으로 설정되어 사무라이 로봇이 적으로 나온다든지 <데몰리션 맨>에서 미국인들이 기모노를 입고 다니는 장면을 찾아볼 수 있는 등 이러한 흔적은 1990년대 초까지 이어진다. 

1986년 4월에 발표된 마에가와(前川) 레포트에는 내수 확대와 국제협조를 위해 일본이 시장 접근성을 개선하고 제품 수입을 촉진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는데, 이를 둘러싸고 미국이 일본에 요구한 일방적인 양보가 관철되었다는 평가가 있다. 그러나 정작 당시 일본에서는 국제사회의 요구를 수용하고 일본의 경제적 지위에 어울리는 책무를 다할 필요가 있다는 여론이 더 많았다. 그 배경에는 당시 일본인들이 느끼던 자신감과 자부심이 바탕에 깔려있었다. 1979년 출간된 <Japan as Number One>은 미국에서보다 일본에서 더 화제가 되었는데, 일본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전 세계인이 우리를 배우고 싶어한다’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시쳇말로 국뽕에 흥건히 취해있던 시절이었다.  

이때부터 일본인들은 본인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능력을 조금씩 망각해갔다. 바로 오이쓰키 오이코세(追いつき追い越せ), 즉 ‘(서양에서) 배워서 (서양을) 뛰어넘는 능력’이었다.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인들은 서양을 단순히 흉내 내는 데 그치지 않고, 일본의 풍토에 맞게 개량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인도에서 영국을 거쳐 들어온 커리가 일본풍의 카레가 되었고, 프랑스의 크로켓이 고로케가 되었다. 개량의 능력은 음식 이외의 분야에서도 발휘되었다. philosophy를 철학으로, society를 사회로, copyright를 판권으로, baseball을 야구로 번역한 것은 메이지 시대의 지식인들이었다. 근대화기에 일본에서 만들어진 한자어는 서양에서 만들어진 개념들을 당시에 일본인들이 자신들의 방식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인 개량의 흔적들이다. 

산업혁명과 함께 일본인들의 ‘배워서 뛰어넘는 능력’은 더욱 빛을 발했다. 부족한 철을 대신해 목재와 도자기로 만든 일본식 제사기기로 전 세계의 생사(生糸) 시장을 석권했다. ‘배워서 뛰어넘는 능력’이 절정에 달한 것은 패전 이후 고도성장기였다. 자본과 기술이 부족해서 컨베이어 벨트를 도입할 수 없었던 일본의 한 자동차회사는 수공업 생산과 결합한 가상의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을 고안해 냈다. 그리고 이러한 시스템은 ‘도요타 생산방식’이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에 알려졌다. 일본의 ‘배워서 뛰어넘는 능력’은 고도성장이 끝난 이후에도 엔고와 유가 폭등이라는 시련 속에서 면면히 유지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 일본이 세계 초일류 국가로 올라선 그 순간부터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장기인 ‘배워서 뛰어넘는 능력’을 완전히 봉인해버렸다.   

우리의 상식과 달리 위기는 한순간에 일본을 나락으로 떨어뜨리지는 않았다. 1990년대까지도 일본의 경제력은 세계 일류 국가 그룹에 속해 있었다. 잃어버린 10년이라고는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버블 시기와의 상대적인 비교일 뿐, 1990년대에도 일본경제는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고, 아직 본격적인 디플레이션이 시작되지도 않았다. 그러나 일본인들이 스스로 봉인해버린 ‘배워서 뛰어넘는 능력’은 빨간 경고등이 들어온 채로 부활하지 못했다. 결국 새로운 세기의 시작과 함께 일본의 각종 세계 순위는 곤두박질쳤고, 본격적인 디플레이션이 시작되면서 일본경제는 끝 모를 장기불황의 터널로 빠져 들어갔다.  

결과적으로, 이때부터 한국과 일본의 경제력 격차는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한국의 1인당 명목 GDP는 1990년에 일본의 25.5% 수준이었지만 30년이 지난 2020년에는 78.5% 수준까지 좁혀졌다. 한일 간 역전된 지표도 등장했다. 물가와 환율 수준을 반영한 구매력평가 기준 1인당 GDP는 2018년에 한국(43,001달러)이 일본(42,725달러)을 추월했고, S&P, 무디스, 피치 등 세계 3대 신용평가기관은 일본보다 한국의 신용등급을 두 단계나 높게 평가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에 한껏 고무된 한국의 언론들은 한일 간 역전된 지표들을 찾아내서 보도하기 시작했고, 서점에는 한일역전 현상에 주목한 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한국만이 아니라 일본에서도 한일역전은 상당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일본 경제학계를 대표하는 석학 노구치유키오(野口悠紀) 히토쓰바시대학 명예교수는 한 주간지에 ‘일본이 한국에 G7 자리를 뺏길 수도 있다’는 도발적인 글을 기고하면서 일본이 처한 위기에 경종을 울렸다.  

개인적으로 한일역전 자체를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필요 이상으로 과잉 해석하는 분위기는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일역전이 가능하게 된 배경에는 한국의 순위가 상승한 것보다 일본의 순위가 하락한 영향이 더 컸기 때문이다. 예컨대, 최근 25년 동안 한국의 1인당 명목 GDP는 49위에서 39위로 10계단 상승했지만, 일본은 6위에서 33위로 무려 27계단이나 하락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에서 발표하는 국가경쟁력 종합순위 또한 25년 동안 한국이 26위에서 23위로 3계단 상승하는 사이에 일본은 4위에서 34위로 급전직하하면서 한국에 역전을 허용하고 말았다. 결국, 그동안 한국이 잘 한 것도 맞지만, 일본이 너무 못했다는 이야기이다. 

우리는 이제 명실공히 선진국이 되었다. 세계 10대 경제 대국이고, 세계 7대 통상 대국이면서, 세계 6대 군사 강국이다. 하드 파워만 선진국이 된 것이 아니다. 지구촌의 젊은이들이 K-pop에 열광하고 우리가 만든 영화와 드라마는 이제 전 세계인들이 즐기는 콘텐츠가 되었다. 소프트 파워는 한국의 이미지를 쿨(cool)한 나라로 만들었다. 정작 쿨 재팬 전략을 내세운 것은 일본이었지만 지금 전 세계 젊은이들에게 쿨한 나라는 일본이 아니라 한국이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은 역사상 처음으로 대한민국이 세계 초일류 국가로서 인류사에 등장한 장면으로 기록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면 어딘지 모르게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이 든다. 왕년의 일본과 지금 우리의 모습이 오버랩 되어 보이는 것은 과한 노파심일까? 일본이 세계 초일류 국가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것은 ‘배워서 뛰어넘는 능력’이 탁월했기 때문이다. 과연 우리는 어떤 능력이 뛰어나서 선진국이 될 수 있었을까? 일본처럼 우리도 모방하고 개량하는 능력이 뛰어났던 것일까? 아니면 다른 능력이 있었던 것일까?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분명한 것은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우리가 일본을 이겼나요?’가 아니라, ‘우리는 앞으로 일본과 다를까요?’라는 것이다. 

일본과 한국은 전 세계 22개 선진국† 중에서 가장 공통점이 많은 국가이다. 압축성장의 역사, 한자 문화권, 쌀을 주식으로 하는 식문화 그리고 인구구조는 물론 산업구조에 이르기까지 많은 부분이 닮아있다. 그렇기에 일본은 앞으로 우리가 직면하게 될 많은 문제들을 이미 겪었거나 겪고 있는 중이다. 인구감소와 저성장이 대표적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일본은 참고할만한 나라가 없고, 우리는 일본이라는 좋은 참고서가 옆에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미래가 일본과 다를 수 있는 이유이다. 일본과는 다른 미래를 꿈꾼다면, 우리가 선진국으로 진입한 지금이야말로, 다시 한번 일본을 자세히 읽는 정독(精読), 그리고 정확하게 읽는 정독(正読)이 필요하다. 단, 일본을 정독하기에 앞서 주의해야 할 점이 하나 있다. 자칫 우리의 시야를 흐릴 수도 있는 국뽕과 친일, 혐오라는 기름기를 걷어내고 일본을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만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 OECD, IMF 등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8개의 국제기구에서 공통적으로 선진국으로 분류한 국가는 22개국이다. 유럽의 16개국(아일랜드, 영국,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그리스, 스위스, 스웨덴, 스페인, 덴마크, 독일, 노르웨이, 핀란드, 프랑스, 벨기에, 포르투갈), 동아시아의 2개국(일본, 한국), 북미의 2개국(미국, 캐나다), 오세아니아의 2개국(호주, 뉴질랜드)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창민 한국외국어대학교·경제학

고려대학교 경제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도쿄대에서 경제학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외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 일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 및 역서로는 《주저앉는 일본, 부활하는 일본》, 《아베노믹스와 저온호황》, 《제도와 조직의 경제사》, 《제2차 세계 대전 전 동아시아의 정보화와 경제 발전前期東アジアの情報化と経済発展》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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