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력존엄사’ 논의의 쟁점과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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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력존엄사’ 논의의 쟁점과 과제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2.07.31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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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와 논점]

- 국회입법조사처, 조력존엄사 논의 쟁점과 과제 분석
- 조력존엄사, 사전·사후 통제장치 필요…“요건‧절차‧한계 엄격히 규정해야”
- 미국 오레곤 주·스위스 등 조력존엄사 허용...해외 입법례 설명
- 대한의사협회 "조력존엄사 시기상조…사회적 논의 부족" 입장

 

sukanya sitthikongsak/Getty Images

현재 환자 본인이 원하면 의사의 도움을 받아 삶을 스스로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하는 ‘조력존엄사법’이 발의되면서, 소위 ‘웰 다잉(Well-dying)’ 논의가 대두되고 있다. 

현행법은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경우 연명 의료를 중단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조력 존엄사(의사조력자살)’는 인정하지 않고 있다. 최근 서울대병원이 시민 1000명에게 행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76.3%가 ‘조력존엄사’에 찬성 응답을 했으며, 응답자의 82%는 ‘넓은 의미의 웰 다잉’에 대해서도 법제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찬성 이유는 (고통으로) 남은 삶이 무의미하다고 생각 하거나(30.8%), 존엄한 죽음에 대한 권리(26.0%), 고통 경감(20.6%), 가족의 고통과 부담(14.8%), 의료비 등 돌봄 비용 부담(4.6%), 인권 보호에 위배 되지 않음(3.1%) 등이고, 반대 이유는 생명 존중 (44.3%), 자기결정권 침해(15.6%), 악용과 남용 위험(13.1%), 인권 보호(12.2%), 의사의 오진 위험 (9.7%), 회복 가능성(5.1%) 순이다.

환자가 근본적인 회복 가능성이 없는 경우 환자 본인이 의사의 조력을 받아 자신의 삶을 종결할 수 있는 권리를 적극적으로 부여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는 셈이다.

이에 국회 입법조사처가 국내에서 조력존엄사를 제도화하려고 한다면 제도 도입·시행의 필수요건·절차·한계를 엄격히 규정해 면밀한 사전·사후 통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국회입법조사처가 7월 21일 발간한 <이슈와 논점> 보고서 '조력존엄사 논의의 쟁점과 과제'에서 이만우 사회문화조사실 보건복지여성팀 입법조사관은 ‘조력존엄사’에 대한 찬·반론 및 관련 쟁점, 외국 입법례를 고찰한 후 ‘의사조력자살’ 제도 도입・시행의 사회적 합의를 형성하는 데 필요한 요건과 절차 및 한계 등 향후 과제를 제시했다.

 

조력존엄사를 둘러싼 소위 ‘웰 다잉’ 논의는 지난 6월 안규백의원이 환자 본인이 원하면 의사의 도움을 받아 삶을 스스로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하는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하면서 시작됐다.

조력존엄사는 의사조력자살(Physician-Assisted Suicide)이라고도 불리는데 '근원적인 회복 가능성이 없는 말기환자의 경우 본인의 의사로 자기 삶을 종결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법안은 조력존엄사 대상자를 '말기환자이면서 수용하기 어려운 고통이 발생하고 있을 것, 신청인이 자신의 의사에 따라 조력존엄사를 희망하고 있을 것' 등 세 가지 요건을 모두 갖춘 경우로 규정했다. 환자가 스스로 약물을 투약하는 형태라는 점에서 의사가 약물을 직접 환자에게 투약하는 전통적 의미의 안락사와는 차이가 있다.

태어날 권리는 주장하기 어려웠지만 죽을 권리는 스스로에게 있음을 인정하는 취지가 의미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자살할 권리와 자살의 도움을 받을 권리는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형법상 자살방조죄를 비롯해 법적 윤리적 관습적 문제와 악용될 우려 등으로 찬성과 반대가 맞서고 있다.

 

보고서는 조력존엄사 찬성론과 반대론을 함께 소개했다.

보고서는 조력존엄사를 찬성하는 핵심 이유는 의사표시가 가능한 환자의 죽음 선택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라 분석했다. 즉,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를 사회적 보호대상 뿐만이 아닌 생명에 대한 자기결정의 ‘권리 주체’로 간주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아울러,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서는 삶과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제약하거나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이고, 법률로 정해진 절차와 방법에 따라 조력존엄사를 제도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고 판단했다.

조력존엄사를 반대하는 핵심 이유는 사회·경제적 압력에 의해 죽음을 결정하는 사례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반대 측은 중증 질환에 걸렸을 때 가족 지원 없이 환자 본인부담으로 의료비를 충당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의사조력자살이 합법화되면 의료비 부담, 간병비 부담 등 환경적 요인에 의해 죽음을 선택할 개연성이 높다고 본다.

특히 임종과정의 고통을 완화해 죽음의 질을 높이는 수단이 부족한 상황에서 의사조력자살은 제도적으로 남용될 수 있기에 조력존엄사는 사회적 타살이라 주장한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찬성론에 대해서는 죽음 선택과 관련된 자기결정권이 자유권적 기본권의 내용을 이루고 있다 하더라도 ‘의사조력’으로 자기 삶을 마감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는가가 초점”이라며 “반대론의 경우 의사조력자살의 남용이 초점”이라고 짚었다.

현재 해외에서는 미국 10개 주, 스위스,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캐나다(퀘벡 주), 호주(빅토리아 주), 콜롬비아 등 일부 국가에서 의사조력자살이 법‧제도화돼 있다. 보고서는 조력존엄사를 허용하고 있는 미국 오레곤 주와 스위스 형법 등 해외 입법례를 통해 조력존엄사 제도화 방안을 제언했다.

보고서는 "미국 오레곤 주 존엄사법은 '무의미한 연명의료중단'의 연장이고, 스위스 형법은 안락사가 자유권적 기본권에 속한다는 의미에서 의사조력 자살을 허용하고 있다"면서 "법·제도의 취지가 다르지만 해당 법률들은 의사조력자살을 제도화하는 데 중요한 기준인 요건, 절차, 한계 등을 제공한다"고 밝혔다. 

 

1997년부터 시행된 미국 오레곤 주 존엄사법은 환자가 존엄하게 생명을 종결하기 위한 약물 투입을 요청할 경우 해당 약물을 처방해 주는 의료행위에 대해 법적 책임을 면제한다. 이때 몇 가지 전제조건이 붙는데, 주목할만한 부분은 환자의 의사능력 확인 절차와 남용 방지 조항이다.

우선 약물 요청서에는 환자가 직접 서명하고, 최소 2명의 증인이 환자가 자발적으로 행동하며 서명을 강요받지 않았음을 증명해야 한다. 담당 의사는 환자의 의사능력 등을 일차적으로 확인하고, 치료 방법과 대안 등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

또한 환자의 첫 구두 요청과 처방전 작성 사이 15일 이상, 그리고 서면 요청과 처방전 작성 사이 48시간 이상 일정한 대기시간이 준수돼야 한다. 환자는 최소 15일이 지난 후 요청을 반복해야 하며, 담당 의사는 환자에게 철회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

아울러 환자를 사망케 할 의도를 가지거나 그러한 결과를 초래하기 위해 환자 허가 없이 약물 요청서를 고의로 변조‧위조하거나 요청 철회서를 은닉하거나 파기한 자, 약물 요청을 하도록 강요하거나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자 등은 A급 중범죄자로 처벌된다는 형사책임 조항을 둬 남용을 방지하고 있다.

스위스에서는 적극적 안락사를 허용하지 않는 선에서 환자 자발적 의사조력자살을 인정하고 있다. 스위스 형법 제114조에서는 적극적 안락사를 촉탁살인으로 보고 최대 3년의 징역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는 반면, 동법 제115조는 이기적 동기를 가지고 타인의 자살을 방조한 자를 최대 5년의 징역형에 처하도록 해 이기적인 동기가 아니기만 하면 자살을 돕는 것을 처벌하지 않는다.

이에 보고서는 국내 조력존엄사 도입 논의에 있어 ▲환자의 의사결정능력 여부 등 시행의 ‘필수 요건’ ▲대기 숙려기간 준수 등 ‘절차’ ▲형사책임과 면책 조항 병행 규정 등 ‘한계’ 등 3가지를 엄격히 규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보고서는 “미국 오레곤 주와 스위스의 입법례에 비춰 볼 때, 경제적 부담 등으로 사회적 취약계층에게 의사조력자살이 강요될 수 있는 등 남용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조력존엄사를 제도화하려고 한다면, 사회적 합의 형성을 위해 제도 도입·시행의 요건과 절차 및 한계를 엄격하게 규율해 의사조력자살에 대한 면밀한 사전·사후 통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며 “그 이전에 말기 환자 돌봄 서비스 제공을 체계화하는 것이 전제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대한의사협회는 최근 더불어민주당 안규백 의원이 대표 발의한 조력존엄사법과 관련해 ▲조력존엄사에 대한 사회적 논의 및 합의 부족 ▲생명경시 사회 풍조 만연 우려 ▲자살예방법과 상충 ▲호스피스완화의료를 확대할 수 있는 시스템 우선 마련 ▲조력존엄사심사위원회 구성 문제 및 객관적 평가 근거 미비 ▲조력존엄사의 최종 이행의 결정 주체인 의사의 보호방안 미흡 ▲단일법에 상이한 특성의 세 가지 제도를 포함해 혼선 초래 ▲용어 정의 명확화 및 구체화 작업 필요 등을 이유로 조력존엄사법을 반대 견해를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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