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의 한계와 상생의 원리
상태바
자유주의의 한계와 상생의 원리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2.07.31 14: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열린연단 강연]

■ 열린연단 〈자유와 이성〉 제15강_ 이근식 서울시립대 명예교수의 「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


네이버문화재단의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아홉 번째 시리즈 ‘자유와 이성’ 강연이 매주 토요일 서울의 네이버 스퀘어 종로에서 진행되고 있다. 자유는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자기실현의 원리라고 할 수 있으며, 그간 인류가 걸어온 길은 자유 실현을 위한 투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합리성의 증대는 자유의 신장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여섯 섹션 총 44강으로 구성된 이번 시리즈는 고전 시대로부터 근대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다양한 자유 담론을 검토함으로써, 자유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확장하고 미래 사회를 위한 새로운 비전을 열어보고자 한다. 자유의 이념과 지향에 관한 동서양의 지적 자산을 통시적으로 고찰하는 두 번째 섹션 ‘자유와 민주주의: 역사와 전개’ 제15강 이근식 명예교수(서울시립대) 강연 중 주요 내용을 발췌 소개한다.

정리   고현석 기자
사진·자료제공 = 네이버문화재단

 

 

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


이근식 교수는 먼저 과학실증주의를 극복하자는 입장을 전제하며 “자유와 자유주의의 의미”, 그리고 “자유주의의 인간관”으로서 “인간의 불완정성”을 짚어나간다. 그에 이어서 “자유주의의 기본 원리”를 하나씩 살피는바 “인류 역사상 아마도 가장 중요한 생각이자 근대성의 핵심”이라고 할 “사회적 평등(만인 평등)”과 함께 “사상과 비판의 자유”, “개인주의”, “독립심과 자기 책임”, “관용”, “정치권력의 감시”를 그 원리로 들고 있다. 그렇지만 자유쥬의에 진보성만 있는 것은 아니고 반동성도 있다고 지적하며 역사적 반동성이 “주로 자유주의의 계급적 한계에서 비롯”함을 언급한다. 이 같은 양면성 탓에 “자유주의가 과연 무엇인지 모르는 혼란이 발생”하게 되는데 “자유주의를 정치적 자유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로 구분함으로써 해결” 가능하다면서 “우리가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보편적 진보성이 있는 정치적 자유주의”이지 경제적 자유주의는 아닌 만큼 “경제적 자유주의는 시대 상황을 고려하여 비판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그에 비추어볼 때 실제로 자본주의 경제 정책 또한 정부(국가)의 성공과 시장(자본주의)의 성공으로 각각 상징되는 “개입주의와 자유방임주의를 교대로 왕복”해왔고, 1980년대 등장하여 “세 번째 신자유주의”라 부를 수 있는 현대 신자유주의도 시야를 넓혀보면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을 거라 전망한다. 끝으로 시장의 실패를 넘어 “현대 인류가 당면하고 있는 자본주의 실패”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른 원리가 반드시 요구되는 상황에서 그 대안의 하나로 “상생의 원리”를 고려해볼 만하지 않겠느냐고 제안한다. 

 

지난 7월 9일, 이근식 교수가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 자유와 이성>의 15번째 강연자로 나섰다. 사진제공=네이버문화재단

1. 과학실증주의의 극복

나의 기본 입장은 가치 판단을 배제하자는 과학실증주의를 거부하고 올바른 윤리 의식에 입각한 가치 판단을 견지한다는 것이다. 과학실증주의는 당연한 것처럼 생각되기 쉽지만 실은 그릇된 주장이다. 모든 과학은 결국 인간에게 직간접으로 실제 영향을 미치므로, 사회과학은 물론이고 자연과학에서도 가치 판단을 배제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므로 어떤 인간도 윤리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비윤리적인 목적을 위한 연구에 참여하면서 과학실증주의를 내세워 자신을 합리화하는 것은 자기기만이자, 학상(學商)이나 학노(學奴)로 자신을 전락시키는 것이다.

2. 자유와 자유주의의 의미

자유는 여러 가지 입장에서 해석할 수 있으나 자유주의의 입장에서 자유의 의미를 생각해보자.

첫째, 자유는 집단이 아니라 개인의 자유이다. 
둘째로 자유는 사회적 자유(social liberty)이다. 자유주의에서 말하는 자유는 사회적 권력의 부당한 침해로부터의 자유라고 볼 수 있다. 밀의 말을 빌리면, 자유란 ‘의지의 자유가 아니라 시민적(civil) 혹은 사회적 자유이다.’
셋째로, 자유는 협의의 자유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권과 재산권을 모두 포함하는 인권(human rights) 전체이다. 

자유주의란 16세기 후반부터 18세기 말까지의 서양 시민혁명 과정에서 생장한 사회 사상이며, 근대 서양에서 민주 국가를 건설한 근대 시민 정신이며, 원래 정치적 투쟁 과정에서 생장한 정치적 이념이다. 시민혁명 과정에서 형성된 근대 시민 정신을 고전적 자유주의라고 부를 수 있다. 고전적 자유주의는 16-19세기에 걸쳐서 구미에서 민주주의, 법치주의, 자유 시장경제와 같은 근대적 사회 질서를 건설하는 데에 기초 이념을 제공하였다.

 

3. 자유주의의 인간관 : 인간의 불완전성

모든 인간은 불완전하다는 것이 자유주의 인간관이자 자유주의의 모든 주장의 기초이다. 인간의 불완전함은 인식과 도덕의 양면에서 파악할 수 있다. 인식에서의 불완전함이란 생각에서 오류를 범할 수 있음을 말한다. 뿐만이 아니라 인간은 품성에서도 불완전하여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다른 사람에게 부당한 피해를 주기 쉽다. 인식 능력의 불완전함보다도 이것이 더 큰 문제라고 생각된다. 모든 인간이 인식과 윤리의 양면에서 불완전한 것을 인간의 이중적 불완전성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이중적 불완전성이 자유주의의 모든 중요한 주장들의 기본 근거이다. 

4. 자유주의의 기본 원리

1) 사회적 평등(만인 평등), 2) 사상과 비판의 자유, 3) 개인주의, 4) 독립심과 자기 책임, 5) 관용, 6) 정치권력의 감시

5. 자유주의의 진보성과 반동성

자유주의의 진보성과 수구성(반동성)은 늘 논란거리이다. 한편에선 자유주의를 진보적 이념으로 파악하여 지지하는 반면에 다른 한편에선 자유주의를 부르주아지의 반동적 이념이라고 거세게 비판한다. 이는 자유주의 자체가 진보성과 반동성을 모두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자유주의의 양면성(이중성)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자유주의의 역사적 반동성은 주로 자유주의의 계급적 한계에서 비롯되었다. 자유주의의 주도세력인 부르주아지는 유산자 계급이다. 이러한 계급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자유주의와 시민혁명은 역사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 . . . .

7. 정치적 자유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

자유주의는 진보성과 반동성을 모두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자유주의가 과연 무엇인지 모르는 혼란이 발생하고 있다. 이런 혼란은 자유주의를 정치적 자유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로 구분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정치적 자유주의는 보편타당성을 인정받고 있다. 반면에 경제적 자유주의는 19세기 이래 끊임없이 논란의 대상이 되어왔다. 그로 인해 자유주의자들은 경제적 자유주의를 찬성하는 사람과 반대하는 사람의 두 그룹으로 나뉜다. 

자유주의자이냐 아니냐는 경제적 자유주의가 아니라 정치적 자유주의의 지지 여부를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보편적 진보성이 있는 정치적 자유주의인 반면에 경제적 자유주의는 시대 상황을 고려하여 비판적으로 접근하여야 할 것이다. 

8. 자유방임주의와 개입주의의 역사적 교대

자본주의 경제 정책은 개입주의와 자유방임주의를 교대로 왕복하여왔다. 대략 15세기에서 18세기까지는 전형적인 개입주의인 중상주의가, 19세기에는 자유주의가, 19세기 말부터 1930년대의 대공황기까지의 과도기를 거쳐서 대공황기 이후 194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는 다시 개입주의인 복지국가 정책이, 1980년대부터는 다시 자유방임주의에 가까운 신자유주의가 지배적 조류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상과 같이 자유방임 정책하에서 시장의 실패가 심화되면 이를 시정하기 위하여 개입주의로 전환되고 개입주의하에서의 정부의 실패가 누적되면 다시 자유방임주의로 전환하는 역사가 되풀이되어온 셈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현 신자유주의도 영원히 지속될 수 없을 것임을 알 수 있다. 신자유주의하에서 자본주의의 실패가 심화되어 대중이 감내하기 힘들 정도가 되면 다시 개입주의가 다수의 지지를 받고 복귀하게 될 것이 예상된다. 

 

9. 현대 신자유주의의 의미와 내용

영미 경제학에서의 신자유주의를 선도한 사람이 하이에크와 프리드먼(Milton Friedman)과 뷰캐넌(James Buchanan)이다. 이들의 구체적 이론들은 서로 다르나 이들의 공통된 주장을 정리해보자.

첫째는 국가의 실패에 대한 비판이다. 둘째로 이들은 국가의 실패를 시정하기 위하여, 국가(정부)의 기능과 권한 축소와 시장의 확대를 주장한다. 셋째로 복지 제도의 축소이다. 
넷째로 세계화의 물결을 타고 신자유주의는 전 세계로 전파되고 있다. 신자유주의자들이 비판하는 것은 정부의 실패가 아니라 이보다 범위가 더 넓은 국가의 실패이다. 

10. 신자유주의의 폐해

신자유주의는 그간 누적되어온 국가의 실패를 해소하는 데에 공헌하여왔다. 그러나 반면에 자본주의의 실패를 누적시켜오고 있다. 개별 정부의 노력으로 그간 어느 정도 억제되어오던 시장의 실패가 세계화로 인하여 개별 정부의 경제 장악력이 크게 축소됨에 따라서 고삐 풀린 말처럼 그대로 표출되고 있다.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전 세계가 신자유주의로 인해 경제와 사회가 황폐해졌다. 특히 노동 시장 유연화는 비정규직과 실업의 양산과 임금 하락을 초래하였다. 우리나라의 끝 모르는 출산율과 결혼율 감소, 이혼율과 자살률 증가, 전 세계 난민의 급증 등이 모두 신자유주의가 초래한 자본주의의 실패가 낳은 사회와 인간성의 황폐화의 결과라고 생각된다. 

11. 자유주의의 한계와 상생의 원리

자유주의도 다른 이념들과 마찬가지로 결정적 한계를 갖고 있다. 자유주의의 개인주의 원리로는 인간 소외와 윤리의 타락, 사회 갈등, 자연 파괴와 같은, 현대 인류가 당면하고 있는 자본주의 실패를 해결할 수 없다. 이런 문제들의 해결을 위해서는 다른 원리가 필요한데 상생의 원리가 그것이라고 생각된다.

1) 사회적 갈등 문제

사회 문제는 개인이 결정하는 개인 문제와 사회 구성원들이 공동으로 결정해야 하는 사회적 문제의 둘로 나눌 수 있다. 후자의 문제를 경제학에서는 사회적 선택(집단적 선택 혹은 공공 선택; social choice, collective choice, public choice)의 문제라고 부른다. 사회적 선택의 문제들을 공동의 문제라고 부르자. 자본주의의 실패(불황과 실업, 빈부 격차 확대, 독점화, 환경 파괴, 인간성과 사회의 황폐화, 전쟁과 약소국 침탈 등)에 대처하는 것도 공동의 문제이다. 

공동의 문제는 다시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개인 간에 이해 상충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개인주의로 해결이 가능한 경우이고, 둘은 개인 간에 이해 상충이 발생하여 개인주의로 해결할 수 없는 경우이다. 분배 문제, 독과점, 환경 훼손, 인간 소외, 약소국 침탈, 전쟁 등과 같이 개인 간 이해 상충이 존재하는 공동의 문제를 사회적 갈등 문제라고 부르자.

사회적 갈등 문제를 개인들 간의 자발적 합의에 의해 해결할 수 없다는 자명한 사실을 애로(Kenneth Arrow)의 불가능성 정리(the impossibility theorem)는 수학적으로 엄밀히 검증하였다(Arrow). 뷰캐넌의 해결 방법, 롤스의 이론 둘다 비현실적이다. 이해 상충이 발생하는 사회적 갈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는 개인주의의 원리가 아닌 다른 원리가 필요하다.

 

2) 상생의 원리

자유주의의 개인주의가 간과하는 것은 인간 생활에서의 공생(共生)이라는 측면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사람들은 공생의 망으로 연결되어 있다. 경제적으로 우리는 분업과 협업의 망을 통해 전 세계 사람들과 함께 협력함으로써 필요한 물자들을 공급받고 있다. 정치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우리는 전 세계 사람들과 서로 얽혀서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삶의 기쁨과 보람을 얻는 것도 공생 덕분이다. 

상생(相生)의 원리란 나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 생명 및 모든 존재들의 소중함을 인정하고 이들의 권리를 존중하면서 이들과 서로 아끼고 도우면서 함께 살아감을 말한다. 이러한 상생의 원리에서 우리는 사회적 갈등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은 개인성(개체성)과 사회성(공생성)의 두 가지 측면을 갖고 있는데, 개인성에서의 원리를 자유라고 한다면, 사회성에서의 원리를 상생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상생의 원리는 자유주의의 관용의 원리와 공동체주의의 관점을 더 확대한 셈이다.

3) 상생의 갈등과 적대적 갈등

현재 우리나라는, 노사 갈등, 빈부 갈등, 지역 갈등, 세대 갈등, 농민과 소비자 갈등 등 여러 심각한 사회 갈등을 겪고 있다. 상생의 원리에서 이런 사회 갈등을 해결하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개인 간이나 집단 간의 차이는 갈등의 원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풍요와 다양함의 원천이기도 하다. 차이는 불가피하게 갈등을 낳지만 갈등은 생명의 유지와 발전에 필수적이다.

갈등과 모순에서 발생하는 긴장 관계를 통하여 양쪽 모두 타락과 안일에 빠지지 않고 자신의 본연의 모습을 유지하고 발전할 수 있다. 갈등을 상생의 갈등으로 승화시킬 때, 갈등은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 이와 같이, 서로 도움이 되는 갈등을 상생의 갈등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상생의 갈등과 반대되는 적대적 갈등도 많다. 이는 상대방을 상생의 대상이 아니라 타도나 강탈의 대상으로 보는 갈등이다. 계층 간, 지역 간, 노사 간, 세대 간 갈등 등 여러 갈등들이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상생의 갈등이 아니라 적대적 갈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적대적 갈등의 원인은 제로섬 게임과 집단이기주의의 둘일 것이다. 집단이기주의를 예방하려면, 비판의 자유와 관용의 풍토를 조성하여 양심적 소수가 자유롭게 집단이기주의를 비판할 수 있도록 하고 궁극적으로는 대중의 의식 수준을 높여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상생의 원리를 실천하도록 하는 것말고는 별로 대책이 없어 보인다.

4) 상생의 원리 적용

여러 사회적 갈등 문제들을 상생의 원리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상생의 원리를 실천하면 쌍방이 나누는 전체 몫을 증대시킬 수 있으므로 국제 분쟁을 포함하여 대부분 갈등과 분쟁들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윤리 상실과 그에 따른 인간성 황폐화도 상생의 원리로 치유할 수 있을 것이다. 상생의 원리는 환경 보전과 자연 보호를 위한 지침이기도 하다. 

 

12. 맺음말

자유주의는 원래 계급적 한계를 갖고 있으며, 신자유주의와 같은 경제적 자유주의는 여전히 국내적으로 국제적으로 빈부 격차 확대, 대중의 생활 조건 악화, 독과점, 자살률과 이혼율의 증가, 결혼율과 출산율의 하락, 세계적 난민 증가, 환경 파괴 같은 심각한 자본주의의 실패를 낳고 있다. 

정치적 자유주의도 분배 문제, 독과점, 환경 파괴, 약소국 침공과 같이 이해 상충이 존재하는 사회적 갈등 문제의 해결에는 무력하다. 이의 해결을 위해서는 사람 간에, 사람과 자연 간에 서로의 권리를 인정하고 협력하며 약자를 돕는 상생의 원리가 필요하다.

시장과 정부, 넓게 보면 자본주의와 국가는 모두 긍정적 면과 부정적인 면을 함께 갖고 있다. 자본주의는 근대의 경제, 정치, 문화 등 사회 전반을 발전시킨 자본주의의 성공을 이룩하였으나 심각한 자본주의의 실패를 낳고 있다. 국가도 성공과 실패를 모두 갖고 있다. 인권 보호, 질서 유지, 경제 발전 촉진 및 자본주의의 실패 시정 등은 국가의 성공인 반면에, 국가 권력에 의한 인권 유린, 정부의 부패와 무능, 언론 탄압, 교육과 문화 왜곡 등과 같은 국가의 실패도 존재한다. 시대 상황에 따라서 시장과 정부의 적절한 조합을 찾아야 할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본 바와 같이 현재 우리나라의 소위 진영 간 대립은 매우 심하다. 우리나라 진영 대립은 좌우 이념 대립이 아니라 계층 대립인 것 같다. 이런 계층 갈등은 상생의 원리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이해 상충이 발생하는 문제들은 사회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사회 합의를 통해 최대로 약자의 편을 들어주는 것이 상생의 원리에 부합할 것이다. 모든 사람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것이 자유주의의 원리이자 상생의 원리이다.

역사가 보여준 것처럼 방임주의와 개입주의의 경제 정책은 서로 교대하여왔다. 방임주의가 자본주의의 실패를 누적시키면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개입주의가 등장하고, 개입주의가 국가의 실패를 누적시키면 다시 방임주의가 등장하는 정책 교대가 반복되어왔다. 1980년대 등장한 현대 신자유주의는 2차 대전 후 복지국가들에서 누적되어온 국가의 실패를 시정하는 성과를 나타내어왔으나 동시에 자본주의의 실패를 누적시켜왔다. 이로 인한 신자유주의에 대한 누적된 대중들의 불만이 선거에 반영되면 신자유주의가 퇴조하고 개입주의 복지국가가 부활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 사회도 지구도 모두 유지되기 힘들 것이다.

공공복지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사회 전반에 상생의 풍토가 널리 정착되는 것이라 생각된다. 노사 간, 기업 간, 친지 간에 서로 돕고 아끼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따뜻한 사회가 만들어지면 사람들이 삶의 낙과 보람도, 생의 의욕도 가질 수 있어서 독신, 이혼, 자살의 충동을 벗어날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교훈은 국가의 실패가 존재함을 일깨워준 것이다. 이를 살려 앞으로는 국가의 실패를 최소화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제일 필요한 것은 금권 정치를 추방하여 민주주의의 실패를 극복하고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를 위해서는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학자들이 학상이나 학노가 아닌 공정한 비판자 역할을 담당하여 여론을 선도하여야 할 것이다.

현재 세계화 시대의 자본주의 실패를 시정하기 위해서는 국제 협력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세계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이 금권 정치에서 벗어나서 신자유주의를 청산하는 것이다. 현재 국제 사회는 여전히 약육강식의 야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자연의 이치인 약육강식을 벗어나기란 매우 힘들지만 이를 거부하고 약자를 도와주는 것이 윤리이다. 만인 평등의 자유주의 원리가 국제 사회에도 실현될 날이 올 것이다.

현실 위기를 인식하고 이의 해결 방도를 찾는 것은 인간 이성이다. 신자유주의 극복에서 이성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인간 본성 자체이다. 사람은 누구나 생각과 자존심과 감정이라는 본성을 갖고 있으며, 이런 본성 때문에, 역사가 보여주는 바와 같이, 인간은 자신이 수긍할 수 없는 고통을 받으면 반발하기 마련이다. 신자유주의가 계속될수록 대중들의 반발이 증가할 것이고 이는 정치적 압력으로 나타나서 미국 등 각국의 정책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 강연 바로보기: [열린연단]_ 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 (이근식 서울시립대 명예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