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완주 산속등대…폐업한 종이공장 굴뚝이 복합문화공간 ‘산속등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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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완주 산속등대…폐업한 종이공장 굴뚝이 복합문화공간 ‘산속등대’로
  •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 승인 2022.07.31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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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혜숙의 여행이야기] 전북 완주 산속등대

 

                   산속등대.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던 종이공장이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했다. 

산속에 빨간 등대가 서 있다. 등대 아래에서 고래가 웃는다. 전북 완주 소양면 해월리(海月里)의 산 속이다. ‘해(海)’의 옛말은 ‘바라, 바랄’로 ‘넓다’는 뜻이고, ‘월(月)’의 옛말은 ‘다리’로 ‘들’을 뜻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바라다리’는 ‘넓은 들’이라는 말이다. 소양면은 대부분이 험한 산지인데 남서쪽에 만경강의 지류인 소양천이 흘러 좁은 평지가 펼쳐져 있다. 해월리는 그 ‘좁은 평지’의 ‘넓은 들’이고, 그곳에 등대가 우뚝, 서 있는 것이다. 

완주는 조선시대 최고의 한지로 평가받던 전주 한지의 주 생산지였다. 그 가운데 소양면은 완주 한지 생산의 시원과 같은 곳이었다. 당시 한지는 전라북도 내 산업 중 미곡 다음으로 중요한 산물이었다. 소양면 한지의 대표 상품은 장판지였는데 전국적으로 거의 독보적인 품질의 종이였다고 한다. 그러다 19세기 말 고종 때 기계에 의한 제지술이 도입되면서 우리나라 전통 한지의 생산량은 점차 감소하기 시작했다. 시대는 변하고 있었지만 소양 장판지의 전통과 명성은 일제강점기를 거쳐 광복 이후로도 이어졌다. 소양면에는 지금도 국내 최대의 한지 공장인 천양제지가 있고, 이웃한 ‘대승한지마을로’에서는 소양한지의 오래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급격한 산업화와 함께 비교적 영세한 업체들은 점차 무너졌다. 동시에 인근 지역민들에게 환경에 유해하다는 지적을 받으면서 많은 종이공장들이 문을 닫았다. 

 

                기억의 파사드. 옛 건물 옆에 세워진 새로운 구조물. 과거와 현재가 함께하는 입구다. 

등대는 30여 년 전 종이공장의 굴뚝이었다. 전일제지와 동일제지라는 종이 공장이 있었고, 수백 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었으며 주변으로 수천 명의 가족이 마을을 이루고 있었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우리나라 제지산업의 중심지에서 톡톡히 한몫을 하던 곳이었다. 다수의 종이공장들처럼 이곳도 문을 닫았고, 오랫동안 유휴 산업시설 및 폐 산업시설로 전락한 채 버려져 있었다. 이곳을 변화시킨 이는 경영학과 공학을 전공한 기업인인 원태연 대표다. 그는 일찍이 교육부 진로체험 ‘꿈길’을 진행하면서 청소년들에게 과학체험과 금속예술에 관련된 재능 나눔을 벌여왔었다고 한다. 그는 공장을 정리하고, 쓸 만한 자재를 골라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2019년 5월 ‘버려진 시간 속 새로운 문화를 디자인하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산속등대’가 문을 열었다. 산속등대는 미술관, 체험관, 공연장, 카페, 아트플랫폼 등을 갖춘 복합문화공간이다. ‘산속등대’가 세간에 알려진 것은 2019년 방탄소년단(BTS)이 휴식 겸 앨범 촬영을 위해 이곳을 다녀간 뒤부터다. 

  

기억의 파사드를 지나면 옛 건물의 기둥이 회랑으로 열린다. 왼쪽은 비교적 온전한 건물이었던 미술관, 오른쪽은 건물의 바닥면만 남은 모두의 테이블.

붉은 벽돌 벽이 높이 서있다. 온전한 벽과 형상만 또렷한 큰 창과 문을 가진 벽이 이어져 있다. 박공지붕의 건물 세 채가 나란히 선 듯하다. 벽은 ‘기억의 파사드’다. 가운데 벽의 문으로 들어가면 사라진 건물이 남겨놓은 기둥들이 회랑으로 열린다. 왼쪽은 넓고 푸른 마당이다. 마당에는 옛 건물의 낮고 긴 콘크리트 바닥면이 박혀 있다. 자갈과 콘크리트가 섞인 바닥은 1980년대의 기초공사를 엿보게 한다. 한쪽에는 옛날 종이공장의 기계장치들이 오브제처럼 놓여 있고 한쪽은 단을 높여 ‘모두의 테이블’로 만들어 놓았다. 이곳은 기업의 워크샵이나 결혼식 등의 파티를 위한 곳이다. 회랑의 오른쪽에는 온전한 건물이 서있다. 기존 건축물 중 보존 상태가 제일 좋았던 이곳은 미술관이 되었다. 공간의 대부분은 1980년에 설계된 구조를 그대로 보존하였고 안정성을 위해 구조보강이 이루어졌다. 전시 작품들은 아이들의 관점에서 초대된 작품들이라 한다.  

 

오른쪽은 옛 구조체 속에 새로운 건물을 앉혀 과거와 현재를 중첩시킨 슨슨카페. 정면의 컨테이너 박스 건물은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어뮤즈월드.

회랑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것은 낡은 회색 콘크리트 구조체에 희미하게 남아 있는 ‘자조, 협동, 닦고 조이고 기름치자’는 문구다. 기둥과 보, 세 개의 벽과 창문, 그리고 옛 표어는 온전한 것과 사라진 것들과 남은 것들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것은 절대로 돌아올 수 없는 진정한 과거, 현존하는 과거로 느껴진다. 저곳은 ‘슨슨카페’다. 남은 구조체 속에 H빔과 유리로 이루어진 새로운 건물을 앉혔다. 과거와 현재를 중첩시킨 동시에 형태적인 연속성까지 부여한 상징적인 건물이다. 출입 금지된 로스팅 공간이 있는 걸 보니 직접 커피콩을 볶는 모양이다. 카페 내부는 사방이 통유리지만 약간 어두컴컴하다. 그로인해 외부의 풍경은 더욱 환하고 선명하다. 창밖으로 등대가 보이고 또 고래와 산이 보인다.   

 

                              야외극장이 된 폐수처리장. 오른쪽 컨테이너 건물은 어뮤즈월드. 

산속등대의 아이콘인 등대는 지름 3m, 높이 33m로 원래는 굴뚝이었다. 등대 아래 모래밭 위에서 웃고 있는 고래는 몸길이 7m인 아기 흰수염고래다. 아기 고래는 엄마를 기다리고 있다. 작가는 이곳에 등대 아래서 기다리고 있으면 엄마가 찾아 올 것이라는 이야기를 입혀 놓았다. 언젠가 몸길이 33m인 엄마 흰수염고래가 올 것이다. 등대와 고래 좌우로는 4개의 폐수처리시설을 이용해 만든 수생생태정원이 있다. 하나는 개구리 놀이터다. 원래는 벙커 놀이터를 만들려고 했었다는데 공사 중 산에서 다양한 양서류들이 몰려들었단다. 공사는 중단되었고 벙커는 개구리가 사는 놀이터가 되었다. 등대 옆의 폐수처리장 벽에는 ‘더 맑게 더 푸르게’라는 문구가 남아 있다. 아주 큰 규모의 이곳은 ‘등대 폰드’로 물을 만끽하고 피크닉을 즐기는 장소다. 그 옆의 둥근 폐수처리장은 수생생태정원이다. 깊이가 무려 6M가 넘었는데 진흙을 매립하고 식물들을 심었다. 나머지 하나는 키 큰 원형 건물로 로마의 야외극장을 닮은 야외 공연장이 되었다. 버스킹이나 인형극 등 자그마한 공연에 안성맞춤이다. 

                             야외극장이 된 폐수처리장. 오른쪽 컨테이너 건물은 어뮤즈월드. 

이 외에도 콘테이너를 활용한 다양한 공간이 있다. ‘아트플랫폼’은 참여형 미술관이다. 간단한 식사와 기념품을 구매하는 공간도 있다. 입구에 작은 등대가 서 있는 ‘어뮤즈월드’는 아이들과 청소년들이 창의력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소통과 교감의 장이다. 라이프스타일, 과학, 엔터테인먼트, 예술, 안전교육관 등 5개 테마를 바탕으로 11개관이 있다. 산속등대는 개관한 지 얼마 안 돼 대한민국공간문화대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과 전북건축문화상을 수상했다. 오늘의 등대는 마치 오벨리스크처럼 느껴진다.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대학에서 불문학을, 대학원에서 건축학을 전공했다. 대학시절 무가지 음악잡지 ‘Hole’을 만들었고 이후 무가지 잡지 ‘문화신문 안’ 편집장을 잠시 지냈다. 한겨레신문, 주간동아, 평화뉴스, 대한주택공사 사보, 대구은행 사보, 현대건설매거진 등에 건축, 여행, 문화를 주제로 글을 썼으며 현재 영남일보 여행칼럼니스트 겸 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내 마음의 쉼표 경주 힐링여행』, 『청송의 혼 누정』, 『물의 도시 대구』(공저)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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