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 지배와 문화변동, 발전의 상관성
상태바
식민 지배와 문화변동, 발전의 상관성
  • 구경모 부산외국어대학교·인류학
  • 승인 2022.07.31 12: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론]

이제는 진부한 표현일지 모르지만, 한국의 발전을 가장 명료하게 설명하는 표현인 ‘원조를 받는 국가에서 주는 국가’라는 수사는 국제 사회에서 한국의 발전 과정에 주목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렇다면 한국을 제외하고 원조를 받던 다른 국가들은 왜 여전히 저발전 상태로 남아있을까? 이 질문은 수업시간 학생들에게 많이 듣기도 했지만, 라틴아메리카 연구를 시작하면서 고민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케케묵은 주제를 끄집어내는 것이 부담스럽지만, 국가 간 불평등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이 같은 논의를 곱씹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

서구 및 제 3세계 학자들은 저개발국이 모여 있는 남반구 지역의 저발전 요인을 주로 식민지와 관련지어 설명했는데, 이와 관련된 이론의 중심지는 바로 라틴아메리카였다. 라틴아메리카를 자양분으로 나타난 근대화론과 종속이론, 세계체제론 등과 함께 신제도주의 경제학에서는 라틴아메리카의 식민 경험과 저발전의 관계에 대해 지속적으로 탐구하였다. 특히 신제도주의 경제학은 저발전 요인을 분석하는 데 있어 식민 모국의 역사와 문화, 제도가 식민지 정치경제에 끼친 영향에 대해 천착하였다. 이러한 분석은 주로 영국의 식민지인 앵글로아메리카와 이베리아반도의 식민지인 라틴아메리카 사이의 발전 차이를 비교, 설명하는 데 할애하였다.

식민 지배는 문화 접변의 대표적인 사례로서 강제적으로 서로 다른 두 문화가 만나는 현상이다. 지배 과정에서 두 문화가 접촉을 하면서 필연적으로 서로 변화를 겪는다. 이 과정에서 식민 경험은 식민 모국의 문화에도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식민지는 그들이 원치 않는 문화적 변화를 강제적으로 겪는다는 점에서 식민 모국의 문화변동과는 그 차원이 다르다. 식민지는 지배국의 문화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크기 때문에, 두 국가의 문화적 차이가 클수록 식민지는 문화변동을 거세게 겪는다(‘라틴아메리카와 동아시아의 식민 유산과 발전의 차이’ 대학지성 In N Out, 2020년 4월 7일자 참조). 이를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상기 표에서 보듯, 저개발국 혹은 개발도상국에 속하는 라틴아메리카와 아프리카, 동남아와 서남아는 다른 문화권에 속하는 지배국들로부터 식민지를 경험하였다. 반면에 동아시아의 한국과 대만, 북미의 미국과 캐나다, 오세아니아의 호주와 뉴질랜드는 유사한 문화권의 국가로부터 식민 지배를 받았다. 유사한 문화권의 국가가 식민 통치를 한 경우는 문화변동으로 인한 사회·문화, 정치·경제적 왜곡이 비교적 덜 하다. 따라서 독립 이후 식민지는 식민시기에 겪은 유무형의 부작용에서 탈피하기 위한 사회경제적 비용이 상대적으로 적게 소모된다. 반대의 경우에는 여러 사회 문제들로 인해 나타나는 갈등 해소 비용이 만만치 않다. 라틴아메리카와 아프리카, 동남아와 서남아에서 인종과 종족, 종교 갈등의 빈도가 높은 것은 우연이 아니며, 식민시기에 겪었던 사회문화적 충격이 끊임없이 불거지면서 저발전 상태에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식민 지배의 과정을 두 국가의 ‘강제적 만남’이라고 본다면, 그 ‘강제적 만남’의 결과인 문화변동에 의한 사회·문화, 정치·경제의 왜곡 정도는 식민지를 경험한 국가들의 발전 문제를 가늠할 수 있는 또 다른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다. 


구경모 부산외국어대학교·인류학

부산외국어대학교 중남미지역원 교수.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에서 학사와 석·박사(사회인류학 및 민속학 전공)를 마쳤으며, 남미 남부지역의 이민과 종족, 민족주의, 사회적 불평등에 관심이 있다. 주요 저서와 논문으로 「파라과이 군부독재정권의 토지정책과 농민운동의 역사적 요인」, 『기층문화와 민족주의: 파라과이 민족 정체성과 과라니 문화』 등 다수가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