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불확실성과 무지에 대한 자기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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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불확실성과 무지에 대한 자기 고백
  • 서찬석 중앙대학교·사회학
  • 승인 2022.07.31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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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쿠스]

고백하건대 2020년 초만 해도 나는 코로나19가 이렇듯 광범위한 영향을 끼칠 줄 몰랐다. 2021년 내내 비대면 수업을 진행할 줄 몰랐고, 2022년 여름까지도 코로나 걱정을 하고 있을 줄 몰랐다. 올해 초에 발발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도 마찬가지였다.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핵무기를 보유한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 무려 ‘안보의 위협’을 이유로 저렇게 주권국가의 수도를 향해 진격할 줄 몰랐고, 우크라이나가 군사력 세계 2위를 자랑하는 러시아를 상대로 5개월이나 버티고 있을 줄 몰랐으며,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경제제재가 되레 서방의 경제를 위협하는 상황으로 이어질 줄도 몰랐다. 시기를 거슬러 올라가면, 2000년대까지도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밀어붙이던 미국이 어느덧 중국을 견제하며 보호무역주의로 급격히 선회하게 될 줄 몰랐고, 미국에서 박사 공부를 하던 당시 거세게 번지던 ‘아랍의 봄’이 제4의 민주화 물결이 아니라 전반적인 실패로 귀결될 줄도 그때는 미처 몰랐다.

그러고 보면 현대사회의 갑작스러운 변화는 지금도 때때로 경외감을 불러일으킨다. 사회과학 연구자로서 사회에 대해 공부하면 할수록, 그 압도적인 복잡성과 불확실성에 겸허해지는 경험을 되레 더 자주 하게 된다. 우리 세계는 너무나 많은 이들의 의지가 뒤얽혀 충돌하는 싸움터이고, 다양한 정치·경제 및 사회·문화의 요인들이 상호작용하며 영향을 미치는 열린 공간이며, 몇 가지의 우연적인 요인들이 갑자기 나타나 뒤엉키며 ‘퍼펙트 스톰’의 복합위기를 만들어내기도 하는 곳이다. 그리하여 사회에 대한 내 고민과 연구는 이미 나타난 사회 현상에 대한 추적에 그치고, 앞으로 펼쳐질 현상에 대한 선행적인 전망이 되기보다는 후행적인 진단에 머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게오르크 헤겔의 말마따나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저물어야 그 날개를 펼친다’지만, 그만큼 우리의 누적된 지혜가 급변하는 앞날에 대한 예측 앞에서 무력하기 십상이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물며 2007~2008년 금융위기를 제대로 예측한 경제학자들도 거의 없었고, 2016년의 경선 및 대선 국면에서 트럼프 후보의 당선을 전망한 정치학자들도 드물었으며, 최근에는 폴 크루그먼과 같은 세계적인 석학도 다가올 인플레이션을 예측하지 못한 것에 대해 반성하지 않았는가. 

이렇듯 압도적 불확실성 앞에서 사회과학 연구자로서의 태도와 역할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사회에 대한 내 분석으로 밝혀낸 메카니즘이 어디까지나 확률적인 패턴이지, 절대적인 법칙이 될 수 없다는 점, 하나의 요인에 주목하는 것이 다른 많은 요인들을 필연적으로 간과하게 된다는 점,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미래의 대안을 내놓을 때 항상 그것이 의도치 않은 결과를 내포할 수 있음을 되새기게 된다. 개인들의 행위 이면에 있는 복잡다단한 의도에 대해 손쉽게 넘겨짚는 것 역시 경계하게 된다. 나 스스로도 다양한 기준에 따라 때로는 모순되는 행동을 하면서, 수많은 개인의 행위와 그 의도를 쉽사리 ‘합리적 선택’으로 치부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되돌아본다. 나아가, 벌어지고 있는 현상에 대한 우리의 후행적인 진단과 대처가 항상 한걸음 뒤처진 것이 될 수 있음도 생각하게 된다. 급격히 변동하는 사회에 대한 완벽한 이해에는 절대로 다다를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는 가운데, 그만큼 복잡다단한 사회에 조금이라도 다가가기 위해 이를 이해하고 진단하는 노력을 끊임없이 경주하고 계속적으로 면밀히 관찰해야 함을, 또 스스로의 고정된 시각을 이따금씩 반성하며 되돌아보아야 함을 되새긴다. 

남미 문학의 거장인 호르헤 보르헤스는 역사에 대해 ‘원형의 멜로디가 다양한 형태로 반복되는 변주곡’이라 했다. 인간 세상에 대한 탁월한 통찰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 변주의 형태가 너무도 다양하여, 하나의 멜로디가 유사하게 반복되는 경우가 좀처럼 흔치 않다는 것, 쉽사리 반복된다고 여기는 것이 오히려 현실의 변화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되기도 한다는 것이 사회과학 연구자로서의 어려움이다. 사회 공부를 업으로 삼는 사람도 그럴진대, 바쁘고 지친 삶 속에서 변화하는 사회를 이해하려는 사람들의 당황과 좌절도 이해하게 된다. 소위 경제전문가들의 확신에 찬 전망을 들으며 주식시장에 뒤늦게 뛰어들거나 영끌해서 집을 샀다가 급변하는 경제환경에 힘겨워하는 사람들, 또는 공중보건을 위해 백신을 맞아야 한다는 의료전문가들의 말을 듣고 기저질환이 있음에도 안전성이 충분히 확인되지 않은 백신을 맞았다가 부작용으로 고통 받거나 사망한 사람들을 보며 다시금 전문가에 대한 지나친 신뢰의 위험함을 생각하게 된다. 세계의 압도적인 복잡성과 불확실성을 생각하고, 그 어느 석학이나 전문가의 의견도 전적으로 신뢰할 수는 없음을 되새기며, 연구자로서 항상 겸허한 마음으로 미래의 갑작스러운 사회 변화에 제대로 대응이라도 하고자 하는 태도가 중요함을 곱씹는다. 


서찬석 중앙대학교·사회학

현재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연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같은 학교 사회학과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미국 코넬대학교 사회학과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전쟁과 인권, 국가와 사회운동, 소셜네트워크와 통계방법론 등의 전공 분야에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평화로운 사회의 이면에 잠재되어 있는 사회적 갈등의 축, 급격한 사회변화의 동학에 관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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