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반도체 인재양성 계획' 지역대학 반발…박순애 장관 “원칙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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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반도체 인재양성 계획' 지역대학 반발…박순애 장관 “원칙대로”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2.07.26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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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 교수단체 "수도권 반도체학과 증원 계획 철회해야"
- "'지방대 위기 시대' 우려…증원 아닌 투자로 해결해야"
- "별도 교부금법으로 고등교육 재정 안정 지원해야“
- 교육부 장관 "지역 구분없이 역량·의지 따라 반도체학과 증원 도울 것“

 

박순애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5일 충남대에서 열린 '반도체 관련 인재양성 관계자 간담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교육부 제공<br>
박순애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5일 충남대에서 열린 '반도체 관련 인재양성 관계자 간담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교육부 제공

정부가 반도체 인재 양성을 위해 수도권 대학의 반도체 학과를 신설하고 정원 확대를 추진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수도권 대학과 경쟁이 불가피해진 지역 대학들은 가뜩이나 학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지역 균형 발전을 해친다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한편, 박순애 교육부 장관은 정부의 '반도체 인력양성 방안'이 발표된 후 첫 지역 현장 방문으로 대전을 찾았다. 지역 대학이 소외될 수 있단 우려가 커지자 지역대학 학생들과 대화하겠다며 진화에 나선 건데, 원칙대로 정책을 시행하겠다는 입장은 그대로 고수했다.


수도권 반도체학과 증원은 곧 지방대의 위기

최근 정부는 윤 대통령의 반도체 육성 의지에 따라 향후 5년간 반도체 분야에서 총 340조 원 이상의 투자가 이뤄질 수 있도록 수도권 소재 반도체 기업·단지에 대한 인센티브를 대폭 확대하기로 했으며, 비수도권의 반발을 사는 수도권 중심의 ‘반도체 인력 15만 명 이상 양성’ 계획도 확정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의 지방시대 실현 의지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면서 야권은 물론, 비수도권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수도권 규제 완화에 대한 비판도 점증하고 있으며, 최근 정부가 발표한 ‘반도체 관련 인재 양성방안’에 대해 지역대학을 중심으로 반발이 거센 상황이다.

정부가 반도체학과 정원을 늘려 관련 산업 인재를 양성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지역대학 교수들이 수도권 대학 증원은 곧 지방대의 위기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지역대학 정상화 촉구를 위한 단체 연합’은 25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반도체학과 수도권 증원 계획의 즉각 철회’를 촉구했다. 부산경남사립대교수회연합회 등 지역대학 교수들과 시민단체가 참여하는 이들 연합은 “학령인구 격감과 수도권 집중으로 지역대학이 소멸하는 상황에서 수도권 반도체학과 증원은 지역대학 위기로 직결된다”고 밝혔다.

 

KNN 뉴스 캡처
KNN 뉴스 캡처

앞서 지역대학총장협의회도 지난 19일 정부 발표 직후 온라인 회의를 열어 수도권·비수도권 상관없이 대학 전체 정원을 늘리는 ‘순증’ 방식의 반도체학과 증원에 반대하기로 뜻을 모았다. 

교육단체인 ‘사교육걱정없는세상’도 논평을 내고 “반도체 인재 양성은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인 ‘지방대학 전성시대’ 기초 위에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교육부는 “증원 규모는 확정된 바 없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반발은 전국적으로 확산하는 양상이다.

이는 지난 19일 정부가 발표한 반도체 인재양성 방안에 대한 반발이다. 교육부가 전국 40개 대학을 대상으로 진행한 사전 수요조사에 따르면 학부 기준 수도권은 14개교에서 1,266명을 늘리겠다고 한 반면, 지방대는 13개교 611명으로 절반 수준에 그쳤다.

이 같은 추세로 반도체학과 증원이 진행될 경우 인재가 수도권에 몰려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지역대학의 위기가 심화된다는 것이 지방대 교수들의 주장이다.

안현식 부산경남사립대교수회연합회 회장은 "학령인구 격감과 수도권 집중이라는 병폐로 지역대학이 소멸하는 상황에 수도권 반도체학과 증원은 지역대학의 위기로 직결될 수밖에 없다"며 "이는 정부가 내세우는 ‘지방대학 시대’가 아니라 명실상부한 ‘지방대학 위기 시대’를 정부가 만드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안 회장은 이어 "인재 양성 부족은 수도권 대학 정원이 아니라 오히려 제대로 된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은 데 그 원인이 있다"며 "반도체 산업의 발전과 고용 문제는 반도체 관련 대학원 증원과 관련 학과 졸업생의 재교육 프로그램 등으로 해결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대 교수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수도권 반도체학과 증원에 반대하는 서명운동에도 나설 계획이다.

안 회장은 "반도체 인력 양성을 빙자한 수도권 대학 증원 정책에 대한 반대는 단회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더욱 확산될 것"이라며 "이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서명운동도 함께 시작될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지역대학의 재정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행·재정적 지원도 촉구했다.

김승희 사립대학교수노조 광주대지회 지회장은 "한국은 경제 규모가 세계 10위권이지만, 고등교육재정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60% 정도에 불과하며 OECD 국가 중 대학생 1인당 공교육비가 초·중등학생보다 낮은 유일한 국가"라며 "정부는 고등교육 발전과 국가혁신을 이루기 위해 시급히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을 제정하여 OECD 평균 이상의 고등교육 재정을 지원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종복 한국사립대학교수노동조합 위원장은 정부가 검토 중인 '지역고등교육위원회'에 교수단체와 시민단체를 포함시켜 중립성과 공공성을 담보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위원장은 "현재 정부가 계획한 지역고등교육위원회는 지역대학의 행정과 재정 관리를 지자체에 넘기고 대학과 산업체가 참여하는 형태로, 고등교육을 모르는 사람들이 서로 이권을 다투는 투기판이 될 수 있다"며 "이러한 문제를 방지하려면 ‘지역고등교육위원회’에 교수단체와 시민단체가 참여하여 고등교육의 본질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순애 장관, “수도권·비수도권 구분 없이 역량 가진 대학 적극 지원”

윤석열 정부의 ‘반도체 관련 인재양성 방안’에 대해 비수도권 대학에서 이처럼 반발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는 가운데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대전을 찾아 현장 목소리를 청취했다. 비수도권 대학들은 정부의 이번 정책으로 인해 향후 반도체 인재 양성을 위한 지원이 수도권 대학에 쏠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박 장관은 25일 충남대를 방문, 지난 19일 발표한 ‘반도체 관련 인재양성 방안’과 관련한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간담회에는 대전 소재 반도체 기업 관계자 등이 참석했다.

박 장관은 이날 모두발언을 통해 “이번 방안을 통해 정부는 대학의 자율적인 혁신을 저해하는 규제를 과감히 혁파하고, 적극적인 투자 확대를 통해 대학의 우수인재 양성을 적극 지원할 계획”이라며 “향후 10년간 반도체 관련 인재 15만 명을 양성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방안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무엇보다 대학 정원이 수도권에 집중될 것이라고 걱정하시는 분들이 많다”면서도 “정부는 수도권과 비수도권 구분없이 역량을 가진 대학이라면 적극 지원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윤석열 정부의 반도체 양성 계획에 대해 지역 대학 등의 반발이 적잖음에도 원칙대로 정책을 시행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은 것이다.

‘과잉 인재양성’이라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서도 의견을 밝혔다.

그는 “정부는 ‘반도체 인재양성 지원 협업센터’ 등을 통해 민관협업체계를 구축하고, 협력해 반도체 산업의 미래 상황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도록 하겠다”며 “지역의 대학들도 강점을 바탕으로 반도체 등 첨단산업 인재양성을 위해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장관은 이날 현장 방문 간담회에 이어 충남대의 반도체 실험실을 방문, 시스템반도체 설계 전공 학생들과 반도체 인재양성과 관련해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정부가 발표한 ‘반도체 관련 인재 양성방안’에 따르면 정부는 향후 10년간 반도체 관련 인재 15만 명을 양성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세부 내용을 보면, 지역 구분 없이 학과 신·증설 시 4대 요건 중 교원확보율만 충족하면, 정원 증원이 가능해지게 된다. 또 별도의 학과 설치 없이 기존 학과의 정원을 한시적으로 증원할 수 있는 ‘계약정원제’도 만들어지게 된다.

정부는 또 반도체 교육 및 기초연구에 대한 핵심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를 중앙 거점으로 두고 권역별 반도체 공동연구소를 설치해 각 연구소별 강점 분야를 특성화해 연구소 간 협업체계를 구축한다는 방침도 갖고 있다.

 

박순애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25일 '반도체 관련 인재양성 방안'과 관련, 현장 의견 청취를 위해 충남대학교 반도체 실험실을 찾았다. 좌측 첫번째 이진숙 총장, 가운데 이희덕 교수, 우측 두번째 박순애 부총리. 사진=교육부<br>
박순애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25일 '반도체 관련 인재양성 방안'과 관련, 현장 의견 청취를 위해 충남대학교 반도체 실험실을 찾았다. 좌측 첫번째 이진숙 총장, 가운데 이희덕 교수, 우측 두번째 박순애 부총리. 사진=교육부

□ 정부가 수도권과 비수도권을 가리지 않고 학과 정원 폭을 늘리는 방안을 내놨지만, 현실적으로는 수도권 대학이 수혜를 볼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산업 기반과 인력의 수도권 집중을 심화시키고 학령인구 감소로 정원을 채우기도 벅찬 지역대학들의 상황을 고려할 때 수도권으로의 인재 유출 가속화는 불 보듯 뻔하며, 비수도권 대학들이 반도체 관련 학과에 지원할 여력이 수도권 대학과 비교해 부족한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우종 지역대학총장협의회장(청운대 총장)은 "지방의 인원은 완전히 수도권으로 빨려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지방 대학들이 갖고 있는 어려움은 가중되는 것이고 이것은 결국 지방의 소멸을 가속화시켜서 국가 균형발전에도 굉장히 위배가 되는 것이다."고 지적했다.

이 총장은 “수도권정비계획법을 개정하지 않으면서 수도권 정원을 늘리는 것은 일종의 편법”이라면서 “첨단 인재를 양성하고 싶으면 학과 구조조정을 통해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반도체 분야 인재는 하루아침에 과자 찍어내듯이 찍어내는 것이 아니라 4년 동안 교육하고 숙련 과정을 거쳐야 한다”면서 “(정부는) 장기적인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동욱 충남대 교육혁신본부장은 “지역 대학의 반도체 분야 실험실습과 교육에 대한 지원이 이뤄져야 반도체 인력 양성을 극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면서 “이를 위해 공유형 교육용 반도체 공정시설 및 설계 평가실 구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편, 특히 지역대학의 경우 반도체학과 취업률이 낮아 폐과를 고려하는 게 현실이라며 정부 정책이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왔다. ‘지역대학 정상화 촉구를 위한 단체 연합’ 측은 "반도체 제조 현장의 산업인력은 고졸사원의 수요가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난다. 이는 현재 전국의 반도체학과 취업률이 공과대학 평균을 밑돌고 있으며 심지어 폐과까지 고려한다는 데서 여실히 증명된다."고 밝혔다.

정부의 반도체 인재 육성의 취지엔 공감하지만 수도권과 지역 간 대학 양극화에 대한 충분한 고민은 없었다는 점에서 제2의 지역 소외론까지 불거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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