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의 천재’들이 들려주는 돈과 권력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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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천재’들이 들려주는 돈과 권력의 역사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2.07.25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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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의 머니로드: 돈의 흐름을 바꾼 부의 천재들 | 장수찬 지음 | 김영사 | 376쪽

 

화폐경제가 꽃피던 조선 후기, 누구보다 돈을 잘 벌었던 군인, 상인, 정치가, 세도가들의 경제활동을 추적한 경제사 교양서이다. 조선의 정예부대는 왜 화폐를 주조했을까? 한강 나루터 주막집이 금융 플랫폼으로 탈바꿈한 비결은 무엇일까? 개성상인은 어떻게 홍삼으로 동아시아 무역을 지배했을까? 화폐를 독점하고 수익을 올린 악덕 자본가 놀부의 투자 포트폴리오는 무엇이었을까? 역사 커뮤니케이터인 저자 장수찬은 인간 군상이 일구어낸 돈의 정치, 화폐의 흐름, 부의 비밀을 18가지 에피소드로 풀어낸다.  

조선시대에도 레버리지 효과, 시뇨리지 효과, 규모의 경제학이 있었다. 이 책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돈의 흐름을 먼저 포착하고 쟁취한 조선시대 인간 군상의 돈을 향한 신념과 욕망이 빚어낸 흥망성쇠를 들여다본다. 저자는 임진왜란 이후 근대적 화폐경제가 꽃피기 시작한 조선을 무대로 ‘돈깨나 벌었던’ 조상들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돈이 만들어낸 세상을 이해하려면 돈이 탄생한 역사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그간 묻혀 있었던 조선 경제사의 결정적 장면을 새롭게 조명해냈다.

부의 조건은 불변한다. 그러나 그 조건을 발견하고 활용하는 사람만이 머니로드를 걸었다. 돈이 묶여 있지 않고 자유롭게 흐를 때 경제 발전의 기회가 생기고, 그 기회를 누구보다 먼저 포착하는 사람이 부를 거머쥐었다. 

물물교환을 기본으로 이루어지던 조선의 실물경제는 임진왜란을 계기로 급격히 변화한다. 명나라 원군과 함께 유입된 은화와 중국 상인을 통해 화폐경제의 싹이 트기 시작한 것이다. 화폐경제의 필요성을 실감한 조선의 노력은 상평통보로 결실을 맺는다. 17세기부터는 동아시아 삼각무역을 통해 일본의 은이 대량 유입되면서 다양한 형태의 근대적 경제 활동이 조선에서 이루어진다.

어느 시대나 ‘돈 냄새’를 맡는 데 탁월한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유교 이념으로 무장한 조선은 상업을 말업(末業)이라 부르며 사농공상 가운데 가장 아래 두었으나, 경제가 발달하면서 다양한 계층과 분야에서 돈의 흐름을 포착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책은 이 ‘부의 천재’들이 일궈낸 성공과 실패의 파노라마를 담아낸다.

① 돈을 ‘만들어’ 돈을 벌었던 군인들

문관보다 실리에 밝았던 무관들은 돈의 흐름을 탁월하게 포착했을 뿐더러, 돈을 벌 수 있는 환경에도 접근성이 좋았다. 조선시대에는 ‘각사자판(各司自辦)’이라 하여 각 관청이 독자적인 재원을 두어 자금을 조달해야 했다. 더불어 관청마다 필요에 따라 화폐를 주조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었다. 그 가운데서도 국방을 담당하는 군영과 군대는 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시설과 장인 등 인프라를 갖추고 있었다.

무기의 재료가 될 구리나 철, 숯 등 광물을 쉽게 취급했고, 심지어는 구리 광산을 소유한 군대도 있었다. 이들이 부를 쌓을 수 있었던 비결은 ‘시뇨리지 효과’라고도 불리는 주전 차익(鑄錢差益)에 있었다. 가치가 높은 구리에 가치가 낮은 광물을 일정 비율 섞어서 동전을 만들고, 액면가를 실제 가치보다 높게 책정해 이익을 내는 방식이다. 특히나 군대는 저렴한 노무비와 재료비를 사용함으로써 최대 50~60%의 이익을 남길 수 있었다고 한다.

② 한강 나루 주막집이 금융 플랫폼이 되었다고?
주막이라고 하면 술과 음식을 제공하는 숙박업소의 모습이 금방 떠오른다. 하지만 조선시대 주막집에서는 돈이 오갔다. 한강 포구, 팔도의 물산이 모여드는 곳에 자리 잡은 주막집은 서울에 물건을 대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이곳을 장악한 ‘객주’는 도매업, 물류업, 대부업 등 각종 사업에 장소를 제공하고 수수료를 챙기며 지금의 네이버나 카카오 같은 플랫폼 공룡처럼 큰돈을 벌었다. 주막집에 형성된 새로운 금융 생태계는 조선의 근대적 경제 발전에 탄탄한 자양분이 되었다.

③ 인삼으로 동아시아를 지배한 개성상인
한편, 개성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개성상인은 조선의 누구보다도 금융 이해도가 월등한 집단이었다. 17세기부터 세금을 쌀로만 내게 하는 대동법 개혁 덕에 경제가 더 활성화하면서 덩달아 화폐의 필요성이 더욱 커지게 되었다. 하지만 조선시대 내내 돈 가뭄(시장에 돈이 모자라 귀해지는 현상)이 고질적인 문제였다. 개성상인은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환과 어음이라는 신용제도를 만들어내고, 지금의 무담보 대출과 유사한 금융 서비스를 제공할 정도로 금융 감각이 뛰어났다.

조선시대 금융 서비스는 신용거래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계를 조직해서 모은 투자금을 여러 산업에 재투자하는 사모펀드도 존재했다. 그중 개성상인이 주도한 인삼산업은 특별하다. 인삼은 오늘날의 반도체처럼 부가가치가 어마어마한 상품으로, 수익률이 원가의 15배에 달할 정도였다. 개성상인은 조합을 중심으로 운용하는 막대한 유동자금을 바탕으로 인삼산업을 거대 산업으로 육성해냈다. 나아가 국제무역에 용이하도록 유통기한을 늘린 홍삼도 개발해냈다.

인삼의 성공에는 『동의보감』의 덕도 있다. 17세기부터 중국과 일본에도 전해진 『동의보감』은 동아시아에 역병이 한 차례 돈 뒤, 초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동의보감』에서 만병통치약으로 소개한 인삼은 중국과 일본에서 갈망하는 특별한 교역재로 거듭났다. 국제무역을 통해 인삼과 홍삼은 막대한 수익을 개성상인과 조선에 가져다주었고, 특히 일본의 순도 높은 은이 대량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이들이 벌어들인 외화와 자금은 흥선대원군과 고종 시절을 거치며 근대화와 국방 개혁에도 보탬이 되었다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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