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 이분법을 뛰어넘어…‘중양(中洋)’의 눈으로 되찾은 인류문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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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 이분법을 뛰어넘어…‘중양(中洋)’의 눈으로 되찾은 인류문명사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2.07.25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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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 본사: 오리엔트-중동의 눈으로 본 1만 2,000년 인류사 | 이희수 지음 | 휴머니스트 | 704쪽

 

오리엔트-중동 지역은 위대한 문명의 산실이자, 약 1만 2,000년간 인류의 진보를 주도해 온 역사적 중심축이다. 그러나 세계를 ‘서양’과 ‘동양’으로 갈라 그중에서도 서양의 역사 패턴을 중심으로 인류의 발자취를 추적한 기존의 ‘보편적 역사관’은 정작 인류문명의 뿌리를 간직한 오리엔트-중동을 철저히 외면해왔다. 그 결과 우리는 오늘날 인간사회를 발아시킨 이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관해선 전연 무지한 채로. 불균형하고 단절되고 왜곡된 반쪽짜리 역사인식을 무분별하게 추종하고 재생산해왔다.

이 책은 중동 전문가 이희수 교수가 오리엔트-중동 지역의 역사를 인류의 뿌리 역사, 즉 ‘본사(本史)’로서 선언하며 1만 2,000년 전 초고대 아나톨리아 문명부터 히타이트·프리기아 등 고대 오리엔트 문명과 7세기 이후 이슬람 왕국들의 역사를 거쳐 근대 오스만·무굴 제국의 성쇠까지, 오리엔트-중동의 인류사적 궤적을 완성한 국내 최초의 역작이다. 인류사회의 시원을 개창한 동시에 ‘중간문명’으로서 동/서양의 교류 발전에 심대한 영향을 끼친 오리엔트-중동 지역 15개 제국과 왕국의 역사를 새롭게 정리하여 인류사를 그 핵심과 뿌리에서부터 다시 썼다. 최초의 문명이 발아하고 성숙해온 인류역사의 중심 무대, 동양과 서양을 아우르는 ‘중간문명’의 1만 2,000년 대서사를 담았다.

서양의 문명과 문물은 서양에서 기원하지 않았고, 동서양은 인류사의 모든 순간을 통틀어 교류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지구는 동전처럼 평평하지 않았고, 그렇기에 서양과 동양을 촘촘히 이어준 ‘중간문명’이, 더 거슬러 올라가 ‘인류문명’이라는 것 자체를 탄생시킨 ‘중심문명’이 분명하게 존재해왔다. 그저 틀에 박힌 동/서양 이분법에 의해 외면되었을 뿐이다. 문명의 본향은 바로 ‘오리엔트-중동’이었다.

이 책은 오리엔트-중동 지역을 바탕으로 인류사를 다시 쓴다. ‘해가 뜨는 곳’이란 의미의 라틴어 ‘오리엔스(Oriens)’에서 유래한 ‘오리엔트(Orient)’는 오늘날 터키 공화국의 영토인 아나톨리아반도를 중심으로 인류 최초의 문명을 발아시킨 역사의 본토였다. 중동(中東)은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사이 메소포타미아 지방을 기반으로 신화·문자·정치·기술 등 인간사회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온갖 문물을 창조해낸 문명의 요람이었다.

 

나아가 오리엔트-중동은 인간사회가 등장하고부터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약 1만 2,000년 동안 인류의 진보를 이끌어온 지구상에서 가장 선진적인 중심지였고, 6,400킬로미터에 이르는 실크로드를 따라 동양과 서양의 정치·경제·문화를 이어주며 교류 발전을 주도한 문명의 핵심 기지였다. 그러므로 오리엔트-중동을 모른 채 문명사를 논하는 것은 곧 문명 없이 문명사를 외치는 아이러니와 다름없다. ‘중양(中洋)’의 눈으로 역사를 다시 읽는 것이야말로 인류문명의 완전판을 탐독하는 획기적 사건이며, 동/서양 이분법이 유발한 역사 왜곡과 인식 단절을 뛰어넘어 잃어버린 인류문명의 뿌리를 되찾는 위대한 첫걸음이다.

이 책은 아나톨리아반도와 메소포타미아를 중심으로 중앙아시아와 인도아대륙, 북아프리카와 이베리아반도까지 아우르며 이 일대에서 일어나고 스러졌던 15개 제국과 왕국의 역사를 통해 오리엔트-중동 세계의 1만 2,000년 역사를 하나의 흐름으로 복원해냈다. 발굴과 동시에 역사학의 근간을 뒤흔든 괴베클리 테페와 차탈회위크를 필두로 한 아나톨리아 문명을 시작으로 바빌로니아, 아케메네스조 페르시아, 사산조 페르시아 등 고대 중동을 호령했던 바빌로니아-페르시아 문명은 물론, 그간 국내에 제대로 소개되지 않았던 히타이트, 프리기아, 파르티아 등 오리엔트 문명의 주요 제국들을 선명히 조명함으로써 척추가 끊어진 채 전해져오던 인류사의 뼈대를 바로 세운다.

7세기 무함마드의 등장 이후 압바스, 사파비, 오스만 등으로 유려하게 흘러가는 이슬람 제국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이슬람 문명이 어떻게 인류 전체의 대번영을 이끌었는지 간명하게 파악하게 된다. 더불어 중앙아시아의 호라즘샤와 티무르, 이베리아반도의 후우마이야와 나스르, 아프리카의 말리와 송가이, 인도아대륙의 무굴까지 지리적 시야를 넓혀 다채로운 이슬람 제국들의 역사를 톺아보니 오늘날 20억 인구에 달하는 이슬람의 세계성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

수많은 제국의 역사 일면을 훑는 수준을 넘어, 각 나라만의 정치적 맥락 안에서 구성된 거버넌스, 세계의 지정학적 판도를 뒤바꾼 주요 전쟁과 전투, 통치 이념의 밑바닥이자 제국 신민들의 삶의 지표로 자리 잡았던 다양한 종교들, 지금까지도 계승되어오는 예술·건축·생활 문화까지 문명사를 심도 있게 해석할 수 있도록 다각적인 역사 지식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이 책은 괴베클리 테페, 페르세폴리스, 사마르칸트, 알람브라 궁전 등 오리엔트-중동 현지 유적지에 직접 다녀온 저자의 답사기를 곳곳에 실어, 실제로 접하기엔 현실적 제약이 많은 중간문명 제국들의 문화적 향취를 독자 눈앞에 생생히 재현했다. 문화인류학자로서 상대주의적이고 현지 중심적인 관점으로 그곳만의 독특한 지리적 환경과 사회문화적 상황 속에서 그려내는 저자의 답사기를 읽다 보면 어느새 수천 년 전 유적지 한가운데 서 있는 듯한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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