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사회에서 가치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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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사회에서 가치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2.07.25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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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상사회의 철학: 비트코인·VR·탈진실 | 다이고쿠 다케히코 지음 | 최승현 옮김 | 산지니 | 367쪽

 

최근 대폭락한 테라와 루나 코인 사태가 일파만파다. 천정부지로 치솟던 가격이 한순간에 무가치에 가까워졌다. 이러한 불황은 다른 코인으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가상화폐 겨울’이 오고 있다. 이러한 사태를 보며 의문을 표하는 이가 많다. 애당초 데이터에 불과한 비트코인(가상화폐의 하나)이 도대체 어떻게 화폐로 작용할 수 있었나.

이 책은 이렇게 설명한다. 비트코인은 그 희소성으로 사람들의 욕망을 불러일으키고, 욕망은 노동을 만들어낸다. 이 노동은 인간노동이 아닌 컴퓨터 중앙처리장치의 추상노동이다. 실제적인 에너지가 소비, 지출된다는 점에서 양자의 노동은 현실세계의 실재적 과정이다. 이를 근거로 비트코인이 현실 경제권에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가상적 네트워크를 드나들면서도 ‘희소성→욕망→추상노동’이라는 경로를 통해 현실세계에 연결됨으로써 비트코인은 화폐의 척도기능을 획득했다.

이처럼 이 책은 누구의 눈에나 자명하고 구체적인 존재 또는 현상에서 시작하여 그것들이 담고 있는 가상사회의 구조를 분석했다. 공기처럼 자명한 존재로 간주되어 누구도 총체적으로 분석하려 하지 않았던, 우리가 살아가는 가상사회를 해명하려는 시도의 총체이다.

네트워크 미디어, 빅데이터, 로봇 등 사회적 인프라를 기반으로 한 정보사회는 정보의 가치화 단계인 가상사회로 접어들고 있다. 정보사회의 최신 현상이 가상사회이다.

정보사회 이전의 패러다임은 TV 라디오로 대표되는 대중매체 패러다임이었고 현재는 네트워크 패러다임으로 전환되었다. 네트워크 패러다임은 중매체 패러다임과 달리 위계적 구조를 갖지 않는다. 무중심 구조가 그 본질이다. 따라서 권위적인 대중매체를 통해 정보를 습득하던 과거에는 현실이 안정적으로 유지되었지만 현재의 네트워크는 조회 수처럼 이윤에 직결되는 양적인 지표 외에는 정보의 질, 가치를 보증하는 틀이 없다. 이것이야말로 네트워크 패러다임이 직면한 핵심 문제이다. 가상사회의 최대 과제는 정보 층에서 어떻게 가치 층을 혁신하는가와 관련된 기제의 해명과 현실화에 있다. 이 책은 이 사실을 알리고, 새롭게 구성 중인 가상사회의 가치의 맹아를 고찰한다.

 

비트코인 채굴방식이 작업증명에서 지분증명으로 대체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컴퓨터 부품 시장이 크게 날뛰는 등 많은 변화가 예상되어 우리 사회도 주시하고 있다. 작업증명과 지분증명의 차이는 무엇이고 왜 변경되는 것일까. 다이고쿠 다케히코는 채굴자와 이용자 간의 괴리를 타개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한다. 지분증명은 거래현장 입회를 채굴자가 아닌 최대이해관계자인 화폐최다보유자가 행한다. 채굴자와 이용자 간의 역할분화와 고정화를 막으려는 의도이다. 기존의 작업증명은 주문형 반도체인 아식(ASIC)을 탑재한 고성능 컴퓨터가 필요했기에 일반인이 채굴에 참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지분증명으로 인해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는 현재보다도 더 현실 경제에 영향을 끼칠 것이다. 향후 가상사회를 이해하는 데 더욱더 중요한 척도가 될 전망이다.

최근 유튜브에 Vtuber가 대거 등장했다. 2021년 말에는 Vtuber 걸그룹이 데뷔했는데 가상 아바타를 사용해 활동한다는 특이점 외에는 기존의 걸그룹과 별반 다르지 않다. 똑같이 팬들과 소통하고 노래와 춤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이러한 VR의 양상을 보면 VR 열풍이 일었던 2016년 때와는 매우 달라 보인다. 2016년에 VR산업은 주로 게임과 영상에 집중되어 유저들이 만들어진 게임을 하거나 영상을 보는 데에 그쳤다. 지금은 플레이만 하던 유저들이 직접 컨텐츠를 생산하며 소비하고 있다. 이 책은 이러한 변화가 VR의 사회화에서 기인했다고 말한다. VR 콘텐츠는 점차 사회화되고 있다. 현재의 VR 챗, V튜버 등은 물리적인 세계 모방보다 소통 자체에 초점을 맞춘다. 소통으로 현실세계와 이어지는 것이다. 이처럼 가격하락, 사회화, 콤팩트화 그리고 소통을 통해 VR은 점차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매체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현실의 일의성과 안정성은 과거 역사를 포함해 문서라는 각별한 매체가 보유해 왔다. 위계적인 권위적 구조도 그 배후에서 현실을 지탱했다. 그런데 가상사회에서 지금까지의 권위는 네트워크의 단순한 노드로 상대화되어 정태적인 문서가 유동적 빅데이터로 대체되어 간다. 빅데이터는 문서가 가졌던 강도도 위력도 지니고 있지 않다. 더 이상 진실성이 가치가 되지 않는 사회, 네트워크 미디어로부터 얻은 정보만으로 구성된 현실, 탈진실에 도달한 것이다.

하지만 다이고쿠 다케히코는 탈진실을 항간에서 말하듯 ‘여론을 객관적 사실이 아닌 감정이나 신조를 통해 형성하려는 동향’이라는 부정적 의미, 하물며 가짜뉴스의 동의어로 보지 말 것을 제안한다. 이에 더불어 위계 구조의 흔적을 계승하는 정보사회의 가치 생성 및 현실에 대한 정당화 기제, 즉 빅데이터의 지평에서 진리의 생성을 담보하는 기제로 긍정적으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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