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에 익숙해진 사람에게는 그 공간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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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에 익숙해진 사람에게는 그 공간이 보이지 않는다”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2.07.25 16: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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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이지 않는 도시 | 임우진 지음 | 을유문화사 | 316쪽

 

사람들은 익숙해진 것을 새로운 시각으로 살펴보거나, 이미 적응된 상태를 애써 바꾸려 들지 않는다. 설사 바뀌어야 한다는 걸 느낀다 해도 무엇이 잘못됐는지 제대로 짚어 내기 어렵다. 이 도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운전할 때 늘 보는 신호등 위치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고, 우리나라에는 왜 노래방, PC방, 찜질방 같은 ‘방’이 많은지 궁금해 한 적도 없다. 너무 익숙해서 잘 안다고 착각하고 있는 이 도시를 똑바로 바라보려 들지 않는다. 

한국과 프랑스 두 문화권의 거주민이자 이방인으로서 독특한 시각을 갖게 된 저자는 도시의 보이지 않는 것들을 짚어 내고, 우리도 모르게 판에 박힌 인식을 한 꺼풀 벗겨 준다. 그리고 이 도시 아래에 숨겨진 다른 모습과 저자 눈에 포착된 여러 도시의 모습들은 서로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실마리가 되어 준다.

이 책의 1부는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일상적 공간 속 이야기들로, 우리가 보지 못했던 생활공간의 이면을 보여 준다. 이를 통해 각 공간이 단순하게 자리하고 있는 것이 아닌, 도시 체제 안에 있고 그 체제가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신호등 위치를 예로 들면, 한국의 신호등은 대부분 횡단보도 건너편 쪽에 있다. 횡단보도 정지선을 넘어가도 볼 수 있는 위치다. 반면 유럽의 신호등은 정지선 쪽에 위치해 있어서 정지선을 넘어서면 볼 수 없다. 정지선을 위반할 수 없는 위치에 신호등을 설치한 것이다. 이렇게 ‘지킬 수밖에 없도록’ 유도한 유럽의 도시 시스템은 수백 년간 다민족·다문화 환경으로 지낸 배경 위에 있다. 다양한 사고방식과 서로 다른 문화가 공존하기에 상대방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할 거라 기대하지 않는다. 그래서 모든 것을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문서로 명기하고, 물리적으로 구분한다. 생각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니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지켜지지 않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런 태도는 그들의 도시 곳곳에 알게 모르게 스며들어 있다.

 

우리에게는 ‘기피 공간’이지만, 유럽인들에게는 ‘가까운 공간’이 있다. 바로 공동묘지다. 한국에선 공포스러운 장소이기에 당연히 생활공간에서 떨어진 곳에 있지만, 유럽에서는 도시 안, 집 가까운 곳에 공원 같은 분위기로 조성돼 있다. 그리운 사람을 기억하며 자주 찾아가, 꽃이나 화분으로 가꿔 놓는 기분 좋은 공간으로 만든 것이다. 이곳은 연인이 데이트하고 가족이 산책하는, 살아 있는 자들을 위한 공간이다. 이런 분위기는 장례식에도 영향을 미쳐, 슬프지만은 않은 따뜻한 분위기 속에서 치러진다. 내일이라도 들르기만 하면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의 도시 체제나 구조가 좋으니 따라 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저자는 “이 글에서 파리가 가진 몇몇 장점을 앞세워 서울의 부족한 점을 드러내려 하지 않았던 이유는 간단하다. 파리 또한 수많은 문제가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 다른 곳과의 비교는 부족함을 비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아지기 위한 새로운 영감을 주는 용도일 때 의미가 있다. 그것이 많은 해외 사례를 제시하면서도 이 책에서 내가 견지하고자 했던 태도였다.”라고 말한다.

2부 역시 대부분 일상적인 공간에 관한 내용으로, 한국의 도시·건축에 대한 저자의 새로운 관점이 담겨 있다. 여기에선 외부 공간과 내부 공간을 하나씩 예로 든다. 우선 외부 공간인 ‘길’을 살펴보자. 서구의 길은 도시 연결 체계다. 도로의 시스템을 발전시켜 통행과 도시 서비스를 최적화했다. 반면 우리나라의 길은 영역 간의 완충 공간이다. 그리고 통행뿐 아니라 여러 기능이 공존하는 ‘도시적 공터’다. 시골 장터도, 마을 잔치도, 동네 씨름 대회도 길에서 열렸다. 우리의 길은 광장의 역할까지 했다. 길에 놓인 평상은 동네 어른들의 사랑방이었고, 골목길은 아이들의 놀이터였으며, 길거리는 공연 장소였다(‘홍대 길거리 공연’ 등 길거리 공연은 최근까지 이어졌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광장의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못했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내부 공간인 ‘방’ 또한 한국인에게는 특별한 공간이다. 노래방, 찜질방, PC방처럼 ‘방’이 붙은 공간은 당구‘장’이나 독서‘실’같이 여러 사람이 함께 이용하는 공공장소 느낌의 공간과 다르다. 방이라는 이름이 붙은 곳은 벽으로 구분되어 있거나 최소한 칸막이로 구분돼 있다. 그래서 좀 더 사적인 공간의 느낌을 준다. 우리는 공동체 의식이 있어야 (또는 공동체 의식을 만들기 위해) 방에 함께 들어간다. 이 방 문화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독특한 것이다. 방은 ‘남’과 ‘우리’를 구분해 주는 공간적이면서도 사회적인 수단이다. 

교도소의 다른 이름인 감방도 방이 붙은 공간이다. 우리나라(및 동아시아, 중동 지역)의 교도소는 복도 양편으로 4~8인이 함께 쓰는 단체실이 늘어서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반면 서구식 교도소는 밖에서 훤히 들여다보이는 철창으로 된 독방을 가운데 빈 공간에서 모두 볼 수 있게 회랑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한국식 교도소에 서양인 재소자가 감금되면 교도소에 감금됐다는 사실보다 프라이버시 없이 한 방에서 다른 사람과 함께 지내야 하는 집단생활에 더 큰 심리적 고통을 받는다. 그들에게 방은 ‘우리의 공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반면 서구식 교도소에 한국인 재소자가 수감되면 독방에서의 고독한 생활을 타 재소자보다 더 힘겨워한다.

그밖에도 내 방, 우리 집, 우리 동네를 만드는 ‘공간 주도권’, 사회 구심적 공간과 사회 원심적 공간 등 도시 아래에 숨어 있는 모습들과 품고 있는 가능성을 보여 준다. 이 모든 이야기는 ‘사람이 먼저인 도시’를 향해 있다. 결국 도시 속에 사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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