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미처 알지 못했던 역사 속 조선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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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미처 알지 못했던 역사 속 조선의 모습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2.07.25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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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만 1천 권의 조선: 타인의 시선으로 기록한 조선, 그 너머의 이야기 | 김인숙 지음 | 은행나무 | 440쪽

 

소설가 김인숙이 한국에 관한 서양 고서 마흔여섯 권에 대해 쓴 산문이다. ‘Korea’, ‘Corea’, ‘조선’ 그것이 무엇이든 우리나라와 관련된 한 글자만 들어 있어도 소장하고 있는 도서관 명지-LG한국학자료관. 저자는 1만 1천여 권의 한국학 자료들이 소장된 이 도서관에 초대되어 수많은 서양 고서들을 만났고 약 3년간 이곳의 다양한 고서들을 연구하며 이 책을 준비했다. 키르허의 『중국도설』, 하멜의 『하멜 표류기』, 샬의 『중국포교사』, 키스의 『오래된 조선』, 카를레티의 『항해록』, 프로이스의 『일본사』, 쿠랑의 『한국서지』 등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포르투갈어, 스웨덴어와 같이 다양한 서구의 언어들로 기록된 이 고서들은 17~19세기 한국학 연구에 있어 중요한 사료들로 손꼽히지만 정작 대중들에게는 낯설다.

그런데 이 고서들 속 조선에 대한 기록은 정작 허점투성이에 오류가 난무한다. 우리나라가 등장하는 부분이 단 한 줄 혹은 몇 문장에 그치는 경우도 많고, 그마저도 자신들의 고정관념과 이해관계가 덧씌워진 채 왜곡되기 일쑤다. 막연한 동경이나 미화 혹은 무의식적인 혐오와 폄하의 틀을 벗어던지지 못해 마주하기 불편한 기록들도 적지 않다. 

‘솔랑가’, ‘칼렘플루이’, ‘코레’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던 우리나라(신라, 고려, 조선)는 한마디로 세계의 끝이자, 일체 알려진 바가 없는 미지의 나라였다. 모른다는 것은 곧 판타지. 알 수 없는 이 막연한 나라에 대한 환상은 ‘금과 은이 풍부한 나라’(핀투의 『핀투 여행기』), ‘자유연애를 하고 부모의 허락 없이 결혼할 수 있는 나라’(마르티니의 『타르타르의 전쟁』), ‘모세의 후손으로 이스라엘의 사라진 열 지파 중 하나’(맥레오드의 『조선과 사라진 열 지파』), ‘칭기즈 칸이 침공한 베이징의 황손을 보호해준 나라’(볼테르의 『중국 고아』), ‘들어가기만 하면 몇 살이 되었든 나이를 먹지 않는 나라’(루브룩의 『몽골 제국 기행』)와 같이 허무맹랑한 내용들로 구체화되었다. 이후 19세기 말 서구의 문물이 물밀 듯 들어오기 시작하는 개항기에 이르러서는 ‘겁 많고 게으르며 비능률적인 민족’(런던의 『신이 웃을 때』), ‘달콤하고 정겹지만 결코 서구인을 넘어서지는 못할 착한 미개인’(뒤크로의 『가련하고 정다운 나라 조선』)와 같이 서구중심주의에 물든 시선 혹은 ‘묘지 같은 집에 사는 야만인’(피에르 로티)과 같은 혐오로 기록되기도 한다.

저자는 이 모든 구부러지고 빗겨나간 정보들을 있는 그대로 소개한다. 당시 서구인들의 시선에 비친 우리의 모습, 그 책을 만들어낸 인물들과 그들이 살았던 시대 그리고 그 주변부의 이야기까지 역사 속 사실들을 섬세하고 명민한 시선과 작가적 상상력으로 포착해낸다.

저자는 역사책에는 잘 소개되지 않는, 책과 책 사이의 이야기, 책 속 기록 이면의 이야기들도 소개한다. 최초로 유럽 땅을 밟은 조선인으로 알려진 안토니오 코레아의 실체, 고종의 초청으로 조선을 방문한 루스벨트 대통령의 천덕꾸러기 딸 앨리스 루스벨트와 그녀를 대접하기 위한 화려한 연회 메뉴, 도포와 갓 차림으로 당당하게 파리 거리를 활보하며 『심청전』과 『춘향전』을 프랑스어로 번역·출간한 조선 최초의 서양 유학생 홍종우가 왜 김옥균의 암살범이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조선의 개항을 돕겠다는 명분으로 남연군 묘를 도굴하고,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고자 조선에 관한 책까지 집필한 문제적 인물 오페르트, 이양선을 타고 강화도를 침략하는 와중에 더할 나위 없이 평화롭고 아름다운 강화도의 풍경을 찬탄했던 프랑스 군인 쥐베르의 기록에 관한 이야기 등도 담겨 있다.

저자의 시선은 이러한 책의 내용뿐만 아니라, 이를 담고 있는 책의 외형에도 머무른다.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습기를 머금어 얼룩이 생기고 울룩불룩해진 종이, 기울여 씀으로써 종이의 여백을 최대한 아름답게 살리고자 한 글씨체인 이탤릭체, 책의 인쇄를 주문하는 출판사나 단체 혹은 가문에 따라 다양한 판형과 표지를 가진 책들, 그림 하나하나마다 기름종이를 덧댄 정성스러운 가공, 금박과 가죽으로 고급스럽게 엮어낸 장정은 오늘날의 책들에서는 쉬 느끼기 힘든 기품 그리고 귀중품으로서의 책의 가치를 느끼게 해준다.

이뿐만 아니라 한때 이 책을 소유했던 누군가의 흔적, 선물하면서 남긴 편지와 사진, 명함, 도서관 장서임을 증명하는 표식들과 도장에 이르기까지 고서는 자신의 몸을 스쳐 지나간 갖가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품고 그 자체로 아름다운 몸이자 역사가 된다.

 

이 책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소개되는 작품은 「함녕전 시첩」이다. 이완용과 이토 히로부미 등이 1909년 덕수궁 함녕전에서 고종의 운에 맞춰 지은 칠언절구를 긴 두루마리 형태로 만든 것으로, 이 시첩에는 후에 고종의 낙관이 찍힌 친필이 들어 있는 것으로 밝혀져 그 가치가 재평가되기도 했다. 저자는 「함녕전 시첩」으로 책을 마무리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힌다.

18세기, 19세기 서구인들이 우리나라에 대해 남긴 기록은 그 관점이 어떠하든 간에 결국은 망해가는 한 나라에 대한 기록이다. 그러므로 그 기록의 끝에 이르러 ‘우리는 우리 눈으로 우리를’ 한 번은 들여다봐야 한다.

외세의 격랑 속 조선의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던 그 시기에 이완용은 「함녕전 시첩」에서 “두 땅(조선과 일본)이 한 집을 이루어 천하에 봄이 왔네”라고 했다. 그리고 고종은 여기에 ‘동감지의(同感之意)’라는 말을 남겼다. 대체 무엇을 동감한다는 것인가. 왜 고종은 그런 말을 남긴 것인가. 이를 이해하기 위해 알아야 할 다른 이야기가 있다. 「함녕전 시첩」의 칠언절구에서 고종이 띄운 운, ‘인(人), 신(新), 춘(春)’ 자는 춘추전국시대, 적왕 초나라 문왕에게 애첩으로 끌려가 아들 셋을 나을 때까지 일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것으로 유명한 식나라 왕비 도화부인을 기린 두목의 시에서 가져온 것이라는 사실이다. 망해가는 나라의 왕이었고, 침략자를 위한 연회에서도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었던 고종은 ‘인, 신 춘’ 석 자로 도화부인을 떠올렸고, 이에 씁쓸하고도 쓸쓸하게 ‘동감지의(同感之意)’라는 글자로 무언의 저항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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