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보다는 글로, 인터넷 상용화 30여 년, 우리의 언어는 어떻게 바뀌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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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보다는 글로, 인터넷 상용화 30여 년, 우리의 언어는 어떻게 바뀌었나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2.07.24 14: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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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제의 신간_ 『인터넷 때문에: 인터넷은 우리의 언어를 어떻게 바꿨을까?』 (그레천 매컬러 지음 | 강동혁 옮김 | 어크로스 | 448쪽 | 2022.06)

 

우리는 SNS로, 문자메시지로, 톡으로, 사실상 매일매일 글을 쓴다. 인터넷은 우리가 예전에는 말로 하던 상호작용의 일부를 거의 실시간으로 이뤄지는 문자의 교환으로 바꿔 놓았다.

이러한 ‘비격식 문어’의 폭발적 증가는 우리의 언어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언어학자인 저자 그레천 매컬러는 바로 여기에 주목한다. 인터넷이 절대적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된 지금, 인터넷 언어의 숨겨진 패턴을 분석하면 우리가 쓰는 일반적 언어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저자는 인터넷 사용자들의 언어학적 관습과 변화에 주목한다. 이 책에서 그녀는 인터넷 언어에 나타난 주요 양상들을 살피며 현재 진행 중인 언어학적 혁신을 포착한다. 오늘날 10대들이 언어 유행을 주도하는 것은 테크놀로지에 더 익숙하기 때문일까? 3D와 메타버스 기술이 훨씬 앞서 나가는 와중에도 왜 우리는 여전히 이모지에 열광할까? 인터넷 상용화 30여 년, 인터넷은 우리의 언어를 어떻게 바꿨을까?

저자는 “인터넷에서 생산된 비격식 문어의 양은 격식 문어의 양에 비해 몇 배나 많다”면서, 언어를 변화시키는 대표 격인 10대들의 인터넷 글에 주목한다. 대개의 기성세대는 10대들의 언어 사용에 우려를 표한다. 10대들의 줄임말이나 이모티콘 등이 난무하는 인터넷 글이 말과 글의 본래 의미를 훼손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10대들이 글을 쓸 때 격식·비격식 스타일을 섞어서 사용한다는 사실은 그들이 하는 일이 일상 구어를 불완전하게 받아 적는 것도 아니고, 격식 문어를 쓰려다가 실패한 것도 아님”을 강조한다. “인터넷 문어는 그 자체의 목표가 있는 별도의 분야”인데, 청소년들은 자신들만의 문법을 통해, 왕따 등 부작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충분한 의사소통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세대론과 인터넷의 사회사를 아우르는 저자의 접근은 우리가 익히 접해온 언어의 오용과 파괴라는 관점으로부터 거리를 둔다. 인간이 완벽하지 않은 도구를 통해 좀 더 가깝고 정확하게 의사소통하고자 얼마나 노력해왔는지, 인터넷에서 일어난 언어학적 변화가 인간 언어의 놀라운 능력이라는 더 큰 그림에 어떻게 어우러지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는 인터넷 때문에 생긴 언어 변화를 ‘오용과 파괴’라고 비판하고 부정하는 건 “구식 라틴어 숭배를 고수하는 행위”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한다. “흘러간 강물에 다시 발을 담글 수 없듯, 흘러간 언어에 또 발을 담글 수는 없다.” 인터넷 언어의 유연함이 의사소통의 효율성을 오히려 높여준다는 저자의 확고한 입장은 책 제목에도 드러난다. 

‘인터넷 언어가 국어를 파괴한다’는 익숙한 논리에 반기를 단호히 드는 책이다. 저자는 “‘표준어’와 ‘정확한’ 철자법은 영원한 진실이 아니”라고 강조하며 “모든 언어와 방언은 한 종(種)으로서 인류가 타고난, 놀라운 인간 언어능력의 발현”이라고 말한다.

자유로운 표기와 문장 부호의 활용, ‘이모지(絵文字, emoji)’와 ‘밈(meme)’과 같은 이미지 사용 등 인터넷 언어의 변화에는 인간이 이룬 최신의 언어적 혁신이 담겨 있다. 더 가깝고 정확한 의사소통을 위한 인간의 노력을 ‘언어 파괴’로 단정지을 순 없다는 것이다.


5가지 인터넷 민족 형태로 보는 인터넷 언어의 진화사

책은 ‘인터넷 원주민’ 신화를 해체하면서 시작한다. 인터넷에서 일어나는 언어 현상들은 관련 기술에 얼마나 익숙한지가 아니라, 인터넷에서 무엇을 하는지를 중심으로 봤을 때 해석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인터넷에서 생산된 비격식 문어가 세대의 흐름에 따라 적잖은 차이가 있다고 말하는 저자는 크게 다섯 가지로 인터넷 거주자들을 세분한다 - ‘오래된 인터넷 민족,’ ‘온전한 인터넷 민족,’ ‘준인터넷 민족,’ ‘인터넷 이후 민족,’ ‘인터넷 이전 민족.’

유즈넷 시절에 낯선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 온라인에 유입된 ‘오래된 인터넷 민족’은 “네트워크 컴퓨터가 ‘쿨한’ 것이 되기 전에 접속”했던 사람들, 즉 기술에 능통한 사람들이었다. 이후 메신저로 잘 아는 사람들과 더 빠르게 소통하기 위해 유입된, 즉 “인터넷을 사회생활의 매개체로 완전히 받아들”인 ‘온전한 인터넷 민족’, “사회생활은 대부분 예전대로 유지하면서 나중에야 인터넷을 매개로 하는 우정에 비교적 점진적으로” 흘러들어온 ‘준인터넷 민족’, 모두가 인터넷을 사용하기에 어쩔 수 없이 인터넷 세계로 이주한 ‘인터넷 이전 민족’, 인터넷이 삶의 완전한 일부인, 다시 말해 인터넷 사회생활이 당연한 ‘인터넷 이후 민족’ 순으로 진화했다.

‘인터넷 이후 민족’은 문장부호와 이모지, 이모티콘, 밈만으로도 자신들의 감정과 상태를 충분히 표현한다. 특히 사람이 취할 수 있는 거의 모든 표정과 몸짓을 표현할 수 있는 이모지는 “언어의 경계를 넘어 다양한 지역에서 두루 쓰이는” 일종의 만국 공용어다. 젊은 세대는 이모지 하나를 단순 반복하거나 여러 이모지를 복합적으로 반복하면서 자신만의 감정과 상태를, 그것을 읽는 사람들에게 전달한다.

저자는 이모지가 “단어의 앞마당에서 단어와 경쟁하려 들기보다, 완전히 다른 층위의 의미를 나타내는 완전히 새로운 체계”여서 성공했다고 분석한다. 말 이상의 것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이모지는 확실히 신세계나 다름없었다.

 

세대론과 언어학 통념을 뒤집는 날카로운 분석

수많은 자료를 수집해본 결과, 10대들은 별 이유 없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빈도로 서로 문자나 스냅챗 등 메시지를 주고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이런 현상 중 인터넷에서만 독특하게 나타나는 것은 하나도 없다. 모든 세대의 10대들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은 연애를 시도하고 또래와 서열을 다투며 엄청난 시간을 비체계적으로 보내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저자는 세대론과 언어에 관한 통념에서 벗어난 분석들을 내놓는다. 일례로 ‘인터넷 언어에서 청소년의 영향력’에 관해 이야기할 때 이들이 언어 유행에 민감하다는 점뿐만 아니라, “청소년기가 한 인구집단이 동시에 새로운 사회집단에 진입하는 마지막 시기”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젠더에 따라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다는 인식도 온라인에서는 그 양상이 복잡해진다.

블로그를 분석한 한 연구는 젠더 차이로 보이는 것이 실제로는 게시글의 장르 차이임을 목격한다. 남녀가 선호하는 장르가 다르지만, 각 장르 내에서는 젠더 차이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나아가 저자는 왜 인터넷 이후에 언어변화가 빨라지는지에 대한 힌트도 제시한다. 언어가 변화하려면 강한 유대와 약한 유대가 혼합된 사회여야 하며, 인터넷이 바로 그러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는 설명이다.


문장부호의 새 역할과 이모지, 이모티콘, 밈의 언어학

저자는 인터넷 등장과 더불어 보다 쉽고 빠르게 의사소통할 수 있게 되었지만, “기존 의사소통에서 뉘앙스를 전달하는 데 사용하던 레퍼토리 일부를 빼앗겼음”을 환기한다. 인터넷에서는 표정과 몸짓, 손글씨의 미묘한 변화나 장난스러운 낙서 등을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빈자리는 절묘하고도 독특한 체계로 채워졌다. 문장부호, 이모티콘, 이모지, 밈이 그것이다. 저자의 안내를 따라 그 작동 원리를 좇다 보면, 우리가 으레 사용하는 익살스러운 표현 뒤에 숨은 풍부한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왜 ‘점점점(…)’이 기성세대에게는 발화 사이의 쉼을 뜻하지만 젊은 세대에게는 수동적 공격으로 읽힐까? 느낌표와 이모티콘이 어떻게 사회생활에서 윤활유 역할을 하게 되었을까? 300년간 프랑스 작가들이 이루지 못한 반어법 표시를 물결표는 어떻게 해냈을까?

더불어 왜 이모지가 언어가 아닌 몸짓으로 해석되어야 하는지, 모바일 기기 사이에 이모지 호환이 안 되는 문제가 왜 그토록 중대한 문제였는지, 밈이 어떻게 인터넷 문화로 안착하게 되었는지 등 생각지 못한 맥락을 짚어주기도 한다.


커뮤니케이션구의 한계를 극복해온 인간 언어에 대한 환기와 찬사

Hello는 언제부터 영어권에서 인사말로 쓰였을까? 인터넷에 얽힌 다양한 기술은 인사법과 대화의 양식을 바꾸었다. 대면하지 않고 실시간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최초의 장치는 전화였는데, 이로 인해 ‘Hello’로 시작하는 대화가 보편화됐다. 처음으로 비대면 실시간 대화가 시작되면서 누군지 불확실한 상대방의 주의를 끌기 위해 차용해온 단어가 hello다. 때문에 1940년대까지만 해도 hello라고 인사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는 인식이 남아 있었다. 거기서 진화해 “문어와 비격식어의 완벽한 교차”를 이뤄낸 스트리밍 방식의 채팅은 흔한 안부 인사 없이 곧장 대화로 들어갈 수 있다. 

그런가 하면 누군가 곁에 있어도 “문자메시지에 답장을 보내는 것이 합리적인 일”이라고 생각하는 경향도 강해졌다. “대화가 잠깐 끊긴 틈에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터넷 때문에 우리 일상의 많은 부분이 바뀌었다. 책의 부제는 ‘우리의 언어를 어떻게 바꿨을까?’라고 묻지만, 실제로는 언어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삶의 양식마저 바꿔놓았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이처럼 저자는 기기와 테크놀로지가 대화규범을 바꿔온 역사를 되짚는다.

책 전반에서 오용과 파괴라는 인터넷 언어를 둘러싼 주제를 우회해온 이유 역시 이것이다. 인간이 커뮤니케이션 도구의 한계를 뛰어넘어 더 정확하게 소통하고자 어떤 노력을 기울여왔는지, 그러한 변화를 가능케 한 인간 언어의 유연성이란 얼마나 놀라운지에 관한 이야기다. 바로 그 연장선에 인터넷이 있다. 현재 진행중인 언어 혁신을 그 혁신의 주인공들에게 전하는 인터넷 언어학이자, 최신의 언어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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