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속살, 혼인과 상속의 역사를 파헤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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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속살, 혼인과 상속의 역사를 파헤치다.
  • 손승희 중앙대·중국근현대사
  • 승인 2022.07.24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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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

■ 책을 말하다_ 『중국의 근대, '가정'으로 보다』 (손승희 지음, 인터북스, 318쪽, 2022.05)

 

이 책은 중국 근현대시기를 중심으로 한 가족 관련 연구서이다. 특히 혼인과 상속문제에 주목하여 관련 내용을 주제별로 구성해놓은 것이다. 중국에서 ‘가정’은 국가의 가장 말단 기층단위로서 중국사회의 기본구조를 이루고 있다. 현재 중국은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이 커지고 있고,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꿈꾸며 일대일로 전략을 통해 세계를 선도하겠다는 자신감을 표출하고 있다. 이러한 중국의 정치적 행보와 중국의 미래를 진단하기 위해서는 그 내면에 면면히 흐르고 있는 중국인의 사유방식과 사유체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자신만의 길을 표방하고 있는 중국은 역사 속에서 현재적 모델을 찾고자 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중국인의 사고 형성에 일차적으로 심대한 영향을 미쳐왔던 것이 바로 ‘가정’이다. 따라서 이 책은 가족의 형성과 구조, 그 속에서 파생되는 가족과 친족 구성원의 관계와 역할 등에 관심을 두고, 근대 중국 가정의 핵심문제들을 탐구하고 분석한 것이다. 

 

이 책은 전통시기와 중화인민공화국 사이에 놓인 ‘중화민국’ 시기를 연구의 대상으로 삼았다.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이후 가족 경제는 집단화되고 사유재산은 폐지되었으며, 전통적인 혈연 중심의 가족 문화도 급격하게 변화했다. 전통시기와 중화인민공화국 사이에서 진행된 이러한 급격한 변화에는 합당한 설명이 필요하다. 중국은 그 규모의 방대함과 복잡성으로 인해 대중이 접하기 쉽지 않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대중의 관심은 현재 중국의 정치·경제에 집중되어 있고, 하루가 멀다 않고 이에 대한 각종 지식과 정보가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빠르게 변화하는 동아시아의 국제관계에서 가시적으로 드러난 현상만으로는 중국과 중국인을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다. 따라서 중국의 내면과 중국인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사유방식과 사유체계를 이해하는 방편으로 이 책이 시도되었다. 중국의 정치, 경제, 군사 정보만이 아니라, 중국인 누구나 일상에서 공유했을 법한 중국 가정의 얘기를 해보고자 하는 것이 이 책의 취지이다. 

이 책에서 주요하게 다룬 혼인과 상속문제는 가정을 성립하고 유지하게 하는 핵심원리이다. 특히 중화민국의 가족법인 「민법」 친속편과 계승편을 제정하게 되는 배경과 과정을 추적했다. 중국 전통사회는 관습과 전통이라는 사회적 규범에 의해 민간의 질서가 유지되고 있었다. 근대시기, 국가는 이러한 민간의 사회적 규범을 국가체제 속으로 수렴하여 직접 통제하고자 했고, 이것은 근대법의 제정과 시행으로 나타났다. 혼인법에 해당하는 친속편은 전통적으로도 국가의 기강이나 이념을 반영하는 것이었고, 상속법에 해당하는 계승편은 중국의 고유한 사유방식과 예(禮)에 기초를 둔 오랜 관습의 반영이었다. 따라서 전통의 관습과 근대적 법이 서로 수렴되고 관철되는 과정을 검토했다.

1930년 산서성에서 작성된 분가 문서<br>(출처: 손승희, 『중국의 가정, 민간계약문서로 엿보다: 분가와 상속』, 학고방, 2018, 195-197쪽).<br>
           1930년 산서성에서 작성된 분가 문서
(출처: 손승희, 『중국의 가정, 민간계약문서로 엿보다: 분가와 상속』, 학고방, 2018, 195-197쪽).

내용은 중국의 ‘전통 가정의 구조’, ‘분가와 상속’, ‘혼인과 이혼’, ‘혼인 관습’, ‘국가와 가족’, ‘당대(當代) 혼인과 관습’의 여섯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속에 각각 몇 개의 작은 주제로 분류되어 있다. 

‘전통 가정의 구조’에서는 전통 가정의 경제구조로서 ‘동거공재(同居共財)’를 논했고, 전통 가정의 핵심문제로서 ‘종조계승(宗祧繼承)’을 다루었다. 중국 전통가정에서 재산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공유재산을 의미했다. 즉 가족 성원 간에 생산과 소비를 일치시키는 재산의 공유관계였는데, 이를 동거공재라고 한다. 종조계승은 남자 가계(家系)의 대를 잇는 것이다. 여기에는 분가, 즉 재산분할을 전제로 했기 때문에 재산상속권은 아들들에게만 부여되었다. 

‘분가와 상속’에서는 동거공재 가정의 재산이 아들들에게 분할되는 과정과 이에 따른 분가 관습을 검토했다. 분가는 형제균분의 원칙에 따라 보편적으로 행해졌지만, 현실에서는 이를 변용한 실례들이 존재했는데 이에 대해서도 검토했다.

구박받는 동양식(童養媳) (출처: 『天津畫報』, 1925년 4월 11일)

‘혼인과 이혼’에서는 전통시기 민간에서 행해졌던 각종 혼인형태를 검토했다. 전통가정의 핵심 근거인 종조계승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방법을 통해 아들을 얻었고, 이에 따라 각종 혼인형태가 행해졌다. 특히 하층민간사회에서는 동양식(童養媳: 어린 신부)을 들이거나, 양녀나 과부며느리(寡媳)를 통해 데릴사위를 들이는 혼인형태(招贅, 招夫)가 보편적으로 행해졌다. 이러한 관습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사회경제적인 측면을 검토했다. 

‘혼인 관습’에서는 전통시기 많은 지역에서 행해졌던 ‘곡가(哭嫁)’ 관습에 주목하여 곡가가 왜 행해졌는지 그 의미는 무엇이었는지를 검토했다. 혼인제도는 상속제도와도 밀접한 관계를 갖는데, 한국과 중국의 전통 혼인제도의 비교를 통해 이에 대한 시론적 분석을 가했다. 

‘국가와 가족’에서는 국가권력에 의해 제정된 근대 혼인법과 상속법을 다루었다. 청말부터 시작되었던 전통법에 대한 법률개혁은 「민법」의 제정과 시행을 통해 전통 가산제(家産制)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가족의 공유재산을 규정했던 전통법은 「민법」에서 남녀평등과 가족 내 개인의 재산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근대 상속법의 제정, 지난했던 딸의 상속권 확립과정, 「민법」의 제정에 따른 전통 가장권의 변화, 민간사회의 혼인 성립요건에 대한 국가권력의 개입 등을 검토했다. 

‘당대(當代) 혼인’에서는 역사적인 연속성의 측면에서 전통 혼서(婚書)에서 유래한 현재의 ‘결혼증’에 주목했다. 또한 전통적으로 혹은 현재에도 여전히 고비용의 결혼비용을 지불하는 중국인의 결혼 관습, 전통의 이름으로 부활하는 ‘차이리(彩禮)’ 관습, 술로써 예를 갖추는 중국인의 결혼의례를 분석했다. 

이상의 주제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중점을 두었던 것은 민간의 관습과 국가법 사이의 길항관계, 그리고 관습의 연속성이다. 관습은 견고했고 법 실현에서는 온전히 국가권력의 의도대로 진행되지는 않았다. 중화민국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전통과 관습을 유의미하게 변화시킨 것은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이후의 일이다.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강력한 행정력을 동원하여 전통 가족제도와 관습을 상당히 변화시켰다. 그러나 개혁개방 이후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사회 분위기 속에서 그동안 억눌려왔던 전통 관습이 부활하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는 ‘차이리’ 관습(현대판 신붓값), 바오얼나이(包二奶: 현대판 첩) 등이다. 딸을 제외하는 전통 분가 행위도 일부 농촌에서 행해지고 있고, 혼인을 중시하여 결혼비용을 과다지출하는 관습 또한 현재에도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가족 관련 관습의 연속성과 지속성은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으로 생명력이 길다. 이런 관점에서 앞으로 어떤 현상이 어떤 형태로 부활하는지, 무엇이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지, 중국인의 내면 의식은 무엇인지, 이에 대한 국가권력의 대응은 어떻게 나타나는지 등에 대해, 주의 깊게 살펴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손승희 중앙대·중국근현대사

중앙대 중앙사학연구소 연구교수. 중국 푸단대학에서 역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인천대 중국학술원 연구교수를 역임했다. 관심 주제는 혼인과 상속, 부양 등 중국 전통가정의 구조, 운영, 관습에 대한 근대적인 변화이다. 특히 민간에서 생성된 계약문서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작업을 통해 민간의 자율적인 질서와 법의 조화, 타협을 파악하는 데 매진하고 있다. 주요 연구로는 『중국의 가정, 민간계약문서로 엿보다: 분가와 상속』, 『민간계약문서에 투영된 중국인의 경제생활: 합과와 대차』, 『이성이 설 곳 없는 계몽』(역서), 『중국 민간조직의 단면: 길림성 동향상회 구술집』(공저), 『중국 동북지역의 상인과 상업네트워크』(공저), 『중국도시樂』(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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