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의 몰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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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의 몰염치
  • 김범수 논설위원/서울대 자유전공학부·정치학
  • 승인 2022.07.24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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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수 칼럼]

최근 발표된 여론조사에서 출범 두 달을 갓 넘긴 윤석열 정부의 국정 지지율이 30%대 초반으로 떨어지면서 지지율 하락의 원인을 분석하는 기사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대부분의 기사가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원인은 인사 문제와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논란, ‘도어스테핑’에서 보여준 윤석열 대통령의 정제되지 못한 발언과 ‘오만’한 태도, 여당의 내분과 일부 인사의 부적절한 발언,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경제 위기 속에서 별다른 대책을 제시하지 못한 채 과거 정부만 탓하는 ‘무능’ 등이다. 그러나 이처럼 드러난 원인들의 이면에 숨겨진 핵심 원인은 아마도 윤석열 정부의 ‘몰염치’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감이 아닌가 싶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윤석열 대통령은 박근혜 정부 시기인 2013년 국정감사장에서 ‘국정원 댓글조작 사건’ 수사 때 외압이 있었다는 사실을 폭로하면서 “저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습니다”라는 말로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강골 검사’의 이미지를 얻었다. 이후 박근혜 정부 시기 한직을 떠돌다 문재인 정부 들어 서울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으로 재직하며 조국 전 법무부장관 수사와 검찰개혁 과정에서 문재인 정부와의 대립을 통해 ‘공정과 정의를 수호’하는 ‘강골 검사’의 이미지를 국민들에게 각인시켰다. 

지난 3월 9일에 실시된 제20대 대통령선거에서 정치 경험이 전무한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된 배경에는 이처럼 검사로 재직할 당시 보여준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공정과 정의를 수호하는’ 모습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는 정부 출범 후 두 달도 지나지 않아 실망감과 배신감으로 바뀌고 있다. 

많은 국민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윤석열 대통령의 과거 모습은 조국 전 법무부장관 가족의 ‘비리’와 ‘스펙 위조’를 밝히기 위해 정권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수십여 차례 압수 수색을 불사할 정도로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강골 검사의 이미지인데 대통령이 된 후 현재 모습은 너무 실망스럽다. 김건희 여사의 주가조작 연루 의혹과 허위 이력 논란, 논문 표절 논란, 장모 최은순의 사문서 위조를 비롯한 여러 논란은 별개로 하더라도 초대 내각에 장관으로 지명되거나 임명된 인사들을 둘러싼 논란을 대하는 태도는 과거와는 완전 딴판이다. 도어스테핑에서 인사 실패를 지적하는 기자들의 질문에 “전 정권과 비교해 보라”, “전 정권에 지명된 장관 중에 이렇게 훌륭한 사람을 봤느냐”고 이야기하며 불쾌한 기색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윤석열 대통령의 모습은 과거 조국 전 법무부장관의 청문회를 앞두고 전격적으로 압수 수색을 밀어 붙이던 검찰총장 윤석열의 모습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여기에 더해 ‘공정과 상식’의 회복을 모토로 윤석열 대통령을 도와 집권에 성공한 주변 인사들의 언행 또한 너무 실망스럽다. 윤석열 대통령의 최측근 중 최측근으로 ‘조국 수사’를 진두지휘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청문회를 앞두고 자녀 ‘스펙 쌓기’ 논란이 벌어졌을 당시 “입시에 사용한 적 없고 사용할 계획도 없기” 때문에 문제되지 않는다고 이야기했는데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공감할 국민이 과연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또한 지난 4월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의 단골 디자이너 딸이 청와대에 근무하는 것을 두고 ‘채용 비리’라고 몰아붙이던 국민의힘 인사들이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지인들의 대통령실 채용을 아무 문제없는 것으로 정당화하는 모습도 보기 불편하다. 특히 ‘윤핵관’으로 꼽히는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7급에 넣어줄 줄 알았더니 9급에 넣었더라”, “높은 자리도 아니고 행정요원 9급으로 들어갔는데” 그게 무슨 문제냐, “최저임금보다 조금 더 받아서 내가 미안하더라”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것을 보면서 많은 국민들이 실망감을 넘어 배신감을 토로하고 있는 실정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주변 인사들의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언행을 보며 많은 국민들은 윤석열 정부가 ‘염치가 없어도 너무 없다’고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체면을 차릴 줄 알며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을 의미하는 염치(廉恥)는 과거 우리나라를 비롯한 유교권에서 정치인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 가운데 하나로 받아들여졌다. 반면 수치심을 모른 채 자기 잘못을 타인에게 떠넘기는 몰염치(沒廉恥)는 엄히 다스려야 할 잘못으로 인식되었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과 주변 인사들의 언행을 보면 왜 염치가 정치인의 가장 중요한 덕목 가운데 하나인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윤석열 정부가 하루 속히 몰염치에서 벗어나 염치를 차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김범수 논설위원/서울대 자유전공학부·정치학

서울대학교 외교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친 후 미국 시카고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0년부터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며 현재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부원장과 한국정치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공정이란 무엇인가: 공정한 나를 지켜줄 7가지 정의론』(아카넷, 2022), 『한일관계 갈등을 넘어 화해로』(박문사, 2021, 공저), 『인권의 정치사상: 현대 인권 담론의 쟁점과 전망』(이학사, 2010, 공저) 등의 저서가 있으며, 정의, 인권, 평화, 민족주의 등 현대정치이론의 주요 주제를 중심으로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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