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서구 사회가 자본주의를 받아들이지 못한 원인은 소유권과 재산권의 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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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서구 사회가 자본주의를 받아들이지 못한 원인은 소유권과 재산권의 부재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2.07.19 02: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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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본의 미스터리: 왜 자본주의는 서구에서만 성공하는가 | 에르난도 데소토 지음 | 윤영호 옮김 | 세종서적 | 288쪽

 

서구사회는 날이 갈수록 번창하는데, 비서구 사회들은 서구사회에 비해 낙후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서구사회에서는 자본주의가 성공적으로 안착한 반면에 비서구 사회에서는 자본주의가 발전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 까닭은 무엇일까? 제3세계와 과거 사회주의국가들로 대표되는 비서구 사회에서 자본주의는 왜 발전하지 못했는가? 비서구사회의 사람들이 유전적으로 더 열등해서일까? 아니면 문화적 차이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까? 저자인 에르난도 데소토는 다른 해답을 제시한다. 비서구 사회에서 자본주의가 실패하는 이유는 자본을 생성하는 데에 필수적인 기반이 되는 소유권이나 재산권을 비롯한 합리적인 시스템이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자산은 잉여가치를 창출하기 위해서 시스템을 통해 조합되고 분할되고 투자되는 과정을 거친다. 그렇게 해서 자산은 자본이 된다. 잉여가치를 생산하지 못하는 자본은 자본이 아니며, ‘죽은 재산’에 불과하다는 것이 저자의 핵심주장이다.

자본 = 자산 + 노동 + 재산 체제

소유권이라는 명시적인 수단을 통해 자산의 경제적인 잠재성은 극대화된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의 흐름이 지속되고 촉진되기 위해서는, 즉 자본주의가 번창하기 위해서는 이를 가능하게 하는 시스템이 필수적인 것이다.

이 시스템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소유권과 재산권을 비롯한 공식적인 재산 체제가 될 수도 있고 법체계라고 할 수도 있다. 합법적인 재산 체제는 가치를 교환하는 데 있어서 결정적인 수단이다.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서구사회는 많은 부침을 겪으면서 이러한 시스템을 확립하는 데에 성공했다. 그러나 제3세계와 과거 사회주의국가들에서는 이러한 시스템이 잘 작동하지 않는다. 법체계가 혼란스러운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기본적인 소유권과 재산권도 잘 확립되어 있지 않다보니, 경제활동에 장애와 제약이 된다. 

이들 세계의 빈민들이나 이민자들은 자신들이 만든 규칙들에 의존한다. 소유권이 불분명하다 보니, 이민자들은 거주 공간을 무단으로 점거해서 살아가게 된다. 사실 이들이 폭력적이거나 무법자라서 그런 것은 아니다. 소유권을 갈망하고 합리적인 법질서 속에서 살아가기를 바라는 건 그 누구도 아닌 이들이다. 법절차가 너무 번거로워서 자신이 개척한 공간이 합리적인 법망 내에서 정식적으로 인정받기에는 수백 년의 세월이 걸린다. 그래서 이들은 너무 큰 불편과 비용을 감수해서 공식적인 법체계에 속하느니 불법으로 남기를 선택하고, 자신들을 또 다른 불법 점거자들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비공식적인 조직에 의존한다. 법이 확립되어 있지 않다보니, 불법이 판을 치고 이는 계속해서 악순환을 낳는다.

자산을 제대로 운용해서 그것을 자본으로 전환시키는 데에 성공한 사람들은 기득권을 위한 법망을 이해하고 그것을 교묘히 이용할 줄 아는 엘리트 계층뿐이다. 결국 실제 현실과 동떨어져 있고 국민 대다수를 차지하는 빈민층을 위하지 않는 법 체계는 계층 간의 갈등을 격화시킨다. 빈민들이 보유한 ‘죽은 재산’들의 가치는 실로 어마어마해서 만약 잘 확립된 시스템을 통해서 잉여가치를 생성해내고 경제 흐름을 촉진시킨다면 계층 간 불평등이 완화되고, 비서구 사회가 서구사회의 자본주의를 따라잡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법에 의해 보호받는 소유권의 중요성을 역설한 이 책은 데이터 시대의 블록체인 기술의 필요성을 경제학적 관점에서 미리 내다보았다. 블록체인은 데이터에 대한 소유권을 토큰화해서 극소단위로 분할하므로 거래를 매우 원활하게 해준다. 이 점은 자본주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 중 하나가 소유권의 부재로 인한 거래행위의 체증이라는 책의 내용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원시데이터를 가공처리해서 부가가치를 획득하고 자산으로서의 가치를 지니는 데이터가 위조·변조되는 것을 막아줌으로서, 데이터소유권을 확립하는 기술적 기반이 된다.

이전에는 오직 정부가 재산을 합법화해주기를 기대했지만, 이제는 개인들 간의 신뢰 기록인 블록체인, 비트코인이 자산의 권리가 보장될 수 있다. 빈국에 잠재되어 있는 막대한 자산 그리고 무형의 지적재산권, 그림, 게임 아이템 등이 블록체인으로 더 활발하게 거래될 때 세상은 얼마나 달라질까? 이전까지는 데이터소유권이라는 개념이 매우 생소했지만, 블록체인은 소유권의 영역을 데이터까지 확장시켜 자본의 영역을 더욱 넓힐 것이다. 그렇게 되면 비트코인 거래가 더 활성화되고 데이터 경제가 발전하면서 부를 더 확산시킬 것이고, 우리 생활을 이롭게 하는 자본주의의 발전이 더 촉진될 것이다.

이 책에서는 유럽이나 미국과도 같은 선진국의 역사를 예로 들어가면서, 비서구사회가 합리적인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서는 어떠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어떻게 개혁을 거쳐야 하는지를 설명한다. 이 책은 그러한 시스템을 유지하고 더 발전시키기 위해서 현실정치와 법을 발전시킬 의무가 있는 정치가와 지도자들의 중요성 또한 강조한다. 그렇기 때문에 비트코인과 블록체인, 부동산 정책, 현실과 괴리된 세금 정책 등이 문제가 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공식적인 법과 시스템이 실제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는지 고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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