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제 아제 바라아제
상태바
아제 아제 바라아제
  • 연호탁 가톨릭관동대·영어학
  • 승인 2022.07.18 03: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호탁의 ‘말로 푸는 역사 기행’]

■ 연호탁의 '말로 푸는 역사 기행'(80)_ 아제 아제 바라아제

 

“Gate Gate Paragate Parasamgate Bodhi Svaha”
 

위 로마자로 표기한 고대 범어 즉 산스크리트어 문장이다. 정확하게는 힌두교, 불교 등에서 사용되는 만트라(mantra) 즉 기도 주문인 眞言이다. 다라니라고도 한다. 그리고 앞부분 “Gate Gate Paragate”는 얼마 전 세상을 떠난 강수연 주연의 영화 <아제 아제 바라아제>의 원문이다. 

그런데 우리말과 범어의 소리 간극이 꽤 크다. 로마자로 표기된 범문(梵文) 만트라를 읽는다면 “가테 가테 파라가테” 쯤 될 것인데 역경(譯經) 과정에서 비롯된 웃지 못 할 현실이다. 원산지인 인도에서의 “가테 가테 파라가테 파라삼가테 보디 스와하”가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로 소리 탈바꿈을 하게 된 배경에는 무엇보다 한자가 자리 잡고 있다.  

Gate는 걷다, 걸음(보폭), 길을 의미하는 gati의 호격, 단수, 여성형이라고 한다. Gati의 어근은 gam(to go)이다. 그러고 보니 어쩐지 우리말 ‘가다’와 함께 변용형 가세, 가자 등이 떠오른다. 혹시 우리말 ‘가다’는 인도말이 들어온 것일까? 아니면 우리말이 인도로 흘러간 것은 아닐까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는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 娑婆訶”의 음역이다. 불행히도 동일한 한자에 대한 음가의 차이가 너무 크다. 일단 현재 우리의 한자음으로 읽는다면 “게체게체 파라게체 파라승게체 보제 사파하”라고 해야 한다. 왜 ‘가테’의 음역어가 ‘게체’가 되었을까? 중국의 한자음으로 표기하면 “jie-di jie-di bo-luo jie-di bo-luo seng jie-di pu-di sa-po-he”가 될 것이다. 

얼핏 우리 말소리와 원음인 범어 소리는 음역에 필요한 음성적 유사성이 보이지 않는다. 다시 말해 베끼는 대상과 베낀 말소리가 상호 아무런 상관도 없어 보인다. 그런데 소리 차용인 음역이라는 관점에서 말하자면 산스크리트어 소리를 자신들의 언어로 표기한 중국의 漢譯이 원음과 흡사해야 마땅하다. 그러자면 산스크리트 경전을 한자로 전사할 시기에 중국어에는 /d/, /t/음의 구개음화 현상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이 전제되어야 한다. 우리말도 중세는 물론 근대에 이르기까지 구개음화가 보편적인 현상이 아니었다. 지금의 동시대라 해도 지역 차가 있어서 電氣의 남한말은 ‘전기’, 북한말은 ‘뎐기’로 후자쪽이 더 변화에 보수적이었다.

훈민정음 창제 시기인 15세기 무렵 우리나라에서 中國은 /뒹궉/으로 읽혔다. 중국에서는 /종궈/(zhōng guo 또는 zhòng guo)́라고 했다, 그 당시 ‘절’의 우리말은 ‘뎔’이었다. 현재 우리는 天의 초성(初聲)을 ㅊ으로 읽는데 중국은 여전히 치경음 t로 발음한다. 丁의 중국 한자음은 [dīng]과 [zhēng] 두 개의 변이형이 있고, 鄭의 병음은 [zhèng]인 것으로 보아 구개음화가 진행 중임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입천장소리인 구개음 ‘정’으로 읽는 다른 한자어 正(zhèng, zhēng), 貞(zhēn), 情(qíng), 庭(tíng), 鼎(dǐng), 亭(tíng) 등의 병음을 비교해보면 거대한 대륙국가의 말소리에 존재하는 이런 차이에 대한 해답을 구하기가 쉽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말은 살아서 끝없이 꿈틀댄다.

음차에 있어 조음(調音) 위치나 방법도 중요하지만 중국어의 경우 가장 큰 특징 내지 난제가 성조(聲調)다. 어려서부터 성조가 몸에 밴 토박이 중국어 사용자와는 달리, 성조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중국어 학습이 쉽지 않다.

인도유럽어 전문의 헝가리 출신 비교언어학자 쎄메레에늬(Szemerényi, Oswald John Lewis, 1913~1996)<br>
인도유럽어 전문의 헝가리 출신 비교언어학자 쎄메레에늬(Szemerényi, Oswald John Lewis, 1913~1996)

말소리 또한 초보 학습자를 두렵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프랑스어의 경우 3개의 변이음을 가진 /r/을 구별해 발음하는 것이 어렵듯, 고대 투르크어와 그 후손 언어들에 남아 있는 연구개 마찰음/ɣ/(as in soɣd)를 제대로 발음하는 것이 무척 힘들다. 이 소리는 희랍문자 감마 /ɣ/, 투르크諸語 /ġ/, 한자 /特(tè)/, 로마자 /g/, /gh/ 등으로 표기되지만, 말하는 이에 따라 미묘한 소리 차이를 보인다. 연구개는 부드러운 입천장, 여린입천장, 물렁입천장이라고도 하는데 입천장에서 비교적 부드러운 뒤쪽 부분을 말한다.

기원 전 부터 중앙아시아 아무다리야 강과 시르다리야 강 일대인 河中지방을 주 무대로 유목생활을 하던 사람들을 소그드인이라고 했다. 소그드는 Sogd(영어), Sug'd(우즈벡어), Soġd(페르시아어), Σογδ(그리스어), 粟特(속특) 등으로 전사된다. 그런데 아래에서 보듯 쎄메레에늬라는 인도유럽어 전문의 헝가리 비교언어학자(Szemerényi, Oswald John Lewis, 1913~1996)가 고대 소그드인의 자칭이라고 추정하는 *Suγδa의 變轉 과정에 연구개 마찰음 /γ/ 자리에 연구개 파열음 /k/를 음운 대응으로 병치한 것으로 보인다. 

Skuda > *Sukuda > *Sukuδa > *Sukδa (語中音소실) > *Suγδa (동화작용).

여기서 문제는 /γ/가 g, k, h로 들릴 수 있으며 마찰 정도에 따라 아예 없는 소리가 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현 중국 서부 신장 위구르 자치주의 대표 주민은 위구르족이다. 위구르를 Uighur, Uyghurs, 回鶻(회골), 畏吾兒(외오아) 등으로 전사하는데, 回鶻은 본래 回紇(회흘, oigur)과 烏揭(오게) 즉 오고사인(烏古斯人)의 부족연맹체였다. 돌궐인들은 回紇을 九姓 汗國(9성 부족 연맹체)이라는 의미로 토구즈 오구즈라고 불렀는데 토구즈와 오구즈의 음역이 다양하다.: Toquz, Toghuz; Oγuz, Oguz, Oghuz, Ghuzz, Uzes, Ouzoi, etc.

연구개 파열음 /g/를 어두음으로 하는 고대 범어 gate가 음역되는 과정에서 아제가 되었다. 이에 대해 gate의 어두음 g가 탈락되어 ate로, ate에 구개음화가 작용해서 아제(aze)로 음운변화가 일어난 것이라는 설명이 가능하다.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이 말은 대승경전의 백미 <반야심경>의 말미에 나온다. <반야심경>의 본 이름은 <금강반야바라밀다심경>이다. 다이아몬드처럼 굳건한 지혜바라밀을 위한 마음 수행의 경전이 반야심경이다.

아제            Gate = gone---------------------------------------------------가세
아제            Gate = gone---------------------------------------------------가세
바라 아제     para gate = gone to the other shore--------------------피안으로 가세
바라승아제   Parasamgate = completely gone to the other shore---피안으로 어서 가세
모지 사바하  Bodhi Swaha = Enlightenment Hail!------------------깨달음을 얻을지라!


연호탁 가톨릭관동대·영어학

한국외대에서 영어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명지대에서 중앙아시아사 전공으로 두 번째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가톨릭관동대 관광경영학과 교수로 그동안 『중앙일보』에 ‘차의 고향’, 『동아일보』, 『중앙일보』, 『문화일보』 등에 칼럼 ‘문명의 뒤안, 오지 사람들’, 『교수신문』에 ‘욕망의 음식: 음식문화사’를 연재했다. 저서로는 『문명의 뒤안 오지의 사람들』, 『차의 고향을 찾아서』, 『궁즉통 영어회화』, 『중앙아시아 인문학 기행: 몽골 초원에서 흑해까지』, 『문화를 여행하다: Travel, Culture&People』 등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