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는 미래의 인간이 아니라 이미 인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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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는 미래의 인간이 아니라 이미 인간입니다”
  • 이우진 공주교육대학교·교육학
  • 승인 2022.07.17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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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말]

■ 옮긴이의 말_ 『야누시 코르차크: 정의를 위한 교육』 (주프 버딩 지음, 이우진 옮김, 모시는사람들, 208쪽, 2022.05)

 

야누시 코르차크(1878~1942)의 삶과 사상은 한 편의 시(詩)였다. 시는 말하고자 하는 대상의 외피만을 화려하게 그리지 않는다. 시는 그 대상의 심연(深淵)에 놓여있는 인간 영혼의 무게를 노래한다. 그 비밀의 언어를 들은 독자들은 어느새 시인의 영혼을 느끼게 된다. 코르차크의 삶과 사상을 추적하다보면, 그가 평생을 통해 ‘어린이는 누구인가?, 인간 사회 즉 정의로운 사회라는 이름에 걸맞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의 노래를 불렀음을 느끼게 된다. 코르차크는 시대를 앞선 선구자였을 뿐만 아니라, 어린이들이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언제나 모색했던 진정한 실험가이자 혁신가였다. 우리가 지금 당연히 받아들이고 있는 ‘어린이의 권리, 어린이의 참여, 어린이의 존엄성’도 많은 부분 그의 유산 덕분이다. 

코르차크는 모든 인간이 가만히 앉아 해방을 기다리는 ‘호모 라팍스(homo rapax) 즉 탐욕스러운 인간’임을 알고 있었다. 다시 말해, 우리 모두는 동료를 괴롭히고 심지어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 ‘탐욕스러운 인간’인 것이다. 우리는 정의롭지 못한 부조리한 현실에 언제나 뒷짐을 지고 가만히 바라볼 뿐 선뜻 나서지 못하는 존재들이다. 하지만 그는 인간의 본질이 이러한 특성만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지 않았다. 왜냐하면 인간은 또한 ‘절망적인 현실을 넘어서기를 갈망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보다 나은 삶, 진리와 정의로운 삶을 갈망하는 것’이 바로 인간의 또 다른 본질인 것이다. 코르차크는 인간의 이러한 이중적 면모를 명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통곡이 난무하는 불바다의 현실에서 보다 나은 미래를 갈망하는 노래를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부르며 살아갔다. 우리에게는 야누시 코르차크라는 이름과 함께 그의 애끓는 노랫말이 여전히 낯설다. 하지만 그가 평생을 불렀던 노랫말에 유럽, 북미와 남미, 일본, 아프리카와 같은 전 세계의 수많은 교육자들이 매료된 상황이다. 그들은 코르차크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비극이 난무하는 이 끔찍한 현실에서 보다 나은 미래를 향한 갈망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사실 시인이 불렀던 비밀의 시는 쉽사리 이해되지는 않는다. 화려한 어휘와 분석의 도구만을 가지고 해석하다 보면 자칫 그 시에 담긴 영혼의 비밀을 깨뜨리는 실수를 범하게 되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 시에 정통하면서도 친절하게 안내하는 해설자가 필요하다. 이 책의 저자인 주프 버딩(Joop W. A. Berding)은 바로 그러한 해설자이다. 야누시 코르차크의 삶과 사상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그 본연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전달해 줄 뿐만 아니라 너무도 친절하고도 명료하게 해설해주고 있다. 그의 안내를 따라가 보면, 가슴 깊이 들어와 꽂히는 감동은 물론이고 너무나 흥미진진하여 어느새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마주하게 된다. 

 

폴란드 트레블링카 수용소 터에 조성된 추모공원에 있는 야누시 코르차크의 추모석. 그 돌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야누시 코르차크(헨리크 골트슈미트) 그리고 아이들.” 본명은 헨리크 골트슈미트(Henryk Goldszmit), 야누시 코르차크는 필명이다.

주프 버딩은 자신의 책을 통해, ‘코르차크의 삶과 교육’, 그리고 ‘어린이의 권리와 정의를 위한 그의 투쟁’에는 본질적인 관계가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다. 먼저 코르차크의 생애와 작품들을 흥미진진하게 그리고 있다. 특히 주프 버딩은 이야기꾼이자 시인이요 음악가이자 극작가 더불어 성공한 교육자로서 살았던 코르차크의 인생을 미화하지 않는다. 그 삶에 담긴 코르차크의 실패와 좌절, 고통 등을 면밀하게 그리고 있다. 코르차크의 어린 시절부터 자신이 보살피던 고아들과 독가스 처형장으로 끌려가는 트레블링카(Treblinka)행 열차에 오르기까지의 마지막 인생노정을 ‘한 교육자의 성장이야기’로 그려내고 있다. 한 마디로 ‘교육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교육자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코르차크가 평생 동안 지녔던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제시하고 있다. 

여기서 주프 버딩은 코르차크가 인생이라는 힘든 노정을 통해 ‘교육자가 된다는 것’에 대한 나름의 답을 찾았다고 제시한다. 그 대답은 바로 ‘어린이를 교육하는 것은 그들이 원하는 것을 무조건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대화하며 토론하고 중재하며 조정하는 것이자, 무엇보다 교육자와 어린이들이 끊임없이 계속해서 노력하는 일’이라는 사실이다. 또한 ‘교육은 교육자의 즐거움이나 편안함을 위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정의로운 공동체를 구축하고 유지할 것인가에 관한 일’인 것이다. 진정 나와는 다른 이들과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인간이 감수해야 할 가장 큰 과제이다. 때문에 코르차크는 교육을 ‘지금 어떻게 함께 살아가야 하는가에 관한 일’로서 이해한 것이었다. 교육은 ‘내일도 아니고 어디 다른 곳도 아니며, 나중에 어른이 되었을 때도 아닌, 지금 여기에 구체적으로 눈에 보이는 상황에서 어떻게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가’에 관한 문제인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교사나 교육자가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이 자신의 권리를 발휘할 수 있도록 ‘존중의 법칙’을 보장해야 한다고 코르차크는 생각했다. 바로 교육은 ‘공화주의적인 삶을 배우고 실천하는 활동’이었던 것이다. 

코르차크는 자신의 삶을 통해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 간에 이해관계를 조정해 가는 ‘정의로운 공동체’를 구축하고자 하였다. 그는 교육자로서 권위주의적인 교육이나 양육방식에 의존하지 않고, 제멋대로인 어린이들과 함께 민주적이고 공화주의적인 방법으로 생활하고 일하는 실험을 평생 동안 수행하였던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존중의 법칙’이 요청된다고 코르차크는 생각하였다. 이 존중의 법칙이란 ‘어린이를 포함하여 모든 사람은 각각의 동기, 욕망, 이해관계를 지니고 있으며, 누구나 자신에게 최선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추구할 권리가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코르차크의 말대로 ‘우리는 어린이를 잘 모른다.’ 아니 더 심각한 것은 ‘우리는 편견을 통해 어린이를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른이 되는 것을 이상화함에 따라 강박적일 만큼 어린이의 발달을 자극할 뿐, 그 어린이가 오늘 무엇을 성취하고 무엇을 누릴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어린이들의 발언과 의견을 무시한다. 어른들의 시각에서 어린이는 때때로 인간으로 간주되지 않는 실정이다. 어린이들을 미래의 사람들로만 여길 뿐, 그들이 지금 여기에서 살게 하는 걸 허락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억압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코르차크는 ‘어린이는 미래의 인간이 아니라 이미 인간’임을 강조하였다. 바로 그는 ‘존중의 법칙’을 통해 ‘모든 어린이들이 각기 발언권과 이를 행사할 기회를 지니며 또 서로의 발언을 진지하게 듣고 받아들여야 함’을 이야기하였다. 

하지만 여기서 놓쳐서는 안 되는 사실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어린이를 포함하여 어느 누구든 간에 자신의 발언이나 권리를 내세우도록 하는 것으로 ‘존중의 법칙’이 마무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기 자신과 마찬가지로 최선의 것을 추구하고자 하는 다른 이들의 권리를 인정하며, 이에 따라 자신의 권리를 제한하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존중의 법칙이다. 서로의 목소리가 표현되고 있느냐보다 경청되고 있느냐가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코르차크가 생각하는 올바른 권리는 ‘사회적인 권리이자 정치적인 권리’요, ‘개인주의적인 권리가 아니라 서로의 권리를 인정하는 권리’이다. 곧 서로의 권리를 존중하기 위해 자신의 의무와 책임을 인정하는 권리, 이른바 ‘존중의 법칙’을 실현하기 위한 권리인 것이다. 코르차크는 이러한 권리야 말로 정의, 평등, 민주적인 공동생활을 추구하는 공동체에 있어서 중요한 구성 요소가 되며, 이러한 권리를 어린이들에게 심어주기 위해 평생 동안 최선을 다해왔다. 

주프 버딩은 코르차크가 정의로운 공동체를 구축하기 위한 실험으로 ‘세계 최초의 어린이법정’을 구축한 것을 높게 평가한다. 그의 말대로, 어린이법정은 무엇보다 이해관계나 욕망, 의견의 대립을 강자의 법이 지배하는 사적인 영역에서 벗어나서 공적인 영역에서 다루고자 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가치를 지닌다. 어린이들을 공동체의 일상 운영에 되도록 참여시키고 책임을 공유시키겠다는 코르차크의 의도는 어린이법정에서 가장 급진적인 형태로 실현되었다. 코르차크는 어린이법정 업무의 내용과 구조를 규정하기 위해 다수의 조문이 담긴 법전을 펴내기도 했다. 이를 바탕으로 분쟁 당사자들이 심리를 거친 뒤에 판결하도록 하였다. 놀랍게도 코르차크 역시 어린이들에게 5번 이상 고소당하였다. 이는 바로 그가 누구이건 간에 교육에 있어서 이중적인 도덕의 잣대는 있을 수 없다는 코르차크의 강한 신념 때문이었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어린이법정의 근본정신이다. 그것은 제재가 아니라 ‘용서’였다. 엄밀하게 말하면, 어린이법정은 성공적이지 못했다. 어린이법정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자 법정 업무를 중단시키기도 하는 등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어린이법정 뿐만이 아니었다. 그가 삶속에서 시행했던 수많은 교육학적 실험들은 실패로 점철되었다. 하지만 코르차크는 단 한 번도 포기하지 않았다. 교육자가 된다는 것은 오직 대화를 통해서만이 가능하며, 때로는 맡겨진 어린이들과 충돌하는 일도 감당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던 것이다. 무엇보다 코르차크가 교육자로서 지닌 가장 핵심적이면서도 특별한 자질은 언제나 ‘다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찾아내고자 하는 것이었다. 코르차크가 지은 「교육자의 기도」에 적혀있는 것처럼, 그는 어린이들을 가장 편안한 길로 인도하기보다는 가장 아름다운 길로 인도할 수 있는 교육자이고자 끊임없이 노력했다.

이 책은 여러 가지 장점들을 지니고 있다. 먼저 저자인 주프 버딩이 코르차크의 아름다운 명언들을 곁들이면서 독자들을 코르차크의 삶과 철학에 흥미진진하게 빠져들도록 만든다는 점이다. 책 표지를 열고 읽어나가는 동안 어느새 우리는 코르차크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게 됨을 느낄 수가 있다. 다음으로, 코르차크의 삶과 교육철학이 본질적으로 ‘정의를 위한 교육’이었음을 저자인 주프 버딩이 체계적이고도 명확하게 그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무엇보다 분량도 결코 많지 않고 읽기가 어렵지 않지만 독자에게 엄청난 생각거리들을 제공해 주기에 쉽사리 책을 덮을 수 없도록 만들고 있다는 점도 있다. 또한 「교육자의 기도」와 같은 코르차크의 명문들을 새로이 번역해서 소개하고 있다는 것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 책은 코르차크를 처음 접하는 이에게는 ‘입문서’로, 잘 알고 있는 이에게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는 교본으로, 전문가에게는 코르차크를 재발견하고 평가하는 논쟁적 토론서로서 충분히 값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야누시 코르차크: 정의를 위한 교육』이라는 책을 소개하는 이 글의 마무리를, 우리말로 옮기는 과정에서 눈물이 날 만큼 감동적이었던 구절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는 「고아원을 떠나는 어린이에게 전했던 고별인사」의 한 문장이다. 이 책의 저자인 주프 버딩이 말했듯이 번역자 역시 이보다 더 코르차크의 교육철학을 잘 보여주는 문장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말은 약하고 힘이 없어. 
그런데도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이 몇 마디 인사말뿐이야.
……
우리가 줄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뿐이야.
그것은 지금은 아직 아니지만
언젠가 존재할 보다 나은 삶에 대한 갈망,
바로 진리와 정의로운 삶에 대한 갈망이야.
어쩌면 이 갈망이 너를 하느님과 조국과 사랑으로 인도할지도 몰라.
잘 가. 그걸 잊어서는 안 돼.


이우진 공주교육대학교·교육학

공주교육대학교와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교육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차세대 한국학자로 선발되어 University of Washington에서 연구하였다. 현재 공주교육대학교 교육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교육철학을 공부하며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 Korean Education: Educational Thought, Systems and Content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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