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빛을 드리우는 방법, 문화콘텐츠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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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빛을 드리우는 방법, 문화콘텐츠 비평
  • 안미영 건국대·현대문학
  • 승인 2022.07.17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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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

■ 책을 말하다_ 『문화콘텐츠 비평』 (안미영 지음, 역락, 212쪽, 2022.05)

 

문화콘텐츠(Culture Contents)는 문화산업이나 문화주체의 문화 활동을 통해 생겨난 ‘문화적 요소가 체화된 부호ㆍ문자ㆍ도형ㆍ색채ㆍ음성ㆍ음향ㆍ이미지 및 영상 등의 자료 또는 정보’를 의미한다. 대한민국에서 문화콘텐츠로 인정되는 범위는 영화, 드라마, 다큐멘터리 등을 포함한 방송콘텐츠, 만화ㆍ웹툰ㆍ애니메이션ㆍ캐릭터, 문화원형을 이용한 콘텐츠, 대중음악, 뮤지컬 오페라, 연극 등의 공연, 컴퓨터 게임ㆍ모바일 게임 등의 게임, 인터넷 모바일 에듀테인먼트 콘텐츠, 전시기획, 테마파크, 축제 등의 공간 콘텐츠 등이다. 

『문화콘텐츠 비평』은 만화, 애니메이션, 영화를 대상으로 비평의 실제를 보여주고 있다. 콘텐츠의 기획이 아니라 콘텐츠를 향유(享有)하는 지적인 방법을 제안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소비하는 다양한 콘텐츠를 ‘보기’에 그치지 말고 ‘비평하기’를 시도해 보라는 것이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콘텐츠를 깊이 봄으로써 우리는 삶의 작은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비평이 낯설거나 어렵지 않음을 보여주기 위해 만화와 웹툰, 애니메이션, 영화 비평의 실제를 담았다. 

1장에서는 웹툰과 만화를 대상으로 만화의 구조와 효과를 다루고 있다. 만화는 ‘칸’과 ‘사이’를 통해 감정을 배치하고 ‘공감’을 ‘구조화’한다. 강풀은 서정적 경험을 극대화하고 공감의 구조화에 뛰어난 작가이다. 그런 까닭에 웹툰 『그대를 사랑합니다』(2007)는 영화로 제작되었을 때도 서사의 힘이 퇴색되지 않았다. 동일 작품의 웹툰과 영화를 비교해 보면, 영화의 캐릭터에 비해 오히려 만화의 ‘상상의 장치’가 주체와 객체의 교감과 화합에 기여한다. 예컨대 작중 우유, 오토바이, 머리핀, 장갑 등의 장치는 소재에 그치지 않고 인물과 인물 간 서정적 경험의 극대화에 기여한다.

만화는 상업적 목적 외 카툰 저널리즘을 실현한다. 박건웅의 『노근리 이야기 1, 2』(2006․2010)는 역사적 사건에 주목하여 카툰 저널리즘으로서 거대 담론에 기여한다. 작가는 한국전쟁 당시 노근리 양민 학살사건을 한국 전통 수묵화를 통해 재현해 보였다. 한국의 전통적인 한(恨)과 인고(忍苦)의 정서를 이원화의 방식으로 형상화한다. ‘대조’와 ‘대립’이라는 이원화는 ‘색채’와 ‘칸’의 구성과 배열을 통해 제시되는데, 작가는 이를 통해 전쟁을 넘어선 생명 시학을 선보인다. 

2장에서는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에 주목하여, 원작으로부터 애니메이션이 탄생되는 과정과 애니메이션의 서사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애니메이션 『오세암』(2003)은 설화(전설)와 동화를 거쳐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는데, 각각의 장르 변화를 통해 ‘어린 아이’에 대한 인식이 변화해 왔다. ‘불완전한 인간’→‘동심(童心)’의 창조→‘소년의 입사식’에 이르기까지 ‘어린이’의 성격화 과정을 분석하고 있다.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대상에 대한 이해가 달라지고 장르의 변화가 이루어짐을 알 수 있다.
 
『왕후심청』(2005) 분석을 통해 애니메이션이 지향해야 하는 바를 제시한다. 소재의 보편성, 비주얼 리터러시, 통로로서 판타지의 기능, 대중성과 구체성, 전통의 해석과 창조를 제시하고 있다. 『왕후심청』의 경우, 보편적인 소재를 선택했으나 영웅성을 강화한 나머지 이야기의 보편성을 상실했다. 판타지와 현실을 이어주는 통로는 구비했으나 판타지의 모험 서사가 부재한다. 익히 알려진 이야기를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할 때는 대중성과 구체성을 잃지 않도록 전통의 해석과 창조에 고심해야 한다.

3장에서는 영화분석을 통해 우리가 일상에서 갈망하는 구원에 주목했다. 영화 『미나리』(2021)는 미국 이민자들의 아메리카 토포필리아(Topophilia)를 보여주되, 이를 실현해 옮기는 힘이 가장(家長)의 수행성임을 제시한다. 교회가 아니라 가정에서 가장(家長)을 통해 십자가의 자기 수행, 제의(祭儀), 훈육과 포용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실현해 보인다. 카메라의 시선은 작중 인물과 자연을 전유하되, 가장(家長)을 놓치지 않고 있다. 감독은 가족을 통한 구원은 어디에서나 실현 가능한 신화라는 점을 강조한다.

영화 『바그다드 카페』(1987) 역시 암울한 현실을 희망으로 일구어 나가는 방법을 보여준다. 감독은 사막밖에 안 보이는 듯하지만, 사막에는 카페가 있으며 그 안에서 마술이 일어날 수 있음을 천착해 보인다. 조악한 현실과 마술의 긴장은 지극히 평범한 주인공의 평범한 일상을 통해 실현 가능한 희망으로 전달된다. 삭막한 사막의 작은 카페에서 현실의 그림자가 빛으로 화하는 순간.. 이것을 ‘마술’이라 명명할 때, 그것이 일상으로부터 그리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만화, 애니메이션, 영화, 드라마 등 문화콘텐츠를 소비한다. 이 책에서는 ‘소비(消費)’가 아니라 ‘향유(享有)’를 제안한다. 단순한 보기를 넘어서서 이해, 분석을 지향한다. 작품이 아니라 ‘텍스트’로 객관화 하여 진지하게 교감하고 그 안에서 논리를 발견하는 일은, 콘텐츠 읽기에 그치지 않고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삶을 읽는 경험으로 이어진다. 이것은 삶에 빛을 드리우는 일과 통한다. 자세히 읽어내지 않았던 현실의 문법과 삶의 방향성을 읽어내는 순간, 우리의 삶도 조금씩 변화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안미영 건국대·현대문학

건국대학교 글로컬캠퍼스 교양대학 교수. 한국 현대문학 소설을 전공했으며, 200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평론이 당선되어 현장비평도 하고 있다. 평론집으로 『낮은 목소리로 굽어보기』, 『소설, 의혹과 통찰의 수사학』이 있으며 『밀레니얼 세대, 청춘 시학』을 집필 중이다. 연구서로 『이상과 그의 시대』, 『이태준, 근대문학을 향한 열망』, 『잃어버린 목소리, 다시 찾은 목소리』, 『서구문학 수용사』 외 다수가 있다. 문학 텍스트는 문화의 근간이 된다. 문학 텍스트의 문해력과 문식력을 기반으로 다양한 콘텐츠 분석과 비평활동을 해왔으며 『문화콘텐츠 비평』은 작은 결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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