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건 매버릭〉에 대한 단상 - 꼰대인 당신과 꼰대가 될지 모를 누군가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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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건 매버릭〉에 대한 단상 - 꼰대인 당신과 꼰대가 될지 모를 누군가를 위해
  • 이송이 부산대·불문학
  • 승인 2022.07.17 17: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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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코로나가 조금씩 꺾이는 분위기 속에서 일부 사업들이 서서히 과거의 활기를 찾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곳이 영화계가 아닐까 한다. 여름 시즌을 겨냥한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차례로 개봉될 것처럼 보이는 현재의 상황으로 인해, 코로나 이전의 모습으로 가장 빨리 돌아가는 곳이 바로 영화관인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6월 말에 개봉된 <탑건 매버릭>은 한국 극장가에 지금의 분위기를 만드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하는 영화 중 하나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코로나 이전에 비해 확 뛰어오른 영화 관람료에도 불구하고, <탑건 매버릭>은 7월 12일 현재 484만 명을 동원하고 있으며, 계속 매버릭의 전투기처럼 고공 행진할 양상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팬 없이는 스타도 없다”라는 단순한 진리를 데뷔시절 부터 지금까지 잘 새기고 있는 톰 크루즈의 태도도 한 몫을 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세월이 흐른 만큼 <탑건>과 <탑건 매버릭>은 차이를 보여준다. CF 감독으로 이미 경력을 쌓았던 토니 스콧 감독이 <탑건>이라는 MTV세대를 위한 스타일리쉬한 군대 영화를 선보였다면, <탑건 매버릭>은 고전적인 할리우드 영화의 이야기 구조를 더 충실하게 존중하며 전개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탑건>에 거의 존재감이 없는 아프리카계 해병들과 박사학위를 받은 교관이지만 중요한 대사 없이 섹시한 태도만을 보여준 찰리가 있다면, <탑건 매버릭>에는 주요 역할을 맡은 아프리카계 장병, 신병들과 여성 생도가 등장한다. 대중영화가 개봉 당시의 대중의 욕구를 가장 잘 반영해야 성공한다는 것을 생각할 때 이와 같은 변화는 매우 바람직하게 보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충격적인 변화라면 한때 삐딱한 짓으로 교관의 속을 뒤집어놓던 매버릭이 과거의 가치에 집착하는 소위 “꼰대”로 변했다는 사실이다. 

몇 년 전까지 수많은 미디어에 등장하던 “꼰대”라는 은어의 유행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보통 은어, 속어는 세월에 따라 바뀌기 마련이다. 그런데 필자가 젊었을 당시에도 쓰지 않고 필자의 윗세대가 사용했을 법한 케케묵은 고어가 왜 현 시대를 반영하는 은어로 떠올랐을까? 필자가 어렸을 때 기성세대로부터 자주 듣던 말이 있었다. 내용은 다 다르지만 결론은 하나였는데 “니들은 너무 편하게 산다. 그래서 감사할 줄 모른다.”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한국전쟁을 겪었던 세대가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를 보고 느끼는 일반적인 감정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에 이런 말을 들으면 감사하기는커녕 뭔가 자신의 젊은 시절에 비해 편하게 보이는 젊은이들을 보고 늙은이들이 억울해 하며 질투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탑건>에서 <탑건 매버릭> 만큼이나 세월이 흐른 지금, 이제는 필자가 젊었을 때와는 달리 기성세대가 원하는 얘기를 마음 놓고 떠들 수 있는 시대는 지나간 듯하다. 대학에서도 교수들끼리 잡담을 하다가 젊은 세대의 낯선 태도를 누군가가 입에 올리면, “선생님, 그런 말 하면 바로 꼰대 소리 듣는 답니다.”라는 얘기를 바로 듣게 되기 때문이다. 필자도 아무 생각 없이 수업 시간에 과거의 학문적 환경에 대해 얘기를 꺼냈다가 짜증나는 듯한 표정을 짓는 학생들의 반응을 얻은 적이 있다 - 난 그냥 과거의 상황을 얘기한 것뿐이라고. 지금과 비교하는 게 아니라고 얘들아 . . . . 이런 상황 속에서 “젊은 꼰대”라는 신조어는 더욱 충격적이다. 아직 타임머신이 발명되었다는 얘기도 듣지 못 했는데, 폐기처분할 과거의 가치들을 고집하는 이 괴이한 젊은이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일까? 

매버릭은 무인 항공기가 대세가 될 미래를 역행하는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키기 위해 해군 소장과도 부딪치고 생도들과도 갈등을 겪는다. 하지만 그는 위험에 직접 부딪치며 젊은 생도들과 소통하면서 진정한 의미의 “탑건”이 되어간다. 그리고 과거의 유산을 새로운 지혜로 신세대에게 전수하는 데 성공한다. 뻔하지만 모두를 행복하게 만드는 이 할리우드식 엔딩은 “꼰대”들의 천지로 변해버린 오늘 우리 사회에 작은 시사점을 주는 것처럼 보인다. 

사어로 분류되어야 할 비어인 “꼰대”가 다시 통용된다는 현실은 우리 사회가 과거의 문제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필자가 젊었을 때도 그랬지만, 세대들 사이의 소통은 지금도 여전히 이루어지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현실이 바로 그것이다. 옛날에는 기성세대가 일방적으로 호통을 치고 젊은 세대들이 못 들은 척 하고 있었다면, 이제는 젊은 세대와 늙은 세대들 모두 아예 비난을 받기 싫어서 입 다문 채 서로를 피하고 있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수업 시간에 학생들의 발언에서 자주 느끼는 것은 방어감과 거부감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단순한 무지함이 아니라 과거와의 완전한 단절에서 오는 무지함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는 경우가 많았다. 

매버릭은 죽은 절친의 아들 루스터와 짝이 되어 골동품처럼 변해버린 F14기를 잘 조종하여 적의 최신 전투기들을 모조리 물리친 후 무사히 귀환한다. 바로 이 F14기처럼 보이는 과거의 유물들은 기성세대의 올바른 인도에 의해 젊은 세대가 이해하고 활용하여야 과거의 지혜와 유산으로 맥을 이어갈 것이다. 마찬가지로, 새로운 지식과 기술도 과거의 경험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우리를 이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겨냥하는 무기로 변할 수 있을 것이다. 

인문학을 전공한 필자에게 21세기는 변화와 진보의 세기로만 보이지 않는다. 과거 100년 동안 일어났던 변화들보다 더 큰 변화들이 10년도 채 안되어 속속 일어나고 있는 이 새로운 시대를, 인류는 맞을 준비가 덜 된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속도와 기술의 세기에서 우리가 다 함께 잘 살기 위해서, 아니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느 때보다 세대 간의 소통이, 서로 간의 지식과 지혜의 교류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모든 세대들이 팬데믹, 전쟁, 기후 변화, 경제 위기라는 고통으로 21세기의 초반부를 보냈으니, 남은 날들은 할리우드식 엔딩을 누릴 자격이 있지 않겠는가.  


이송이 부산대·불문학

부산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파리 8대학에서 마르그리트 뒤라스와 한국 현대 여성작가 비교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부산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타자의 글쓰기 - 레즈비어니즘과 여성적 글쓰기: 상호텍스트성과 메타페미니즘 - 니콜 브로사르의 『여명의 바로크』, 『연한 보랏빛 사막』을 중심으로」, 「징후와 잉여, 시체와 유령 사이의 여성성-동서양의 흡혈귀 서사를 통해 나타난 여성의 이미지 연구: 〈죽은 연인〉 〈박쥐〉를 중심으로」 등 다수의 논문과 저서 『이중언어 작가 : 근현대문학의 트랜스내셔널한 기원을 찾아서』(공저), 역서 『레 망다랭 1&2』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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