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의 가치연대론의 의미와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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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의 가치연대론의 의미와 우려
  • 강수택 경상국립대·사회학
  • 승인 2022.07.17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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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두 달이 조금 넘은 윤석열 정부에서 유독 눈에 띄는 용어가 있다. 그것은 ‘가치연대’인데, 6월 말 마드리드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한 윤 대통령 동정을 보도한 기사에서 자주 등장했다. 대통령실이 윤 대통령의 회의 참석 목표와 동정을 설명하면서 ‘가치 규범의 연대’를 강조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귀국 후에도 인플레이션 해결에 국제적인 가치연대가 중요하다고 지적하는 등 나라 안팎의 문제 해결을 위한 가치연대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의 가치연대론은 나토 정상회의 시기에 처음 제기된 것이 아니며 이 정상회의로부터 비롯된 것은 더더욱 아니다. 회의에서 발표된 선언과 채택된 문서 『나토 2022 전략 개념』은 회원국 간 연대의 중요성과 민주주의, 자유, 인권, 법치, 특히 국제법과 유엔헌장 준수 같은 가치와 규범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으나 가치연대, 규범연대라는 용어는 어디서도 쓰지 않았다. 선언과 새로운 전략 개념은 러시아와 테러리즘의 위협, 중국의 도전 등을 염두에 두면서 동맹의 이익, 안보, 가치, 국제 질서 보호를 위한 연대를 주장하고 있다. 이처럼 동맹의 이익과 가치 증진을 위한 연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나토 정상회의 개최 약 1주일 전에 중국 주최로 열린 중국, 러시아 등의 BRICS 정상회의 선언문에서도 발견된다. 나토 회의 선언과 전략 개념은 나토 동맹의 실질적인 목표가 서구, 특히 미국 중심의 이익을 러시아, 중국 등으로부터 지키고 증진시키는 데 일차적으로 있음을 보여준다.

가치연대는 어떻게 보면 윤석열 정부 탄생의 일등 공신 역할을 한 개념이기도 하다. 윤석열, 이재명 두 후보가 치열하게 선두 다툼을 벌이던 선거운동 과정에서 선거 약 일주일 전에 윤석열, 안철수 두 후보가 정치적 가치연대를 내세우며 후보 단일화를 이뤘는데 이것이 윤석열 후보 승리의 확실한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자유, 인권, 공정, 연대를 국정철학의 기본 가치로 삼은 취임사를 발표했다. 흥미로운 점은 진보 정당과 달리 한국의 보수 정당과 보수 정부에서 소홀히 취급되어온 연대 관념이 드디어 보수 정부에서도 핵심 가치로 수용된 것이다. 역대 대통령 취임사만 본다면 국제적 연대를 넘어 사회적 연대와 글로벌 시민연대를 포함하는 포괄적인 연대 관념을 국정철학의 기본 가치로 제시한 것은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윤 대통령 취임사가 처음이다.

취임사의 서두는 “저는 이 나라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기반으로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로 재건하고, 국제사회에서 책임과 역할을 다하는 나라로 만들어야 하는 시대적 소명을 갖고 오늘 이 자리에 섰습니다”로 시작하는데, 마무리는 “저는 자유, 인권, 공정, 연대의 가치를 기반으로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 국제사회에서 책임을 다하고 존경받는 나라를 ... 반드시 만들어 나가겠습니다”로 끝난다. 이것은 한국의 보수 정치세력이 그동안 냉전적 시각에서 강조해온 단순하고 막연한 이념적 주장을 이제 보다 구체적이며 보편적인 가치에 대한 논의로 끌어간 점에서 의미가 있다. 

실제로는 가치나 심지어 이념보다 인물이나 이해관계 중심으로 이루어져온 그동안의 한국 보수 진영의 정치활동이 명백히 정립된 기본 가치를 기반으로 이루어질 수만 있다면 그 자체로 정치발전에 기여할 것이다. 더 나아가 21C 시대정신이기도 한 연대 관념이 서구처럼 한국의 보수 진영에서도 기본 가치로 명백히 자리 잡는다면 이를 매개로 보다 통합적인 새로운 사회질서에 대한 공감대가 널리 확산될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보수와 진보 진영에서는 그 방법론을 둘러싸고 보다 건설적인 논쟁과 정책 경쟁이 이뤄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기대에도 불구하고 우려되는 바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윤석열 정부와 집권 여당이 이들 가치를 깊이 내면화하여 실현할 의지와 능력을 얼마나 갖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대통령 취임사는 새 정부의 국정 비전, 철학 등을 제시함으로써 국정 운영 방향을 추정할 수 있는 가늠자 역할을 하지만 정국의 전개 양상에 따라 취임 초기와 매우 다른 국정 운영이 이뤄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게다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백서에서 실용주의적 접근이 4대 국정운영 원칙의 하나로 제시된 데서 보듯이 새 정부는 실용 정부를 표방하기도 한다. 그런데 실용주의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경우, 현실적 이해관계를 중시하고 가치와 이념에는 반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한국의 보수 진영에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이념적 주장을 단순한 형태로 펼치면서 강요하는 세력이 매우 많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윤석열 정부가 민주주의, 인권, 공정, 연대의 가치 실현을 위해 얼마나 진지하게 노력할 수 있을지 우려되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적어도 초기에는 가치연대를 새 국정철학과 외교 방법론으로 추진하리라 생각된다. 가치연대는 이해관계 연대, 이해관계 동맹 등과 다른 개념이지만 정치영역이나 국제관계에서는 이들이 서로 밀접히 결합되어 있어서 구분하기 쉽지 않다. 뿐만 아니라 가치연대가 실제로는 정치적 동맹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 역할로 축소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래서 보수 진영의 윤석열, 안철수 두 후보가 가치연대를 표방하면서 후보 단일화를 선언하자 진보 진영에서 이재명 후보를 지지하면서 먼저 사퇴했던 김동연 후보가 자신과 이재명 후보의 관계를 가치연대로 규정하면서 윤석열, 안철수 두 후보의 단일화에 대해서는 이를 야합이라고 차별화했다. 공적인 가치 실현이 아닌 사적인 이해관계를 위해 타협했다는 것이다. 

진정한 의미의 가치연대는 특정한 가치의 공유를 연대 참여 자격으로 삼는 닫힌 형태보다는 민주주의, 자유, 정의, 환경보호, 평화 같은 보편적 가치 실현을 목표로 삼는 다양한 개인 혹은 국가로 이뤄진 열린 형태를 취한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의 시대정신이 반영된 진정한 가치연대는 동질적, 강압적, 배타적 특성이 뚜렷했던 과거의 이념적 동맹과는 크게 다르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의 가치연대론에서는 가치가 연대의 진정한 목표라기보다는 이해관계 실현의 수단으로만 취급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강한 의구심이 든다. 이런 접근은 가치의 차이를 존중하기보다는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개인이나 국가를 배타시하거나 심지어 적대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윤석열 정부의 가치연대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러시아는 별개로 하더라도 이웃해 있는 중국이나 심지어 북한조차도 결국 연대의 대상으로 포함할 수 있는 것인가 아니면 이들을 처음부터 배제하고 적대시하기 위한 것인가 하는 매우 중요한 질문을 하게 된다.

국내정치에서도 마찬가지다. 취임사에서 밝힌 네 가지 기본 가치는 모두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보편적 가치들이다. 그리고 한국사회 현실이 이들의 실현을 매우 강력히 요청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들을 잘 실현하기 위한 진정한 가치연대는 결코 보수 진영 세력의 동맹을 통해 진보 진영 세력을 배제하고 적대시하여 정치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이들 보편적 가치에 다양한 의견을 지닌 개인 혹은 정치세력이 폭넓게 참여할 수 있는 자발적 연대를 이끌어냄으로써 결국 이들 보편적 가치의 실현에서 의미 있는 진전을 이루는 것이다.


강수택 경상국립대·사회학

경상국립대 사회학과 교수로 8월 말에 정년퇴임 예정이다. 독일 빌레펠트 대학교에서 학위를 취득했으며 사회 이론과 사상을 전공하고 있다. 그동안 『일상생활의 패러다임』, 『다시 지식인을 묻는다』, 『연대주의』 등 여러 권의 책을 집필했는데 가장 최근에 나온 것으로는 『환경과 연대 –생태연대주의 사상과 정책』(이학사)이 있다. 다음 달인 8월에는 『팬데믹, 사회분열, 연대』(경상국립대 출판부)의 출간이 예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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