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이 흐른 지금, 김수영을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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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이 흐른 지금, 김수영을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2.07.13 00: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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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신간]

 

                                     시인 김수영(金洙暎, 1921년 11월 27일 ~ 1968년 6월 16일)

김수영(1921~1968) 시인, 그의 탄생 100주년이 해를 넘겼지만 시인 김수영의 행적과 시 세계를 조명하는 책이 잇달아 출간되고 있다.

지난해 한겨레신문에 '거대한 100년, 김수영'이란 제목으로 연재된 평론을 엮은 『이 모든 무수한 반동이 좋다』(한겨레출판)와 김수영연구회의 연구 성과를 담은 『김수영에서 김수영으로』(솔)가 나란히 나왔다.

모더니스트로 출발해 대표적인 참여시인이 된 김수영은 1946년 '예술부락'에 시 '묘정의 노래'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시인은 1968년 6월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달나라의 장난', '거대한 뿌리', '풀' 등을 발표해 현대문학사에 족적을 남겼다. 

그는 1970년대부터 줄곧 한국 문학장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과 분석의 대상이 되어온 시인이었다. 지난해 탄생 100주년을 넘겼음에도 그에 대한 주목과 논의의 열기는 식지 않고 있다.

『이 모든 무수한 반동이 좋다』는 24명의 시인과 문학평론가가 필자로 참여해 가족, 일본·일본어, 한국전쟁, 전통, 자유, 돈, 번역, 여혐, 니체 등 26가지 키워드로 김수영의 생애와 작품론에 두루 접근한다. 신문 연재 글을 수정·보완하고, 육필 원고와 발표지면 등 처음 공개되는 자료, 특별 대담을 함께 엮은 이 책은 다양한 키워드와 평전이 씨줄과 날줄이 되어 김수영의 삶과 문학의 전체적 면모를 직조한다.

『김수영에서 김수영으로』는 김수영연구회의 염무웅·남기택·고봉준 평론가, 김응교·신동옥 시인 등이 참여해 시인, 사상가, 번역가로서의 김수영을 입체적으로 담아냈다. 이 책에 실린 15개의 논의들은 시와 삶이 치열하게 만나는 김수영의 면면들과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특유의 감각이 어떻게 그의 시 세계를 만들어내는가에 주목함으로써 김수영 시를 읽는 새롭고도 입체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한국 현대시사는 김수영의 꽃을 완성품으로 숭배한 것이 아니라 거기에 기입된 비뚤어진 글자를 다시 세우고 다시 비틀면서 그가 하고자 했으나 완수하지 못한 것, 그 문제 설정의 용기와 정직한 실패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그것이 김수영의 꽃이 시들지 않고 살아 있는 이유이다. _본문에서(‘꽃’ 오연경)


■ 『이 모든 무수한 반동이 좋다: 26가지 키워드로 다시 읽는 김수영』 | 고봉준·김명인·김상환 외 21명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 05 | 296쪽

 

김수영은 현실의 이면을 들춰내고 진실을 환기하려는 신념을 온몸으로 밀어붙여 한국 현대시사의 한 획을 그었다. 그는 역사적 격랑에 촉수를 곤두세우며 자유를 억압하는 대상에 맞서 자신만의 시 세계를 구축해나갔지만, 자신이 속한 시대의 한계를 작품에 고스란히 반영하기도 했다. 

그가 남긴 오점 탓에 그는 부정적인 평가에 부닥치곤 했다. 그러나 그를 덮어놓고 옹호하거나 맹비난하는 관점을 넘어, 김수영이 지금 세대에 물려줄 수 있는 유산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일이 필요할 것이다. 모든 이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총체적 변혁을 추구했던 그의 날카로운 문제의식은 오늘날에도 유효한 시각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김수영의 삶과 작품을 단순히 우상화하거나 신화화하는 대신 지금의 관점에서 각기 다른 키워드로 비판적으로 분석한다.

‘이 모든 무수한 반동이 좋다’는 김수영 시 「거대한 뿌리」의 한 구절이며, 전통에 대한 긍정, 평범한 민중에 대한 긍정, 자유와 혁명에 대한 긍정, 더 나아가 자신을 향한 지금 세대의 날카로운 비판에 대한 긍정까지 담아낼 수 있는 호탕한 제목이다. 

평온한 독서를 거부하는 시, 독자에게 끊임없는 성찰을 요구하는 시를 써 내려간 김수영은 자기 작품이 지닌 한계점을 성찰의 계기로 삼는 시대가 올 것을 일찍이 예견했는지도 모른다. 그는 비판과 부정의 대상에 자신을 기꺼이 포함했고 자신에 대한 후대의 부정을 오히려 ‘사랑’으로 인식했다. 그에게는 모든 반동을 끌어안을 넉넉한 품이 있었다. 『이 모든 무수한 반동이 좋다』에 실린 평론 26편은, 김수영의 명과 암을 세밀히 그려냄으로써 그의 형상을 입체적으로 만든다. 

1부 ‘탄생과 일제 강점기’에서 「아버지를 바로 보지 못하던 시인, 그렇게 아버지가 되다」는 8남매의 장남으로 자라났으나 장남에게 요구되는 삶의 방식을 따르지 않은 김수영이, 시에서 아버지와 누이를 성찰과 정시(正視)의 주체이자 대상으로 호명한 방식을 면밀히 검토한다. 「모더니즘 이전에, 이미 핏줄에 흐르고 있던 선비 정신」은 단순히 서양의 모더니즘을 한국적으로 소화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동양과 서양의 정신을 종합하는 작시법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김수영의 위대함을 재발견한다. 

「망령 씐 ‘식민지 국어’라도 맘껏 부려 썼다」는 일본어 창작을 곧 반민족으로 연결하는 고정관념을 비판하며 김수영 시에서 식민 체험의 흔적을 사려 깊게 읽어낸다. 「이주와 패배, 그 극복의 원체험」은 김수영이 일본 유학과 만주 이주에서 겪은 배반의 경험을 추적하는 한편, 연극 공부가 시의 언어에 끼친 영향을 분석한다.

2부 ‘한국전쟁기’에서 「나는 ‘민간 억류인’, 친공포로냐 반공포로냐 택일을 거부했다」는 자신을 ‘포로’ 대신 ‘민간 억류인’으로 불렀으며 ‘친공과 반공’의 이분법에서 탈피해 ‘자유’를 중시했던 시인의 태도에 주목한다. 「‘제일 욕된 시간’과 ‘벌거벗은 긍지’ 사이 생활고의 설움」은 김수영이 시에서 드러낸 대표적 정념인 ‘설움’이 촉발되는 메커니즘을 들여다보며 생활에 대한 무능이나 무책임이 아닌 자발적 고절(孤節)로서의 소외와 긍지를 헤아린다. 

「야아, 수영아, 훌륭한 시 많이 써라」는 서점 ‘마리서사’를 열고 모더니즘 시 운동을 전개했던 박인환에 대한 김수영의 애증을 실감 나게 서술한다. 「기계와 사물의 운동을 꿰뚫어 본 관찰자」는 김수영을 기계-사물의 운동을 가감 없이 관찰해 본질을 파악한 시인으로 설명하면서 시 「헬리콥터」에 대한 ‘기계비평’을 시도한다. 「‘시간’에 민감했던 시인, 현실과 역사 앞에 물러섬 없었다」는 하이데거 전집이 낡고 닳을 만큼 하이데거에 심취했던 김수영의 시 세계를 하이데거의 철학 개념으로 해석한다.

 

3부 ‘구수동 거주 시기’에서 「생활의 감각과 사랑의 기술」은 김수영이 마포구 구수동 집에서 시에 대한 조급한 욕심을 내려놓고 생활과 예술 사이의 균형점을 찾으려 부단히 노력했던 시절을 다룬다. 「전통적 인간에서 전통을 생성하는 존재로」는 김수영이 전통에 대한 반감과 부정을 넘어 시로써 전통을 긍정하고 현재화하는 양상에 귀 기울인다. 「냉전적 의도가 담긴 잡지 봉투를 뒤집어 시의 초고를 써 내려가다」는 김수영에게 잡지 《엔카운터》와 《파르티잔 리뷰》가 우송된 냉전적 맥락과 이 잡지들이 시에서 어떻게 전유되며 주체성 형성의 자원으로 활용됐는지 살펴본다. 

「노란 꽃을 받으세요, 지금 여기에 피어난 미래를」은 생성과 죽음을 한 몸에 지닌 꽃에 대한 집요한 탐구가 자유와 혁명과 사랑이라는 꽃의 사상으로 만개한 일련의 과정을 되짚는다. 「시인으로서 자유로우려면 시민으로서도 자유로워야 한다」는 불온사상을 인정할 때만 언론의 자유가 진정으로 보장되며 이는 문학의 자유와 무관하지 않다고 믿었던 김수영식 ‘자유’를 논한다.

4부 ‘4·19혁명 이후’에서 「시와 삶과 세계의 영구 혁명을 추구한 시인」은 김수영의 혁명은 정치적이고 일회적인 사건에 머물지 않고 시와 삶에서 지속되는 총체적 변혁이자 거대한 사랑임을 설파한다. 「짙은 자기 환멸을 내쉴지언정 조국을 미워할 수는 없었다」는 모던한 세계를 흠모하며 조국의 후진성에 경멸을 느끼면서도 비루한 일상을 온몸으로 끌어안고자 했던 김수영의 내면을 묘파한다. 「독살을 부리는 자본 옆에서, 졸렬한 타박이라도 하여야 했다」는 물질주의에 매몰된 존재에 대한 멸시가 투영된 호칭으로서 시어 ‘여편네’의 의미를 분석한다. 

「‘돈’의 아이러니 속에서 싸우다」는 먹고살기 위해 ‘매문’을 하지만 글쓰기로 영혼의 자유를 누리고 표현의 용기를 실현하기보다 상품 가치에 매몰되기 쉬운 모순을 간파했던 김수영의 글쓰기를 ‘적과의 동침’으로 설명해낸다. 「시임에도 욕설을 쓴 게 아니라, 시라서 욕설을 썼다」는 김수영의 시에 쓰인 욕설을 인간의 본질을 드러내는 표현이자 자유의 실천으로 규정한다. 「‘덤핑 출판사’의 12원짜리 번역 일, 그 고달픔은 시의 힘이 됐다」는 김수영이 번역을 ‘부업’ 삼았으면서도 번역에 지나치게 열중해 결국에는 번역 텍스트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고유한 문학론을 구축했음을 논증한다.

5부 ‘시대를 비추는 거울’에서 「우리는 이겼다, 아내여 화해하자」는 60년대의 시인인 김수영이 짊어져야 하는 한계점을 명확히 짚으면서, 시와 산문 속에서 아내에 대한 인식은 차츰 변화했지만 그의 죽음으로 여성혐오를 넘어서는 실천은 도중에 중단되었다고 이야기한다. 「그의 산문에 두 번 등장한 니체, 닮음과 다름」은 김수영이 니체와 유사한 문제의식을 공유했으나 출발점과 해결 방식이 달랐다고 주장한다. 「무의식적 참여시의 가능성, ‘온몸’의 시학을 다시 생각하며」는 김수영의 대표적 시론인 「시여, 침을 뱉어라」와 「참여시의 정리」를 분석하여 ‘몸과 그림자’의 관계를 밝히고 온몸의 시학을 ‘무의식적 참여시’로 적절히 설명해낸다. 

「‘죽음의 시학’은 그를 여전히 살아 있는 시인으로 만들었다」는 죽음이 삶을 일깨우고 생성을 낳으며 자신을 공동체로 나아가게 한다고 보았던 김수영의 시학을 살펴본다. 「사랑의 무한 학습, 지금 여기에 꽃피는 사랑의 미래」는 김수영이 사랑을 사회가 품은 영구 혁명의 가능성이자 개인과 사회를 성장시키는 유일한 동력으로 파악했음을 강조한다. 「우주의 화음을 품은 김수영 시의 극점」은 김수영의 대표작으로 거론되는 「풀」에 등장하는 풀과 바람의 관계를 ‘상응과 친화’로 설명하며, 때로는 스스로 움직이고 때로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사물의 속성을 보여준다고 역설한다.


우리가 아는 김수영에서, 다시 백 년의 시인 김수영으로
“시나 소설을 쓴다는 것은 그것이 곧 그것을 쓰는 사람의 사는 방식이 되는 것이다”


■ 『김수영에서 김수영으로: 시·생활·번역』 | 김수영연구회·염무웅·박성광 외 13명 지음 | 솔 | 2022. 06 | 464쪽

 

한국문학의 장에서 여전히 사유와 해석의 새로움을 현재적으로 갱신하는 전위의 시인 김수영. 시 「공자의 생활난」에서 시인은 “동무여 이제 나는 바로 보마”라고 하는데, 이는 김수영의 시 세계를 대표할 만한 선언이다. 시인은 기존의 관습과 선입견에서 깨어나 ‘바로 보는’ 존재로서의 시인으로 스스로를 규정한다. 그런 시인에게 바로 보아야 할 것은 사물이나 현실, 타자만이 아니었다.

시인은 자기 자신마저도 정시하고 탐구해야 할 시적 대상으로 삼아 자기 내부의 속임수와 허위의식을 치열하게 성찰하고 고발하면서, 끊임없이 스스로와 자신의 시 세계를 변화시키고 갱신해나갔다. 시인 김수영에게 있어 시 세계의 갱신은 시인 자신의 변모와 함께 가는 것이었다. 

『김수영에서 김수영으로: 시·생활·번역』은 한국문학사에서 김수영이 지닌 위상을 검토하고 시인 김수영과 인간 김수영이 만나는 다양한 지점을 살폈다. 또 그의 시가 어떻게 고정된 틀을 탈피해 자유의 혁명, 사랑의 지평으로 나아가는지를 들여다보고, 특히 그의 외국 문학 번역 작업이 그의 시 세계에 미친 시적·사상적 영향을 밀도 있게 고찰했다. 이 책을 통해 시인 김수영에서 사상가 김수영, 스타일리스트 김수영과 읽고 번역하는 김수영까지 입체적인 김수영을 만나볼 수 있다.

1부에서는 한국문학사에서 김수영이 지닌 현재적 위상을 검토하고 시인에 대한 2천 년대의 연구사를 총괄하는 한편, 시인 김수영과 인간 김수영이 만나는 다양한 지점을 살펴본다. 한국 근대문학사에서 김수영이 지닌 문학사적 위상을 검토한 염무웅 문학평론가의 논의와 2천 년대 이후 김수영 연구사의 주요 경향성을 정리한 박성광 연구자의 논의는 오늘날 한국문학에서 김수영이라는 이름이 가지는 상징성을 분명하고 정확하게 보여준다. 

이어 임동확 시인은 김수영의 시와 산문 중 ‘멋’에 관련된 글들이 적지 않은 것에 주목하여, 댄디즘과 김수영의 차이를 살핌으로써 스타일리스트로서의 김수영을 발굴해낸다. 김수영에게 ‘멋’이란 “현대와 전통, 혁명과 고독, 꽃과 (거대한) 뿌리, 자유와 (대지에의) 구속, 첨단과 정지 등 그 사이에 끼여 꼼짝달싹할 수 없는” “모순과 이율배반을 오랫동안 ‘온몸’으로 극복하고자 했던 삶의 치열성 속에서 배어 나온” 것이었다. 남기택 평론가는 김수영의 삶과 문학, “시 세계 전체를 관류하는 화소”로 여행이 있음을 밝혀낸다. 1부의 논의들은 오늘날 우리에게 시인 김수영이 어떤 의미인지를 환기하는 동시에 “우주의 안경을 쓴” 세계의 촌부로서의 김수영, 여행자 김수영 등 낯선 김수영의 모습을 만날 수 있도록 해준다.

2부에서는 김수영의 시가 어떻게 관습이나 억압적 현실, 선입견 같은 고정된 틀을 탈피하여 자유와 혁명, 사랑의 지평으로 나아가는지를 깊이 읽어본다. 이경수 평론가는 불안과 실패 같은 타자의 부정적인 면까지도 끌어안으며 끊임없이 갱신되는 김수영 시의 사랑에서 고정된 경계를 넘나드는 상상력을, 이성혁 평론가는 김수영의 1950년대 전반기 사물시에서 이분법적 구도에 내재한 모순을 바로 보고 성찰함으로써 이를 넘어서고자 하는 움직임을 궁구한다. 시인이자 평론가인 김응교는 김수영을 니체와 겹쳐봄으로써 김수영의 시에서 이웃과 인류를 비롯한 “타자의 모든 일이 자신과 관계있다고 생각하는 태도”와 위버멘쉬적 사랑을 발견한다. 

신동옥 시인은 자본 담론이라는 방법론으로써 김수영 시에 나타나는 일상과 생활의 아주 미세한 부분들이 “자의식을 모두 소진하고서야 끌어안는 애정, 즉 사랑의 동학”을 통해 미학화되고 있음을 규명해낸다. 이영준 평론가는 김수영 시에 대한 김현승의 해설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김수영의 대표작으로 가장 자주 거론되는 「풀」에서 풀을 민중으로, 바람을 억압 세력으로 읽”는 김현승의 이분법적 해석은 김수영 사후 50년간이나 통상적인 해석으로서 우리 사회에 널리 받아들여졌다. 이영준 평론가는 김현승의 이항 대립적 사고를 비판하는 한편, 김현승이 미처 보지 못했던 김수영 시의 시간을 감지해냄으로써 김수영 시가 지닌 변화의 감각을 짚어낸다.

경계, 바로보기, 니체, 자본 담론, 시간을 통해 바라본 김수영의 시는 끊임없이 이동하며 생겨나는 사랑과 자유, 혁명의 가능성을 담지하고 있다. 2부의 논의들은 김수영 시 내부의 역학을 분명하면서도 입체적으로 제시해주고 있다.

시인은 서구의 철학과 문예 사상에 수동적으로 영향받는 것을 경계하고 이를 자기만의 것으로 전유하고 변용하고자 했다. 이를 통해 김수영의 시 세계는 끊임없이 변화를 도모함으로써 새롭고 유일무이한 ‘자기-되기’로 나아갈 수 있었다. 시인의 산문 「시작노트」에 나오는 “내 시의 비밀은 내 번역을 보면 안다.”라는 대목은 바로 이러한 지점을 암시하고 있다.

김수영 시인의 ‘번역 체험’과 시 세계가 맺고 있는 관계를 규명하는 작업은 2천 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이후 한국의 문학 연구장에서 번역을 “문명사적 발전을 추동하는 매개로 바라보는 인식적 전환이 이루어지면서” 김수영의 시와 번역의 관계를 밝히는 작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3부의 논의들이 바로 그 중요한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3부에서는 김수영이 어떻게 외국 문학과 대결했는지, 그 결과로서 김수영 시 세계는 어떤 새로운 단계로 나아갔는지를 조명한다.

3부의 서두에서 오길영 평론가는, 김수영이 생계를 위해 청탁받아 작업했던 번역물 외에 개인적으로 번역했던 다양한 장르의 텍스트들을 검토하며 김수영이 일관된 문제의식으로 텍스트를 선택하여 발췌해서 옮기고 있음을 밝힌다. 시인이자 독서가이자 비평가로서 김수영이 특히 관심을 기울인 대상은 “당대 유럽과 미국 문학의 시 세계였다.” 그런데 이때, 시인이 서구의 현대시론과 초현실주의에서 배운 것은 기법이 아닌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과 태도와 정신이다.” 오길영 평론가는 서구의 사상과 문예 사조를 통해 김수영이 “언론의 자유, 시의 자유가 용인되지 않는 당대의” 현실과 비판적 거리를 유지했음을 발견한다. 

고봉준 평론가는 1950~1960년대 김수영의 번역 활동을 초기와 후기로 나누고 후기 번역물인 ‘이오네스코’의 산문 「벽」과 ‘하이데거의 릴케론’이 김수영의 시론과 시 세계가 변모하는 데 특히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에 주목한다. 이에 따르면 시인은 이오네스코의 ‘반연극’ 개념을 뚫고 나감으로써 ‘반시론’에, 하이데거의 릴케론과의 대결을 통과해 ‘존재로서의 시’에 다다를 수 있었다. 이어 오영진 연구자는 김수영의 시와 월트 휘트먼의 시를 겹쳐 읽으며 김수영이 휘트먼을 통과해 “김수영 문학만의 개성”, “‘사랑’이라는 김수영 문학의 핵심적 주제”(388쪽)를 형성해 나갈 수 있었음을 규명한다.

시인에게 있어 ‘번역 체험’은 억압적이고 경직된 당대의 정치적 현실과 먹고사는 생존의 문제와 같이 “시 세계에 변화를 강제하는 외부적 요소” 즉, “매 순간 예고 없이 침입하여 시에 대한 그의 사유를 뒤흔들고 변화를 강제하는 타자였다.” 시와 시론이 한자리에 매이거나 정체되지 않도록, 계속해서 변모해나가도록 시인을 추동하는 매개체의 역할을 했던 것이다. 3부의 논의들은 김수영 시 세계의 역학 중 하나로 이러한 ‘번역 체험’이 있었음을 규명한다.

『김수영에서 김수영으로』는 김수영의 시와 시론이 담지한 현대성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김수영의 시가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오늘날의 사회 현실과도 단단하게 접합될 수 있는 이유는 ‘김수영에서 김수영으로’ 스스로를 끊임없이 갱신하고 변화시키고자 했던 시인의 정신에 있다. 이 책은 생활인이자 노동자로서의 김수영과 번역가로서의 김수영, 사상가로서의 김수영 등 시인 김수영의 다채로운 형상을 교차시키며 김수영 시 세계를 새롭게 조명하는 의미 있는 연구 성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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