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의 고전 사회학을 넘어 21세기의 체계이론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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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의 고전 사회학을 넘어 21세기의 체계이론을 향해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2.07.11 05: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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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의 체계이론 | 니클라스 루만 지음 | 윤재왕 옮김 | 새물결 | 1152쪽

 

루만은 다작으로도 유명하지만 이론적 일관성도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큰 변화가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중기의 『사회적 체계들』 그리고 말기의 『사회의 사회』와 함께 그의 3대 주요 저작으로 꼽히는 이 책은 이것들 중 가장 초기 저작으로 그의 이론적 구상을 가장 종합적이고 포괄적으로 담고 있는 저작이다. 

1973~1975년에 작성된 이론적 구상을 있는 그대로 출판한 이 책은 그의 ‘체계이론의 기초개념’부터 시작해 체계, 커뮤니케이션, 진화와 분화 등의 새로운 개념 틀을 동원해 과거의 사회학이 생산한 모든 개념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체계로서의 사회’를 사유한다.

그의 후기 저작에서보다 훨씬 더 많이 마르크스와 루카치 그리고 헤겔에 대한 언급을 볼 수 있으며 초기 푸코에 대한 약간은 부정적 언급도 간간이 찾아볼 수 있다. 또한 독일 고전 사회학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베버에 대한 다소 박한 언급과 부정적(?) 평가도 그의 이론이 무엇을 배경으로, 어떻게 구성되었는지에 대한 여러 가지 흥미로운 단서를 제공해준다. 즉 일종의 주체의 죽음과 체계로서의 사회의 발견이 그의 사회학의 골간임을 이 초기 구상을 통해 여실이 발견할 수 있다.

이처럼 이 책은 루만의 최초의 이론적 작업장을 엿보는 호기심을 충분히 충족시켜 준다. 그것을 통해 그가 과거의 대가들과 어떻게 대결하고, 어떤 점을 배워 어떻게 더 창조적으로 앞으로 끌고 가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것은 그의 이론이 체계이론으로, 그리고 사회학의 종합이론으로 어떻게 출발하고 진화하는지 종합적으로 일별할 수 있게 해준다. 또한 그것은 그의 이론이 복잡성이 계속 증가하는 현대 사회를 총체적으로 포착하기 위한 이론적 야심에서 나온 자연스런 결과임을 볼 수 있게 해준다. 이 점은 빅데이터 등의 등장에 의해 이론이 거의 죽음에 이른 현재 상황에 비추어 여러모로 시사적이다.

사회학은 사회의 일종의 자기이해의 시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20년 동안 디지털화 등 사회는 너무 급속도로 변한 반면 이론은 20세기의 품 안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사회가 무조건 빠른 속도로 변하는 것만은 아니다. 모든 변화에도 기본 틀은 그대로 유지하는 제도와 현상과 함께 공존한다. 이 점에서 사회학 이론의 성패는 이 모든 변화와 무변화를 동시에 설명할 수 있는 ‘추상-수준’에 달리게 된다.

이 책에서 가장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그의 ‘초기 구상’ 만큼 루만의 구상과 아이디어 그리고 사회에 대한 접근법, 무엇보다 먼저 현대에 대한 이해방식이 하버마스와 전혀 무관함을 잘 보여주는 저서도 없다. 둘은 동일 평면에 놓고 비교, 평가할 상대가 아님을 이 책은 무엇보다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것은 하버마스를 비판하자는 것이 아니라 루만 장점은 장점대로, 하버마스 장점은 장점대로 살아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산업화와 민주화 담론 이후 우리 사회의 가장 두드러진 현상 중 하나는 사회 현실로부터의 이론의 현격한 지체 현상일 것이다. 가령 고령화와 세계최저 출산율 등은 민주화 담론에게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은 과제일 것이다. 게다가 사회의 많은 문제를 ‘민주화’, 보다 구체적으로는 정당정치의 제도적 절차를 통해 해결해왔지만 최근 검찰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은 우리에게 ‘절차’가 전혀 갈등의 해소책이 아니라 갈등의 원천이 되었음을 실감하게 해주었다. 진리와 권력, 화폐와 사랑, 그리고 넓은 의미의 예술과 종교를 둘러싸고 우리 사회에게 새로운 체계와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필요하지 않을까?

진화, 분화, 커뮤니케이션 등 루만 이론은 어찌 보면 굉장히 추상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단순히 이론적 차원을 넘어 실천적 차원에서도 그의 이론이 우리 사회에 대한 성찰의 도구가 될 수 있는 것은 위와 같은 이유에서이다. 가령 혁명 또는 변혁과 개혁이라는 이념적 틀 말고 분화와 진화라는 관점이, 제도와 정치의 변화를 오히려 보다 섬세하게 포착할 수 있는 더 예리한 시선일 수 있다. 복잡성과 체계를 종합적으로 검토하기 때문이다. 또한 현대는 근본적으로 복잡성의 증가 그리고 체계의 분화를 본질로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진화와 분화는 일직선적으로 진보하는 것이 아니라 무수한 도전과 어려움이 따른다. 따라서 보다 섬세한 접근과 무수한 노력과 분투를 거쳐야만 복잡성의 분화를 처리할 수 있다는 그의 제언은 한국 사회가 한층 더 높은 성숙으로 나아가기 위해 절실히 필요한 이론적 조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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