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세계가 올 것이라는 믿음을 과학소설 속에 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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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세계가 올 것이라는 믿음을 과학소설 속에 심다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2.07.11 05: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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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된 미래와 유토피아 다시 쓰기: 1920년대 과학소설 번역과 수용사 | 김미연 지음 | 소명출판 | 531쪽

 

영화나 드라마에서 등장하는 타임 슬립(time slip)은 21세기에서 매우 익숙한 소재이다.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백여 년 전, 1920년대 식민지 시기의 사람들은 시간 여행이나 평행 우주 등의 소재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했을까?

이 책은 서구의 과학소설이 1920년대에 한국어로 번역된 과정을 면밀하게 고찰하고, 백 년 전 사람들이 읽고 상상한 미래를 분석하기 위해 당시의 신문과 잡지를 넘나들며 시대적 맥락에서 접근한다. “국가는 필요한가? 사유재산은 유지되어야 하는가? 노동은 몇 시간이 적당한가?”와 같은 도발적인 질문은 지금도 어디선가 제기되고 있다. 이 책은 시대를 초월한 고민과 상상력의 흔적을 ‘과학소설’이라는 키워드로 제시한다. 

과학소설 번역사에서 1920년대는 공백기로 여겨져 왔지만, 실제로는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지니고 있다. 저자는 한국 문학 장에 번역된 과학소설의 계보와 역사성을 새로운 시각과 문제의식으로 재구성한다.

첫째, 에드워드 벨러미의 『뒤돌아보며』가 촉발한 ‘다시 쓰기’ 열풍을 동아시아적 관점에서 추적한다. 캉유웨이(康有爲), 량치차오(梁啓超), 사카이 도시히코(堺利彦)를 대표로 한 중국과 일본의 사례를 관찰하고 한국어로 번역된 텍스트와 정연규의 『이상촌』에 주목한다.

둘째, H. G. 웰스의 수용사를 입체적으로 탐색한다. 『타임머신』, 『우주전쟁』의 저자로 유명한 웰스는 1920년대에 사뭇 다른 모습으로 등장했다. ‘세계국가’의 실현을 주장하고 반전(反戰)과 평화를 지향했던 그의 전언들은 여전히 유효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셋째, 『지킬 박사와 하이드』, 『걸리버 여행기』, 「미다스의 노예들」 등의 작품을 통해 유토피아의 양면성을 논의한다. 인류에게 장밋빛 미래만 약속될 수 있을까? 과학기술의 발전, 인간과 사회의 진화는 암울한 미래를 야기할 수 있다. 시대를 비판적으로 인식한 사례들을 살피고 유토피아를 향한 도정으로서의 디스토피아를 그려본다.

지금 우리는 SF 영화 등을 통해 미지의 상상력을 즐기는 동시에 현대 사회의 문제점을 체감하며 더 나은 세계란 무엇일지, 인간다운 인간이란 무엇인지 고민한다. 1920년대에도 마찬가지였다. 과학소설은 당시 독자에게 신선한 상상력을 불어넣고 식민지 시기에 대한 비판과 성찰을 도왔으며 이를 통해 미래의 청사진을 그리도록 했다. 뿐만 아니라 과학소설은 사상이나 세계사적 조류와 결합하여 새로운 지식을 실어나르기도 했다.

이때 ‘번역’은 중요한 연결고리이자 방법이었다. 번역이라는 과정을 거쳐 세계와 맞닿을 수 있게 되었을 뿐더러 보편성과 특수성을 획득할 수 있었다. 이 책은 번역을 통해 구현되는 만남과 어긋남의 지점을 포착했다. 일련의 실험 속에서 펼쳐지는 문학 텍스트의 굴절과 변용 양상을 비교문학의 관점에서 풀어냈다.

이를 위해 저자는 끊임없이 번역의 저본(底本)을 파헤친다. 1920년대 다수의 번역물이 일본을 경유하였다는 전제를 한편에 두고 무엇을 매개로 번역되었는지 구체적으로 검토한다. 이 책에서 제시한 번역의 매개, 번역 채널의 확장―가령, 사카이 도시히코의 문학 번역을 통한 유입(2장), ‘동화시대’를 촉발한 하마다 히로스케를 통한 번역(4장 4절)―은 한국 문학과 그 자장 안에 유입된 번역 문학을 새로운 시각으로 살펴볼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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