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수도권 127개 대학총장들, "반도체 인력 수도권 양성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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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수도권 127개 대학총장들, "반도체 인력 수도권 양성 반대"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2.07.10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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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개 권역 비수도권 국·사립대 총장, 8일 박순애 교육부총리와 비공개 간담회
- "수도권 반도체 증원 반대…국정과제대로 '지방대학 시대' 돼야"
- "수도권 제외 9개 광역지자체 중심으로 인력 양성하는 방안 추진해야“
- 박맹수 원광대 총장, 교육장관 간담회 앞서 1인 시위

 

박맹수(오른쪽) 전북지역대학교총장협의회장(원광대 총장)과 이우종 7개권역 대학총장협의회연합 회장(청운대 총장)이 8일 서울 한국교육시설안전원에서 비수도권 대학 총장들과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반도체 인력 양성 관련 비공개 간담회에 참석하기 전 '지방대학 시대를 일관성 있게 실천하라'는 피켓을 들고 입장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반도체 인력양성을 위한 수도권 대학의 정원 규제 완화 정책 방침을 밝힌 가운데 전국 비수도권 127개 대학 총장들이 정부 계획에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혔다. 

비수도권 7개 권역 127개 대학 총장들로 구성된 ‘7개 권역 대학 총장협의회 연합’은 지난 7일 입장문을 내고 "지역대학 정원 미달을 가속화할 수도권 정원 총량 증가에 동의할 수 없다"고 밝히면서, 반도체 인력 양성 정책의 구체적 수립과 함께 그 방식이 수도권을 제외한 9개 광역지자체 중심으로 추진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총장협의회 연합은 당초 지난 6일 세종시 교육부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입장을 밝힐 예정이었지만, 교육부 반대로 기자회견을 취소하고, 8일 오후 서울 한국교육시설안전원에서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비공개 간담회로 대체했다.

입장문에서 총장협의회 연합은 "수도권 대학 정원 총량 규제는 지역 인재의 수도권 유출에 대한 최후의 보루"라며 "‘이제는 지방대학 시대’를 표방한 정부가 수도권 대학 정원 증원을 언명하는 것은 심각한 모순이며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성을 한순간에 무너뜨린다”고 우려했다.

산업통상자원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반도체 인력 부족 규모는 약 1,600명 정도다. 반도체 계약학과와 거점국립대 등 지역 대학에서 매년 배출되는 관련 학과 졸업생을 포함하면 전국 대학에서 양성 가능한 반도체 관련 학생 정원은 연간 약 1,000명 정도다.

총장협의회는 “대졸 인력 부족분 30%인 530명의 효과적인 조달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분석하고 “530명을 수도권을 제외한 9개 광역지자체에 속한 국·공·사립대 10여 개를 선정해 대학별로 평균 60여 명씩 양성하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수도권 대학은 대신 대학 자체 정원을 조정하거나 기존 반도체 관련 학과 학생들이 추가로 교육과정을 이수하는 방식으로 반도체 관련 설계전공트랙, 연합전공 등 시스템 반도체 특화 전공을 자체적으로 신설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다만 “우수한 석·박사급 인력 양성을 위해서 수도권을 포함한 전국의 관련학과 대학원 정원을 확충하는 게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총장협의회는 “몇 개의 지역 거점 대학과 지역 국·사립 대학이 협력해 공정별, 분야별로 교수진과 커리큘럼을 구성해 공동 학위를 수여하며 전공뿐 아니라 실험 실습 및 프로젝트 등의 비교과 과정을 수행하게 해 전문성을 인증해주는 초광역권 반도체 공유대학의 운영은 실질적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도 제시했다.

이 밖에도 차량용 및 전력, IT 분야 등에 대한 시스템 반도체 교육을 위해 전국에 있는 반도체 설계 교육 센터에 운영비 지원을 늘리고 대학 내 반도체 공정교육 센터에 설비 투자를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앞서 지난달 7일 윤석열 대통령이 반도체 인력 양성 대책을 교육부에 주문하면서 ‘수도권 대학 정원 규제’ 완화 논의가 시작됐다. 교육부는 수도권 대학 입학정원을 늘리지 못하도록 한 수도권정비계획법을 푸는 방안을 비롯해 2015년부터 대학들이 구조조정을 추진하면서 줄인 정원을 반도체 학과 설립 시 늘릴 수 있도록 하는 방안 등을 검토 중이다.

 

박맹수 원광대 총장이 8일 한국교육시설안전원에서 수도권 대학의 반도체 학과 증원을 검토하는 정부 계획에 반대하며 1인 시위에 나섰다.

“국정과제인 '지방대학의 시대'는 현 대한민국 인구정책의 해법임을 간곡히 호소합니다.”

▶ 한편 전북지역 총장협의회장인 박맹수 원광대 총장은 이날 8일 부총리 간담회 시작 전 1인 시위를 열고 “‘지방대학 시대’ 국정과제를 일관성 있게 실천하라”고 정부에 촉구했다.

박 총장은 “수도권 대학생도 국민이고 지역대학에 다니는 학생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며 “수도권 집중 현상이 심화되면서 대학 경쟁력·투자와 무관하게 단순히 어느 곳에 자리잡았느냐에 따른 서열화가 시작됐다. 지역 소멸 위기의 해법은 젊은 정주인구를 보유한 지역 대학 육성에서 시작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주문한 반도체 분야 인재 양성을 위해 수도권 대학의 관련 학과 정원을 증원하는 방식 대신 지방대학과 수도권 대학이 함께 발전할 수 있는 정책이 시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박맹수 총장은 입장문에서 "과거 영호남 4개 사립대학과 지역의 주요 국립대학들은 서울의 대학들과 어깨를 나란히 해 대한민국을 견인해왔다"며 "그러던 어느 순간부터 인력과 물자의 수도권 집중현상이 심화되면서 대학들의 경쟁력이나 투자 상황과 무관하게 어느 곳에 자리잡았느냐에 따라 서열화되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역 사립대학들의 자산가치가 낮아지고 이자수익이 적어지면서 재정이 부실해지는 것은 온전히 대학의 책임만이 아니라 수도권 집중 정책에 의한 책임도 공존한다"고도 했다.

박 총장이 포함된 '비수도권 7개 권역 지역대학총장협의회 연합'은 지난 6일 교육부 기자회견을 열고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성명서를 발표하려 했으나, 교육부가 청사 내 기자회견을 거부했다. 윤석열 정부가 반도체 인재양성 관련 검토 중인 '수도권 대학 정원 증원'에 반대하는 회견이 지난 5일 진행된 박 부총리의 취임과 '엇박자'라는 이유였다.

박 총장은 당시를 회상하며 "교육부 장관에 대한 예우를 중시할 만큼 지방대 현실이 그렇게 한가하고 녹록했는가, 너무도 심각한 지방대 현실을 교육부 관료들이 책상 위에서 안일하게 인식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당시 회견을 주도한 이우종 청운대 총장(대전·세종·충남 권역 총장협의회장)은 "(6일 기자회견은) 교육부 수장이 안 계시니까 건의문 형태로 정부 당국에 얘기를 하려던 것"이었고, "장관이 5일 취임하는데 6일 바로 성명을 내면 박 부총리도 당황스러울 것"이라며 "일단 (이날) 교육부 수장과 진지하게 간담회를 하고, 우리 의견이 관철되는지 여부에 따라 그 다음 액션(행동)을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비수도권 7개 권역 지역대학 총장들이 박순애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간담회를 마친 뒤 간담회 결과를 밝히고 있다. 

▶ 이 총장은 1시간여 진행된 간담회를 마치고 취재진과 만나 "참석한 총장 12명이 모두 발언했고, 마지막에 박 부총리가 얘기를 했다"고 밝혔다.

이어 "박 부총리에게 요구사항을 가감 없이 전달했고 총장들은 대학 현장에서 느끼는 이야기들을 모두 전했다"며 "이날 간담회가 결코 스쳐 지나가는 요식행위가 되지 않도록 앞으로 교육부 정책 발표에 간담회에 제시된 정책제안을 포함시켜줄 것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요구사항은 ▲비수도권 국·공·사립대 10개를 선정해 반도체 인력 대학별 평균 60명 양성 ▲반도체 교육을 위한 전국 반도체 설계교육센터(IDEC) 운영비 지원 강화 ▲반도체 공정교육센터(Fab)에 대한 설비 투자 강화 ▲디지털 혁신공유대학 사업을 통한 반도체 인력 양성 확대 ▲지역 거점대학과 국·사립대 중심의 공동학위제 운영 ▲지역인재의 수도권 유출 대응을 위한 제도 마련 등으로 알려졌다.

이 총장에 따르면 이날 박 부총리는 총장들의 요구사항을 듣고 "수도권 반도체 인력 양성과 관련해서 의견을 충분히 수렴했고 반영하겠다", "지역대학과의 소통 창구를 만들고 기회가 될 때마다 지방대 현장에서 답을 찾겠다"는 내용의 답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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