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은 고객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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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은 고객이 아니다
  • 조원형 편집기획위원/서울대학교·언어학
  • 승인 2022.07.04 0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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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형 칼럼]

얼마 전에 연세대학교 학생들이 ‘학습권 침해’를 구실로 학내 청소 노동자를 고소한 사건이 일어났다. 청소 노동자들의 집회 소음 때문에 공부하는 데 방해를 받았다는 것이 그 학생들의 주장이었다.

이 고소 사건이 학생들의 잘못이라는 점에는 틀림이 없다. 학생들이 학내 노동자들과 적극적으로 연대해서 노동자의 처우 개선을 앞당기지는 못할망정 단지 시끄럽다는 이유로 고소를 했다니 상식적으로나 도의적으로나 용납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번 일을 단지 그 학생들만의 개인적인 문제로 여기고 넘어갈 수는 없다. 이는 ‘고객은 왕’이라는 천민 자본주의적 사고가 어느새 대학 사회까지 물들여 버렸다는 사실을 보여 준 사건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대학들은 학생들을 ‘고객’으로 일컫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대학이 이렇게 스스로 서비스 업체와 같은 행태를 보이니 학생들 역시 대학을 ‘돈을 내고 지식 제공 서비스를 구매하는 곳’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요즘 대학생들은 중고생 시절 사교육 시장에서 다양한 강사들의 수업을 구매해 본 경험이 있다 보니 대학 수업 역시 학점이라는 재화를 얻기 위해 등록금이라는 돈을 주고 산 서비스 상품 정도로 치부하는 경향마저 보인다. 그러다 보니 자신은 ‘서비스를 구매한 고객’이라는 생각에 젖어 이른바 ‘갑질’조차 서슴지 않는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정도로 수업 태도가 불량한 학생에게 교수가 참다 못해 주의를 주자 학생이 “내가 내 돈 내고 내 마음대로 학교를 다니는데 왜 교수한테서 이런 잔소리를 들어야 하느냐” 하고 반발하는 경우마저 있다. 이는 필자가 몇 년 전 수도권에 있는 한 사립대학에서 강사로 일하다가 학생에게 직접 들은 말이다.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학생들에게 청소 노동자들은 자기가 구매한 서비스를 자기 뜻대로 누리지 못하게 방해하는 존재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학생은 대학의 고객이 아니다. 대학은 고객을 상대하고 영리를 취하는 기관이 아니기 때문이다. 학령 인구가 점차 줄어들고 대학 또한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경우가 속출하는 실정이라 대학이 마치 서비스 업계에서 고객을 유치하듯이 학생을 유치하고 학생의 비위를 맞출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점 또한 부인하기 어렵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대학은 본래 진리 탐구와 전인적 인격 도야 등을 목표로 설립한 교육 기관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교육은 단순히 학생들의 요구에 맞게 실용적 지식을 제공하기만 하는 서비스가 아니라 ‘무엇이 진실이고 진리인지, 무엇이 바람직한 삶인지, 무엇이 아름다운 것인지, 그리고 전인적 인격을 갖추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을 학생들이 치열하게 탐구하고 실천할 수 있게 해 주는 활동이다. 학생들의 취업 등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실용적 지식 또한 이러한 것들을 바탕에 두고 가르칠 때 비로소 의미를 지닐 수 있으리라는 점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 학생을 이러한 목표에 맞게 교육하고자 한다면 언제나 학생의 비위만을 맞추어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예컨대 청소 노동자들의 집회 소리에 불만을 제기하는 학생이 있다면 그 학생에게 노동자들이 무엇을 위해 저렇게 소리를 높여 가며 호소하는지, 이 사회에 어떠한 불의와 모순이 있기에 이렇게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인지를 스스로 고민할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만일 이 과정에서 학생들이 불평을 하고 교수에게 이의를 제기한다면 대학이 앞장서서 그 교수를 보호해야 한다. 이처럼 의로운 일을 하는 교수들은 강의평가에서 자칫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는데, 그것이 만일 ‘바른 말’을 했다가 사려 깊지 못한 일부 학생들에게 불평을 들은 결과였다면 대학 당국에서 그 교수를 지지해 주는 것이 합당하다. 많은 대학에서 단순히 수치로 드러나는 강의평가 점수만 보고 그 점수가 낮은 교수에게는 예외 없이 제재를 가하곤 하는데 이러한 관행은 마땅히 개선해야 한다. 이는 학생을 고객으로 대하면서 단지 그 고객의 입맛에만 신경을 쓰겠다는 지식 판매업자의 장삿속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대학이 ‘지식 판매’에 머물지 않고 ‘교육’을 하고자 한다면 강의평가 결과를 어떻게 평가하는 것이 바람직할지부터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대학에서 교육을 제대로 받은 사람이라면 부당한 처우를 개선해 달라고 호소하는 청소 노동자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연대해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할 것이다. 그리고 사회에 만연한 천민 자본주의적 행태를 냉철하게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고자 힘쓸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대학생들의 청소 노동자 고소 사건은 대학이 그 본연의 설립 목표에 맞게 학생들을 교육해야 한다고 경종을 울린 사건이 아닐까 싶다. 이번 일을 계기로 대학이 지금까지 학생들을 어떠한 자세로 대해 왔으며 앞으로는 학생들에게 어떠한 존재가 되어야 할지를 우리 대학 구성원들이 함께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조원형 편집기획위원/서울대학교·언어학

서울대학교 언어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과 대학원에서 언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만하임 라이프니츠 독일어연구원 방문학자, 국립국어원 학예연구사 등을 거쳐 현재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 강의교수로 일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천주가사에 대한 텍스트언어학적 연구”, “텍스트언어학에 기반한 ‘쉬운 언어(Leichte Sprache)’ 텍스트 구성 시안”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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