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로남불은 인간 인식의 불가피한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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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로남불은 인간 인식의 불가피한 조건이다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2.07.02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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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 ‘신이 죽은’ 시대의 내로남불 | 허경 지음 | 세창출판사 | 216쪽

 

어느 순간부터 한국 사회는 내로남불이라는 말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었다. 그 연원을 따지자면, 처음 그 말이 나온 것은 정치권이었다. 즉, 이 말은 그 탄생에서부터 일종의 정치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말은 일종의 도덕적 판단을 내포하고 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것은 내가 하는 것은 정당한 것이고, 남이 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한 것이라는 판단 아래서만 성립될 수 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이 말은 아주 일상적으로 쓰인다. 그렇다면 과연 이러한 현실은 우리나라가 도덕적으로 중대한 위기에 봉착해 있다는, 또는 도덕적 타락을 경험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 주는 것일까? 다시 말해, 우리는 자신에게는 지나치게 관대하면서 남에게는 가혹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미는 뒤틀린 도덕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그러나 저자는 우리에게 또 다른 시점을 제공해 준다.

저자에 따르면, 내로남불적 행위, 즉 ‘팔이 안으로 굽는’ 행위는 인간의 보편적인 행위다. 누구도 이러한 인식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우리 모두 이러한 자기 편향적 인식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이러한 자기 편향적 인식과 행위를 좌시하지 않는다. 우리가 그럴 만한 힘과 권리를 가졌기 때문이다. 저자에 따르면, 오히려 그렇기에 우리는 더욱더 타인의 내로남불에 대하여 엄격해졌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사회의 향상된 평등과 기준이 아직 남아 있는 불평등과 부도덕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내로남불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조차도 사실은 자신의 행위를 내로남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러한 점을 고려하면 자신은 내로남불 행위를 한 적이 없다는 선언은 결국 자신의 내로남불을 인식하지 못했다는 선언에 불과할지 모른다. 또는, 당신에게는 그저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던 것뿐 아닌가? 이렇게까지 이야기를 하면, 마치 내로남불 행위를 하는 사람들을 두둔하는 것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질문은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내로남불적인 인식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편향적이며, 자기중심적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왜 그래야 하는가? 우리는 그럼으로써만 타인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를 악마화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내가 상대를 악마화할 때, 상대 역시 나를 악마화할 것이라는 사실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 상대를 악마화하는 것은 상대를 이해하기 어렵게 만든다. 그리고 상대를 이해할 수 없을 때 우리는 상대에 대한 공포에 휩싸이게 된다. 그렇게 해서 타인은 지옥이 된다. 그러나, 그때 우리 역시도 타인의 지옥이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이 지옥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런데 이 지옥에서 벗어나는 일은 생각보다 간단할지도 모른다.

결국 이 문제는 ‘사람들’에 관한 문제다. 다른 것은 곧 틀린 것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가 틀린 답이라고 생각하던 것들은 어떻게 보면 틀린 답이 아닌 그저 ‘다른’ 답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우리는 늘 다른 사람들을 틀린 것으로 간주해 왔다. 저자는 우리의 내로남불 행위나 내로남불 비판 담론이 단순히 도덕적 게으름이나 부도덕성 때문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인식론적 오류나 무지에서 기인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이러한 내로남불적 행위를 한다는 사실, 우리가 이러한 내로남불적 인식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상대 역시 나와 마찬가지다. 내가 생각하듯이 상대도 생각하고, 내가 잘못하듯이 상대도 잘못한다. 상대를 인정하면 우리는 거기에 서 있는 것이 나와 다를 바 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러함으로써만 우리는 ‘함께’ 살아갈 수 있다.

누가 전체를 볼 수 있는가? 모든 인식은 부분적 인식, 곧 치우친 인식, 편파적 인식이다. 어떤 인식이 아니라, 모든 인식, 곧 ‘인식’ 그 자체가 편파적이다. 너와 그들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불가피하게’ 편파적이다. 어떤 인간도 이러한 사실의 예외가 될 수 없다.

결국, 인간은 ‘함께’ 사는 존재다. 나는 네가 없이는, 우리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서로를 이해해야만 한다. 나만이 상대를 이해해 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로 나를 이해해 주어야 우리는 함께 살아갈 수 있다. 또 나는 나 역시도 이해해야 한다. 나는 무결하지 않고 타인처럼 잘못할 수 있는 존재다. 우리는 모두 내로남불을 행한다. 따라서, 우리는 타인들의 내로남불만이 아니라, 타인과 나 자신 모두의 내로남불을 감시하고 따져 묻는 비판 정신을 유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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