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기록한 조선 시대 양반가 문화, 그 문화를 이끈 문화 지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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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기록한 조선 시대 양반가 문화, 그 문화를 이끈 문화 지형도!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2.07.02 22: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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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 사가기록화, 옛 그림에 담긴 조선 양반가의 특별한 순간들 | 박정혜 지음 | 혜화1117 | 712쪽

 

오늘날 우리가 조선시대 궁궐과 왕실의 그림을 익숙하게 떠올릴 수 있게 된 데에 미술사학자 박정혜의 이름을 빼놓을 수 없다. 누구보다 일찍 조선시대 기록화, 궁중회화, 채색화 분야에 관심을 가진 그의 꾸준하고 묵묵한 탐구로 인해 문인화, 수묵화 위주였던 한국 미술의 세계는 한층 확장되었고, 어느덧 궁궐과 관청에서 제작한 다양한 기록화, 아름다운 채색화는 우리 미술사의 빼놓을 수 없는 장르가 되었다. 그런 그가 조선의 양반들이 남긴 이른바 사가(私家)기록화의 세계를 우리 앞에 또다시 펼쳐 보인다.

사가기록화는 글자 그대로 개인이 속한 집안 행사나 의례, 혹은 개인의 생애와 관련된 사건 등을 시각적으로 기록한 그림이다. 주로 행사 주인공의 자취를 기념하거나 조상의 업적을 선양하며 나아가 집안의 우수성을 알리고 위상을 높이려는 의도에서 만들어졌다.

궁궐이나 관청에서 공식적인 행사를 끝내고 공공기금으로 제작한 공적인 기록의 산물이라기보다 개인 혹은 집안들이 자신의 집안에서 치러진 여러 행사, 개인적으로 간직하고 싶은 특별한 순간들을 그린 것이다. 여기에는 부모님의 만수무강을 축하하는 경수연도(제1장), 나라로부터 국가 원로로 예우 받았음을 상징하는 사궤장례도(제2장), 혼인한 지 60년을 기념하는 회혼례도(제3장), 과거 급제 동기 동창 모임의 기념사진 같은 방회도(제4장), 지방의 여러 근무지에서 일했던 기억을 담은 부임지 기록화(제5장), 그림을 통해 관직의 이력을 꼼꼼하게 기록한 환력도(제6장), 세상을 떠난 조상이 국가로부터 이름을 받은 것을 가문의 영광으로 남겨둔 연시례도(제7장), 선대 조상들의 위대한 업적을 담은 일종의 그림족보 가전화첩(제8장), 평생도에 담겨 있는 양반의 일생(제9장)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조선시대 사가기록화는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일,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은 자랑거리, 대대손손 남기고 싶은 경사 등을 사실적으로 그림 안에 담아두었다. 이 그림들은 한 폭으로 그려지기도 하고, 여러 폭의 그림을 묶어 화첩으로도 만들어졌으며, 때로는 병풍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그림을 그린 이들은 개인과 가문의 사정과 상황에 따라 당대 유명한 화원부터 그림을 그리던 후손, 지역의 이름모를 화사까지 그 폭이 넓은 것도 특징이다. 이렇게 다양한 이들이 그린 그림은, 궁중기록화나 관청기록화에 비하면, 그 시대의 양식을 따르기는 하되 하나의 전형에 갇히지 않고 비교적 자유롭게 그려졌다.

 

사가기록화는 단순한 사실을 재현한 것에 머물지 않는다. 공식적인 단체 기념화로 만들어진 궁중기록화나 관청기록화에서는 찾기 어려운 개인의 노력과 집안마다의 역사가 깊이 내재되어 있는 것은 물론 조선 양반가의 유교적 가치와 가문에 대한 자부심이 그림마다 빼곡하게 담겨 있다. 다시 말해 양반 관료들이 조선 사회가 자신들에게 요구했던 유교적 가치를 어떻게 인식했는가가 그림을 통해 상세하게 드러나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곧 그들이 개인과 집안의 특별한 순간을 그림이라는 매우 사실적인 매체를 통해 시각화한 결과물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그들이 지향했던 바를 고스란히 마주할 수 있게 되었음을 뜻한다.

집안과 개인의 중요한 순간을 그림으로 남겨 기록하겠다는 뜻은 그러나 명망이 있거나 재력이 많다고 해서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집안의 누군가 책임을 지고 맡아야 했고, 모양새를 갖춰 이를 보존하는 데도 끊임없는 관심을 기울여야 했다. 그림으로 기록을 남기겠다는 인문적 소양, 화가를 섭외하고, 이를 현실화시킬 인맥, 이를 뒷받침할 재력이 모두 갖춰져야만 그림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한 번 그림을 그린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그려진 그림에 명망 있는 이들로부터 글을 받아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물론 이후로도 가문 대대로 후손에게 전승하기 위해서는 훼손 및 상실, 분실 등을 최대한 막아야 했다.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그림이 어떤 이유로든 상하거나 분실했을 때는 어떻게든 다시 모사를 해서 남겨야만 후대로 전승할 수 있었다.

때문에 후대의 모사본이 많은 것은 사가기록화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다. 모사본 하나하나마다 나름의 사연을 간직하고 있어 역설적으로 모사가 많이 된 것일수록 그림에 깃든 역사적인 가치는 더욱 무겁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여기에 더해 같은 그림을 모사하면서 반영된 시대적 변화의 흔적을 살피는 것 또한 사가기록화를 통해 만나는 또 하나의 각별한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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