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크루즈…포항운하와 바닷길, 그 물길의 낭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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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크루즈…포항운하와 바닷길, 그 물길의 낭만
  •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 승인 2022.07.02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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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혜숙의 여행이야기]_ 포항 크루즈

 

바다 한가운데 물 위에서 낚시하는 사람들. 과거 물박이 방파제는 밑동만 남았고 강심장들의 낚시터가 되었다.

강변은 땡볕이다. 바람도 없고 가까운 바다도 잔잔하다. 포항 운하관의 파아란 유리창은 액체처럼 흘러내리는 듯하고, 강 건너 거대한 포스코는 한낮의 열기로 희부윰하다. 운하관 아래 선착장 광장에 마련되어 있는 작은 대기실은 출항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모두가 한 배를 탈 사람들이다. 잠시 후 매표한 순서대로 배에 오른다. 여정에 대한 두려움도, 뱃멀미에 대한 걱정도 없다. 이별의 손짓을 하며 배를 쫓아 달리는 사람도 없다. 우리는 포항운하와 동빈내항, 송도 앞바다를 거쳐 운하관으로 돌아올 것이다. 

 

             포항 운하관과 크루즈 선착장. 운하관은 포항운하의 역사를 기억하는 공간이자 전망대다. 
                    포항 운하관 맞은편에 영일만으로 뻗어나간 포스코가 거대하게 펼쳐져 있다. 
 

배는 강변대로의 해도교 아래로 들어선다. 어둑한 해도교는 수문을 숨기고 있다. 운하의 개통 때 수문을 열어 물길을 텄고, 이제 만조 때면 수문을 닫아 바닷물이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다리를 통과하자 운하가 시작된다. 순간의 어둠 뒤 펼쳐지는 빛의 세계는 드라마틱하다. 숨도 쉴 수 없던 대기에 선선한 맛이 감돌고, 잔잔하던 운하의 물결이 배의 등장에 요동친다. 물의 깊이는 1m 50cm정도. “물에 빠지면 헤엄치지 말고 그냥 걸어 나가세요.” 

 

포스코 건설과 함께 매립되었다가 2014년에 다시 열린 포항운하. 운하의 양 옆으로 산책로와 스틸아트가 지나가고 포스코의 굴뚝이 소실점을 오래 지킨다.

승객들은 모두 시원한 선실에 앉아 뱃사람의 설명을 들으며 고개를 좌로, 우로 움직인다. 몇몇 사람은 뱃고물에 서서 뒤따라오는 물거품과 먼 소실점을 지키는 포스코의 굴뚝을 바라본다. 운하의 폭은 13-25m다. 손을 뻗으면 양옆의 길에 닿을 것만 같다. 물길 따라 산책로와 자전거길이 나란하고 유쾌하거나 예쁘거나 놀랍거나 한 스틸아트 작품들이 스쳐 지나간다. 물가 양쪽에는 고만고만한 높이의 집들이 늘어서 있다. 저기 벽면에서, 어둑한 창가에서, 돌아 서는 모퉁이에서, 그림들이 숨바꼭질한다. 몇 해 전만 해도 이 물길 위에는 수천 사람의 집들이 들어서 있었다. 그보다 훨씬 더 이전으로 가보면, 이곳은 형산강의 샛강이었다. 형산강은 영일만 바다를 눈앞에 두고 한 가지를 뻗어 동빈내항으로 흘렀다가 바다가 되었다. 갈대숲이 넓었고 물새들이 숨어 살았다. 그러다 1960년대 말 포항제철이 건설되고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샛강은 매립되었고 집들이 들어섰다. 40여 년이 지난 오늘, 사람의 마을은 다시 물길이 되었다. 물길은 2014년에 복원되었고 그 위에 터를 잡고 살았던 2천200여 명은 다른 곳으로 이주했다. 그 모든 시간이 섬광처럼 지나갔다. 복개와 복원이 시대의 요구에 맞춰 순환한다. 다리 밑 그늘에 사람들이 앉아 있다. 그들은 바람을 떠나보내듯 무심히 우리의 항해를 바라본다. 이제 1.3㎞ 운하의 끝이다.  

 

동빈내항에 들어서면 외편으로 먼저 죽도시장이 나타난다. 포항 최대 규모의 재래시장으로 1950년대에 갈대밭 무성한 내항의 늪지대에 자연적으로 형성되었다. 
                            퇴역 군함인 포항함. 현재는 선상 병영 체험공간으로 개방되어 있다. 

배는 동빈내항으로 들어선다. 왼쪽으로 벅적한 죽도시장이 보이고, 오른쪽으로 퇴역한 군함인 포항함이 보인다. 작은 조선소도 지난다. 내항의 양안을 살피느라 몸과 눈이 바쁘다. 땅의 가장자리를 따라 늘어서 있는 수많은 건물들, 물의 가장자리를 따라 정박된 수많은 배들. 그 소리 없는 소란과 활기와 힘과 질서가 쩌렁쩌렁 울린다. 바라보는 이로 하여금 삶에의 긍지를 느끼게 하는, 기막히게 멋진 모습이다. 과거 많은 물새들이 숨어있던 너른 갈대숲은 한줌 자취도 없다. 갈매기들은 내가 과자 봉지를 들고 있지 않다는 것을 진즉 알고 있는 듯 제 갈 길을 간다. 
  

       동빈내항. 예부터 천혜의 항구였고, 한때 포항의 경제를 쥐락펴락했던 동해안의 대표적인 항구였다. 
           해양수산청, 여객터미널, 활어위판장을 지나며 멀리 포스코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동빈내항은 영일만 안쪽 깊숙이 들어와 예부터 천혜의 항구였고, 한때 포항의 경제를 쥐락펴락했던 동해안의 대표적인 항구였다. 포항제철의 건설은 동빈내항이 국제항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되었지만 물량을 감당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었다. 곧 신항이 건설되었고, 동빈내항은 구항으로 물러났다. 지금은 구룡포 항이 어항의 핵심기능을 담당하고, 물류기능은 포항신항과 영일만항이 맡고 있다. 이제 동빈내항은 소형 어선들이 드나드는 항구지만 해경함, 군함, 연구함, 화물선, 어선 등 아주 다양한 배들이 정박해 있다. 이름을 불러 본다. 재훈, 창양, 은성, 삼봉, 일진, 금광, 탐해 등. 저것은 사랑하는 이의 이름일지도 모른다. 혹은 포부이거나, 기대이거나. 해양수산청과 여객선 터미널, 활어 위판장을 지나며 꽃봉오리 같던 내항이 점점 펼쳐진다. 흰 등대 아래에 두 사람이 누워 낮잠 잔다. 등대를 기점으로 내항은 끝이다. 이제 큰 바다다.  

 

                                       바다는 광대하게 펼쳐지고 멀리 호미곶이 희미하다. 
                           배가 속도를 낸다. 멀어지는 해안가 도시는 백금으로 만들어진 듯하다. 

배가 속도를 낸다. 해안가 도시가 멀어진다. 도시는 마치 백금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보인다. 바다는 광대하고 멀리 곶이 희미하다. 바다에서 먼 육지를 바라보면 애끓는 그리움 같은 감정이 솟는다. 마치 이역만리에서 귀향하는 사람처럼, 마치 이역만리로 떠나는 사람처럼. 노란 등부표의 바깥 해역을 달리며 송도 해수욕장을 바라본다. 송도는 포스코가 건설되면서 육지가 되었지만 이제 포항 운하가 열렸으니 다시 섬이라 할 만하다. 검푸르게 우거진 송도의 송림 아래에 무명실처럼 가늘게 놓인 모래사장이 보인다. 소나무가 많아 송도라 했던 이름은 아직 유효하지만 수십만의 인파가 몰렸던 너른 백사장과 갯벌은 1980년대의 전설이다. 그 전설의 시대를 소환하기 위한 노력이 몇 년간 이어졌고 지금은 눈부시다 할 정도의 백사장이 생겼다. 

 

바다 한가운데 물 위에서 낚시하는 사람들. 과거 물박이 방파제는 밑동만 남았고 강심장들의 낚시터가 되었다. 

형산강 하구가 가까워진다. 역시 포스코는 지구적 스케일의 스틸아트다. 고개를 돌리자 믿지 못할 광경이 펼쳐진다. 사람들이 바다 한가운데 물 위에 서서 낚시를 하고 있다! 아찔하다. 뇌가 쨍 소리를 낸다. 신인가. 사실 그들은 콘크리트 땅을 디디고 서 있다. 원래는 바닷물이 형산강으로 넘어가지 못하도록 만든 물막이 방파제였다고 한다. 횟집이 따닥따닥 붙어 늘어서 있었고 해녀들이 직접 잡은 해산물을 팔았던 곳이다. 그러나 환경오염과 해수면 상승 등으로 인한 위험으로 철거하고 이제는 추억과 방파제 밑동과 강심장을 가진 사람들만 남았다. 형산강 63km의 물줄기가 여기서 바다가 된다. 이제 강을 거슬러 올라간다. 형산강이 정말 너른 강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배가 운하관 선착장에 도착한다. 한 배에 올랐던 사람들이 모두 뿔뿔이 흩어진다. 이별의 포옹도 없이 시크하게.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대학에서 불문학을, 대학원에서 건축학을 전공했다. 대학시절 무가지 음악잡지 ‘Hole’을 만들었고 이후 무가지 잡지 ‘문화신문 안’ 편집장을 잠시 지냈다. 한겨레신문, 주간동아, 평화뉴스, 대한주택공사 사보, 대구은행 사보, 현대건설매거진 등에 건축, 여행, 문화를 주제로 글을 썼으며 현재 영남일보 여행칼럼니스트 겸 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내 마음의 쉼표 경주 힐링여행』, 『청송의 혼 누정』, 『물의 도시 대구』(공저)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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