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록예찬』의 이양하, 그의 고독한 삶과 문학의 총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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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록예찬』의 이양하, 그의 고독한 삶과 문학의 총체
  • 김욱동 서강대 명예교수·영문학
  • 승인 2022.07.02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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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에게 듣는다_ 『이양하: 그의 삶과 문학』 (김욱동 지음, 삼인, 376쪽, 2022.05)

 

문학가는 흔히 얼핏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한 조그마한 이미지에서 작품의 실마리를 찾아내곤 한다. 이러한 이미지는 마치 과일나무의 씨앗과 같아서 작가의 상상력이라는 비옥한 토양에서 배태되어 싹이 트고 줄기를 뻗어 마침내 한 떨기 아름다운 꽃을 피운 뒤 탐스러운 열매를 맺는다. 가령 미국 현대소설을 굳건한 발판에 올려놓은 소설가 윌리엄 포크너는 나이 어린 여자아이가 마당에 심어 놓은 나무에 올라가 집 안에서 벌어지는 할머니의 장례식 모습을 바라보는 이미지를 주춧돌로 그 유명한 『고함과 분노』(1929)라는 집을 지었다. 그의 또 다른 장편 소설 『8월의 빛』(1932)은 어느 한여름 시골 처녀가 조그마한 보따리를 들고 미국 남부 지방의 시골길을 걸어가는 이미지에서 작품의 실마리를 찾아 창작한 작품이다. 

이양하에 관한 책을 쓰기 전 내 뇌리에도 한 이미지가 좀처럼 떠나지 않고 계속 맴돌았다. 무더운 한여름 대여섯 살 난 사내아이가 칡덩굴 엉킨 시골 언덕길을 한 청년의 손에 이끌려 상여를 따라가는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이 소년의 손을 잡고 끌고 언덕길을 올라가는 청년은 소년의 사촌 형이고, 소년이 따라가는 상여에는 소년의 어머니 시신이 실려 있다. 이때 소년은 처음으로 상여에서 풍겨 오는 시체 썩는 냄새를 맡는다. 철이 들기도 전에 소년은 이미 ‘죽음의 냄새’를 맡았고, 그 냄새는 평생 그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게 된다. 

                  이양하 선생

내가 이 책을 쓴 것은 최재서(崔載瑞)에 관한 책을 막 탈고하고 난 직후였다. 최재서에 관한 책을 쓰고 나니 자연스럽게 이양하 쪽으로 관심이 쏠렸다. 군대의 제식 행위 용어를 빌려 말하자면 그것은 구분 동작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연속 동작이었다. 이처럼 최재서에게서 이양하로 이동한 것은 거의 무의식에 가까웠다. 최재서에 관한 책 다음에는 왠지 모르게 마땅히 이양하에 관한 책을 써야 할 것만 같은 생각이 나의 무의식을 지배하고 있었다. 

실제로 이양하와 최재서는 마치 샴쌍둥이처럼 비슷한 점이 너무 많다. 나이는 세 살 터울이어도 일제강점기 식민지 젊은 지식인으로 제국대학(도쿄제국대학과 경성제국대학)에서 공부했다는 점에서도 그러하고, 그 많은 전공 분야 중에서도 유독 영문학을 전공했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또한 영문학에 얽매이지 않고 한국문학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는 점에서도 두 사람은 서로 닮았다. 흥미롭게도 그들은 외국문학을 공부하는 목적이 궁극적으로는 자국의 문학을 풍요롭게 하는 데 있다고 생각하였다. 

물론 두 사람 사이에는 유사점 못지않게 차이점도 크다. 최재서가 창작보다는 비평과 이론 쪽에 무게를 둔 반면, 이양하는 시와 수필 같은 창작 쪽에 무게를 실었다. 일제 강점기 일본 제국주의에 협력한 최재서와는 달리 이양하는 친일과 일정한 거리를 두었다. 최재서와 이양하를 보면 식민지 지식인의 서로 다른 모습을 보는 것 같다.

물론 내가 이양하에 관한 책을 쓰기로 마음먹은 것은 단순히 최재서와의 관련성 때문만은 아니다. 평소 이양하의 문학적 성과를 높이 평가해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양하에게는 숙명처럼 늘 ‘수필가’라는 꼬리표가 붙어 다녔다. 실제로 ‘이양하’ 하면 파블로프의 개처럼 곧바로 ‘수필가’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이양하의 본모습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그에게서 ‘수필가’라는 꼬리표를 떼어 주어야 한다. 이 꼬리표가 그의 총체적 모습을 균형 있게 바라보는 데 적잖이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이양하가 김진섭(金晉燮)과 피천득(皮千得)과 더불어 뛰어난 수필을 써서 한국 수필 문학의 세 봉우리 중 하나를 차지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이양하를 수필가의 울타리에 가두어 두는 것은 그렇게 바람직하지 않다. 이양하는 수필가 못지않게 시인이요, 시인 못지않게 번역가요, 번역가 못지않게 영문학자였다. 

나는 이 책의 제목 그대로 이양하의 삶과 문학을 다루었다. 그의 부인 장영숙(張永淑) 교수는 “양하와 나의 생활이 간소한 데다 무인도처럼 잔잔했음은 그이가 극히 말 없는 위인이었던 탓이었을까”라고 회고한 적이 있다. 실제로 그는 바다에 홀로 떠 있는 무인도처럼 고립적인 삶을 살았고 좀처럼 말을 하지 않는 과묵한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그의 글 곳곳에는 그가 살아온 역사의 숨결과 그가 걸어온 삶의 발자취가 남아 있다. 나는 이 책에서 요즈음 기준으로는 말할 것도 없고 20세기 중반의 기준으로 보아서도 이르다고 할 예순 해 동안 살아온 그의 삶의 족적을 더듬어 본 뒤 시인, 수필가, 번역가, 영문학자로서의 그의 모습을 총체적으로 밝히려고 하였다. 

이 책은 모두 5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에서는 이양하가 살아온 고독하고 고단한 삶의 궤적을 면밀히 추적한다. 2장에서는 지금까지 거의 주목을 받지 못해 온 시인으로서의 이양하를 살펴본다. 3장에서는 이양하가 수필 장르에서 어떤 성과를 거두었는지 살핀다. 4장에서는 번역가로서의 이양하의 업적을 조명한다. 그리고 5장에서는 영문학자로 이양하가 한국 영문학 연구에 어떻게 초석을 다졌는지 살핀다. 이양하는 일찍이 1937년에 ‘겐큐샤 영미문학 평전 총서’에 일본어로 『월터 새비지 랜던』 평전을 저술하여 출간하였고, I. A. 리처즈의 『시와 과학』을 처음에는 일본어로 번역한 뒤 다시 한국어로 번역했으며, 영한사전과 한영사전과 중고등학교 영어 교과서를 편찬하여 한국 영어 교육에 크게 이바지했던 것이다. 

한마디로 나는 이 책에서 이양하가 정지용 못지않은 시적 상상력을 펼친 시인이었고, 한국 수필 문학의 금자탑을 쌓은 기념비적인 수필가였으며, 장르를 넘나드는 번역으로 한국 번역 문학사에 지대한 공헌을 한 번역가이자 세계정신을 호흡하는 지름길로서 영어 교육의 절실함을 깨달았던 영문학자였다는 사실을 밝히는 데 주력하였다.


김욱동 서강대 명예교수·영문학

미국 뉴욕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서강대 인문대학 명예교수로 재직 중이다. 환경문학, 번역학, 수사학, 문학비평 등 다양한 분야에서 꾸준히 연구해 온 인문학자다. 주요 저서로는 《환경인문학과 인류의 미래》(2021), 《세계문학이란 무엇인가》(2020), 《외국문학연구회와〈해외문학〉》(2020), 《아메리카로 떠난 조선의 지식인들》(2020), 《눈솔 정인섭 평전》(2020), 《하퍼 리의 삶과 문학》(2020), 《미국의 단편소설 작가들》(202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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