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독립운동사의 주역, 판 보이 쩌우의 자서전
상태바
베트남 독립운동사의 주역, 판 보이 쩌우의 자서전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2.06.28 02: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판 보이 쩌우 자서전 | 판 보이 쩌우 지음 | 김용태·박영미·이한영·최빛나라 외 2명 옮김 | 소명출판 | 427쪽

 

판 보이 쩌우(1867~1940)는 베트남의 저명한 민족지도자로서 식민지시기 동아시아를 무대로 베트남의 항불 독립운동을 이끌었던 역사적 인물이다. 이 책은 판 보이 쩌우가 프랑스 식민당국에 의해 가택연금을 당하고 있던 1929년에 한문으로 쓴 자서전이다. 그가 평생에 걸쳐서 베트남, 일본, 홍콩, 중국, 태국, 조선 등지를 누비며 한문을 이용해 동아시아 각지의 지식인들과 교유하고 함께했던 투쟁의 기록이기도 하다.

한국과 베트남은 역사적 경험에 있어 공통점이 많이 있다. 가까이로는 국토가 남과 북으로 분단되어 있었던 점도 같고, 외세에 의해 식민지로 전락했던 아픔도 공유하고 있으며, 더 멀리는 동아시아 조공책봉 체제에서 ‘제후국’의 반열에 있었던 점도 같다. 그러니 근대 국가 성립의 정통성이 독립운동에 있다는 점도 당연히 같다. 베트남은 우리의 ‘역사적 거울’이라 할 수 있다. 우리의 역사상이 잘 보이지 않을 때 베트남을 보면 명확해지는 측면이 있다.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 백범 김구가 있다면, 베트남의 독립운동사에는 판 보이 쩌우가 있다. 우리에게 판 보이 쩌우가 낯설게 느껴지지만, 그의 한문 저술 『월남망국사』는 발간 즉시 동아시아 전역에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여전히 우리 사회의 역사 시간에 언급되는 비교적 익숙한 책이라 할 수 있다. 

『판 보이 쩌우 자서전』은 『백범일지』와 마찬가지로 독립운동의 역사를 오롯이 담고 있다. 근왕(勤王) 운동에서 출발한 독립운동이 외교 투쟁으로 발전하고, 외교 투쟁에서의 좌절이 무력 투쟁으로 이어지고, 무력 투쟁에서의 좌절이 의열(義烈) 투쟁으로 이어졌던 피눈물 나는 베트남 독립운동의 역사는 그대로 우리의 독립운동사와 겹쳐진다. 베트남 독립운동 진영이 의열 투쟁으로 나서게 되었던 촉매가 바로 안중근 의사였음을 『판 보이 쩌우 자서전』은 생생히 증언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판 보이쩌우 자서전』은 우리의 역사를 다시 돌아보고, 나아가 동아시아를 사유하도록 하는 촉매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Phan in 1940

한편 판 보이 쩌우는 혁명가인 동시에 탁월한 작가였다. 그는 투쟁이 절망적 상황에 놓였을 때 매문(賣文)으로 동지들의 숙식을 해결하기도 하였던바 그의 작품집에는 수준 높은 시, 소설, 산문이 풍부하게 수집되어 있다. 『판 보이 쩌우 자서전』에도 그의 작가적 역량이 유감없이 발휘되어 있다. 과거 시험 준비를 하면서 오랫동안 수련한 한문 문장력이 독자를 사로잡는다. 『월남망국사』가 동아시아 한문 지식인들을 그토록 흥분시켰던 것은 그의 문장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 책의 번역을 역사학자가 아닌 한문학 연구자들이 맡게 된 점도 흥미롭다. 20세기 초 동아시아의 외교무대나 지식인들의 소통에 있어 한문은 공용어와 같은 역할을 하였다. 근대 이후에도 상당한 기간 동안 한문이 여전히 역사의 전면에서 적지 않은 역할을 하였던 사정이 작용하였기에 이 책이 한문학 연구자들의 눈에 먼저 포착될 수 있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