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38명의 삶과 고백으로 재구성한 프로이트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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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38명의 삶과 고백으로 재구성한 프로이트의 초상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2.06.28 02: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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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이트의 숨겨진 환자들: 당신이 모르는 프로이트 정신분석의 재구성 | 미켈 보르크-야콥센 지음 | 문희경 옮김 | 지와사랑 | 352쪽

 

우리는 프로이트의 의자에 앉았던 유명한 환자들을 알고 있다. 극심한 히스테리 증상으로 하반신이 마비되어 걷지 못하는 환자, 어릴 때 우연히 성적인 장면을 목격하고 충격을 받아 신경증을 앓는 환자, 아버지를 향한 욕망이 출산 환상으로 극대화되어 맹장염을 앓은 환자…. 이들 중 누군가는 프로이트의 처방과 조언을 신뢰했고 또 누군가는 헛소리라며 무시했다. 

오늘날에도 프로이트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정신분석’이라는 신기원을 연 선구자라는 시각, 혹은 그의 명성이 거짓과 환상 위에 세워졌다는 시각. 이 책은 후자의 편에 선다. 프로이트와 그의 치료가 환자의 병을 완전히 치유한 적이 없으며, 환자 중 일부는 오히려 그의 치료 이후로 정신 이상이 악화되어 불행한 결말을 맞았다는 것이다.

이 책은 프로이트가 치료했다고 주장하는 환자 중 그 삶과 병증을 객관적인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는 38명을 선별하고, 그들의 행적을 낱낱이 추적한다. 환자의 생생한 증언과 인터뷰 기록을 토대로 프로이트가 저술한 사례연구의 허와 실을 가리고, 치료 전과 후 환자들의 상태를 정확한 타임라인으로 나누어 프로이트의 치료가 과연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아본다. 

프로이트의 환자들은 다양한 오해와 왜곡으로 뒤덮여 있다. 몇몇 환자들을 살펴보자. ‘안나 O’라는 가명으로 유명한 베르타 파펜하임은 사실 프로이트에게 직접 치료받은 적이 없고 프로이트의 스승이자 친구인 요제프 브로이어 박사의 환자였다. 1917년에 프로이트는 브로이어 박사가 ‘안나 O’를 어떻게 치료했는지 설명하면서 그의 치료가 정신분석 치료의 근간이 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베르타는 프로이트가 그녀의 치료를 “훌륭한 치료 성공 사례”라고 말했던 시점 이후로 적어도 5년간은 여전히 같은 증상을 앓았다. 게다가 안면신경통을 잡으려고 브로이어가 처방했던 모르핀에 중독되어 오히려 더 큰 고통을 겪어야 했다. 프로이트는 공적인 자리에서는 ‘안나 O’의 치료가 성공적이었다고 말하는 한편 사석에서는 브로이어의 치료가 사실은 실패했다고 털어놓으며 치료 과정을 훨씬 자극적으로 부풀려 전달했다. 베르타는 정신분석계의 이권 다툼의 희생양이 되어, 원치 않게 자신의 삶과 치료 과정이 전 세계에 공개되는 수모를 겪었다.

프로이트가 교묘히 수정한 사례도 있다. 프로이트가 저술한 『히스테리 연구』(1895)에 실린 아우렐리아 크로니히의 사례다. 아우렐리아는 열여섯 살 때 이모부와 사촌언니가 한 침대에 누워 있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 후로 불안에 사로잡혀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사실 그 사건이 있기 2~3년 전, 겨우 열세 살이나 열네 살이었을 때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그때 이모부가 접근한 상대는 바로 아우렐리아였다. 아우렐리아는 이모부를 거칠게 뿌리쳤지만 그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지는 못했다. 프로이트에게 있어서 이 사례는 자명했다. 그의 ‘지연된 외상’ 개념에 따르면 이 소녀의 불안이 두 번째 사건을 겪으며 다시 올라왔고, 이제는 사춘기에 다다른 소녀가 첫 번째 사건의 성적인 의미를 이해하자 곧바로 혐오감이 불안 발작의 형태로 드러난 것이다. 하지만 프로이트는 1924년에 이 사례연구에 주석을 달아 아우렐리아가 사실 ‘조카딸’이 아니라 ‘딸’이었다고 밝힌다. 즉 사촌언니는 아우렐리아 본인이며 이모부는 아우렐리아의 아버지라는 것이다.

그래서 편리하게도 마침 새롭게 발전시키는 중이던 오이디푸스 이론의 관점에서 이 사례를 다시 해석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소녀는 아버지에게서 시작된 성적 유혹으로 인해 몸이 아팠다.” 말하자면 아버지가 접근하자 소녀의 내면에 억압된 근친상간의 욕구가 깨어났다는 것이다. 이후 진행된 연구에 따르면 사건의 시간 순서도 맞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 프로이트가 이렇게 사례를 바꾼 이유는 무엇보다도 당시 그가 고안했던 ‘처녀 불안’, ‘지연된 외상’, ‘오이디푸스 이론’에 이 사례를 끼워 맞추고 싶어서라고 추정된다. 하지만 아우렐리아의 불안 발작은 사실 의식에서 억압하지 않은 어떤 불쾌한 사건, 그리고 처음부터 그 의미를 알았을 사건에 대한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일 뿐이었다.

19~20세기 환자들의 삶을 21세기에 다시 조명하는 것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 책에서 프로이트 사례를 재차 확인하려는 독자는 실망할 수도 있다. ‘그들의’ 프로이트는 이 책에서 만날 수 없다. 대신 또 하나의 프로이트, 환자와 그들의 주변인들이 보는 프로이트를 만나게 된다. 두 명의 프로이트, 즉 환자의 사례를 전달하는 두 가지 방식 사이에서 접점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 이 책의 접근으로 혼란에 빠지거나 충격을 받을 모든 분께 미리 양해를 구한다.”(본문에서) 저자의 말처럼 이 책에서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기존의 프로이트를 만날 수 없다. 그가 세련되고 난해한 말로 지어올린 정신분석의 역사를 애써 되짚지도 않는다. 다만 ‘프로이트’라는 한 인간을 다층적으로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가 자신의 책에 서술한 사례연구의 이면, 그리고 그가 행한 정신분석 치료가 환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와 관계없이 신화가 된 인물을..

인간이 행하는 일인 이상 의학은 완벽할 수 없다. 다만 그것이 생명을 다룬다는 점에서 완벽을 추구해야 하며, 더 중요하게는 진실을 은폐해선 안 된다. 이 책은 이 사실을 우리에게 다시 상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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