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엔지니어 정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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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엔지니어 정약용
  • 정영기 서평위원/호서대·과학철학
  • 승인 2020.0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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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르타스]

저자인 김평원 교수는 국어교육 전공자인데 17년간 과학, 기술, 공학, 철학, 역사 등을 공부하고 정약용의 공학 업적을 집중 조명하여 『엔지니어 정약용』을 저술하였다. 이 책은 224개의 그림과 정약용의 저서 해제, 용어 설명, 모형제작 그림 등 부록 88쪽을 포함하여 전체 316쪽이다.

첫째, 『엔지니어 정약용』은 융합연구의 좋은 사례가 된다. 다들 아는 것처럼 아직도 이과와 문과를 나누는 방식에 익숙한 한국에서 융합을 강조하지만 공학분야 전공자들이 내놓은 융합 연구가 대부분이다. 언어 기능 교육에 관심을 가진 김평원 교수는 인문·사회·자연·공학 등 여러 학문을 융합한 글쓰기와 말하기 교육 전략을 꾸준히 연구해 왔으며, 현재는 의대 및 공대 교수들과 매체 몰입 현상을 뇌파와 시선 추적 장치로 분석하는 융합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놀라울 뿐이다.

둘째, 『엔지니어 정약용』은 정약용을 조선 근대 공학을 개척한 엔지니어로 평가한다. 정약용은 이제까지 조선시대 실학을 집대성한 학자이며, 강진에서 유배 생활하는 18년 동안 수백 권의 저서를 남겼으며, 거중기를 발명하고 수원성을 축조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 책은 정약용에 대한 기존의 평가를 과감하게 벗어나서 공학적 관점에서 엔지니어 정약용의 업적을 분석하였다. 정약용은 수원성 축조 같은 대규모 공사를 주도한 엔지니어이며 화성 신도시를 설계하고 한강의 배다리 프로젝트를 실행한 엔지니어이다.   

『엔지니어 정약용』은 전체 8장과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에서 저자는 18세기 조선에 엔지니어라는 직업이 없었기 때문에 정약용을 엔지니어라고 부르는 것이 어색할 뿐이지 그 당시 조선에도 건설사업이 이루어지고 있었고, 근대 엔지니어 집단이 형성되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2장부터 7장까지는 6개 공학 분야별로 정약용의 활약상을 소개하고 설명하고 있다. 2장은 신도시 화성을 설계한 도시공학자의 모습, 3장은 새로운 공법을 제시한 건축공학자의 모습, 4장은 거중기(擧重機)와 녹로(??)를 개량 발명한 기계공학자의 모습, 5장은 유형거(游衡車)를 발명한 자동차공학자의 모습, 6장은 한강 배다리(舟橋)를 설계한 조선공학자 모습, 7장 거더교(girder bridge)를 설계한 토목공학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8장에서 저자는 조선에 공학교육 시스템이 존재했다는 근거를 네 가지로 정리하고 있으며, 정약용의 공학적 사고를 최적화, 합리적 절충, 경제성 판단, 역발상, 모듈화, 단순화 등으로 정리하고 있다. 

▲  실학을 집대성한 조선시대 최고의 천재 다산 정약용
▲ 실학을 집대성한 조선시대 최고의 천재 다산 정약용

정약용(1762-1836)은 18세기 후반에 주로 활동했는데, 유럽에는 18세기에 엔지니어 단체 또는 엔지니어 학교가 등장한다. 프랑스는 유럽 국가 중 가장 먼저, 기술을 국가적 차원에서 접근해 전문가집단으로 키워내고자 하는 의지를 갖고 있었다. 프랑스는 16세기 초 공학교육을 시작하였으며, 1747년 엔지니어 양성을 위한 토목학교를 창설하였다. 독일어권의 경우 합스부르크 왕국은 성(城)과 교량 등 건축을 담당할 전문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1743년 드레스덴에 엔지니어 아카데미를 설립했다. 1799년 베를린에 설립된 바우하우스는 1879년 베를린 공대의 전신인 베를린 고등기술학교로 통합되기 전까지 주로 토목과 건축을 담당하는 인력을 배출하였다. 영국은 18세기 후반 근대 엔지니어라고 부를 수 있는 집단이 등장했다. 영국 최초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은 엔니지어 존 스미턴(John Smeaton)은 1771년 토목 엔지니어 단체(SCE)를 만들어 엔지니어와 전통적인 장인을 구별 짓는 계기를 마련했다.

우리 생활 주변을 살펴보면 엔지니어의 손길이 가지 않은 것은 거의 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 타고 다니는 자동차, 매일 사용하는 컴퓨터와 핸드폰, 여행갈 때 타는 비행기 등이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아파트 안에 있는 냉장고, 에어컨, 세탁기, 공기청정기 등 그 사례는 수없이 많고 다양하다. 그러나 우리는 엔지니어의 손길을 거의 느끼지 못한다. 아파트 거주자들은 대다수가 내력벽이 어디 있는지 그것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 알지 못한다. 건물이 프레임 구조인지 튜브 구조인지도 알지 못한다. 공학은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비행기가 추락하거나 건물이 붕괴되는 경우에는 공법을 얘기하거나 기술적인 부분을 지적한다.

코엔(B. V. Koen)은 인간이 가장 공평하게 나누어 가진 능력은 이성이 아니라 공학적 방법을 사용하는 능력이라고 주장한다. 이성은 고대, 중세, 근대 등 시대별로 강조되거나 무시되거나 다시 등장했지만 무엇을 만들거나 설계하거나 제작하는 공학적 방법의 사용은 인간의 탄생 이래 바뀌지 않았다는 것이다. 코엔은 인간이 된다는 것은 엔지니어가 되는 것이다(To be human is to be an engineer)라고 주장한다. 사람들은 나라가 다르고 지역이 다르고 문화가 다르고 종교가 다르더라도 무엇인가를 설계하고 만들고 그 결과물을 사용하며 살아온 것은 동일하다. 코엔은 공학적 방법을 모든 생활영역에서 과학자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는 보편적 방법으로 확장한다.

많은 학자들이 미래사회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이 지배할 것이라고 말한다. 융합이 대세이고 창의성이 강조되는 시대이다. 우리 교육도 여러 학문이 함께 참여하여 팀별로 활동하면서 학생들이 실질적인 문제해결을 경험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교육에는 공학이 필수이며 공학적 사고는 기본이 될 것이다. 필자는 공학 교과목이 우리 대학의 교양과목으로 편성되는 시대가 오기를 기대한다.

 

정영기 서평위원/호서대·과학철학

고려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양철학(과학철학) 전공으로 호서대학교 창의교양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KAIST 대우교수, 충남대 초빙교수, 국회 입법고시출제위원을 역임했으며, 한국동서철학회 차기회장이다. 저서로는 <과학적 설명과 비단조논리>, <귀납논리와 과학철학>, <철학과 영상문화>, <논리와 사고>, <논리적 사고와 표현>, <인문학 독서토론 20선>이 있으며, 역서로는 <근대철학사-데카르트에서 칸트까지>, <현대경험주의와 분석철학>, <공학철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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