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史·불교學 연구 100년 총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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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史·불교學 연구 100년 총결산!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2.06.27 01: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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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연구 100년]
- 『한국불교사연구』, 『한국불교학연구』 발간…한국불교 100년 총결산!
- 한국불교의 연구성과를 조망할 수 있는 42편의 논문 모음집
- 논문 단편 많고 응용학문 치중, 순수불교학 부족 추세 드러나

■ 『한국불교학연구: 한국불교연구 100년 논문선』 | 고영섭 엮음 | 민족사 | 2022.05.20 | 816쪽
■ 『한국불교사연구: 한국불교연구 100년 논문선』 | 고영섭 엮음 | 민족사 | 2022.05.20 | 856쪽

 

<민족사>에서 “한국불교연구 100년을 정리해 본다”는 관점에서 두 권의 학술서를 출간했다. 『한국불교사연구』(세존학술총서 6)와 『한국불교학연구』(세존학술총서 7)가 바로 그것이다. 이 두 책은 한국불교 100년을 점검하고 총결산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두 책은 이능화의 『조선불교통사』(1918)가 간행된 해로부터 100년이 되는 2018년 봄에 기획되어 4년여 만에 출간됐다. 동국대 고영섭 교수가 한국불교사를 대표하는 논문 21편, 한국불교학을 대표하는 논문 21편씩 선정하고 선정 이유 등을 정리하여 엮었다. 

이 두 권에 실린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총 42편의 논문을 통하여 한국불교사와 한국불교학 연구 성과를 가늠하고 조망해 볼 수 있을 것이며, 한국불교의 연구 척도와 심도도 한눈에 볼 수 있다. 이로써 앞으로 한국불교가 무엇을 보완해야 하는지, 또 한국불교 연구가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전망해 볼 수 있다. 

엮은이 고영섭 교수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현대적 방법(고증, 분석적 고찰)으로 한국불교사(史)와 한국불교학(學)을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1910~1920년대부터이다. 그 대표적인 책이 1918년에 출판된 이능화의 『조선불교통사』이다. 『조선불교통사』는 최초로 1600년 한국불교사를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정리했던 학문성 높은 책이다. 이 책은 이후 한국불교 연구의 시금석이 되었다.

그리고 또 이 무렵 학술적인 불교잡지 《조선불교월보》(1912), 《조선불교총보》(1917) 등이 나오면서 불교학 연구의 새로운 르네상스가 시작되었다. 이후 불교사와 불교학 관련의 많은 글이 발표되면서 한국불교학은 바야흐로 신(新)탐구, 신(新)연구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근대 학문의 실증적·객관적 연구방법론이 본격적으로 적용된 것은 1975년 『한국불교사상사』 이후이고, 특히 최근 2∼30년이라고 할 수 있다. 근대 학문성이란 고증, 분석적인 연구 방법, 다양한 관점에서 자료를 분석하여 연구하는 방법으로, 주로 1980년대 이후의 논문들에서 볼 수 있다.

이제 한국불교학은 높은 수준에 도달하였다고 자평할 수 있다. 분야도 광범위하고 탐구방식이나 연구방식도 합리성과 정합성을 바탕으로 좋은 학문적 성과를 이루고 있다. 그렇다고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학자들 모두가 단편 논문, 논문 숫자에만 치중하고 있고 본격적인 장편 학문 탐구는 도외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 한국 불교학계뿐만이 아니고, 한국 인문학계 전체의 문제점으로 속히 보완해야 할 사항이다. 보완하지 않는다면, 논문 숫자 놀이에 불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불교학회에서 발행하고 있는 계간 학술지인 『한국불교학』을 보면 논문의 70%가 응용 쪽에 몰려 있다. 순수 불교학에 대한 깊은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불교의 시대적 변화에 대한 응용은 매우 좋으나 지나친 쏠림 현상은 뿌리를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으로 본다.

또 한국불교적 전통에 대한 지나친 미화나 종파편향주의, 각 문중의 요청에 의해서 발표되고 있는 찬양 일변도의 논문은 사실을 왜곡할 수 있다. 현실적·현재적 관점에서 단순한 연구나 서술은 한 시기가 지나면 휴지가 될 수 있다는 것도 학자들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지나친 미화나 단순한 나열식, 그리고 1차적 자료 검토에 소홀한 채, 타인의 논문에만 바탕하여 논문을 쓰는 것은 가급적 지양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번에 민족사에서 발간된 한국불교연구 100년 기념 논문 선집 『한국불교사연구』와 『한국불교학연구』는 이런 한국불교 연구에 대한 100년을 정리해 본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미가 있다.

『한국불교사 연구』는 고대의 불교 전래 이래 중세와 근세 및 근대의 불교 역사 지형을 중심으로 관련 논문을 선정해 한국불교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조망할 수 있도록 엮었으며, 『한국불교학 연구』는 고대의 불교 전래 이래 중세와 근세 및 근대의 불교 철학의 지형을 중심으로 관련 논문을 선정해 한국불교철학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엮었다. 

이 두 책의 출간을 통해 한국불교 연구 100년을 점검하고 총결산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한국불교학 연구』와 『한국불교사 연구』에 실린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총 42편(각각 21편씩)의 논문을 통해 한국불교사와 한국불교학의 연구 성과를 가늠하고 조망해 볼 수 있으며, 한국불교의 연구 척도와 심도도 한눈에 볼 수 있다.

               저자 동국대 고영섭 교수

고영섭 교수는 ‘서문’을 통해 “편자는 도서출판 민족사의 의뢰를 받아 위의 두 저술[이능화, 『조선불교통사』(1918), 권상로, 『조선불교약사』(1917)] 간행 이후 지난 100년간 연구된 한국불교 관련 논문들 중 ‘한국불교사 연구’와 ‘한국불교학 연구’로 방향성을 정하고 한국불교 전체를 열람할 수 있는 기념논문을 조사하고 분류하여 ‘논문의 의미’와 ‘학문적 가치’를 기준으로 선정하여 두 책으로 엮었다.”고 설명했다.

고영섭 교수는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교수, 사단법인 한국불교학회장 겸 이사장, 한국불교사학회 한국불교사연구소장, 동국대학교 세계불교학연구소장 등을 맡고 있다. 저서로 〈한국불학사〉·〈한국사상사〉·〈한국불교사연구〉·〈한국불교사탐구〉·〈한국불교사궁구〉·〈분황 원효〉·〈원효, 한국불교의 새벽〉·〈한국의 사상가 10인, 원효〉·〈삼국유사 인문학 유행〉 등 다수의 논·저가 있다.


※ 실린 논문은 다음과 같다.

◆ 『한국불교사 연구』 = ▲김두진, 「고구려 초전불교의 공인과 그 의미」▲안계현, 「백제불교에 관한 제문제」▲신종원, 「안홍과 신라불국토설」▲김영태, 「신라에서 이룩된 금강삼매경, 그 성립사적 검토」▲김진무, 「정중종의 법계와 그 선사상」▲여성구, 「상산 혜각이 중국불교에 끼친 영향」▲김상현, 「신라 화엄학승의 계보와 그 활동」▲정병삼, 「8세기 화엄교학과 화엄사찰」▲김복순, 「신라하대 화엄의 1례–오대산 사적을 중심으로」▲최병헌, 「대각국사 의천의 불교사적 위치」▲채상식, 「의천의 불교교단 통합과 그 추이」▲김상영, 「고려시대 가지산문의 전개 양상과 조계종의 위상」▲서윤길, 「고려 밀교신앙의 전개와 그 특성」▲조명제, 「고려 후기 수선사의 결사운동과 사상적 위상에 대한 재검토」▲고영섭, 「《삼국유사》의 고승과 성사 이해–일연의 역사인식과 관련하여」▲ 황인규, 「고려 말 나옹문도와 오대산 중흥불사」▲이봉춘, 「조선시대의 승직제도」▲고익진, 「벽송 지엄의 신자료와 법통문제」▲김용태, 「청허 휴정과 조선 후기 선과 화엄」▲이종수, 「조선 후기 불교 사기私記 집성의 현황과 과제」▲김광식, 「일제하 한국불교계의 독립운동 전개와 성격」 등 고대 4국부터 고려와 조선, 대한제국 시대에 이르기까지의 불교 역사를 다룬 논문이 담겼다.


〈한국불교사 논문 선정 이유 예시〉

□ 김두진, 「고구려 초전불교의 공인과 그 의미」, 『한국학논총』 제36집, 국민대 한국학연구소, 2011. 8, pp.1~28.

이 논문은 고구려 초전불교의 공인과 그 의미를 관련 사료에 입각하여 촘촘히 밝히고 있는 점에 주목하여 선정하였다. 저자는 아도나 담시 또는 순도나 아도의 전래전승 속에서 고구려 초전불교와 공인불교의 모습을 구별해 찾기 위해 『해동고승전』과 『삼국유사』 외에 고구려 불상 조상명문造像銘文의 내용을 참조하여 왕즉불신앙은 물론 격의불교에서 벗어나 미륵이나 전륜성왕 또는 석가불 신앙과의 관계를 통해 고구려 공인불교가 신라의 그것과 비교하여 달리 나타난 모습을 국가 체계의 정비 과정과 연결시켜 이해해 가고 있다.

저자는 고구려는 신라에 견주어 불교가 일찍 전래되었지만 그러한 사정이 자세히 전하지 않는다며 신라의 초전불교가 공인되는 과정에 대한 이해를 통해 고구려에 처음 전래된 초전불교와 그 후의 공인불교의 성격을 각기 끌어내고 있다. 소수림왕 때에 순도가 고구려에 처음으로 불교를 전하였다고 하지만, 승려 망명亡名은 중국 동진 때의 학승이자 격의불교의 우두머리인 지둔 법사 도림(?~366)과 서신을 주고받았던 사실을 통해 고구려에 초전된 불교는 도교의 ‘무위’로써 불교의 공관을 이해하려던 중국의 격의불교를 충분히 이해하였다고 보았다.

저자는 전진왕 부견이 순도를 시켜 불상과 경전을 전한 것은 고구려에 초전된 불교가 국가불교로 공인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았다. 초문사(성문사)나 이불란사는 초전불교가 공인을 거쳐 국가불교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창건되었으며, 초문사인 흥국사와 이불란사인 흥복사의 이름 자체가 불교와 국가와의 연결을 생각하게 한다고 보았다. 또 공인 이후 고구려불교가 공관空觀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였고, 공인불교는 전륜성왕 관념이나 토착 종교의 신이神異 신앙을 포용하였을 뿐만 아니라 선악의 업보에 의한 인과응보 신앙을 가졌다고 보았다.

이어 저자는 공인 이후 고구려불교에 나타난 전륜성왕이나 석가불 및 미륵신앙은 왕실과 귀족이 모두 불교신앙을 받아들였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았다. 전륜성왕 신앙이 왕실 중심으로 수용되었다면, 미륵신앙은 귀족에게 보다 가깝게 다가갔으며, 국가불교를 성립시키면서 왕실과 귀족이 불교 신앙면에서 서로 타협함으로써 고구려는 귀족연합 정권을 창출시키고는 정복국가 체제를 갖추면서 밖으로 뻗어 갔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고구려 공인불교 속에는 미륵과 석가불이 나타나 있으며, 후기의 사실이지만 돌아가신 어머니의 명복을 빌고자 미륵존상을 함께 조성하였다는 기록, 아미타불을 조성하면서도 현실적으로는 미륵을 만나기를 원하였다는 기록, 석가문상釋迦文像을 만들었다는 기록 등을 통해 공인 이후 고구려 국가불교는 전륜성왕 신앙을 통해 전제왕권이 정복전쟁을 수행해 나가는 면을 강조하려는 의도를 지녔다고 파악하는 지점에서 이 논문의 의미와 학문적 가치를 찾을 수 있다.

 

◆ 『한국불교학 연구』 = ▲김성철, 「신삼론 약교이제설의 연원에 대한 재검토」▲조윤경, 「《대승현론》 길장 찬술설에 대한 재고찰-「이제의」를 중심으로」▲안성두, 「원측의 《해심밀경소》에 나타난 알라야식과 그 특색」▲이종철, 「원측과 티베트불교–쫑까빠의 꾼쉬깐델을 중심으로▲권오민, 「원효교학과 아비달마–화쟁론을 중심으로」▲고영섭, 「분황 원효의 일심사상–기신학의 일심과 삼매론의 일미와 관련하여」▲전호련(해주), 「일승법계도에 나타난 의상의 법계관▲장진영(진수), 「신라 의상이 일본 화엄학에 미친 영향」▲이수미, 「《대승기신론》의 알라야식에 대한 대현의 이해: 원효와 법장과의 관련을 중심으로」▲이병욱, 「의천의 균여화엄사상 비판의 정당성 검토」▲김영미, 「의천의 아미타신앙과 정토관」▲강건기, 「지눌의 돈오점수 사상」▲길희성, 「지눌의 심성론」▲고익진, 「원묘 요세의 백련결사와 그 사상적 동기」▲권기종, 「혜심의 선사상 연구–지눌의 선사상과 비교하면서」▲김방룡, 「여말 삼사(태고 보우· 나옹 혜근· 백운 경한)의 간화선 사상과 그 성격▲김호귀, 「청허 휴정의 선교관과 수증관」▲김용태, 「조선후기 불교의 심성 인식과 그 사상사적 의미」▲이종수, 「조선후기 삼문수학과 선 논쟁의 전개」▲박재현, 「구한말 한국 선불교의 간화선에 대한 한 이해」▲류승주, 「일제의 불교정책과 친일불교의 양상」 등 동아시아 불교사상사 관점에서 바라본 한국불교의 철학 관련 논문이 수록됐다.


〈한국불교학 논문 선정 이유 예시〉

□ 김성철, 「신삼론 약교이제설의 연원에 대한 재검토」, 『한국불교학』 제45집, 2006, 41~71면.

이 논문은 신삼론의 대성자인 고구려 요동 출신의 섭산 승랑의 약교이제설의 연원에 대해 재검토하고 있는 점에 주목하여 선정한 것이다. 삼론학은 구마라집의 구역 이후 그 제자들에 의해 널리 유포되었다. 하지만 종래에 성실학과 삼론학을 함께 배우는 풍습 때문에 소승인 성실학에 가려 대승인 삼론학이 온전히 이해되지 못했다.

논자는 섭산 승랑은 당시 이제에 삼대법사 즉 개선사 지장과 광택사 법운, 그리고 장엄사 승민의 이론인 ‘약리이제설’(約理二諦說) 혹은 ‘약경이제설’(約境二諦說) 즉 “이제를 이법 또는 경계로 간주하는 이론’을 비판하고 ‘약교이제설’(約敎二諦說) 즉 ‘이제를 교법으로 간주하는 이론’을 주장하여 ‘교법을 통해 이법인 중도를 드러내었다”고 하였다. 요서백제 출신인 혜균의 『사론현의』에서 정리하듯이 논자는 양나라 삼대법사들의 이제설은 ‘유소득의 약리이제설’이고, 광주 대량의 이제설은 ‘유소득의 약교이제설’인 반면 섭령흥왕 전통의 이제설은 ‘무소득의 약교이제설’이라고 하였다.

섭산 서하사에 주석하던 승랑에 의해 형성된 신삼론은 지관사의 승전과 금릉 흥황사의 법랑에 의해 계승되어 ‘섭령 흥황의 전승’이라 불리며 ‘약교이제설’로서 길장에 의해 널리 확산되었다. 논자는 양나라 삼대법사와 광주 대량법사는 모두 ‘분별적 이제관’인 ‘유소득의 이제관’을 견지했던 인물로 분류되기 하지만 성격이 달랐다고 보았다. 논자는 양나라 삼대법사는 이제를 ‘이법’으로 간주하면서 속제인 ‘유’와 진제인 ‘무’에 대해 유소득의 입장을 취했으며, 길장은 이와 같은 이제관을 ‘이견’(理見)이라고 불렀다고 하였다.

논자는 광주 대량법사는 이제를 ‘교법’으로 보는 약교이제설을 견지하면서 ‘유’와 ‘무’의 이제를 무소득의 관점에서 조망한 점에서는 양나라 삼대법사와 차별되지만, 이것은 ‘교견’(敎見)일 뿐이라고 보았다. ‘유’와 ‘무’의 이제는 물론이고, ‘교법과 이법’에 대해서도 무소득의 관점을 견지하는 섭령흥황 전통의 이제설이야말로 이들의 ‘이견’과 ‘교견’을 모두 넘어선 무소득의 약교이제설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하여 논자가 중도 종지의 체득을 위한 도구로 이제의 역할을 긍정하면서 무소득의 정신에 철저했던 섭령흥황 전통의 약교이제설은 변증법적 이제설인 ‘삼중이제설’ 또는 ‘사중이제설’을 탄생시켰다고 주장하는 지점에서 이 논문의 의미와 학문적 가치를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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