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에서 제시한 새 시대 … 중국과 한국 ⑩
상태바
철학에서 제시한 새 시대 … 중국과 한국 ⑩
  • 조동일 논설고문/서울대학교 명예교수·국문학
  • 승인 2022.06.26 18: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동일 칼럼]

중국에서는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에 이르러 왕부지(王夫之)와 대진(戴震)이 기학 또는 기일원론을 이룩하려고 했으나, 상당한 차질이 있었다. 구비철학과의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고, 식자층의 자성론이 힘들게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용기나 지혜가 부족해 일관된 주장을 펴지 못하고, 경전을 주해하면서 하고 싶은 말을 조금씩 하는 낡은 방법에 매달렸다. 

앞뒤가 맞지 않은 것이 어쩔 수 있는 일이고, 때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지론을 폈다. 화이론(華夷論)에 관한 왕부지의 견해가 중국 중심주의를 극단화하는 쪽으로 후퇴한 것을 이미 고찰했다. 그 범위를 넘어서도,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를 근대로 순행시키는 작업과 중세로 역행시키는 작업이 엇갈렸다. 청나라가 고전 편찬 사업을 대규모로 일으켜 능력 있는 선비들을 고증학에 몰두하도록 한 것은 의도해서 획책한 중세로의 역행이었다.   
 
한국에서는 서경덕이 이룬 성과를 더 발전시켜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를 근대로 순행시키는 기일원론을 착실하게 전개하면서 글쓰기 방법의 혁신도 시도했다. 임성주(任聖周)는 단상을 열거하는 <녹려잡지>(鹿廬雜識)에서 “人性之善 乃其氣質善耳”(사람의 성품이 선하다는 것은 그 기질이 선함이다)고 했다. 홍대용은 가상 문답 <의산문답>(毉山問答)을 써서,  초목이나 금수도 예의가 있다고 했다. 박지원(朴趾源)은 어디서 베껴 왔다는 <호질>(虎叱)에서, 호랑이가 사람보다 선하다고 했다. 

임성주ㆍ홍대용ㆍ박지원은 한동안 시끄럽게 전개된 인물성동이 논쟁을 인물성인기동론(人物性因氣同論)이라고 할 수 있는 방향으로 귀결 지워, 사람이든 다른 생물이든 기(氣)로 이루어진 삶을 누리는 것이 선이라는 점에서 대등하다고 했다. 이기이원론의 존립 근거를 부정하고, 기일원론의 획기적인 발전을 이룩했다. 만생(萬生)대등론이라고 할 수 있는 철학을 정립해, 근대를 넘어서 다음 시대로 나아가는 지침이게 한다. 

서경덕의 존재론에 임성주ㆍ홍대용ㆍ박지원이 인성론을 보태고, 최한기(崔漢綺)는 인식론을 추가해, 기일원론 또는 기학을 한 단계씩 구축했다. 최한기는 <기측체의>(氣測體義), <인정>(人政) 등의 체계적인 저술을 방대한 규모로 하고, 학문 연구를 위한 인식 방법을 추기측리(推氣測理)라고 하면서 체계적으로 정립하고 다각도로 활용했다. <인정>의 한 대목에서 <물과 내가 서로 본다>(物我互觀)고 한 것을 조금 보자. 

하늘이라는 것은 쌓인 기(氣)를 통괄한 이름이다. 마음이라는 것은 추측을 통괄한 이름이다. 나의 마음으로써 하늘과 견주면 범위가 서로 가지런하다. 추측으로써 쌓인 기(氣)와 견주면, 규모가 서로 비슷하다. 이런 까닭에 (마음은) 장대하면 천지만물을 포용하고, 치밀하면 금석이나 터럭을 뚫는다. (天者積氣之統名 心者推測之總名 以我心比乎天 則範圍相準 以推測比于積氣 則規模相倣 是故大而容天地萬物 密而透金石毫髮)

‘천지’는 총체이고, ‘만물’은 개체이다. 인식을 의미하는 “보다”라는 말이 둘이다. ‘관’(觀)은 심안(心眼)으로 ‘알아보다’, ‘시“(視)는 육안(肉眼)으로 ‘살펴보다’이다. 천지와 만물, ‘알아보다’와 ‘살펴보다’라는 이 네 용어를 사용해 논의를 진전시키는 과정을 주목하자. 총론을 이룩하고 각론으로 나아가는 논의 전개의 방법을 배워야 한다.   

인식 대상은 크고 주체는 작다는 것부터 말하려고 “천지로부터 나를 알아보다”, “만물로부터 나를 알아보다”라고 했다. 인식을 ‘관’(알아보다)이라고만 총괄해 말했다가, 다음 대목에서는 세분했다. 주체의 인식 능력을 “추측하는 것으로부터 천지를 알아보다”, “만물을 살펴보다”라고 구분했다. 총체는 알아보고, 개체는 살펴본다고 했다. 나누어 놓은 것을 합쳐, 사람의 마음은 천지만물과 대등하며, 총체인 천지와 개체인 만물을 각기 크게도 작게도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말로 결론을 삼았다.  
 
총체는 알아보고 개체는 살펴보는 것이, 요즈음 말로 하면 철학이고 과학이다. 옛 사람들은 철학만 숭상하고 과학은 돌보지 않는 잘못을 바로잡아 최한기는 그 둘이 둘이면서 하나이고, 하나이면서 둘이라고 했다. 오늘날 사람들은 과학에 사로잡혀 철학은 불신한다. 새로운 최한기가 다시 나타나, 이런 잘못을 시정하고 균형을 회복해야 한다. 

철학에서 중국은 스승이면서 토론 상대였다. 중국 스승이 대강 말한 것을 치밀하게 따지고 든 성과는 한정된 범위에서 역사적인 의의를 가진다. 서양 전래의 철학 때문에 한쪽으로 밀려났다. 중국 철학을 토론의 대상으로 하고 이룩한 창조는, 서양철학의 한계를 넘어서 새로운 시대를 여는 원리를 제시할 수 있다. 철학알기에 머물지 않고 철학하기로 과감하게 나아가, 할 일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중국이 스승이어서 고맙고, 논란의 대상이어서 더 고맙다. 중국과의 관계 전반에서 할 수 있는 이 말이 철학에서 특히 분명하게 확인된다. 논란의 대상이 있는 덕분에 발상의 역전을 철저하게 구현한 성과를 중국과 공유해 고마움에 보답하면서, 인류의 역사를 바람직하게 창조하는 데 함께 기여하자고 제안한다.  


조동일 논설고문/서울대학교 명예교수·국문학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같은 대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계명대학교, 영남대학교, 한국학대학원 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서울대 명예교수이자 학술원 회원으로 계명대학교 석좌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중국 연변대학 명예교수이기도 하다. 주요 저서로 <서사민요연구>, <한국문학통사>(전6권), <우리 학문의 길>, <인문학문의 사명>, <소설의 사회사 비교론>(전3권), <대등한 화합: 동아시아문명의 심층> 등 다수가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