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위기와 보복 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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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위기와 보복 소비
  • 고봉준 경희대·국문학
  • 승인 2022.06.26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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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코로나 팬데믹이 빠르게 ‘엔데믹(풍토병화)’으로 전환되고 있다. 사람들은 이제 두려운 마음으로 확진자의 증가 속도를 지켜보던 과거의 기억에서 벗어나 여름 휴가를 해외에서 보낼 계획을 세우느라 분주하다. 팬데믹 사태로 인해 외출과 여행을 자제하던 사람들도 심리적 불안감 없이 외부활동의 폭을 넓히고 있다. 여름을 맞이하여 해외여행 수요는 폭증세를 보이고 있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고유가 상황에도 불구하고 휘발유와 경유 소비량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여기에는 화석연료, 특히 비행기가 이산화탄소 배출의 주요 원인이라는 인식이 끼어들 여지가 별로 없어 보인다. 사람들은 이것을 가리켜 ‘보복 소비’라고 말한다. 

‘보복 소비’는 우리 시대를 지배하고 있는 근본 조건, 즉 우리가 ‘기후 위기’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잊게 만든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오늘날 ‘기후 위기’는 인류가 직면한 수많은 어려움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인류 전체의 운명이 걸린 근본적인 문제이다. 그것은 책임 소재와 상관없이 모든 개인, 모든 공동체에 심각한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인류 공동의 과제라고 불린다. 물론 ‘인류 공동의 과제’라는 말이 곧 기후 위기에 대한 책임이나 의무가 모든 인류에게 동일하다는 뜻은 아니다. 근대 이후의 인류사를 살펴보면 ‘기후 위기’에 대한 대부분의 책임은 화석연료를 이용해 산업화를 이룬 미국과 일부 유럽 국가들에 있다. 오늘날에도 이산화탄소 배출량 상위 5개국이 전 세계 배출량의 약 60% 정도를 배출하고 있으니 모든 국가에게 ‘책임’을 동일하게 묻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다만 ‘기후 위기’의 영향으로 인해 생존 자체가 위협받고 있는 국가의 대부분이 이산화탄소를 배출할 능력이 없는 가난한 나라들이라는 사실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코로나 팬데믹이 인류에게 가져다준 긍정적인 면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우리가 더 이상 과거의 방식으로 살아갈 수 없다는 것, 특히 생산과 소비에 대한 새로운 철학이 필요하며, 인간과 인간 아닌 것들의 관계 또한 근본적으로 재정립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 것일 터이다. 실제로 인류 사회는 지난 수십 년 동안 환경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말해왔고, 국제연합(UN)을 비롯하여 다양한 세계 기구를 통해 ‘기후 위기’에 대응해왔다. 유엔기후변화협약이 교토의정서(1997), 코펜하겐 합의(2009), 파리협정(2015) 등으로 확장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하지만 세계 각국의 다양한 노력과 국제적인 차원의 공조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심지어 파리협정 이후에도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매년 2.6%씩 증가했다. 이처럼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증가세를 보이던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급격히 줄어든 때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코로나 팬데믹 초기, 그러니까 중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이 일시적으로 셧다운 상태에 돌입한 기간이었다. 이 사태가 말해주는 바는 명확하다. 셧다운에 가까운 예외적 조건이 동반되지 않는 한 파리협정이 제시한 대응책은 실효성이 없는 ‘말’ 뿐이라는 것, 파리협정에서 채택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생산과 소비에 대한, 즉 경제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2년 남짓한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인류는 이러한 변화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듯했다. SDGs(Sustainable Deve Goals), 탄소중립, ESG(Environmental, Social, Governance), 그린 뉴딜 같은 신조어들이 지식계와 산업계의 화두가 되었고, 대학, 기업, 정부 등에서도 환경적 가치가 인류의 미래를 위한 최선책이라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이러한 변화는 소비 영역에도 적지 않은 변화를 불러왔다. 사람들은 ‘기후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그래서 코로나 팬데믹이 인류의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지불한 수업료라는 인식, 즉 위기가 곧 기회라는 인식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세상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세계는 빠르게 블록화되고 있고, 그와 동시에 식량, 자원, 에너지 등은 다시 무기로 변해가고 있다. ‘기후 위기’라는 인류 공동의 운명 앞에서 손을 맞잡던 세계 각국은 이념과 이익을 앞세워 빠르게 분열하고 있으며, 기업들은 경제적 상황에 반응하면서 환경 이슈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있다. 국제적 질서가 바뀌면서 ‘인류 공동의 운명’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도 바뀌고 있다. 대중들 또한 지난 2년 동안 억눌렸던 소비 심리를 빠르게 회복하고 있으며,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현상은 과거의 지배적인 담론들, 즉 ‘성장’과 ‘낙수효과’ 같은 오래된 단어들이 다시 불러들이고 있다. 

세상이 생존을 건 전쟁터가 될 때 ‘공동의 운명’이라는 단어가 공허한 말이 될 것임을 우리는 안다. 그리고 그때 ‘기후 위기’, ‘생태’, ‘탈성장’ 같은 가치들은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빠르게 지워질 것이고 오직 ‘생존’과 ‘이익’이라는 단어만이 남을 것이다. 오늘날 파국의 위협에 대한 경고는 대중에 대한 호소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기후 위기의 시대에는 ‘생산’이 곧 ‘파괴’일 수 있다. 우리는 더 이상 ‘생산’을 통해 위기를 해결하던 시대에 살고 있지 않다. 그러나 ‘위기’는 이러한 인식을 어렵게 만든다. 우리가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바로 이것이다. 고유가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가격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데 있듯이, 오늘날의 경제위기의 근본적인 해결책 또한 규모의 경제가 아니라 상품의 영역을 축소하는 탈성장에서 찾아져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보복 소비’는 ‘소비’를 통해서만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필사적인 몸부림 그 이상이 아니다. 그리고 그 몸부림은 가까운 미래에 제2, 제3의 팬데믹으로 되돌아올 것이다. 


고봉준 경희대·국문학

현재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부산외국어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고, 경희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문학평론이 당선되어 비평 활동을 시작했으며, 평론집으로 『반대자의 윤리』, 『다른 목소리들』, 『유령들』, 『비인칭적인 것』, 『문학 이후의 문학』 등이 있고, 연구서로 『모더니티의 이면』, 『근대시의 이념들』이 있으며, 산문집으로 『고유한 아름들의 세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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