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평의원회에 던지는 대학자치라는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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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평의원회에 던지는 대학자치라는 질문
  • 고영남 논설위원/인제대·법학
  • 승인 2020.0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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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직설]

대학의 자치는 국가와 자본으로부터의 자치, 그리고 이에 더하여 사학에서는 학교법인으로부터의 자치를 말한다. 문제는 대학의 자치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 다시 말해서 대학자치를 보장할 제도가 무엇인지이다. 물론 제도가 마련되었다고 해서 대학자치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냉소도 있을 수 있다. 무엇 때문에 대학자치를 고민하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질타도 있다. 또한 대표적 자치기구인 교수회와 학생회가 민사소송의 당사자능력을 인정받은 판례도 등장한 적 있지만 대학의 구성단위로서 여전히 제도로서의 보장체계에서 배제된 상태에서 따져보는 것이므로 그 한계는 뚜렷하다. 그렇지만 대학자치의 가치는 대학이 존재하는 이유이므로 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하루하루 살아가야하는 ‘현재’의 구조를 따져보는 일은 여전히 중요하다. 아울러 경험의 모자람으로 인하여 국·공립대학을 밀쳐놓고 사립대학의 형편만 따져볼 생각인데, 그 수가 많기도 하지만 한참 열악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학에서 대학의 자치는 대학이 민주주의를 어떻게 구현하고 있는지 여부와 크게 관련된다. 그리고 대학의 민주주의는 대학 구성원들이 갖는 권리를 어떻게 조화롭게 형성하고 행사하는지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유감스럽지만 한국의 사립대학에서 그 조화로운 권리의 형성과 행사는 대체로 제왕적 지위를 갖춘 ‘총장’의 역량에 크게 의존한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총장이 취임하더라도, 더욱이 직선제 총장이더라도 소환제도가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등장하는 탓에 구성원에 의한 민주적 통제가 어려울 정도의 제왕이다 보니 대학자치의 가치는 거북이걸음을 하는 민주적 타협과 소통보다는 빛나는 성과만을 좇을 수밖에 없다. 사학의 설립자와 그 후임들이 학교법인을 통하여 사립대학을 사실상 지배할 수 있는 현행 사립학교법의 규범과 문화를 염두에 둔다면 입법자가 사립대학에서의 민주주의를 통한 대학자치라는 그림을 상상했다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어쩌면 한국의 사립대학에서 대학자치와 민주주의를 꿈꾸는 것은 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구하는 격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으로서는 사립학교법과 고등교육법이 요구하는 ‘대학평의원회’의 역할이라도 날달걀 다루듯 조심스레 타진할 수밖에 없다.

대학평의원회(이하 ‘대평’이라고 함)는 2005년부터 사립대학에 반드시 설치되어야 하는 법률상 기구가 되었으며(국립대는 2018년부터 설치됨), 각 학교법인의 정관에서 그 조직이나 운영사항 등을 자세하게 정하고 있다. 사립학교법과 고등교육법에 따르면 11명 이상의 평의원으로 대평을 구성하여야 하며 교원, 직원, 조교 및 학생 중에서 각각의 구성단위를 대표할 수 있는 사람으로 구성하되 동문 및 학교의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자를 포함할 수 있다. 법률에 의하면 어느 집단도 과반을 차지할 수 없다. 최근 조교도 대평의 구성원이 되었지만 법률의 이러한 개정사항을 반영한 사립대학의 정관은 드물다. 하지만 대평의 본질은 도대체 대평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의 물음이다. 다시 말해서 대평이 과연 대학자치라는 물음에 답을 줄 수 있는가이다. 몇 가지만이라도 혁신한다면 그 물음에 가까운 답을 낼 수 있을 듯하다. 물론 혁신의 입법이 저절로 된 적은 없기에 바른 생각에 이은 힘 있는 실천이 이어져야 한다.

먼저, 그 대평의 (교수, 학생, 직원, 조교 등) 평의원을 민주주의의 원칙에 입각하여 선출하고 소환할 수 있어야 한다. 사립학교법 등은 ‘각 구성단위의 대표할 수 있는 사람으로 구성’하라고만 할 뿐, 그들이 민주주의의 원칙에 입각하여 선출되어야 함을 요구하지 않는다. 더욱이 사립학교법 등은 대평의 취지에 위배하여 활동하는 평의원을 어떻게 소환할 것인지에 관하여 침묵한다. 대평이 대학자치에 이르는 길목에 서고자 한다면 각 구성단위마다 평의원을 민주적으로 선출하고 이를 소환할 수 있는 요건과 절차 등을 법률에서 명시하여야 한다. 학교법인의 정관에 자율적으로 맡기거나 두리뭉실 회피할 일이 결코 아니다.

그 다음으로, 사립학교법 등이 대평의 자문사항으로 규정해놓은 ‘대학교육과정의 운영에 관한 사항’과 ‘학교 회계의 예산 편성 및 결산에 관한 사항’을 대평의 심의사항으로 개정하여야 한다. 특히 사립대학에서 학교 회계의 예산안과 결산안을 자문하는 데 그치기 때문에 관련 자료를 요구하거나 깊이 토론하는 데 한계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대학은 고등교육의 질을 담보하여야 하므로 교수와 학생 단위의 평의원들은 교육과정의 편성과 운영 등을 폭넓고 깊게 다루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고등교육기관에서 학생의 학습권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끝으로, 대평이 대학자치를 위한 실질적인 심의기구로서의 위상을 갖기 위해서는 법률이 요구하는 대평의 심의 절차를 거치지 않거나 그 심의 절차에 하자가 있는 경우 ‘대학의 발전계획에 관한 사항’, ‘학칙의 제정 또는 개정’ 등의 효력을 부정하는 규정을 명시적으로 둬야 한다. 화려한 장식에 불과한 법률적 장치만을 두른 대평으로서는 결코 대학자치의 가능성에 답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고영남 논설위원/인제대·법학

인제대학교 공공인재학부 교수로 <교수평의회> 의장을 맡고 있다. <민주법학> 편집위원이며, 전공은 계약법으로 교육법, 인권법, 주택법, 법여성학 등에도 관심이 많다. 저서로 『여성과 몸』(공저, 2019), 『대학정책, 어떻게 바꿀 것인가』(공저, 2017), 『민법사례연습』(201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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