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 교육을 할 수 있는 교재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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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 교육을 할 수 있는 교재를 찾아서
  • 이승하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 승인 2022.06.19 23: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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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쿠스]

예전에 서당공부는 곧 예절교육이었다. 우리는 유교의 윤리를 평가절하하는 경향이 있지만 들여다보면 나쁜 것이 없다. 과거시험 준비 기관이었던 서당에서는 사서삼경에 들어가기 전에 이런 책을 읽혔다.

고려 충렬왕 때 예문관대제학을 지낸 추적(秋適)이라는 이가 1305년에 중국 고전에 나오는 선현들의 명언ㆍ명구를 엮어 『명심보감』이라는 책을 냈다. 중국의 공자ㆍ맹자ㆍ순자 등 유학자들과 노자ㆍ장자 같은 도교 학자들의 명언과 함께 불경에 나오는 좋은 말들을 모아 책을 냈다.

1500년대 초, 박세무는 내자시정ㆍ군자감정 등의 벼슬을 한 이로 평양감사로 있던 민제인과 함께 천자문을 뗀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교재를 펴냈으니 『동몽선습』이다. 유학의 핵심 윤리인 오륜(五倫)에 관한 부분과 중국과 한국의 역사에 대한 서술로 구성되어 있다. 오륜은 하늘이 인간에 부여한 가장 기본적인 도덕적 품성이라는 것과 함께, 오륜의 근원은 효행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역사는 중국 고대로부터 명나라까지의 역사를 도덕적인 사관에 근거해 기록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역사를 단군으로부터 시작해 삼한과 삼국, 고려, 조선에 이르기까지 간명하고 체계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비록 국토는 작지만 예악과 문물이 중국에 못지않다는 점을 강조, 아이들로 하여금 우리 역사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했다. 

『채근담』은 중국 명나라 말기의 문인 홍자성이 쓴 책으로 전편에서는 사람들과 잘 교류하는 방법을, 후편에서는 자연 속에서 느끼는 즐거움을 표현하였다. 처세의 방법도 이 책의 주요 내용이다. ‘채근’이란 나무 잎사귀나 뿌리처럼 변변치 않은 음식을 말한다. 이 책도 유교ㆍ도교ㆍ불교의 사상을 융합하여 교훈을 주는 내용으로 꾸며져 있다.

이런 책이 현대인에게도 유용할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윤리 도덕이 완전히 땅에 떨어진 이 시대에 아이들이 무엇을 보고 배워야 할 텐데, 정치가들의 발언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신문의 기사에서? 텔레비전 드라마의 대사에서? 

“정치를 하는 요체는 공정함과 청렴함이다. 집안을 이루는 도리는 검소함과 부지런함이다.” “입과 혀는 재앙과 근심이 드나드는 문이요 몸을 망치는 도끼다.” 『명심보감』에 나오는 말이다. 이 책에는 공자가 한 이런 말도 나온다. “착한 사람과 함께 있으면 난초가 있는 방에 있는 것과 같다. 시간이 한참 지나면 그 향기를 맡지 못하지만 그에게 동화된다. 나쁜 사람과 함께 있으면 생선 가게에 들어간 것과 같다. 시간이 한참 지나면 그 냄새를 맡지 못하지만 그에게 감염된다. 빨간 물감을 담은 것은 붉어지고 검은 물감을 담은 것은 검어진다. 그래서 군자는 함께 지내는 사람에 대해 신중하다.” ‘근주자적 근묵자흑’이 여기서 나온 말이다. 

『동몽선습』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부모와 자식 사이의 사랑이란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하고자 해서 하는 것도 아니다. 사람이 타고난 성품이다. 부모는 자식을 낳아서 기르고 사랑하여 가르쳐서 훌륭한 인물로 만들고, 자식은 부모의 뜻에 순종하고 정성껏 봉양해서 그 몸과 마음을 안락하게 해드려야 한다. 부모는 자식을 바른길로 인도하고 자식은 부모의 잘못을 간해서 처세에 허물이 없도록 하는 것이 부모와 자식의 길이다. 부모가 혹 자식에게 잘못하는 일이 있더라도 자식은 그것을 마음에 두지 말고 더욱더 자식의 도리를 힘써야 한다.” 교사가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 중 이런 것이 들어 있으면 좋지 않을까. 이런 것이 케케묵은 것이고 공리공담인가. 

『채근담』의 내용은 보다 실리적이다. “좁은 길에서는 한 걸음 양보해 다른 사람을 먼저 가게 하고, 맛있는 음식은 조금 덜어 다른 사람들에게 맛보게 하라. 바로 이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가장 편안하고 즐거운 방법 중 하나다.” 참 그럴듯한 가르침이 아닌가. 이런 말도 나온다. “부싯돌이 빛나는 한순간의 삶을 살면서 길고 짧음을 다툰들 그 세월이 얼마나 길겠는가. 달팽이 더듬이와 같은 좁은 세상에서 자웅을 겨룬들 그 세상이 얼마나 크겠는가.” “귀한 인격을 얻으려면 불꽃으로 단련하고, 세상을 뒤집으려면 살얼음 위를 걸어야 한다.” “무슨 일이든 힘을 다하라. 그러고는 아름답게 벗어나라. 다하지 않으면 세상과 멀어지고 벗어나지 못하면 세상에 잡힌다.” “오로지 나만 생각하면 뜻은 부서지고 머리는 캄캄해지고 은혜는 비참해지고 마음엔 때가 타서 조만간 후회한다.” 

소크라테스로부터 시작하여 헤겔의 변증법에 이르는 서양철학사 공부도 학생들의 인격 형성에 도움이 되겠지만 동양의 이런 철학은 부모나 교사, 친구나 후배에 대해 예의를 잃어버린 우리 사회에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 이런 책이 교재였던 왕조시대에는 벼슬을 하다가 상소문을 써 귀양을 가곤 하였다. 그들이 인격을 닦게끔 한 책이 바로 이런 책이었다. 


이승하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현재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으로 등단. 시집 『예수ㆍ폭력』, 산문집 『꿈꾸듯 미친듯이 뜨겁게』,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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