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파괴자, ‘제한된 윤리성’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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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파괴자, ‘제한된 윤리성’의 함정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2.06.19 22: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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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원칙은 흔들리는가 | 민재형 지음 | 월요일의꿈 | 248쪽

 

윤리성, 공정, 정의, 원칙. 우리 시대의 화두라 해도 과언이 아닌 말들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각종 언론매체에서는 공정성 시비와 관련한 기사와 논쟁을 다루고 있다. 이런 현상을 반영한 듯 기업, 공공 기관, 대학 등 수많은 조직에서도 윤리경영을 강조하며 관련 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해오고 있다.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를 붙들고 다음 질문을 던졌다고 해보자. “당신은 윤리적인 삶을 원하십니까?” 이 질문에 “아니오”라고 답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대부분은 “그렇다”라고 답할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윤리적인 삶을 살고 있습니까?”라고 다시 물어보자. 많은 이들이 첫 질문에서 한 만큼 쉽게 “그렇다”고 답하지 못할 것이다. 사실 우리 대부분은 윤리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길 원한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깨닫는다, 그게 마음처럼 쉽지 않다는 걸. 이는 개인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조직 차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왜 개인의 윤리적 삶, 조직의 윤리적 경영이 생각처럼, 마음처럼,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일까?

저자 민재형 교수(서강대 경영대학)는 이 책에서 이 문제를 ‘제한된 윤리성’의 관점에서 집중적으로 다룬다. 인간은 두뇌의 한계로 인해 고의성이 없는 판단 착오를 일으킨다. 이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윤리적 의사결정을 희석하고 왜곡한다. 즉 사람은 종종 자신이 비윤리적으로 행동한다고 인식하지 못한 채 비윤리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이를 ‘제한된 윤리성’(bounded ethicality)이라고 한다.

요컨대 이 책의 주제인 ‘제한된 윤리성’은 인간의 인지적 한계로 인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 부지불식간에 일어나는 비윤리적 판단이나 행동을 말한다. 한마디로 무심코 걸려드는 비윤리의 덫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인간이 부지불식간에 저지를 수 있는 비윤리적 판단이나 행동이 어떠한 원인에 의해 일어나는지를 설명하고, 이를 교정할 수 있는 처방전도 함께 제안한다.

먼저 저자는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설교식(preaching) 윤리교육의 한계와 이에 대한 대안으로 자발적 교정 방식(nudging)의 윤리교육을 이야기한다(1장). 성인(成人)을 대상으로 하는 설교식 윤리경영 프로그램은 효과도 낮을뿐더러, 오히려 구성원들로 하여금 윤리적 책임감이 면제된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어 결국에는 그들의 윤리적 판단 능력이나 동기를 프로그램의 원래 취지와는 정반대로 약화시킬 수 있다. (이를 2장에서는 ‘도덕 면허’ 현상의 일종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제한된 윤리성의 원인과 이에 대한 처방전을 본격적으로 다루는 2장에서는 ‘자기 기여의 과대평가’ ‘워비곤 호수 효과’ ‘내재적 태도’ ‘표준의 조정’ ‘이해 충돌’ ‘비윤리성의 기억 상실증’ ‘도덕 면허’ 등 개인이나 조직이 자신들도 인지하지 못한 채 비윤리적 판단이나 행동을 하게 되는 18가지 이유를 국내외의 연구 결과와 실제 사례를 통해 살펴본다. 아울러 제한된 윤리성이라는 주제를 공부하면서 우리가 곱씹어봐야 할 좋은 의사결정을 위한 아홉 가지 팁(tip)도 함께 제안한다(3장). 또한 책 말미 〈부록〉에는 독자들이 윤리적 의사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을 정리해 ‘후회 없는 의사결정을 위한 잠언 101’을 담았다.

“마지막으로 단순히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책에서 제안한 처방전이 내 것이 되는 것은 아님을 꼭 강조하고 싶다.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다르다. 이 책의 처방전은 번거롭지만 한번 해보고자 하는 독자의 의식적인 실천에 의해서만 체화(體化)되어 빛을 발할 수 있다. 책에서 제안한 처방전을 몸으로 실천하고자 하는 의지와 노력이야말로 자신의 윤리적 의사결정 능력을 이전보다 현격히 높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속한 조직과 사회의 건전성을 회복시킬 수 있을 것이다. 성철 스님의 말은 그래서 울림이 있다. ‘실행 없는 말은 천번 만번 해도 소용없다. 참으로 아는 사람은 말이 없는 법이다.’”(저자 ‘에필로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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